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7월호

Interview

김성재 前 청와대 민정수석의 苦言

“민정수석이 民情은 놔두고 司正만 해서야”

  • 김성재 | 김대중아카데미 원장, 前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

    입력2016-06-23 11:3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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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날의 대한민국은 도덕과 윤리가 무너지고 인간이 존중돼야 할 가정, 학교, 종교에서마저 돈이 지배하는 사회다. 지난 10여 년간 자살률은 세계 최고이고, ‘묻지마’ 폭력과 살인이 난무한다. 돈과 권력의 불의(不義)한 카르텔로 1대 99의 사회가 됐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빈부격차도 가장 심하다. 특권층 부패지수도 계속 높아져 세계는 우리나라의 부패를 ‘엘리트 카르텔 부패’라 명명하고 연구하는 판이다. 이러니 나라의 미래와 희망이 돼야 할 청년들마저 절망해 이른바 ‘헬조선’을 외친다.

    다른 한편으로 냉엄한 국제정치 환경은 100여 년 전과 같이 한반도를 지배하며 자기 이득을 취하는데, 동족인 남과 북은 주적이 되어 남한은 미국과 일본에, 북한은 중국과 러시아에 의존해 스스로를 희생시키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분단 의식과 국내의 갈등 환경에 갇혀 변화하는 세계를 바로 인식하지 못하고 우리의 운명을 결정할 4차 산업혁명 도래에도 무관심한 채 과거에 고착돼 불안하고 불행한 나날을 보낸다.

    이런 현실이 지속되면 대한민국은 위기 수준을 넘어 침몰할 수도 있다. 이미 외환위기로 국가 부도 사태에 빠져든 경험이 있지 않은가. 지금은 그때보다 더 심각하다고들 한다. 대한민국을 근본적으로 혁신하지 않으면 안 된다.   

    지성인으로서, 한때 국정에 참여한 사람으로서 갖는 책임감에서, 이런 위기를 해결할 문제 인식과 실천을 공유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이 글을 쓴다. 이 글은 나의 개인 지식이 아니다. 오픈소스(open source)와 집단지성(collective intelligence)의 산물이다.



    구조조정·재벌개혁 병행해야

    예부터 우리 민족의 지적 능력과 지적 모험심은 세계 최고 수준이었다. 감성적 에너지와 순발력도 어느 민족보다 탁월했다. 그러나 일제 식민 지배와 미 군정기를 거치면서 우리 역사와 문화를 등한시하고 스스로를 못난 ‘엽전 인생’으로 여겨 자긍심마저 잃어버렸다. 산업사회의 도래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근대화에도 뒤졌다.

    그러나 20세기 중반 이후 제3의 물결인 지식정보화 시대가 도래하면서 하늘이 우리 민족에게 새로운 기회와 세계를 열어줬다. 지식정보 사회는 우리 민족 특성에 잘 맞는 사회다.

    나는 1980년 앨빈 토플러의 책 ‘제3의 물결’을 읽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신학과 교육학을 전공한 학자로서 사회변혁운동을 하며 새로운 사회를 꿈꾸던 내게 제3의 물결로 대변되는 지식정보화 시대의 도래는 이념적 비판운동 차원을 넘어 새로운 세계를 열어갈 수 있는 길과 가능성을 보게 했다. 

    마침 1998년 외환위기 상황에서 출범한 김대중 정부 시절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과 정책기획수석, 문화관광부 장관 등을 역임하는 기회가 주어져 민주인권 국가를 위한 개혁, 외환위기 극복을 위한 개혁, 평등지향 복지국가 건설, 새로운 시대 변화에 맞는 정보화와 문화산업 정책 등을 실현할 수 있었다.

    경제개혁을 위한 구조조정은 과거와 달리 시대 변화가 빠르기 때문에 상시적으로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미래를 생각하지 않고 일시적이고 부분적으로 규모와 인력을 축소하는 것만으로 해결하려 들면 결국 기업 해체와 대량 실직 문제를 초래하므로 구조조정은 세계와 시장의 변화에 따라 기업과 경제를 새롭게 살리는 목표를 가지고 해야 한다. 특히 그 과정에서 기업 소유주와 경영진, 정부 관료의 잘못에 대해서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 부정한 실패를 방지하기 위해 정책 실명제도 도입해야 한다.

