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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그곳에 가고 싶다

우리만 모르는 우리 안의 악마

‘곡성(哭聲)’과 곡성(谷城)

  • 글 · 오동진 | 영화평론가, 사진 · 김성룡 | 포토그래퍼

우리만 모르는 우리 안의 악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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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주에 안국사가 있는 것은 그래서 새삼스러울 게 없다. 안국사는 安國寺라고 쓴다. 나라의 안위를 바라며 창건한 절이라는 뜻이다. 조선실록을 보관하는 사고(史庫)가 여기에 있었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고려 충렬왕 때(1277) 세워졌으니 750년 가까이 된 절이다. 그때 여기는 더 첩첩산중이었으리라.

고지인 이곳에 누가 저 커다란 목재와 석재를 이고, 지고, 끌고, 밀고 해서 절 지을 생각을 했을까. 옛 시절의 노예 노동력은 진정 가공(可恐)할 일이다. 여기를 오르는 길은 걸어서는 언감생심이다. 차로 오르는 와중에 위쪽 지척에 목적지가 보일 듯 말 듯하지만, 한참을 굽이굽이 돌아서 오르되 대부분 꽤나 가파른 오르막길을 올라야 한다.

이건 마치 ‘곡성’에서 무당 일광(황정민)이 처음 나오는 장면 같다. 이 남자는 주인공 종구의 장모가 “아가 이상하다 혀서” 급히 곡성 마을로 가는 길이다. 아마도 일광은 (지금 내가 오르는 안국사 길과 같은) 산길을 넘어 차를 몰고 가는 참인데 그때 그걸 마치 누군가 위에서(그것도 한참 위에서) 내려다보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요즘 한창 유행인 드론을 이용해 부감(俯瞰, bird eye′s) 샷으로 찍힌 이 장면은 왠지 이상하고 불길한 기운을 느끼게 한다.

영화가 끝나고 나서 이 신(scene)을 생각하면 내려다보는 누군가가, 저 봉우리 어디에선가 겨드랑이에서부터 크게 나온 날개를 요렇게 오므리고 발끝으로 선 루시퍼(라틴어의 ‘빛(lux)을 가져오는(ferre) 것’에서 나온 말로 ‘샛별’이란 뜻. 일반적으로 사탄의 고유명사로 쓰임)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안국사 가는 이 구불구불한 길 구석구석에 악귀의 눈이 뒤따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 가 시방? 오밤중에…

그런데 뭐 세상 사는 게 다 그렇지 않겠는가. 지금이야말로 원혼이 곳곳에 스며든 때가 아닌가. 우리 모두 억울한 죽음, 이상한 죽음에 대해 무언의 책임이 있다면 응당 악마의 추적을 받고 있을 것이다. 무서움이 일상이 돼버린 시대라는 얘기며, 가장 큰 문제는 그 공포에 대해 지나치게 수세적이 돼버렸다는 것이다.

공포는 이겨내라고 있는 것인데 우리는 어느 틈엔가 공포에 쉽게 좌절하고 또 너무 무감각해졌다. 가장 무서운 일은 앓고 있는 사람들, 아픈 세상에 대해 어느 순간부턴가 통증을 못 느끼는 우리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일이다. 그럴 때 우리 모두는 서로에게 악마가 된다.

굳이 깊은 밤에 무주를 떠나 곡성으로 간 것은 정말 실수였다. “어디 가 시방? 오밤중에”라는 대사가 다시 머리카락을 쭈뼛하게 만들었다. 칠흑 같은 어둠이 이어지고 내비게이션이 가르쳐주는 대로 따라가는 외딴 논두렁길과 거기서 이어지는 농가의 후미진 골목길은 영락없이 기이한 살인사건이 벌어진 영화의 공간 같았다. 어둡다. 무주 인구가 2만5000명이라고 했다. 곡성은 무주보다 약간 더 많다는데도 사람이 살고 있는 것 같지가 않다. 인적이 없다. 농가 대부분이 비어 있는 것일까. 아니면 다들 깊은 잠에 빠져서일까. 조용하다 못해 괴괴하다는 느낌이다.

