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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본 없는’ 여당 대표 ‘불통 女帝’에 천군만마

친박 르네상스!

  • 허만섭 기자 | mshue@donga.com, 송국건 영남일보 서울취재본부장 | song@yeongnam.com

‘근본 없는’ 여당 대표 ‘불통 女帝’에 천군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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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대통령-당 대표 처음으로 ‘찰떡 케미’
  • ● 與, ‘집 나간 토끼’ 불러들인다?
  • ● 비주류·야당과 ‘총성 없는 전쟁’
‘근본 없는’ 여당 대표  ‘불통 女帝’에 천군만마

8월 9일 새누리당 전당대회에서 인사하는 박근혜 대통령과 이정현 당시 대표 후보. [공동취재]

8·9 전당대회를 통해 새누리당 당권을 잡은 이정현 대표는 당선 이틀 후인 8월 11일 신임 최고위원들을 비롯한 새 지도부를 이끌고 청와대를 방문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마련한 취임 축하 오찬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대통령의 입장을 기다리며 청와대 참모들과 환담을 하고 있을 때 이원종 비서실장과 김재원 정무수석이 이 대표에게 넌지시 말을 건넸다.

“대통령께서 들어오시면 너무 고개를 깊숙이 숙여 인사하지 마십시오. 절대로 그렇게 하시면 안 됩니다. 그냥 꼿꼿하게 대하시면 됩니다.”



30도 인사, 90도 인사

여당 사령탑이 된 이 대표가 과거 주군(主君)인 박 대통령과 처음 만나면서 어떤 태도를 보일지 언론이 주목하고 있으니 당당하게 대하라는 당부였다. 실제로 그날 기자들은 두 사람의 만남에서 어떤 그림이 나올지 궁금해하고 있었다.

이 대표는 오찬장에 입장한 박 대통령과 인사하면서 고개를 30도 정도만 숙였다. 과거 당 대표들이 대통령에게 했던 정도의 예의만 표한 것이다.

같은 날 오후 취임 인사차 박지원 국민의당 비대위원장을 찾은 이 대표는 90도로 허리를 숙였다. “아이고 감사합니다”를 연발했다. 정세균 국회의장,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대위 대표를 만나서도 마찬가지였다.

대통령에겐 30도, 야당 대표에겐 90도. 이 대표는 향후 정국에서도 이 자세를 유지할까. 대통령에게 거의 대등하게 할 말을 하고, 야당의 의견을 경청할까.

이 대표는 당 지도부와 함께 박 대통령과 110분 동안 오찬 간담회를 하는 자리에서 현안에 대해 여러 말을 쏟아냈다. 그는 박 대통령을 자극하지 않으면서 요구사항을 전달하는 화법을 구사했다.

전기료 누진제를 재검토해달라고 요청할 때는 “당 최고위원회 회의에서 한번 전반적으로 검토하는 게 어떻겠냐고 해서 말씀을 올립니다”라고 했다. 개각과 관련해선 “인사권자인 대통령께서 다 판단하실 문제지만 어쨌든 건의를 드리자면…탕평인사, 균형인사, 능력인사, 소수자에 대한 배려인사, 이런 데 대해서도 늘 그렇게 해오셨지만…”이라고 했다. 당·청 관계를 얘기할 때도 “언론에 많이 나오는 말씀을 좀 드리겠다”고 전제한 뒤 말을 꺼냈다.

오찬 후 박 대통령과 이 대표는 25분간 독대했다. 김무성 전 대표 시절엔 없던 긴 시간이다. 이 대표는 “국정, 민생, 당 운영에 대한 제 복안을 말씀드렸고, 제일 중요한 결론으로 ‘자주 연락을 드리겠다’고 했다. 대통령께서 기꺼이 ‘알았다’고 답해 주셨다”고 설명했다. 만약 두 사람이 실제로 자주 연락한다면 초유의 일이 될 것이다. 대통령과 여당 대표가 연락하는 일은 지금까지 거의 없었다. 새누리당 한 의원은 “대통령과 당 대표가 ‘찰떡 케미’다. ‘친박 르네상스(Renaissance, 부활)’를 실감한다”고 촌평한다.



이제야 시작된 소통

반면, 이 대표는 90도로 인사를 한 야당 대표들과는 덕담을 나누는 중에 뼈 있는 말을 건넸다. 같은 호남 출신인 박지원 위원장에겐 “워낙 독하고 무서운 야당이다. 하지만 절대로 쥐를 끝까지 몰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퇴로를 항상 열어준다”며 야당의 양보를 간접적으로 요구했다.

이런 장면을 보면, 이정현 체제에서 대통령과 여당 대표 사이에 소통이 비로소 제대로 시작되는 것처럼 비친다. 또한 이 대표가 여당의 핵심 가치에선 야당에 절대로 굽히지 않을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박 대통령도 아마 이런 모습의 여당 대표를 고대해왔는지 모른다. 박 대통령은 8·9 전당대회에 직접 참석해 이정현 체제의 출범을 축하했다. 박 대통령은 축사에서 “우리 앞에는 남은 1년 반의 국정을 성공적으로 완수해…막중한 책무가 주어져 있다”며 “새로운 지도부의 역할은 그 어느 때보다 투철한 국가관을 가지고, 나라가 흔들리거나 분열되지 않도록 바로잡는 것”이라고 했다. 연설의 키워드는 ‘분열되지 않도록’일 것이다. ‘앞으로 당 대표와 좀 안 싸웠으면 한다. 나도 그간 힘들었다’는 박 대통령의 속마음이 느껴진다.

이정현 대표는 본인을 ‘근본 없는 놈’이라 칭한다. 호남 출신 말단 당직자로 출발한 자신의 이력을 이렇게 빗댄 것이다. 이 대표는 ‘국민을 섬기는 리더십’을 제안했고 “민생 현장을 찾아다니며 국민의 목소리를 듣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새누리당 한 당직자는 “앞으로 이 대표가 자기 말을 어떻게 실천하는지 지켜봐야 하겠지만, ‘근본 없는 놈’ 이정현 대표의 이런 메시지는 ‘불통 여제(女帝) 이미지’의 박 대통령에게 천군만마와 같은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박 대통령은 ‘미래 권력’ 시절인 2009년 5월 미국 샌프란시스코를 방문했다. 당시 ‘대변인 격’으로 불리던 이정현 의원을 비롯한 현역 의원 8명이 수행했다. 방문 일정 마지막 날 동행 취재한 기자들이 박 대통령에게 말했다. “이번에 이정현 의원이 기자들을 안내하느라 무척 고생했습니다.” 이 말에 대한 박 대통령의 답변. “참으로 헌신적인 분이시죠.”

그로부터 7년이 흘러 이 대표는 박근혜 정부의 임기 후반기 국정 운영을 돕고 차기 대선후보 경선을 관리할 여당 사령탑이 된 것이다. 그렇다면 박 대통령에 대한 이 대표의 ‘헌신’은 여권의 장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이 대표 앞엔 넘어야 할 3개의 큰 산이 있다. 박 대통령, 여당 비주류, 야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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