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9월호

강지남 기자의 국경 없는 쇼핑백

신종 ‘퍼스널 쇼퍼’ ‘전봇대’는 뽑아주자

‘구매대행’을 아십니까?

  • 강지남 동아일보 출판국 기자 | layra@donga.com

    입력2016-08-23 10:11:55

  • 글자크기 설정 닫기
    4년 전 여름, 나는 미국 뉴저지의 그 유명한 ‘우드버리 커먼 아웃렛’에서 인생의 기회를 만난 듯 부르르 떨고 있었다. 신으면 발이 무지 편하다는, 한국 백화점에서 한 켤레에 20만~30만 원 한다는 락포트(Rockport) 남성 구두가 6만, 7만 원에 불과했다. 게다가 두 켤레를 사면 두 번째 구두는 50% 더 깎아준다!

    “어머 이건 꼭 사야 해!” 한국 시각은 새벽 네댓 시였지만 주저 없이 국제전화를 걸었다. “여보, 아버님 신발 사이즈가 몇이지?” “아빠, 전데요 깨워서 미안. 근데 발 사이즈가?” 그렇게 남편, 친정아버지, 시아버지, 그리고 형부 구두까지 사고 내 것도 사고 함께 간 친구 것도 샀다.

    ‘아웃렛 원정’을 위해 하루 빌린 렌터카 트렁크는 금세 가득 찼다. 두 주부는 땡볕 아래 양손 가득 물건을 사들고 드넓은 아웃렛 단지를 쏘다녔다. ‘돈 쓰는 것이 남는 것’이라며 서로를 격려했다. 우리가 언제 또 미국에 오겠어, 미국 온 김에 많이 사가는 게 현명한 거래, 지금 안 사고 서울 가서 후회한들 방도가 없어….

    물론 이렇게 사온 ‘쇼핑템’들은 두고두고 유용했다. 남편은 이후 락포트 구두만 찾고, 초등생 조카는 19.99달러에 건져 온 컬럼비아(Colo -mbia) 재킷을 겨울마다 교복인 양 입고 다닌다. 나는 이번 가을에도 우드버리 랄프로렌 매장 출신의 네이비 컬러 원피스를 애용할 것이다.





    온라인 핫딜을 찾아라!

    2007년 생애 첫 미국 출장을 앞둔 내게 어느 다국적기업 여성 임원은 이렇게 조언했다. “빈 여행가방 들고 가서 가득 채워 오세요.” 그러나 2016년 현재 내가 생애 첫 미국행을 앞둔 후배에게 같은 조언을 한다면 “요즘 누가 무겁게 사들고 온다고…”라는 핀잔을 들을 것이다.

    온라인 구매가 늘면서 글로벌 업체들은 온라인 판매(e-commerce)에 정성을 쏟고, 국제배송료는 점점 저렴해지는 추세다. 해외직구 필수 용어 중 하나는 ‘핫딜(Hot Deal)’. 엄청 싸게 판다는 뜻이다. “지금 로프트(LOFT) 완전 핫딜이래”란 말은 “고급스러운 소재에 트렌디한 디자인으로 인기가 높은 여성의류 브랜드 로프트가 40% 이상 세일하고 있으니 이 기회를 놓치지 말라”는 뜻이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온라인 핫딜’을 뒤지려면 시간이 많이 걸린다. 세상은 넓고 물건은 많다. 세일 일정, 할인코드(결제 직전에 입력하면 더 깎아주는, 문자와 숫자로 이뤄진 코드) 같은 정보를 죄다 뒤지자면 끝도 없다. 영어에 자신 없거나, 물건을 꼭 사고 싶은 업체가 한국 신용카드를 받아주지 않거나, 어떤 사이즈가 내게 맞는지 확신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요즘 이런 해외직구 초보자를 겨냥한 사업이 번성 중인데. 이른바 ‘구매대행’이다.



    “비행기 사주세요”

    대전에서 웨딩숍을 운영하는 워킹맘 ‘에스메랄다’ 씨는 구매대행 서비스를 제공하는 블로그 몇 개를 ‘이웃’으로 등록해놓고 해당 블로그가 전해주는 핫딜 소식을 참고해 해외직구를 한다. 사고 싶은 제품을 구매대행업체에 알려주면, 업체가 알아서 주문해 집으로 해당 제품이 배송되도록 해준다. 얼마 전 그녀는 245달러짜리 하이힐을 11.99달러에 샀다. 할인율이 무려 95%다.

    “뉴욕 여행 중에 하루 시간을 내 우드버리 아웃렛에 갔는데, 세일이 끝나선지 물건이 별로 없더라고요. 아웃렛보다 홈페이지 세일 때가 더 저렴한 경우도 많아요. 그런데 온라인 쇼핑에 시간 쓸 여유가 없으니 믿을 만한 구매대행업체 도움을 받는 거지요.”

