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7월호

별책부록 | 글로벌 스탠더드 NEXT 경기

뿌리는 내리되, 경기도를 벗어나자

권두언 | ‘글로벌 경기’를 위한 제언

  • 정윤수 | 문화평론가, 한신대 정조교양대 교수 prague@naver.com

    입력2016-07-08 11: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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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도시 생활은 소설가 김소진의 행로와 많이 닮았다. 가난한 산골에서 탈향(脫鄕)의 바람을 따라 서울 변두리로 올라와서, 쓰라린 사춘기를 거쳐 성년이 되어 서울의 가난한 동네를 돌며 여러 번 이사하고, 천당(옥탑방)과 지옥(반지하)을 여러 차례 왕복하고, 결혼을 하면서 서울 변두리의 작은 아파트에 전세 들었다가 아이가 생긴 뒤로 좀 더 안정적인 보금자리를 찾아 서울 외곽을 살펴본 끝에, 경기 고양시 일산에 정착하는 과정, 그것은 소설가 김소진의 숱한 단편에 나타나거니와 나의 생애 절반도 그러하였다.

    경기 고양시에 살기 시작한 지 12년째. 큰아이를 일산의 초등학교에 입학시키면서, 관련  서류에 새로 이사한 주소를 기입했던 때를 기억한다. ‘경기도 고양시 일산…’ 내 스스로 경기도민이 되었음을 처음 확인하면서 조금은 낯설어 한 것 또한 사실이다.

    그 후, 내가 경기도민이라는 정체성을 두 번 세 번 확인하게 된 것은, 여러 차례 치른 선거를 통해서였다. 지역구 의원을 뽑고 지방의회 의원을 뽑고 시장을 뽑고 교육감을 뽑고, 무엇보다 격렬한 정치 투쟁이던 도지사 선거의 투표용지에 기표를 하면서, 그 동그라미를 보면서, 나는 시각적으로 경기도민임을 확인했고, 그렇게 10년쯤 지나게 되자, 이윽고 경기도민이 되었음을 자각했다.

    경기도에 세금을 내고, 경기도의 학교에 아이를 보내고, 경기도의 영화관을 찾고, 경기도의 식당에서 밥을 먹고, 경기도에서 매일같이 잠을 자면서도, 경기도민이라는 자각 대신 이런 일들을 어떤 행정 차원의 주소 기입 정도로 여겼으나 수차례에 걸친 투표 행위가 결국 나를 경기도민으로 자리 잡게 했다. 다른 행위들에 비해 투표는 적극적인 자기 의사의 표출이자 강력한 정체성의 드러냄이었던 것이다. 아마도 지금 이 글을 읽고 있을 독자 대부분 역시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은 궤적을 밟아왔을 것이며, 또한 나의 심정과 그리 다르지 않은 마음의 풍경을 그리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나는 경기도민이 되었다. 일산, 김포, 광명, 군포, 의왕, 성남, 광주, 의정부, 양주… 이렇게 한 바퀴 지명을 돌리면 수도 서울을 넓게 감싸 도는 서울외곽순환도로가 된다. 그 원의 바깥으로 안산, 화성, 오산, 평택, 안성, 여주, 양평, 가평, 동두천, 연천, 파주가 또한 수백 년 역사의 두께 위에서 21세기의 복잡한 나날들을 견디고 있다. 나는 올해부터 새로 교편을 잡게 된 대학을 왕복하면서, 그러니까 일산의 집에서 부천, 시흥, 안산, 화성을 거쳐 오산의 대학교로 이어지는 경기 서북부와 서남권을 잇는 왕복 150여km를 다니면서, 나는 좀 더 자주 경기도의 역사와 삶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경기도의 유산

    2014년은 경기도의 정도(定道) 600주년이 되는 해였다. 조선 초기, 태종 14년(1414)에 현재와 엇비슷한 광역의 경계가 확정되고 또한 경기도라는 지명까지 쓰게 됐는데, 그로부터 600년이 흐른 것이다. 도명의 차원을 넘어 경기(京畿)라는 용어를 쓰게 된 것은 거의 1000년의 세월로 2018년이 그 기념 해가 된다. 더 멀리 소급하자면, 백제가 기원전 18년 한강 유역을 도읍으로 삼은 후로 경기도는 오랫동안 역사의 중심 무대가 되어왔다.

