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180일 열애 끝 서울로 “저, 미친 거 맞죠?”

북한식당 女종업원과 서울대 출신 엔지니어 그 운명 같은 사랑

  • 송홍근 기자 | carrot@donga.com

180일 열애 끝 서울로 “저, 미친 거 맞죠?”

2/2

종업원 수집 자료, 평양에 보고

▼ 한국 드라마도 봤어요?

“네. 봤어요. 음식점에서 일하는 이들은 사상 단련도 하지만 문화교육도 해요. 손님들과 대화를 나눠 ‘간을 뽑으려면’ 말이 통해야 되잖아요. 요즘이라면 ‘송중기보다 유아인이 더 좋더라’는 식으로 대화하는 거죠.”  

정부는 2월 “해외 북한식당 출입을 자제해달라”고 국민에게 당부했다. 정보 당국은 북한음식점에서 벌어들인 돈이 북한 당국으로 흘러드는 데다 남측 인사를 상대로 한 정보 수집 공간으로도 악용된다고 관측한다. 국가안전보위부, 정찰총국, 225국 등 북한의 대남 공작기관이 일부 북한음식점을 직영한다고 설명한다. 정보 수집, 포섭 활동을 하는 대남 공작 거점으로 이용한다는 것이다. 음식점 한 곳의 연평균 수익은 10만~30만 달러로 알려졌다. 이렇게 확보한 외화는 소속 기관에 ‘충성자금’으로 납부하거나 북한 공관 운영비로 사용된다. “룸을 갖춘 북한식당이 많다. 룸에서 새벽 2~3시까지 유흥을 즐긴다. 여성 두 명이 들어와 한 명은 악기를 연주하거나 노래를 부르고 다른 한 명은 말벗 노릇을 한다”는 게 정보당국의 설명이다.

▼ 한국 정보 수집도 한다면서요.

“한국인 특기가, 술에 취하면 가족사부터 다 말해요. 스마트폰에 보관한 사진도 보여주고. 우리 아들은 어디서 일하고, 내가 다니는 회사는 어떤 곳이고…. 한국 사람과 함께 사진 찍는 게 허락됐어요. 한국 손님들이 앞다퉈 사진을 찍는데, 그게 다 음식점 홍보잖아요. 무슨무슨 회사를 다닌다는데 우리가 알게 뭐예요. LG, 삼성쯤 돼야 ‘아, 그렇구나’ 하는 거죠.”



정보 당국은 “북한 식당이 CCTV, 도청장치 등을 활용해 각종 대남 정보를 확보하고 한국인의 명함, 사진, 언행을 수집해 평양으로 보고한다”고 밝힌다. 대화 내용은 물론 정치인에 대한 인물평, 여론 동향 등을 종업원이 수집한 자료를 토대로 일보(日報) 형식으로 작성한다는 것이다.  



VIP 상대 ‘꽃값’ 영업

▼ 일일·주간·월간 보고를 한다고 들었어요.

“다 보고했어요. 접촉한 사람이 누군지 일일이 적어요. 그런데 정보 수집 활동의 기준이 뭐죠? 한국 사람들은 묻지 않아도 스스로 말하거든요. 명함 주면서 회사가 뭐하는 곳인지 다 말해줘요. 이름, 연락처, e메일 주소 등을 적은 후 명함을 딱 끼워 보고하죠. 손님을 국적별로도 나눠 정리해요. 어느 나라 사람이 많이 오는지, 특정 국가 사람은 어떤 음식을 주로 주문하는지 등을 통계 내는 겁니다. 예컨대 한국인은 술값과 팁, 중국인은 음식과 술이 주 관심사죠. 중국인의 테이블 당 매출이 더 많아요. 한국 사람은 딱 먹을 만큼만 주문합니다. 새로운 요리를 개발할 때도 보고한 내용이 활용되고요.”  

▼ 적극적 정보 수집은 아니다?

“관광객은 다음에 안 올 사람일 소지가 커 관심을 덜 주죠. 자주 올 것 같은 사람에게는 ‘선생님 회사는 뭘 생산해요?’ ‘월급은 얼마예요?’ 같은 질문을 일부러 해요. 월급이 얼마라고 답하면 ‘돈을 잘 버니 여기 밥값은 아무것도 아니겠네요’라는 식으로 치켜세워주고요. 손님에게 들은 얘기를 보고서에 쓰기는 합니다. 간접적 정보 수집이라고나 할까요.”

그녀가 “다른 형태의 음식점도 있다”면서 덧붙여 말했다.