    그녀는 궁금한 사항을 구매대행업체에 카카오톡으로 문의하고 바로 답변 받을 수 있는 점, 가끔 VIP 할인쿠폰을 선물로 받는 점 등을 구매대행의 장점으로 꼽았다. 구매대행업자는 여러 고객의 주문을 하나의 아이디로 처리하므로 누적 주문액수가 일반 소비자보다 커 해당 쇼핑몰로부터 VIP 할인쿠폰 등을 받는다고 한다.

    해외직구 주문을 대신해주는 구매대행은 한국이 원조다. 2000년대 초반 어느 대기업에서 처음 서비스를 시작했고, 뒤이어 소규모 및 개인 사업자들이 뛰어들었다. 2000년대 중반 구매대행사업을 시작했다는 김모 씨는 다니던 직장이 급작스럽게 폐업해 퀵서비스 회사에 취직했는데, 구매대행을 통해 해외에서 들어온 물건을 배달해주는 곳이었다. 그때 구매대행업에 대해 알게 돼 뛰어들었다.

    구매대행업은 크게 두 종류로 나뉜다. 구매대행이 가능한 해외 제품을 홈페이지에 게시해놓고 주문을 받아 구매를 대행해주는 것, 그리고 고객이 원하는 제품을 ‘온라인 발품’을 팔아 구해다주는 것. 두 가지 서비스를 함께 하는 업체도 있고, 홈페이지 없이 SNS를 활용해 사업하는 업체(혹은 개인)도 생겨나는 추세다.

    김씨는 중고 외제차, 1000만 원 넘는 고급 자전거, 수백 권의 해외 중고서적을 구매대행해준 적이 있다고 했다. 실제 구매로까진 연결되지 않았지만, 고객의 요청으로 요트 견적을 내준 적도 있다. “어느 대기업에선 경비행기를 요청해왔다. 그런데 이걸 배에 싣고 와야 하는지, 아니면 직접 조종해 와야 하는지 모르겠어서 ‘못하겠다’고 했다.”



    구매대행업자 한모 씨는 “주요 쇼핑몰들의 운영 행태와 고객들의 구매 후기가 축적되다 보니 고객들에게 ‘다음 주에는 세일에 들어갈 거니 기다려라’ ‘그 브랜드 옷은 한 치수 크게 입는 게 좋다’ 등 조언을 해줄 수 있게 됐다”며 “퍼스널 쇼퍼 노릇을 해줄 수 있다는 게 구매대행의 장점”이라고 했다.

    구매대행업은 ‘수수료’로 수익을 낸다. 보통 구매금액의 10%를 고객에게 수수료로 청구하는데, 요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수수료가 점차 낮아지는 추세라고 한다. 한씨는 “구매대행은 유통업이 아닌 서비스업”이라며 “경쟁이 심화하는 만큼 정확하고 친절한 서비스로 단골 고객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해외 파트너사와 계약을 맺고 특정 제품 구매대행을 하는 이모 씨는 “구매대행업은 고도의 유통업”이라고 정의했다. 대량 선(先)구매로 납품가를 낮출 순 없지만, 재고 부담이 없고 트렌드와 소비자의 니즈에 재빨리 대응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는 것이다.  



    몸조심, 또 몸조심

    해외직구 시대, 한국인이 개발한 이 신종 비즈니스 모델은 최근 국경을 넘어 아시아로 뻗어나가는 중이다. 중국, 일본, 필리핀 등 아시아권에서 구매대행업체가 하나둘 생겨나기 시작하자 국내 사업자들은 서둘러 ‘역(逆)구매대행업’ 진출을 시도하고 있다.

    모 구매대행회사 사무실에 들른 적이 있다. 주로 유럽 제품을 취급한다고 해서 어떤 것들을 볼 수 있을까 궁금했는데, 사무실엔 컴퓨터와 전화기뿐이었다. 이 회사 김모 대표는 “구매대행업체는 재고를 보유해선 안 된다”고 했다. 고객 주문이 들어오면 해외 파트너사에 고객의 집으로 제품을 보내달라고 요청하고, 파트너사가 고객에게 바로 제품을 보내주기 때문에 ‘실물’은 볼 일이 없고, 봐서도 안 된다는 것.

    우리 정부는 일정 금액 이하 해외직구 물품에 대해 세금을 면제해준다. 다만 ‘자가 사용’이라는 전제조건이 있다. 직구한 물품을 재고로 보유한다는 것은 판매할 목적이 있다는 의미라 밀수업자로 취급된다. 관세청 관계자는 “자가 사용인 것처럼 물품을 들여와 판매하는 구매대행업자가 상당수 있어 전담 조직을 두고 감시한다”며 “적발되면 추징금, 가산금 등을 부과하고 사안에 따라서는 검찰 고발도 한다”고 밝혔다.