    지명의 뜻부터 살펴보자. ‘경기(京畿)’의 ‘경(京)’은 천자의 도읍지를 가리키고, ‘기(畿)’는 천자가 직할하던 도성 주위 1000리(里) 땅을 뜻한다. 이를 ‘경기제(京畿制)’라고 하는데, 당나라의 이 제도가 고려 때 들어왔다. 천자 혹은 주군이 직할하는 곳이므로 ‘근본의 땅(根本之地)’ ‘사방의 근본(四方之地)’ 등의 의미를 지닌다. 왕기(王畿), 기전(畿甸), 기내(畿內) 같은 말도 함께 쓴다.

    심승구 교수의 논문 ‘경기(京畿)를 통해 본 서울의 정체성’에 따르면, 이는 “우리뿐만 아니라 중국, 일본, 베트남 등지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한다. 즉 경기는 “군주가 거주하는 도읍을 보호하고 그 기능을 돕기 위해 설정한 왕의 직할지”로서의 정체성에서 출발한 지역이다. 심 교수에 따르면, 이 지역명과 제도가 정식으로 성립한 것은 고려시대인 1108년(현종 9)이다. 개경의 외곽 지역을 ‘경기’라고 부른 것이 그 시작이다. 고려의 패망으로 개경 중심의 경기, 즉 특정 지역의 행정적 성격 부여가 남으로 이동해 조선 왕조 이후에는 한양 주변으로 다시 짜여졌다. 한양 중심의 경기는 그 뒤 몇 차례 변화를 겪다가, 세종대에 이르러 오늘날의 경기도와 유사한 영역으로 정립된다.



    한양으로부터 시작해 수도 서울에 이르는 세월 동안, 바로 그 성격, 즉 계란의 노른자와 같은 수도를 끼고 형성된 지역이라는 지리적 특성이 경기도의 역사를 우람하게 써오기도 했으며, 동시에 그것이 두드러진 독자성을 갖지 못하는 한계가 되기도 했다. 유사 이래 한반도의 모든 길은 경기도로 통했으나 실은 그 최종 목표가 되지는 못했다. 경기도의 수많은 길이 치도(治道)이며, 왕도(王道)였으나 중세의 도읍 혹은 현대의 수도를 보완하는 행정과 군사와 보급의 길이라는 성격이 강해 경기도의 독자성이 두드러지는 길이 되지는 못했다.

    그렇기는 해도 그 지리적 조건이 오늘날 경기도의 혈맥이 된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우선 한강 수로(水路)가 그렇다. 발원지는 강원도 태백산맥의 깊은 산자락이지만, 이 한강은 충북과 강원의 모든 물을 받아들여 경기도의 동쪽을 적시며 서울을 관통한 후, 다시 경기도 서쪽으로 흘러 서해와 만나면서, 경기도를 한반도의 대표적인 곡창과 교통과 인재의 산실로 만들어줬다. 이 물길을 따라 비옥하고 넉넉한 여주, 이천의 풍경과 양평, 하남의 기품 있는 풍요가 이뤄졌으며, 수도를 관통한 후, 김포와 파주의 양안으로 아늑한 정경이 펼쳐진다. 임진강 하류의 문산평야, 한강 하류의 김포평야와 고양평야, 안성천의 평택평야 등은 이 한반도의 대표적인 평야 지대로 꼽힌다.

    이 내륙 수로를 따라 전국 팔도의 인재가 모여들고 물자가 집산돼, 경기도는 정치의 중심이 되고 산업의 중추가 됐다.

    그것을 지탱케 했던 경기도의 사상문화는 철저히 현실적이었다. 왕도의 치세를 밝혀야 했고 그것이 이치에 어긋날 경우 매섭게 비판하는 결기가 있어야만 했다. 성리학(性理學)과 실학(實學)의 중심지이던 경기도는, 국태민안(國泰民安)의 왕도 정치를 추구함과 동시에 그 성리학 체제의 미봉에 대해 가차 없는 비판과 극복으로서 실학이 다시 제기되는 지역이었다.