    그런데 현재 진행되는 구조조정은 그 목표에 대한 정확한 계획 없이 추진되는 듯하다. 우선 구조조정 대상인 조선업엔 이미 막대한 국민 세금이 투입됐는데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오래전부터 도덕적 해이 속에 기업 소유주와 경영진, 관리자로 간 정부의 ‘낙하산’ 인사까지 모두 부정한 이득을 취하는 운영을 해서 기업으로서 정상적 기능을 하지 못한다고 판명 났는데도, 정치권과 결탁해 계속 부정한 경영을 했기에 결국 망하는 상태까지 이른 것이다. 따라서 구조조정을 할 땐 반드시 기업 소유주, 경영진, 관계된 관료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



    동반성장론은 ‘조폭경제’ 면피용

    재벌 개혁도 철저히 해야 한다. 김대중 정부 당시 재벌 개혁은 업종 전문화 및 국제경쟁력 강화, 상호출자전환 금지, 상호지급보증 금지를 골자로 한 ‘5+3 원칙’에 따라 강력히 추진했다. 동시에 중소기업과 중소상공인 전문 업종의 범주를 정해 경제 발전 및 일자리 창출, 중산층과 서민생활 안정을 도모했다. 당시 재벌 기업은 20개 내외로 업종을 전문화했다.

    그런데 지금은 공적자금을 통해 회생한 재벌기업들이 계열사(위장계열사 포함)를 100여 개씩 확장했다. 국제경쟁력은 외면하고 자사의 브랜드 가치 제고와 대형 유통망 장악을 통해 국내 공산품, 농산물, 수산물, 식음료 등을 싼값에 주문생산하고 자체 생산해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이 정상적인 경제생활을 할 수 없게끔 싹쓸이하고 있다. 심지어 떡볶이집, 김밥집, 빵집, 커피전문점, 슈퍼마켓 등 작은 가게가 있는 골목 상권까지 프랜차이즈 형태로 장악해 서민의 경제활동 수단을 빼앗는다. 중소기업인과 소상공인, 농어민이 특권을 누리며 반칙을 일삼는 재벌과 경쟁하는 한편, 세계 각국의 자유무역협정(FTA) 공산품, 농수산물과도 경쟁해야 하는 어려움에 처해 있는데도 말이다.

    또한 청년들의 벤처 아이디어 및 창업을 스타트업한다면서 싼값에 강탈해 그들이 벤처의 꿈을 포기하고 절망할 뿐 아니라 미래 산업 또한 창출되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소수 재벌이 중산층과 서민의 생계수단을 싹쓸이하는 나라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 중산층이 무너지고 빈민이 양산되기에 내수시장도 죽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과 같이 정경유착과 관치금융이 중심이 된 싹쓸이 재벌 중심 체제에 대한 개혁 없이 부스러기를 조금 나눠주는 동반성장론은 재벌 중심의 ‘조폭경제’를 면피시켜주는 것밖에 안 된다.

    정상적인 시장경제는 법과 질서가 있고, 공정하고 투명해야 한다. 이런 면에서 현재 우리 시장경제는 시장경제가 아니라 재벌들이 정부, 정치권과 결탁한 조폭경제다. 따라서 이를 개혁하지 않고는 민생 및 양극화 문제를 해결할 수 없고 경제를 살릴 수도 없다.    

    또한 양극화를 해소하고 국민경제의 안정적 발전과 상시적 개혁을 위해 사회안전망을 확충하고, 공공정책을 평등지향적, 사회통합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실직적인 대책 없는 노동유연성은 빈민을 양산하고 전문 노동력을 상실케 한다. 복지는 자선이 아니라 인권이고, 인권에 근거한 복지정책은 낭비가 아니라 생산으로 선순환된다.

    따라서 단순 구조조정만이 아니라 재벌 개혁까지 포함해 세계경제의 환경 변화와 4차 산업혁명에 따른 경제·사회 개혁을 과감히 해야 한다. 경제와 사회의 패러다임을 바꿔 새로운 성장동력을 창출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우리나라는 더 이상 성장할 수 없고 무너지게 된다.  


