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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와 미술관

‘집중과 선택’ 빛난 현대·컨템포러리 명문

올브라이트-녹스 미술관

  • 최정표 |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jpchoi@konkuk.ac.kr

‘집중과 선택’ 빛난 현대·컨템포러리 명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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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추상화에 매료된 녹스는 이들 작품을 수집하는 데 열정을 쏟았다. 미국 추상표현주의 선구자인 잭슨 폴록을 유명 화가로 만드는 데는 그의 공로가 컸다고 알려진다. 그의 주장으로 미술관은 추상표현주의 대가 클리포드 스틸의 작품을 구입했는데, 이로써 스틸 작품을 최초로 소장한 미술관으로 기록된다. 또한 헨리 무어(Henry Moore)의 조각을 처음 구입한 미술관 중 하나이기도 하다. 1985년 앤디 워홀은 녹스의 초상화 ‘Portrait of Seymour H. Knox’를 만들기도 했다.

녹스는 60년간 버팔로 예술대학을 열성적으로 키워왔으며, 1939년까지 학장을 지냈다. 1950~69년에는 버팔로 뉴욕주립대(State University of New York) 이사장을 맡아 이 대학을 명문 주립대학으로 키웠다.

올브라이트-녹스 미술관은 2007년까지 로마시대의 아름다운 청동조각 작품 ‘Artemis and The Stag’를 소장했다. 고대 그리스의 여신 아르테미스의 조각상이다. 사냥하는 여신이 화살을 발사한 직후 독특하고 섬세한 자세를 묘사한 작품이다. 기원전 1세기~기원후 1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로마 유적지에서 1920년대에 발굴돼 몇 사람의 손을 거친 후 1953년에 이 미술관의 항구적인 소장품이 됐다. 가장 아름다운 고대 조각 작품 중 하나로 인정받는 작품이다.

그런데 미술관 측은 2006년 이 작품을 매각하기로 결정한다. 비판이 비등하고 언론이 몰려들었다. 관장은 “미술관이 현대 및 컨템포러리 작품에 집중하려면 매각이 불가피하다”고 해명했다. 아무리 훌륭한 작품이더라도 그 미술관의 특성과 임무에 맞지 않으면 매각도 검토해볼 수 있다는 것이 관장의 의지였다. 그러자 ‘반대파’는 재정 사정이 또 어려워지면 다른 고대 및 고전 명품도 내다  팔 위험이 있다고 우려하고 나섰다. 우여곡절을 거친 후 이사회의 투표로 아르테미스 조각상의 매각이 최종 결정됐고, 다시 회원들의 투표를 거쳐 이 결정이 추인됐다.





입체파 대표작 ‘Man in Hammock’

‘집중과 선택’ 빛난 현대·컨템포러리 명문

고갱의 ‘Spirit of the Dead Watching’(1892).

‘집중과 선택’ 빛난 현대·컨템포러리 명문

고갱의 ‘The Yellow Christ’(1889).

이 작품은 2007년 6월 뉴욕 소더비 경매에 나왔다. 예상 가격은 500만~700만 달러. 그런데 뜻밖에도 2860만 달러에 낙찰이 이뤄졌다. 당시까지 조각 작품으로서는 최고 금액이었다. 유럽의 한 컬렉터를 대신해 런던의 유명한 아트 딜러 쥐세프 이케나치가 구입했다. 올브라이트-녹스 미술관은 이 낙찰금으로 전문 분야를 한층 더 강화할 수 있었다. 익명의 컬렉터가 사간 아르테미스 조각상은 2008년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나타났다. 여기서 6개월간 전시됐다.

미술관은 제각기 전문성과 특성을 가진다. 해당 전문성에 맞지 않는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면, 그것이 아무리 값진 것이더라도 팔아버릴 수 있다는 것이 실천된 사례다. 쉽지 않은 결정, 용기 있는 결정이라 하겠다. 이 경매 이후 자금 곤란을 겪는 다른 미술관들도 소장 작품 매각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작품을 매각하는 것이 타당한지, 매각한다면 무엇을 내놓아야 하는지  따져봐야 할 문제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어쨌든 올브라이트-녹스 미술관의 용단(勇斷)은 여러 미술관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

입체파(Cubism)는 20세기 초 현대미술을 상징한다. 입체파로 가장 높은 명성을 올린 화가는 피카소다. 그런데 입체파를 창시하고 이론적 기초를 세운 화가는 프랑스의 두 화가, 글레이즈(Albert Gleizes)와 메챙제(Jean Metzinger)다. 두 사람은 화가이자 문학가, 철학자였다. 1912년 함께 쓴 ‘입체파(Du “Cubisme”)’는 입체파 이론을 정립한 저술로 가치를 널리 인정받는다. ‘입체파 선언문(Cubist manifesto)’으로도 불리는 이 책의 출판 100주년을 맞아 2012년 프랑스 파리에서는 5개월에 걸쳐 큰 행사가 열렸고, 기념우표도 발행됐다. 글레이즈와 메챙제의 작품을 함께 전시한 첫 행사이기도 하다.

올브라이트-녹스 미술관은 글레이즈가 입체파 양식으로 그린 메챙제의 초상화 ‘Man in Hammock’을 갖고 있다. 해먹에 앉아 있는 메챙제를 입체파 양식으로 그린 그림이다. 함께 책을 쓴 이듬해인 1913년에 그렸다. 입체파인 만큼 사람의 모습도 분명하지 않고 누구인지도 명확하지 않다. 입체파 그림이라는 것이 본래 그렇다. 이 작품은 미술사에서 매우 유의미한 그림이고, 이 미술관의 대표 소장품이기도 하다.

