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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충립 前 수경사 보안반장 육필수기 음모와 암투

전두환〈보안사령관〉, ‘보안사령관 교체’ 정보에 정승화〈계엄사령관〉 전격 체포

12·12쿠데타 전말

  • 김충립 | 前 수도경비사령부 보안반장 kimchoonglib@naver.com

전두환〈보안사령관〉, ‘보안사령관 교체’ 정보에 정승화〈계엄사령관〉 전격 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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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보안사령관〉, ‘보안사령관 교체’ 정보에   정승화〈계엄사령관〉 전격 체포
1979년 3월 제1사단장 전두환 소장이 보안사령관으로 전격 등용되자 군은 물론, 청와대와 정치권에도 충격적인 인사로 비쳤다. 박정희 대통령의 총애를 받는 정규 육사 출신으로 잘 알려진 인물이긴 하지만, 사단장 경력 1년 3개월 만에 중장이 지휘하는 군단장급 직위에 보직된 데다 보안사령관의 실질적 권력 서열이 차지철 경호실장, 김계원 비서실장,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에 이어 4위에 해당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당시 보안사령부의 위상과 파워는 최악이었다. 전임 진종채 사령관은 ‘선비형 장군’으로 1975년부터 4년간 조용히 군 보안업무에 주력했고, 보안사령부의 파워나 권위, 명예를 높이는 일에는 관심이 없었다.



전두환의 5인방

전두환〈보안사령관〉, ‘보안사령관 교체’ 정보에   정승화〈계엄사령관〉 전격 체포

1974년 12월 1일 정병주 특전사령관(오른쪽)이 부대장들의 인사를 받고 있다. 뒤편 왼쪽에 전두환 1공수단장, 노태우 9공수단장이 서 있다. 5년 뒤 정 사령관은 전두환 신군부에 의해 체포된다.

권력기관의 장이 대통령과 자주 만나 특별한 임무를 받곤 하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 차지철은 보안사령관이 대통령에게 직접 하던 정보 보고를 자신에게 하도록 했다. 보안사령관에게 대통령 대면 기회를 주지 않으니 보안사 파워도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1977년 10월 20사단의 대대장이 월북하는 사건이 일어나자 김재규는 보안사령관에게 일반 정보업무를 직접 맡지 못하게 압력을 넣으면서 중정의 통제를 받게 했다. 이 때문에 보안사령관은 경호실장과 중정부장 양쪽으로부터 견제를 받는 처지가 됐다. 결국 보안사는 일반 정보업무를 취급하던 정보처를 폐지하고 방산처로 이름을 바꿔 민간인 대상 정보 수집 활동을 전면 금지했다. 민간인은 방위산업 관련 인사만 접촉할 수 있게 됐다.   

이런 악조건에서 등용된 전두환은 우선 보안부대에 우수 인재를 보강하면서 하나회 소속 육사 16~18기 중심으로 참모진을 꾸렸다. 보안사에 근무한 경력이 있는 허화평 대령(17기)을 비서실장에, 같은 기수 허삼수 대령을 인사처장에, 대공 수사업무에 정통한 이학봉 대령(18기)을 대공처장에 기용해 ‘3인방’을 형성하고, 여기에 오랜 심복인 수도경비사령부 30대대장 장세동 대령(16기)과 33대대장 김진영 대령(17기)을 합해 ‘5인방’을 핵심으로 자기 세력을 확고히 구축했다.

전두환은 보안사령부의 권위와 파워 형성에 신경을 쓰면서 참모들에게는 계엄 선포 시 보안사가 어떻게 정국을 바로잡고 수습할 수 있을지에 대한 ‘시국 수습방안 연구’를 시켰다. 그러면서 은밀하게 박 대통령을 대면할 준비를 하면서 대통령에게 김재규와 차지철을 그대로 두면 안 된다는 건의를 하려고 마음먹었다.

1979년 4월 필자는 전두환을 직접 만나 지시를 받았다. 허삼수가 보안사 인사처장으로 부임 후 인사명령이 있었는데, 이때 필자는 ‘30사단 보안부대 운영과장을 마치고 503 대구 보안부대로 부임하라’는 인사명령지를 받았다. 기왕이면 고향과 가까운 경북 안동 36예비사단 보안부대장으로 가면 좋겠다는 희망을 갖고 사령부를 막 나오려는데 전 사령관이 찾는다는 연락을 받았다. 인사명령 보고를 했더니 그는 대뜸 이렇게 말했다.

“김 소령, 이번에 대구로 가지 말고 특전사령부 보안반장으로 가면 좋겠어. 중령 진급 예정자 중 여러 명을 검토해봤는데 김 소령이 제일 적합한 것 같아 그러는 거야. 특전사 반장은 매우 중요한 자리야. 내가 그 부대 출신이니 내 체면을 봐서라도 특전사 반장 임무를 잘 해줘야 해. 그리고 중요한 임무가 있어. 정병주 특전사령관을 잘 지켜봐야 해. 특전사령관은 요직이야. 그런데 매일 테니스나 치고, 부하들과 술이나 먹고, 훈시는 5분도 못할 만큼 소신도 철학도 없는 지휘관은 잘 살펴봐야 해.”

전두환은 참모들에게 검토시킨 ‘계엄 시 보안사의 역할에 관한 연구’ 결과를 적절하게 활용했다. 1979년 10월 18일 부산에서 대규모 시위(부마항쟁)가 발생하자 부산 보안부대에 계엄사 합동수사본부를 만들었고, 이어 10·26사건 직후에도 합수부를 설치했으며, 1980년 5월 27일 광주 도청 탈환 직후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국보위)를 출범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전두환이 박 대통령을 면담해 차지철, 김재규에 대해 건의하려던 날짜는 10·26 직후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확인되진 않은 사실이지만, 필자는 전두환이 충분히 그런 건의를 할 수 있는 인물이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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