    ‘검은 머리’ 해외업체

    재고를 보유하다 적발돼 폐업에 이르는 흉흉한 사례가 나오자 구매대행업자들은 극도로 몸조심을 한다. 다음카페 ‘해외구매대행매니아’(cafe.daum.net/globas)에는 각종 법규 관련 문의가 이어진다. 이들은 관련법의 정확한 내용을 알아내기 어렵고, 지키기도 쉽지 않고, 종종 ‘억울한’ 상황도 있다고 전한다. 카페 운영자 김명일 씨는 “전자상거래법, 식품위생법, 어린이제품안전특별법, 전기용품안전관리법 등 여러 법규에서 구매대행을 어떻게 다루는지 알아야 하는데, 소관 부처나 기관 등이 여러 군데라 어려움이 크다”고 했다.

    일례로 어린이제품안전특별법을 보자. 이 법은 에어바운스(공기를 불어넣는 대형 어린이놀이용품) 등 안전인증을 받지 않은 제품으로 인한 어린이 사고가 빈발하자 이를 예방하기 위해 신설됐다. 이 법에 따르면 어린이 제품을 판매, 혹은 구매·수입을 대행하는 업자는 안전인증 등을 받지 않은 제품을 판매할 수 없다.

    그런데 어린이 제품에는 의류와 신발도 포함된다. 산업자원통상부 국가기술표준원 관계자는 “인증받은 제품만 구매대행이 가능하다”고 했다. 누군가가 인증받아놓은 제품이 아니라면 구매대행업자가 직접 인증을 받아야 한다. 김명일 운영자는 “사이즈가 다른 것은 괜찮지만, 색상이 다른 것은 각각 인증을 받아야 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했다. 전자제품도 전기용품안전관리법에 따라 안전인증 등을 받은 제품만 구매대행할 수 있다.

    이러한 법규에 대한 구매대행업자들의 불만은 높다. 아동의류나 아동신발, 청소기, 커피머신 등은 해외직구족이 즐겨 찾는 품목인 데다 구매대행업의 특성상 ‘다품종 소량’을 취급하기 때문에 건건이 인증을 받다가는 배보다 배꼽이 크게 된다는 것이다. 위의 카페에 오른 사연 하나를 보자. “수집가용 희귀 인형을 구매대행해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인형은 어린이용품이니까 안전인증을 받아야 하는 거죠? 그런데 이 인형은 세상에 단 한 개밖에 없는 건데요….”

    그런가 하면 건강기능식품을 구매대행하는 사람은 관세청 유니패스(unipass.customs.go.kr)에 들어가  건마다 수입신고를 해야 하고, 화장품을 구매대행하는 사람은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일정 교육을 이수한 뒤 ‘화장품 제조판매업 허가’를 받아야 한다. 구매대행업계 관계자들은 “구매대행업자를 포함해 화장품 제조판매업자는 반드시 사업장을 확보해야 한다. 이는 물품 보관 창고를 갖고 있으라는 뜻이라 구매대행업자가 재고를 보유해선 안 된다는 관세청 법규와 상충된다”고 지적한다. 이에 대해 식약처 관계자는 “구매대행은 화장품 제조가 아닌 판매이기 때문에 창고는 없어도 되고 사업장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규제를 지키지 않으면? 어린이제품안전특별법은 ‘5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한다. 국가기술표준원 관계자는 “사후관리는 시·도지사가 하는 것”이라며 “신고가 들어오면 조사하게끔 돼 있다”고 했다.

    이러한 혼란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해외에 법인을 설립하면 된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귀띔이다. 해외법인은 이런 규제를 전혀 받지 않는다. 이미 미국 등지에서 한국 소비자를 상대로 쇼핑몰을 운영하는 ‘검은 머리’ 해외업체가 여럿 보인다. 김 대표는 “어차피 온라인 비즈니스라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해외로 나갈 수 있겠지만, 그것도 국부 유출이지 않나. 구매대행업의 특성에 맞게 법규가 재정립되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새 사업, 옛 기준

    물론 겉으로만 구매대행을 표방하고 사실상 수입업체와 동일하게 사업하는 곳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정보기술(IT) 모바일 시대에 새롭게 등장한 사업을 과거의 기준으로 규제할 순 없는 일이다. 묘수를 찾아야 할 때다. ‘구매대행’이라는 신종 비즈니스의 출현에 골치 아픈 정부 관계자 분들께 일단 구매대행 서비스를 이용해보시라고 권하고 싶다. 인터넷 후기를 뒤져보니 락포트를 직구하는 분도 꽤 있다.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