“공간을 대여해 노래방 형식으로 운영하는 곳이 있어요. 음식은 달랑 평양냉면 하나예요. 술만 팝니다. 방 안에 꽃들이 있는데, 그게 다 돈이에요. 공연을 잘해서 손님이 꽃을 하나 건네면 10만 원, 이런 식입니다. 술값 계산할 때 꽃값이 추가돼요.”

▼ 업태가 건전해 보이지 않는데요.

“상당히 예쁘고 모든 게 철저한 애들이 일해요. 어떻게 보면 선을 넘을 지점이 많은 곳이에요. 그래서 가족관계든 사상이든 완벽한 애들만 보냅니다. 얘들이 술은 절대 안 마셔요. 보통 북한음식점이 일반 고객을 상대한다면 그곳은 VIP를 상대한다고 보면 돼요. 새벽까지 공연이 이어지거든요. 그쪽에서 일하는 애들은 중국어도 아주 잘해요.”

▼ 종업원이 몇 명이었나요. 다들 악기를 다룬다던데요.

“스물세 명. 악기는 다 연주할 줄 알죠. 요샌 전자기타, 전자피아노를 많이 써요. 저 같은 경우 사범대는 악기가 필수거든요. 발풍금, 아코디언, 기타, 가야금….”

▼ 4월 초순 북한식당 종업원 13명이 집단으로 탈북해 한국에 입국했습니다.

“열세 명이 다 함께 한국에 오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대단한 결심을 한 것 같아요. 먼저 경험한 사람으로서 말하면 가족이 가장 걱정되거든요. 북한에 사는 부모를 한국으로 데려오기가 어렵잖아요. 해외에 자식을 보내는 가정은 평범한 사람들보다 잘살거든요. 내막은 잘 모르지만, 13명이 함께 대단한 선택을 했다는 데에는 석연찮은 구석이 있어요. 이 대목에서 꼭 하고 싶은 얘기가 있습니다. 언론에 탈북 사실을 공개한 건 정부가 정말로 잘못한 거예요. 북한에 남은 가족이 피해를 보거든요.”   

‘그녀’는 ‘그’의 도움으로 가족을 모두 한국에 데려왔다.



어머니, 오빠, 올케 탈북시켜

▼ 음식점 얘기는 여기까지만 해요. 서울 가는 비행기에서 어떤 생각을 했습니까.

“기억 안 나요. 남편은 저쪽에, 브로커는 이쪽에 앉고, 나는 여기 앉고…. 인천공항 도착하자마자 국정원에 잡혀 갔죠. 남편이 미리 브로커 알아보고 국정원에 알리고 다 했어요. 원산의 가족이 다 한국에 들어와 있습니다. 다 합쳐 7000만 원쯤 썼을 거예요. 비행기 태워주는 가격만 1000만 원이거든요.”

‘그’는 서울에 ‘그녀’를 남겨두고 중국으로 되돌아갔다.

“서럽더라고요. 시댁에 나만 남겨두고 가버렸어요. 서울에 자주 오긴 했습니다. 남편이 회사에 얘길 했는지, 프랑스·미국 일로 업무를 바꿨어요. 그곳에 주재한 건 아니고 서너 달에 한 번씩 다녀오는 형태였고요.”

▼ 사랑 이야기가 영화 같습니다.  

“한번은, 아팠어요, 많이. 몸살로 아팠는데, 그이가 약을 건네줬어요. 타이레놀. 이게 뭔가 싶었죠. 약을 받아도 보고해야 하거든요. 나쁜 것 같기도 하고, 먹기도 싫은 겁니다. 화장실에 가서 알약 다 뜯고 종이도 찢어서 버렸어요. 또 한번 아팠거든요. 일을 못 나가고 숙소에서 쉬는데, 남편이 음식값을 계산하면서 저를 찾더래요. 사정을 얘기했더니 약을 사러 뛰어가더랍니다. 이번엔 중국 약을 사왔어요. 그다음 날부터 거의 매일 왔어요. 다 나았냐는 둥, 어쨌다는 둥. 한국 와서도 느낀 건데 외래 글자를 너무 많이 써요. 타이레놀이 뭔지 어떻게 알겠어요. 타이레놀 때문에 인생이 이 모양이 됐죠.”



남조선한테 당했구나…

180일 열애 끝 서울로 “저, 미친 거 맞죠?”

캄보디아 시엠레압의 북한식당에서 일하던 봉사원 김은아.

▼ 연애는 어떻게, 얼마나 했어요.

“180일. 같이 시장도 둘러보고 백화점도 가고, 아이스크림 먹으면서 걷고요.”

해외 북한음식점에는 ‘외출비’ 제도가 있다.

