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6월호

세상 속으로

“밥줄은 대부업 檢·警·재벌 커넥션 탄탄”

요즘 강남 조폭들

  • 남훈희 | 자유기고가(고려대 영어영문학과) brentnam11@gmail.com

    입력2016-06-08 15:38:56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영화의 단골 소재로 등장하는 조직폭력배(조폭)는 의외로 멀리 있지 않다. 세(勢) 불리기를 위한 조직 간 ‘전쟁’보다 합법적 영업활동에 종사해 좀처럼 대중의 눈에 띄지 않을 뿐이다. 세상의 음지에 호기심 많은 ‘열혈남아 대학생’이 강남 조폭의 세계에 뛰어들었다.
    “건달? 야, 너 그게 무슨 뜻인 줄 알아? 하늘 건(乾), 이를 달(達). 하늘에 통달했다는 뜻이야. ‘간다르바(乾達婆)’라고 세상의 좋은 향기만 맡고 하늘을 떠다닌다는 신의 이름이기도 해. 그런데 하는 짓마다 썩은 내 풍기는 니들이 무슨 건달은 건달이야. 깡패새끼들이지.”

    1997년 개봉 영화 ‘넘버3’에서 주인공 서태주(한석규 분)가 자신을 시종 ‘깡패’라고 부르는 마동팔 검사(최민식 분)에게 “건달이라고 불러주쇼”라며 대들자 마 검사는 이렇게 한방을 먹인다.

    우리말에서 폭력을 생업으로 삼는 이를 지칭하는 단어는 다양하다. 주먹, 건달, 깡패, 조폭, 왈짜, 왈패, 어깨, 무뢰배, 불량배, 폭력배, 불한당, 깍두기, 양아치…. 자유당 시절 이정재의 ‘동대문사단’ 핵심 참모 유지광은 자서전 ‘대명(大命)’에서 깡패, 건달, 협객 등의 표현을 나열한 뒤 각각의 어원과 의미를 풀어 설명했다.

    가령 ‘깡패’는 영어로 폭력단을 뜻하는 ‘갱(gang)’에 무리를 뜻하는 ‘패(牌)’가 결합해 파생된 ‘갱패’가 깽패를 거쳐  깡패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그는 깡패를 ‘경제적 이득을 목적으로 폭력을 사용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했다. 그러면서 김두한, 이성순(시라소니), 이화룡 등 당대 주먹들이 깡패라는 말에 모욕감을 느낀 것은 “돈을 노려 주먹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요즘 주먹들을 뭐라고 불러야 할까. 그들은 어떻게 진화해 무엇으로 먹고사는 걸까.



    권투 트레이너 조폭

    필자는 대학생이다. 태생적으로 겁이라곤 요만큼도 없는, 문자 그대로 열혈남아다운 기질 탓에, 공부만 해온 대다수 동기들과는 매우 다른 궤적의 지난날을 보냈다. 초·중·고 시절을 통틀어, 공부를 잘해 교장, 교감 선생님의 ‘부름’을 받고 교무실에 간 횟수와 싸움을 잘해 담임, 특히 학생주임 선생님의 ‘호출’로 교무실에 끌려간 횟수가 얼추 비슷하다.

    거액이 든 지갑의 주인을 찾아줬고, 고등학교 1학년 땐 동네 아파트 단지에서 젊은 여자를 성폭행하려던 치한의 얼굴에 주먹을 연타로 내리꽂은 공로를 경찰의 ‘선행 표창장’으로 인정받은 전력도 있다. 늦은 밤 길거리에서 시비가 붙어 (‘선행 표창장’을 받은) 파출소에서 자정 넘게까지 진술서를 작성하느라 애를 먹은 기억도 있다.

    각설하고, 필자가 다니는 권투체육관의 트레이너 A씨는 무명의 프로복서다. 나이가 다섯 살 많아 형이라 부른다. 권투로 인연을 맺은 후 친분을 쌓았는데, 어느 날 그가 단둘만 있는 자리에서 놀라운 사실 하나를 털어놨다. 암담한 한국 프로복싱계 현실에서 권투만으론 생계를 유지할 수 없어 오래 전부터 ‘조직’ 생활을 병행한다는 것, 그가 몸담은 조직은 소위 ‘전국구’로, 서울에서도 노른자위인 강남이 ‘나와바리(구역)’라는 것이다.    

    평소 대한민국 사회의 음지(陰地)에 관심이 많던 필자에겐 요즘 주먹계의 판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21세기를 살아가는 그들의 주수입원은 무엇인지, 주먹과 공권력 간 유착관계의 진실은 어떤 것인지…온갖 궁금증이 몰려들었다. 그래서 A씨에게 달라붙어 그가 ‘형님’으로 모시는 중간보스 등 동료 조직원들과 만나는 자리에 끼워달라고 졸라댔다.


    “마른 걸레에도 물이…”

    대부업의 주고객은 누구일까. 돈 때문에 막다른 골목에 몰린 서민층일까. 이에 대해선 OO파가 운영하는 대부업체 사무실에서 실장 직함을 맡고 있는 조직원 C씨가 답했다.

    “서민이 이용하는 대부업은 길거리에 명함 뿌려대는 일수 업체가 대다수이고, 주먹계 대부업을 찾는 이들은 ‘사’자 돌림의 전문직종이나 잘 알려진 연예인들이다. 특히 과거에 각종 사건, 사고를 일으켜 방송 출연은 물론 연예활동도 안 하는 이들 중 상당수가 고객이라고 보면 된다.”