    국민과 함께하는 리더십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가 소멸하고 공유경제도 확산된다. 지식이 집단지성으로 생성되고 오픈소스 소프트웨어, 즉 월드와이드웹, 안드로이드, 우분투(리눅스를 쉽게 사용할 수 있게 만든 배포판) 등이 일반화한다. 집단지성 환경에서 오픈소스는 많이 쓰면 쓸수록 늘어난다. 물건보다 지식을 더 많이 거래하는 미래 사회에선 오픈소스가 중요하다. 집단지성으로 정보 공유와 지식 무료화가 확산된다.

    따라서 4차 산업혁명에서 비롯된 새로운 경제·사회 환경에 맞게 국가와 사회, 시민 생활양식을 혁신하고 새롭게 생성되는 산업을 육성하는 데 전력을 다해야 한다.   

    셋째, 이런 변화에 따라 정치·사회면에서도 새로운 직접민주주의, 곧 시민-국민 직접민주주의 시대에 맞는 정치개혁을 해야 한다. 

    지난 20대 총선 결과는 국민의 힘을 보여줬다. 무능하고 부도덕한 정치권이지만 대의정치 체제를 무너뜨리지 않고 민주적 선거를 통해 주권재민의 힘을 발휘했다. 북풍에도 호도당하지 않고 무능한 정부를 심판하고, 이제껏 오로지 권력을 잡기 위해 과거의 낡은 이념과 지역주의에 매달린 정치인들을 퇴출시켰다. 새로운 미래로 나아가기를 바라는 2040의 지혜로운 적극적 투표에서 대한민국의 희망을 보게 됐다. 국민은 주인으로서 정치권에 국민 행복과 새로운 나라 발전을 위한 국가혁신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새로운 정치적 리더십이 요구된다. 권위와 카리스마가 아니라 국민과 함께하는 리더십이다. 크라우드 소싱 능력(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하는 자원·자본 동원 능력/ 사회적 기업)과 트라이브 소싱(tribe sourcing) 능력(특정한 목적을 공유한 사람들의 자원·자본 동원 능력/ 사회변혁가, 새로운 정치인)을 갖춘 리더십이 필요하다. 시민사회(제3섹터)를 넘어서는 제4섹터 리더가 사회와 세계를 이끌게 된다.

    뉴미디어와 예술 해독 능력이 새로운 힘의 원동력으로 등장하고 콘텐츠 창조의 민주주의가 확산돼 세상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는 게임, 사회적으로 유익한 스토리텔링 콘텐츠가 중요해진다. 학식보다 개인의 소셜미디어 영향력과 네트워크 능력이 더 중요해진다. 외교에서도 문화외교 및 문화교류를 통한 소셜네트워크가 중요해진다.

    이제 정치인들은 과거처럼 권력을 향유할 수 없다. 시대 변화와 깨어 있는 국민의 요구에 부응하는 새로운 능력과 리더십을 길러야 한다. 정치인은 개혁의 대상이 아니라 국가 혁신을 위한 주도적 역할을 해야 한다.    



    靑 민정수석의 임무

    넷째, 2030년 이전에 맞을 티핑 포인트 21에 대비하는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세계경제포럼은 2030년 이전에 과거와 전혀 다르게 이뤄질 21가지 기술을 제시했다. 2018년에 사용자의 90%가 무제한 무료 데이터 저장장치를 갖는다, 2021년 로봇 약사가 등장한다, 2022년 1조 개의 센서가 인터넷에 연결된다….

    티핑 포인트 21에 대한 인식을 제대로 하고 빨리 산업화하지 못하면 우리 경제와 나라는 주저앉게 된다. 2020년에 요구되는 능력과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성공을 위해선 다음의 조건들을 함양해야 한다.

    세계경제포럼은 2020년에 요구되는 능력이 과거와 전혀 다른 능력, 곧 상상을 디자인하는 창의적 능력, 인지능력, 빅데이터 활용 능력, 시스템 기술, 복잡한 문제 해결 능력, 콘텐츠 기술, 프로세스 기술, 사회적 기술, 자원관리 기술, 기술적 능력, 육체적 능력 등이라고 했다. 또한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성공 조건은 상황맥락 인식지능(정신), 정서지능(마음), 영감지능(영혼)-신뢰와 공유, 신체지능(몸)-건강, 평정심, 배짱 등의 함양에 있다고 했다. 