    지금의 서울 도봉구에 해당하는, 조선 시대의 양주목 일대는 교통과 상업의 중심지이자 선왕의 능묘들과 서원이 조성돼 왕조 통치의 위엄과 사상이 돋보이는 지역이었다. 파주 일대의 성리학 유산들과 양주, 광주, 수원, 안산 일대의 실학 유산들도 조선 시대에 경기도가 어떤 사상적 근거지가 됐는지를 말해준다. 지금은 인천광역시에 편입됐지만, 오랫동안 경기도의 일익을 담당했던 강화도 일대가 성리학과 실학을 모두 전면적으로 비판했던 양명학의 산실이었다는 점도 기억할 만하다.

    여기에 더해, 조선 후기 경기도 전역이 천주교, 즉 서학(西學)의 중심지가 된 사실까지 더하면, 이 지역은 변화된 시대의 상황에 응전하기 위해 늘 새로운 사상적 모험을 주도했음을 알 수 있다. 안성 미리내성지, 광주 천진암성지, 수원 북수동 성당, 화성 남양성모성지, 안양 수리산 성지 등이 그 증거들이다.

    #경기도의 현재

    광복 이후, 경기도는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이 한반도가 본격적으로 근대적인 산업화의 바퀴를 굴리게 된 1961년 인구 272만여 명이었는데, 1970년에는 329만여 명이 되고, 1980년 493만여 명을 넘어, 1990년 615만여 명, 2008년 1154만 명, 2015년 현재 1270만 명에 달한다. 1970년대 이후 연평균 20% 이상의 인구증가율을 보인 것인데, 이는 서울이나 부산 같은 욕망의 집산지를 제외하고 나면 전국 최고 수준이다.

    물론 이 증가율에는, 눈물이 배었다. 정든 고향을 등지고 대도시로 떠나면서 흘린 눈물들, 서울의 변두리에서 밀려나면서 흘린 눈물들, 성남 안양 부천 등지의 이른바 ‘위성 도시’에 간신히 정착하며 흘린 눈물들을 기억해야 한다. 조세희의 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는 성남의 철거 현장에서 부천 일대의 기계 도시로 이어지는, 그 시대의 처절한 상흔이 기록됐다. 서울의 산업 시설을 외곽 도시로 이전하기 시작한 1977년 이후의 눈물과 상처 말이다.

    여기에 1989년부터 대대적으로 조성된 성남(분당), 고양(일산), 안양(평촌), 부천(중동), 군포(산본) 등의 수도권 신도시 또한 외형적으로는 대규모 주택 도시의 창건이지만 그 속으로 들어가 보면, 어떻게 해서든지 서울이라는 강력한 자장권 내에서 버텨내고자 했던 소시민의 간절한 일상이 묻어 있다.

    물론 서울이라는 거대한 도시의 다양한 압력과 밀도로부터 스스로 벗어나서 자족적인 교외 도시를 지향한 흐름도 있다. 분당, 판교, 동탄 등의 신도시와 더불어 광주, 양주, 양평, 가평, 안성 일대의 쾌적한 환경 속으로 기품 있게 들어선 삶들 또한 엄연하다.

    이 다양한 삶들을 사방으로 잇는 교통망의 확충 또한 경기도가 지난 수십 년 동안 치른 발전의 성과다. 실핏줄처럼 연결된 철도, 고속도로, 국도, 지방도의 현황은 경기도가 24시간 내내 쉬지 않는 지역임을 말해준다.

    전국의 12%에 가까운 면적에 전국 총생산의 약 20%를 차지하는 거대 지역, 그곳이 경기도다. 2013년 기준 경기도의 재정자립도는 71.6%로 전국 2위다(1위는 서울 88.8%). 지역내총생산(GRDP) 성장률은 2001~2006년에는 6.5%, 2007~2012년에는 4.4%로 전국 평균 성장률(2013년 기준 2.7%)을 상회했다. 물론 2008년 국제금융위기 등으로 전반적인 성장률이 둔화된 상태지만 수많은 산업 도시와 다양한 정체성을 지닌 문화 요소들, 그리고 대거 유입된 인구, 특히 40개가 훌쩍 넘는 수도권 소재 대학의 젊은 학생들과 전문가 집단 등이 떠받치는 경기도의 경제적, 문화적 저력은 상당하다고 하겠다.

    #경기도의 미래

    엄격하게 말해 경기도는 단일한 표정을 지닌 지역이 아니다. 정도(定道) 600년이 넘은 경기도 지역에는 수백 년 역사의 두께 위에 다양한 삶이 뒤엉켜 있다. 21세기의 첨단 기술과 전통 사회의 풍습이 공존하는 지역이다.