    C씨는 필자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인생 조언’이라며 말을 이었다.

    “그들이 돈을 빌리는 목적은 대개 사업과 도박이다. 각각 절반쯤 된다. 명심할 것은, 사채를 쓰면 무조건 망한다는 사실이다. 내가 알기로 지금까지 우리(주먹계 대부업)하고 거래해서 사업에 성공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특히 사채 끌어다 도박하는 건 몇 대에 걸친 패가망신의 지름길이다. 족보 하나가 그냥 궤멸되는 거지(웃음).”

    돈을 빌린 후 갚지 못하는 이들에겐 어떤 방식으로 대응할까. B씨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검사들이 ‘걸레는 빨아도 걸레’라는 신조를 갖고 있다면, 우리는 ‘마른 걸레도 쥐어짜면 물이 나온다’는 신조를 갖고 있다. 사람을 쥐어짜는 데도 노하우가 있다. 채무자의 집이나 직장으로 찾아가는 건 양반 축에 든다. 정말 안 되겠다 싶으면 인근 야산으로 끌고 가 아무 말 없이 흙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안 갚고 배기겠나.”

    가만, 아까는 건달과 깡패, 조폭을 가르는 기준이 의협심이라 하지 않았나. 돈을 목적으로 폭력을 남발하는 이는 건달의 자격이 없다고 해놓고. 그런 의문에는 C씨가 답해줬다.  

    “우리는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을 등 쳐먹는 게 아니다. 돈 빌리고 제때 안 갚는 이들에게 갚으라고 정당하게 요구할 뿐이다. 재삼 강조하지만, 그들 대부분은 전문직종에 종사하거나 돈 잘 버는 유명 연예인들이다. 충분히 갚을 능력이 있는데도 안 갚는 이가 너무 많다. 그러니 산으로 끌고 갈 수밖에.”

    지금도 조직 간 ‘전쟁’이 벌어질까. C씨의 말에 따르면 예전만큼은 아니란다. 나눠 먹을 파이가 커진 만큼 웬만하면 타협해서 피 보는 일을 피한다고. 하지만 주먹은 주먹이기에 전쟁은 왕왕 터진다. 전쟁엔 ‘연장’도 동원될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다. 주먹들이 사시미칼(회칼)을 선호하는 이유는 뭘까. B씨가 말했다.

    “사시미칼은 용도가 조리용으로 등록돼 도검법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일본도 같은 여타 칼들은 소유에 따른 도검 소지 허가 절차가 필요한데, 사시미칼은 안 그렇다. 회를 뜨는 데 쓰는 칼이라 날이 예리하다는 장점도 있고.”  

    사시미칼을 쓸 때 선호하는 부위는 발목 아킬레스건이다. 일반인은 흔히 상대방의 배를 찌를 거라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눈에 잘 띄고 생명까지 위협하는 복부, 흉부에 대한 공격은 무조건 피한다. C씨의 설명이다.

    “죽으면 말할 것도 없고, 죽진 않더라도 복부나 흉부를 공격하면 죄가 무거워 학교(교도소)에서 기본 20바퀴(징역 20년)는 돌아야 한다. 주먹에게 징역살이만큼 지긋지긋한 건 없다. 그러나 아킬레스건은 눈에 잘 띄지 않으면서 생명에도 별 지장을 주지 않는다. 지금까지 내 경험상 특별한 법률적 후폭풍은 없었다. 조직 간 전쟁의 목적은 상대를 죽이는 게 아니라 불구로 만들어 주먹 세계에서 퇴장시키는 데 있다.”

    주먹들은 여전히 공권력과도 연결고리가 있을까. B씨는 자신들이 전국구로 인정받는 이유는 규모와 역사, 단결력 면에서 상대가 될 만한 조직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공권력과의 커넥션에서도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 수준으로 고위층에.접대와 상납을 수없이 한다고 했다.

    “검찰, 경찰은 물론 재벌과도 커넥션이 있다. 그래서 누구 하나 죽어나가는 일이 생긴다면 모를까, 어지간한 일로는 우리를 쉽게 잡아넣지 못한다. 접대, 상납 사실을 죄다 불면 자기들도 끝장인데 뭘.”



    정치권과는 거리 두기

    C씨는 요즘 주먹들은 정치권과는 일부러 거리를 둔다고 밝혔다. 과거 동대문사단의 이정재부터 정치권의 하수인 노릇을 하며 커온 주먹은 말로가 비참하다는 것을 한두 번 본 게 아니라며, 이는 그간 주먹 역사에 축적돼온 일종의 학습효과라고 전했다.  

    B씨에게 건달로 살아온 삶에 만족하는지 물었다. 그는 웃으며 답했다.

    “세파에 떠밀려 여기까지 왔지만 후회는 없다. 후회하면 뭐 하겠어. 다만 이 세계를 동경하는 청소년이 없길 바라지. 하긴, 내가 그렇게 희망한다고 주먹 될 놈이 안 될 일은 없겠지만. 다만 남군(필자)은 기질이 시원시원하고 똑 부러진 게, 우리 조직의 브레인으로 영입하고픈 마음이 생긴다(웃음).”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