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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희의 미술과 마음 이야기

편지를 읽는 푸른 옷의 여인 작은 거리

얀 베르메르

  • 박상희 | 샤론정신건강연구소 소장

편지를 읽는 푸른 옷의 여인 작은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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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를 읽는 푸른 옷의 여인 작은 거리

‘편지를 읽는 푸른 옷의 여인’

사람은 혼자 살아가는 존재가 아닙니다. 누구든 어떤 형태로든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고 살아갑니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이들과의 관계는 기쁨도 선사하지만 동시에 마음의 상처도 안겨줍니다. 마음의 상처는 육체적 상처보다 고통이 덜하지 않습니다. 직접적 고통이야 육체적 상처가 더 클 수 있지만, 마음의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고 오랫동안 영향을 미칩니다. 상담학에선 이런 마음의 상처를 트라우마(trauma)라고 합니다. 심리학 용어로는 ‘정신적 외상’입니다.

트라우마는 흔히 ‘큰(big) 트라우마’와 ‘작은(small) 트라우마’로 나뉩니다. 큰 트라우마가 일상을 넘어선 전쟁 또는 재난과 같은 사건이 삶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말한다면, 작은 트라우마는 일상적인 사건으로 인해 자신감 또는 자존감을 잃게 되는 것을 뜻합니다. 큰 트라우마든 작은 트라우마든 삶에 불안과 고통을 안겨준다는 점에선 같습니다.



예술은 ‘상처 치료약’

사람들이 상처를 평생 안고 살아가는 건 아닙니다. 일생 동안 아물지 않는 상처도 있지만, 상처는 대부분 시간의 힘으로 아물고 치유됩니다. 망각은 상처의 훌륭한 치료약입니다. 세파에 부대껴 살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마음의 상처에 딱지가 앉고, 그 딱지는 시간이 흐르면서 서서히 떨어집니다.

예술은 또 하나의 훌륭한 치료약입니다. 문학이든 음악이든 미술이든 좋은 작품을 만나면 우리는 감동을 받습니다. 감동이란 어떤 느낌이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을 말합니다. 감동의 또 다른 이름이 공감입니다. 미술의 경우, ‘아, 이 작품 정말 좋다. 나와 비슷한 무엇이 있네’ 하는 느낌이 공감입니다. 공감을 느낀 사람들은 슬픔이나 기쁨을 나눈 것과 같은 경험을 하게 됩니다.

미국의 미래학자 제레미 리프킨의 ‘공감의 시대’라는 책을 읽어보셨는지요. 리프킨은 우리 인간을 ‘공감하는 존재’로 봤습니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다른 사람을 포함해 모든 존재에 대해 공감하는 특징을 갖고 있다는 주장입니다. 공감이란 상호 이해에 기반을 둔 감정 이입으로, 그에 따르면 공감이란 자연스러운 본성인 것이지요.

공감은 이성보다 감성을 우선시합니다. 많은 경우 인간에겐 생각보다 느낌이 먼저 나타나고, 공감은 마음의 변화를 일으킵니다. 예를 들어 고흐의 작품을 볼 때 한 화가의 무시무시한 고독과 그 고독을 이겨내려는 강렬한 의지를 느낄 수 있습니다. 마치 고요하던 마음의 바다에 잔잔한 물결이 치기 시작하면서 마음 전체가 서서히 출렁거리는 것과도 같습니다.

이러한 공감은 인간에게 두 가지를 선사합니다. 하나는 마음의 위안입니다. 상처가 있다면 그 상처를 어루만져 아픔을 덜어주고, 차갑던 마음에 온기를 퍼지게 합니다. 다른 하나는 자기 이해입니다. 무엇인가에 공감한다는 것은 공감하는 자기 자신을 돌아보게 하고, 이 돌아봄은 자신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동시에 자기 삶의 의미에 대해 성찰하게 합니다.

미술과 마음을 다루는 이 코너에서 제가 전달하고 싶은 이야기의 핵심은 바로 이것입니다. 감동과 공감으로서의 미술, 위안과 자기 이해로서의 미술을 살펴봄으로써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고 새로운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일상의 마음을 담은 화가

사람마다 공감하는 화가와 작품이 다를 수 있습니다. 우울한 고야의 작품에 공감하는 이도 있고, 열정적인 고흐의 작품에 공감하는 사람도 있으며, 이지적인 마그리트의 작품에 공감하는 독자도 있을 것입니다. 또 어떤 이는 여러 화가의 작품에 동시에 공감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 인간의 마음이 어느 하나로만 이뤄져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마그리트의 작품이 무의식을 일깨운다면, 고흐의 작품은 의식의 빛을 발견하게 하고, 고야의 작품은 의식의 그늘을 돌아보게 합니다.

마음에는 이런 의식의 빛과 그늘, 무의식의 심연만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나날의 일상을 보내는 마음도 존재합니다. 삶은 본래 소박하고 평범한 것입니다. 인간은 삶의 많은 시간에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먹고 마시고 여가를 보냅니다. 삶의 대부분 시간은 희로애락의 작은 일상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런 일상의 마음을 화폭에 담은 화가 중 한 사람으로 저는 네덜란드의 얀 베르메르(Jan Vermeer·1632~1675)를 좋아합니다. 17세기 네덜란드 회화를 대표하는 화가 중 한 사람입니다. 렘브란트와 비교할 때 베르메르는 생전에 아주 유명한 화가는 아니었습니다. 사망한 후 대중에게 잊혔다가 19세기 중반에 재발견됐고, 지금은 렘브란트 못지않은 명성을 누리고 있습니다.

현재 남아 있는 베르메르의 작품은 30여 점에 불과합니다. 유실된 것도 적지 않겠지만, 기본적으로 베르메르가 많은 그림을 그린 화가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작품들은 크지도 않습니다. 유명 미술관에서 만날 수 있는 그의 그림은 대개 소품들입니다. 또한 베르메르가 다룬 소재도 대부분 평범한 일상입니다. 그는 우유를 따르고, 악기를 연주하고, 레이스를 뜨고, 편지를 쓰거나 읽는 모습 등을 그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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