    이젠 이런 능력의 함양과 함께 4차 산업혁명에 따른 국가 혁신으로 정부와 국민이 발상의 전환을 해서 새로운 사고, 새로운 플랫폼, 새로운 시스템으로 살지 않으면 안 된다. 

    다섯째, 국가 혁신의 컨트롤 타워가 있어야 한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 박근혜 정부는 구조조정, 노동개혁, 교육개혁 등을 해야 한다. 창조경제와 같은 4차 산업혁명에 따른 새로운 산업을 일으켜야 한다는 당위성은 강조하지만, 실제로 이를 제대로 추진할 컨트롤 타워가 없다. 이런 개혁과 새로운 미래 산업 창출은 상호 연계되고 복합적이라 어느 한 부처의 장관 또는 해당 분야 수석비서관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최종 컨트롤 타워는 대통령이 맡아야 하지만, 대통령이 그 일을 제대로 수행하려면 현 정부 조직으로 볼 때 민정수석과 정책조정수석이 제 역할을 해야 한다. 민정수석은 현장 책임자, 정책조정수석은 미래 책임자다.



    트로이카 컨트롤 타워

    ‘민정(民情)’을 영어로 ‘civil affairs’라고 한다. 국민생활과 민심을 살피는 일이 민정수석의 본래 업무다. 사정(司正)은 공직 기강 차원의 일부다. 그러나 검사 출신 민정수석들은 국민 생활과 경제 현장을 살피기보다 사정으로 권력을 남용하거나 심지어 엘리트 부패 카르텔의 주범이 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예를 들어 세월호 참사와 메르스 사태에 대한 1차 현장 책임은 본래 업무로 보면 민정수석에게 있다. 그러나 민정수석은 이것을 자신의 업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고, 대통령이나 비서실장, 다른 수석들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 대통령에게 책임이 돌아간 것이다. 민정수석은 공직 기강 차원에서 이런 참사를 사전에 예방하고, 사후엔 정확한 원인 분석과 해결책을 대통령에게 보고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 

    또한 민정수석은 대통령 지시사항과 국무회의 의결이 제대로 추진되는지 항상 점검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은 대통령 지시사항에 대한 점검이 제대로 이뤄지는 것 같지 않다. 단적으로 규제개혁이 겉도는 문제도 여기서 비롯한다.

    정책조정수석은 국가의 미래를 멀리 내다보고 제반 정책을 종합적으로 조정하며, 국가 발전의 미래를 창출하는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그런데 창조경제 같은 미래 산업의 운명이 걸린 정책이 의전용 전시효과로 남발돼도 정책조정수석은 별로 문제인식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국가 운명을 결정지을 4차 산업마저 대통령에게 잘 보이기 위한 전시성이 된다면 정말 우리나라엔 미래가 없다.

    지금 모든 정부 부처가 대통령 관심 사항인 복지, 일자리 창출, ‘창조’ 이름 붙은 사업 등의 명목으로 막대한 예산 확보 경쟁을 하면서도, 구체적 계획 없이 확보된 예산을 사용하기 위해 낭비하는데도 정책조정수석이 이런 문제를 파악하고 조정하는 임무를 제대로 하는 것 같지 않다.

    현재의 국정 난맥상을 제대로 해결하고, 4차 산업혁명 시대 대한민국을 제대로 혁신해 국가가 발전하고 국민이 행복하게 살려면 무엇보다도 대통령, 민정수석, 정책조정수석이 트로이카 체제로 컨트롤 타워가 돼야 한다. 빛의 속도로 빠르게 변화하고 발달하는 시대이기에 촌각을 다퉈야 한다. 

    김 성 재


    ● 1948년 경북 포항 출생
    ● 한국신학대학 신학과 졸업, 동 대학원 석사(종교교육)
    ● 한국신학대 교수,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정책기획수석비서관, 한국학술진흥재단 이사장, 문화관광부 장관, OBS 경인TV 회장, 연세대 김대중도서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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