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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연재 〉이선경의 讀書, 督書, 毒書

집을 지키는 문학 집을 부수는 문학

  • 이선경 | 문학평론가 doskyee@daum.net

집을 지키는 문학 집을 부수는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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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집은 자기가 스스로 알아서 지켜야 한다는 것, 그것이 한국적 추리소설의 법칙이다. 집을 지키는 방식에서 한국적 추리소설은 경찰이나 법에 의지하는 서양의 고전적 추리소설과는 다르다. 어쩌면 근·현대의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한국에서의 집 지키기는 공권력에 맡겨둘 수 없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닫고 나서야 추리소설이 탄생할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정유정에 의해 한국적 추리소설은 그렇게 한국적 상황에서 자기 집을 지키는 방법을 찾아낸다.

그런데 정유정은 최신작 ‘종의 기원’(2016)에서 애써 지켜온 집을 부숴버린다. 이 신작은 간신히 유지되던 집이 아주 깊은 내부에서부터 허물어지고 있었던 이야기다.

어느 날 아침, 잠에서 깨어 정신을 차리고 보니 주인공 유진은 피를 뒤집어쓴 괴물이 돼 있고, 집은 어머니의 살인사건 현장으로 변해 있다. 누가, 언제, 왜, 그랬는지 파악하고자 유진은 집을 위협할 수 있는 다양한 가능성을 추리한다. 그러나 모든 증거가 가리키는 것, 모든 의심과 소거법 이후에 결국 남은 단 하나의 가능성은 유진이 어머니를 죽였다는 사실이다.



실용성이 일깨우는 실용성

이 소설은 존속살해의 표면적 이유를 유진 안의 병리적 본성, 그가 사이코패스의 최고 레벨인 프레데터(포식자)라는 것에서 찾는다. 그러나 자신의 증상을 간질이라 믿고 있던 이 포식자의 심장을 뛰게 한 것은 무엇인가. 무엇이 그의 본성을 발화해 어두운 숲을 열리게 한 걸까.



그의 본능을 점화시킨 것은 집터와 집안이다. 아마도 군도신도시라는, 이제 막 야생의 틀을 벗은 부동산 개발지가 아니었다면 그의 수렵 본능은 발휘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아직 덜 완성돼 유령섬이라 불리는 이곳은 밤이 되면 집 밖으로 나오지도 못할 만큼 을씨년스러운 곳이며, 초고층 고급 아파트가 산업 폐기물과 후쿠시마산 쓰레기 시멘트로 지어졌다는 게 알려지면서 더는 가망 없는 곳이 됐다.

이 폐허에서 밤마다 조깅을 하며 유진은 그의 야수적 본능을 점점 깨워간다. 또한, 아마도 유진을 무해한 존재로 만들고자 과도하게 노력하는 가족들이 없었다면, 그래서 원인 모를 적개심과 분노가 내면에 차곡차곡 쌓이지 않았다면, 그가 가족 모두를 죽이는 비극까지는 발생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그래서 이윽고 탄생한 한국적 추리소설은, 지금 여기에서 가장 한국스러운 집의 문제를 건드린다. 지금 여기의 한국적인 집은 지켜져야 할 것이 아니라 부서져야 할 것이다. 무리하게 계획된 자본주의의 집은 실용성에 바탕을 두지만, 그것은 아이러니하게도 포식자의 행동 법칙이기도 한 실용성을 일깨운다. 유전자의 대물림을 담보로 행해지는 과도한 집착과 통제적 가족 질서는, 결국 저주가 되어 가장 잔인한 방식으로 물려준 유전자에 의해 다시 통제되고 파괴당한다.



포식의 질서  

작가가 안전거리를 확보하지 않은 채 사이코패스의 내면으로 들어가는 아슬아슬한 방법을 선택한 것은 깊은 기원에서부터 집이 무너질 수밖에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소설을 읽으면서 독자 대부분이 감정을 이입하는 대상은 유진일 것이다. 때로는 이 포식자의 시선에서 무저갱(無底坑)의 상황을 빠져나가는 방법에 대해 함께 고민하기도 하고, 때로는 공권력의 추적이 포식자의 유전자를 제압하지 못하게 되기를 은밀히 바라기도 하면서.

그리고 그의 완전범죄와 앞으로도 이어질 살인에 섬뜩함을 느끼면서도, 그가 살아남은 것에 대해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되는 것, 도덕적 국경을 넘어야 즐길 수 있는 이 ‘위험한 광기’에 독자가 동참하게 되는 것. 그것은 이 사이코패스가 무너뜨린 한국적 집의 질서 역시 포식의 질서를 가졌기 때문일 것이다.

이 소설은 최근 한국 사회의 비극적인 사건들을 너무나도 명징하게 환기시킨다. 이기심과 실용성 위에 건설된 기형적인 한국의 집. 그 집 안에서 광기에 싸인 이기적 유전자들이 본성을 깨워간다. 결국 아주 오래된 기원적 악의 유전자를 다시 부른 것은 집이다. 그래서 한국적 추리소설은 집을 마비시키는 독소를 뿜어낸다. 한국적 집의 토대를 다시 한 번 점검할 때다. 지금, 당신의 집은 얼마나 안전한가.









신동아 2016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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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경 | 문학평론가 doskyee@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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