국도로 이어지는 램프 길 주변 모텔을 발견하니 반가운 마음이 든다. 이름도 관능적이다. 어울리지는 않지만, 어쩌면 농가 구석에서 벌어지는 은밀한 ‘수작’을 보는 듯해 마음이 약간 설렌다. 그러나 모텔 입구로 들어서는 순간, 황급히 후진해서 바깥으로 나왔다. 모든 불이 꺼져 있고 입구에 흐린 전구 하나만 달랑 켜져 있는데, 왠지 여기에 들어가면 아침에 다시 못 나올 것 같았다.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을 수 있다는 얘기는 그래서 나온 것이다. 히치콕이 만든 ‘사이코’의 베이츠 모텔도 여기보단 안 무서울 것이다.

결국 곡성 바로 옆에 붙은 구례로 차머리를 돌렸다. 거기는 여기보다 큰 곳이다. 조금 더 밝고 덜 무서운 모텔급 호텔도 많다. 영화에 나온 곡성경찰서 전경은 오전 일찍 찾아가 찍을 것이다. 그러니 지금은 ‘누군가로부터’ 황급히 피하는 게 급선무다.

헤드라이트에 비친 심야의 국도를 보고 있자니 데이비드 린치의 ‘로스트 하이웨이’가 떠올랐다. 자신이 살인을 하고도 살인하지 않았다고 여기는 남자의 이야기다. 남자는 자신의 얼굴을 보면서 다른 사람의 얼굴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정신분열은 세상을 분열시킨다. 주인공 프레드(빌 풀먼)는 헤드라이트에 비친 자기 앞 하이웨이가 이리저리 흔들리는 것을 경험한다. 흔들리지 말아야 하는데 왔다갔다 한다. 흔들리지 말아야 할 때 끊임없이 흔들린다. 그래서 파국이 빚어진다.



이상한 죽음, 두드러기    

우리만 모르는 우리 안의 악마
우리만 모르는 우리 안의 악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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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성’은 전남 곡성의 시골 마을에서 이상한 연쇄 살인사건이 벌어지면서 종구 일가에게 닥쳐오는 비극을 그린다. 살인을 저지른 자는 온몸에 두드러기가 돋으며 발열 증세를 보인다. 그래서 언뜻 이게 무슨 환경오염에 따른 정신착란, 분열증세가 빚은 촌극이 아닌가 싶게 한다. 경찰관인 종구의 눈에 자꾸 그 두드러기가 보인다. 술집 작부의 몸에서도, 애지중지하는 딸아이 효진(김환희)의 몸에서도 그런 증상이 나타난다.

소심하고 착한, 그래서 겁이 많은 종구는 첫 번째 살인이 일어난 밤에 비바람과 천둥 번개가 치는 와중에 파출소 문 앞에 귀신처럼 서 있던 아낙네를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란다. 종구의 절친인 정육점 주인이 여자에 대해 설명하는데 역시 두드러기 얘기를 한다. “온몸에 두드러기가 나 가지고 홀딱 벗고 동네를 다녔다는 거잖여.” 뭐 그런 식으로 증언 아닌 증언을 함으로써 좀 둔하긴 해도 경찰관의 촉을 지닌 종구는 두드러기에 관심을 갖게 된다. 두드러기. 마을 사람들에게 두드러기를 퍼뜨리는 것, 혹은 퍼뜨리는 자는 누구인가.

효진은 이상 증세를 나타내며 극도의 폭력성을 보인다. 특히 아빠인 종구를 향해 악다구니를 해댄다. 효진은 자신을 더듬으며 두드러기 자국을 찾는 아빠에게 눈을 허옇게 치켜뜨고 말한다. “지금 뭐하는 겨. 딸내미 치마는 들추고 뭐 할려고?” 그러고는 고래고래 소리 지른다. “뭣이 중헌디? 뭣이 중허냐고 뭣이! 뭣이 중헌지도 모름서…” 종구의 장모는 효진이 이상해졌다며 용한 무당을 데려와야겠다고 한다. 그래서 무당 일광이 온다.

종구는 언제부턴가 마을에 들어와 깊은 산속에 사는 것으로 알려진 일본인(구니무라 준)에 대한 흉흉한 소문을 듣는다. 그가 짐승을 날것으로 먹는다는 것이다. 살인은 그가 저지르고 있거나 그 남자 때문에 사람들 정신이 이상해지고 있다고 생각하기에 이른다. 실제로 일본 남자는 마을에서 죽은 사람, 혹은 정신이 이상해진 사람들의 사진이며 물건을 갖다놓고 주술 같은 것을 걸거나 외우고 있음이 밝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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