“주재원이 누구랑 밖에서 식사하고 싶다고 요청해요. 손님이 외출비를 내고 데리고 나가는 거죠. 밥 먹고 들어온다 해놓고 남편이랑 데이트한 거죠.”

▼ 한국 남자도 가능해요?

“아뇨. 한국 남자 이름으로 외출을 신청하진 않죠. 한국 사람은 절대 안 돼요. 중국인을 대타로 내세웠어요.”  

▼ 어떻게 한국에 갈 결심을?

“미쳤었나 봐요. 저, 미친 거 맞죠?”

▼ 도망친 다롄에는 얼마나 머물렀나요.

“석 달. 낮에 외출 나갔다가 음식점으로 되돌아가지 않고 상하이역에서 곧바로 기차를 탔어요. 상하이에서 다롄이 정말로 멀더군요. 스무 시간은 걸린 것 같아요. 기차 안에서 ‘아차’ 싶더라고요.”

▼ 왜?

“남조선한테 당했구나 싶은 거예요. 다롄에 도착하자마자 상하이로 돌려보내달라고 했어요. 그런데 생각해보니 되돌아갈 수도 없습니다. 외출 나갔다가 없어졌는데 그걸 어떻게 설명해요. 그이는 회사 일 때문에 상하이에 남았고, 사람을 한 명 붙여줬거든요. 무서웠죠. 당했다는 의심이 들었습니다. 미쳤던 게 맞아요.”

‘그’가 다니던 A사의 지사가 다롄에도 있었다.

“기차 탈 때까지는 미쳤다고 생각지 않았어요. 뭔가에 홀려 판단이 안 된 거죠. 일을 저지르고 난 후에 ‘아, 내가 미쳤구나’ 깨달았습니다. 어머니, 오빠, 새언니 얼굴이 떠올랐지만 되돌리지 못했네요.”

위조여권 만들고, 국정원에 알리고, 하는 일에 석 달가량 걸렸다. 하나원을 나온 후 시집에 들어가 살았다. 남편이 한국으로 돌아온 후 분가했다.    

“급여만 보면 대기업이 더 좋아요. 그런데 임원 진급을 못하면 옷을 벗고 그래야 한대요. 더 올라가는 게 확실하지 않으면 빨리 벗는 게 낫다고 생각해 남편이 직장을 대학으로 옮긴 거예요.”



‘탈북학생 코디네이터’ 1호

그녀는 행복해 보였다.

“한국에서 좋은 분을 많이 만났어요. 북한에서 온 엘리트 분들과도 교류했고요. 하나원에서 나와 한 달 만에 초등학교에 취직했습니다. 교육부에서 자격을 검증했는데 영어 빼놓고는 다 잘 풀었어요. 수학시험도 잘 봤고요. 자랑 같기는 한데, 초등학교 탈북학생 전담 코디네이터 1호가 저예요. 지금은 코디네이터가 22명으로 늘었습니다. 언론은 안 좋은 얘기만 다루는데, 결혼 잘해 잘사는 탈북 여성 꽤 많아요. 아는 동생만 해도 통일부 사무관님과 결혼했습니다.”   

대학원에 진학한 것은 남편의 권유에 따른 것이다. 책도 한 권 냈다.

“정착 잘 했으니 사람만 만나지 말고 공부하라더군요. 학교 다니는 게 재밌어요. 탈북민 예절에 관련한 책도 한 권 썼습니다. 나중에 책 보여드릴 게요. 탈북민들이 한국 예절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아요. 장례식장에 빨간색 옷 입고 온 분 보고 깜짝 놀란 적도 있습니다. 탈북민에게 한국 예절을 알려주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해 책으로 냈습니다.”

둘 사이에 아이는 아직 없다.  

“처음엔 속상했는데 마음을 비우니 괜찮아요. 학교에 가면 아이들 20명이 있거든요.”

그녀는 지난해 여름 중국으로 여행을 갔다가 일행과 함께 선양(瀋陽)의 북한음식점에 들렀다.  

“알아볼 사람이 없는데도 들어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마음이 오락가락 바뀌었습니다. 혹시나 해서 모자를 쓰고 들어갔죠. 일행이 ‘음심 값이 너무 비싸다’ ‘여기선 맛만 보고 딴 음식점에 가서 먹자’는데 서운하데요.”

그녀가 국경의 남쪽으로 몸을 옮긴 것은 신념이나 생활고 때문이 아니다. ‘그녀’는 사랑하는 ‘그’와 “다툰 적이 없다”면서 웃었다.  





신동아 2016년 6월호

2/2
이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목록 닫기

180일 열애 끝 서울로 “저, 미친 거 맞죠?”

댓글 창 닫기

2019/09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