글레이즈는 파리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시를 즐겨 쓴, 생각이 많은 문학청년이었다. 4년간 군에 복무한 후 화가의 길을 걸었다. 글도 많이 썼는데, 특히 독일 종합예술학교 바우하우스에서 그의 글이 많이 읽혔다. 뉴욕에서도 4년을 머물며 미국에 유럽 현대미술을 알리는 데 크게 기여했다.

메챙제는 군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가 나폴레옹 군대의 장군이었다. 메챙제는 학창 시절 공부를 곧잘 했고 그림에도 재능을 보였다. 고향 낭트에서 파리로 옮긴 뒤 본격적인 화가의 길로 들어섰다. 파리에서 젊은 화가들과 어울리면서 두각을 나타내다 1906년 글레이즈를 만나 입체파에 빠졌다.



고갱 대표작 2점 소장

올브라이트-녹스 미술관에서는 고갱(Paul Gauguin)의 두 작품 ‘The Yellow Christ’(1889)와 ‘Spirit of the Dead Watching’(1892)을 눈여겨봐야 한다. 둘 다 고갱의 특색이 두드러지는 그림이다.

‘The Yellow Christ’는 고갱이 고흐와 헤어진 후 1889년 가을 프랑스 서북부의 시골 도시 퐁타방(Pont-Aven)에서 그린 그림이다. 많은 화가가 이 마을에 머물며 그림을 그렸기 때문에, 그 화가들을 ‘퐁타방파’라고도 한다. 고갱은 1886년 처음 이 마을에 온 후 1888년 고흐가 있는 아를로 가기 전 다시 찾았고, 고흐와 헤어진 후 1889년 또다시 찾아들었다. 이 그림은 상징주의의 대표 작품 중 하나다. 수채화로 그린 똑같은 그림이 시카고 미술관(Art Institute of Chicago)에도 있다.

고갱은 1891년 남태평양의 외딴섬 타히티로 옮겨간다. ‘Spirit of the Dead Watching’은 그 이듬해인 1892년 원주민 여인의 누드를 그린 작품이다. 엎드린 여인은 뭔가 모를 공포에 휩싸여 있다. 유령을 이미지화한 소녀, 소녀를 이미지화한 유령이라고 할 수 있다는 뜻에서 고갱이 이 같은 제목을 붙였다고 한다.

그림 속 여인은 고갱의 현지처다. 고갱에 따르면 어느 날 밤늦게 집에 와보니 그녀가 발가벗은 채 꼼짝도 하지 않고 침대에 엎드린 자세로 공포에 질려 눈을 크게 뜨고 있었다고 한다. 그 모습이 그대로 그려져 있다. 그녀가 느끼는 공포는 침대 뒤의 늙은 여인으로 의인화했다.

고갱은 프랑스의 후기 인상파 화가로 사후에야 그 진가를 인정받았다. 당시 유명한 미술상 볼라르(Ambroise Vollard)가 고갱 전시회를 열면서 사람들은 그의 진가를 알게 됐다. 볼라르는 고갱 생전에 한 번, 사후에 두 번 그의 전시회를 열었다. 고갱은 피카소와 마티스에게 특히 많은 영향을 끼쳤다. 고갱의 작품은 러시아의 유명한 컬렉터 세르게이 슈킨(Sergei Shchukin)이 많이 구입했고, 이 때문에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에르미타주 미술관과 모스크바의 푸시킨 미술관이 고갱 작품을 여러 점 소장했다.

고갱은 파리 태생이다. 그러나 1850년 그가 두 살일 때 가족이 정치적 이유로 페루에 이주했다. 아버지는 페루로 가는 도중에 사망했고, 어머니가 고갱과 누이를 데리고 외가 식구와 함께 수도 리마에서 4년간 살았다. 유아기의 페루 생활은 훗날 그의 예술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고갱이 7세 때 가족은 다시 파리로 돌아왔고 이후 오를레앙으로 가서 아버지 쪽 가족과 죽 함께 살았다. 고갱은 곧 불어에 익숙해졌지만, 페루풍의 스페인어를 아주 좋아했다고 한다. 고갱은 타히티에서 2년을 지내다 파리로 돌아온다. 그리고 또 2년 후 타히티로 되돌아갔고 거기서 사망한다. 원인은 모르핀 과다 사용으로 알려진다. 이래저래 많은 일화를 남긴 화가다.



최고가 갱신 중

고갱은 요즘에도 새로운 일화를 낳고 있다. 2014년 이탈리아에서는 1970년 런던에서 도난당한 고갱의 그림 한 점이 발견됐다. 작품 가치가 무려 4000만 달러라고 하는데, 소유자는 자동차회사 피아트의 노동자였다. 그는 이 그림을 1975년 한 중고품 시장에서 50달러에 샀다고 한다. 그림과 관련한 이런 얘기들은 적지 않다. 그렇다고 요행을 바라고 그림을 사서는 안 될 일이다.

고갱의 작품은 최근 미술 시장에서 최고가를 경신하는 중이다. 주요 컬렉터들이 그의 작품을 매우 선호하기 때문이다. 1892년작 ‘When Will You Marry?’는 지난해 3억 달러에 거래된 것으로 알려진다. 구매자는 중동의 ‘카타르 미술관’이라고 하는데 확인된 것은 아니다. 

최 정 표


‘집중과 선택’ 빛난 현대·컨템포러리 명문
● 1953년 경남 하동 출생
● 미국 뉴욕주립대 박사(경제학)
● 공정거래위원회 비상임위원, 건국대 상경대학장
● 저서 : ‘경제민주화, 정치인에게 맡길 수 있을까’
   ‘재벌들의 특별한 외도’ ‘한국재벌사연구’ ‘공정거래정책 허와 실’
   ‘한국의 그림가격지수’ 등
● 現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경실련 공동대표






신동아 2016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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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표 |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jpchoi@konku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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