    대규모 신도시들도 언뜻 보기에 ‘아파트 공화국’ 같은 풍경으로 도열했지만 그 각각의 지역이 오늘에 이른 경로도 다르고 정서도 다르고 인구 구성도 다르다. 이러한 다양성, 곧 천만 개의 작은 우주가 때로는 어우러지고 때로는 조금씩 밀어내면서 함께 살아가는 지역이란 점을 주목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를 일방향적 가치, 즉 개발 중심주의로 일관하게 되면 각 지역의 고유한 삶과 그 지역의 내밀한 풍경들이 상실되고 만다.

    지난 세기의 풍경과 달리 오늘날의 경기도는 자족과 자치의 풍경을 만들어낸다. 마음 한구석에는 욕망의 도시 서울에 대한 한 줌의 지향성이 남아 있지만, 그러나 경기도의 최근 현황은 자족이 가능한 경제 환경과 활달한 주민 자치의 면모가 두드러진다.

    기존의 굴뚝 산업에 더해 디지털(판교), 바이오(수원), 문화(고양) 등의 21세기 산업이 경기도에 의미 있는 거점들을 확보하고 있다. 군포의 도서관 문화, 동탄의 일상 자치 네트워크 등은 주민 스스로 일궈낸 자족과 자치의 성과 덕분에 ‘베드타운’의 낡은 이미지를 말끔히 씻어내는 모범으로 꼽힌다. 굳이 서울까지 나가지 않아도 고양의 아람누리와 성남의 아트센터에서 수준 높은 문화예술을 누릴 수 있다. 안산이나 의정부의 문화 향유 수준도 나날이 높아진다. 물론 자족과 자치가 고립되는 것은 아니다.

    특히 경기도는, 우리가 일상적으로는 잠시 잊고 지내지만, 그리고 이 글에서도 주요하게 다루지는 못했지만, 무엇보다 팽팽한 군사적 긴장이 압도하는 지역이다. 동북아의 복잡한 긴장과 대결의 중심 공간이 경기도다. 그렇기에 경기도는 무모한 개발주의나 살벌한 경쟁이 아니라 안전하고 우애 있는 미래를 상상해야 한다.

    4월 10일, 경기도 수원에 있는 경기문화재단에서는 경기도의 현재와 미래를 모색하는 중요한 학회의 창립총회가 열렸다. 경기 지역 정체성을 확립하고 지역 공동체 발전과 지역 주민의 행복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하는 ‘경기학회(京畿學會)’가 그것이다. 인문과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그리고 전문 예술가 등 150여 명이 참여한 이 학회는 탄탄한 이론과 실천적인 관점을 결합해 경기 지역을 융복합적으로 분석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비단 이 학회뿐 아니라, 경기도와 관련된 지식 집단이 오랫동안 추구해온 과제가 바로 이것이었다. 서울을 둘러싸고 있다는 ‘지정학적 정체성’을 인정하되 그것에 매몰되지 않고 경기도만의 독자적인 정체성과 가치 지향을 찾아내는 것, 그것이 경기도의 오랜 화두였다.

    이를테면 2010년, 경기도가 설립한 경기창조학교의 명예교장을 맡은 이어령은 아예 “과거의 경기도는 버리고,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경기도에 거주하는 도민이라는 과거 시대의 장소 고착형 정체성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오히려 경기도의 미래라는 주장이다. 2010년 언론 인터뷰에서 이어령은 “경기도가 서울에 접경한 지역으로 서울에 빨려 들어가면 전국이 망하는 것이다. 그러나 수도권문화가 이뤄지면 한국 전체가 사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 점에서 50개에 가까운 수도권 대학에 대한 과감한 지원과 지속적인 관심이 중요하다. 수많은 대학생과 지식인이 경기도 전역에서 미래를 상상한다. 그들의 학문적 관심, 기술적 능력, 예술적 상상력을 경기도의 미래 자산으로 여겨야 한다. 미래는 언제나 젊고 새로운 바탕 위에서 생성된다.

    경기도의 기원 자체가 다양성의 혼종이 아니었던가. 경기도에 뿌리를 내리되 경기도라는 지리 정체성을 벗어나는 것, 그것이 경기도의 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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