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겹눈으로 본 북한

北 빨치산 혁명 가문의 추락

다른 ‘혁명 정통’ 거세 김정은만 남겨 ‘일원화’

  • 송홍근 기자 | carrot@donga.com

北 빨치산 혁명 가문의 추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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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4대 가문’ 단일 대오 무너져
  • ● 오백룡 아들 등 ‘오씨 3인방’ 강등
  • ● 代 이어 권력 못 누린다?
北 빨치산 혁명 가문의 추락

김정은은 2013년 12월 장성택 숙청 직전 백두산을 찾았다. 황병서 등 테크노크라트 그룹이 동행했다. [노동신문]

외치(外治) : 핵 광인(狂人), 내치(內治) : ‘공포 통치’는 체제를 보전하고 독재를 유지하는 측면에서만 보면 ‘합리적 선택’을 한 것일 수도 있다. ‘뉴욕타임스’는 “북한은 미치기는커녕 너무 이성적”(9월 10일자)이라고 봤다. “잔혹성과 차가운 계산은 상호 배타적인 게 아니며 서로 협력관계에 있다”는 것이다.

김정은 집권 이후 북한의 권력 집단에 변화가 일어났다. “5년간 ‘나는 아버지와 다르다’는 색깔을 내는 데 주력한”(류길재 전 통일부 장관의 표현) 김정은 집권기에 항일 빨치산 가계(家系)가 추락했다. 그들이 물러난 자리를 테크노크라트 그룹이 차지했다. 탈북 인사들은 “과거의 북한 상식으론 도저히 생길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고 입을 모은다.  

‘북한은 빨치산 가계가 권력을 분점한 나라’라는 분석이 있다. 서구 학계 일부의 시각인데, 북한의 권력 핵심이 항일 빨치산 경험을 공유하는 4대 가문의 ‘세력 연합’이라는 것이다. 김씨(김일성), 오씨(오중흡), 최씨(최현), 김씨(김책) 가계가 대를 이으면서 권력을 나눴다는 주장인데, 유럽 봉건 왕조 형태에 북한을 끼워 넣은 ‘억지 해석’이라는 비판이 많다.

그럼에도 항일 빨치산 가계가 김일성 일가 곁에서 호가호위(狐假虎威)하며 대를 이어 권력을 누린 것만은 사실이다. 김일성은 1947년 만경대혁명학원을 세워 빨치산 유자녀를 돌봤다. 김정일 시기에도 빨치산 자녀나 ‘김일성의 아들’로 대우받은 만경대혁명학원 출신 유자녀가 당·군의 요직을 장악했다.

‘몸 바친 혁명 가문’의 추락

7월 한국에 들어온 태영호 전 영국주재 북한공사의 아버지가 빨치산 1세대이자 김일성의 전령병으로 활동한 태병렬 전 인민군 대장이라는 얘기가 나돌았으나, 이는 태씨가 희성(稀姓)이라 나온 억측이라는 반론이 많다. 태영호 전 공사의 부인 오선혜가 항일 빨치산 오백룡 가계라는 관측도 나왔다. “오백룡가(家)의 몰락을 목격한 태영호가 평양에 소환된 후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탈북했다”는 것이다.  

오백룡은 김일성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 142회 등장하는 항일 빨치산이다. ‘혁명 1세대’인 오백룡의 아들로는 오금철, 오철산이 있다. 장남 오금철은 김정은 시기에 노동당 중앙위원에서 후보위원으로 밀렸다. 해군사령부 정치위원을 지낸 차남 오철산은 후보위원에서도 탈락했다.  

“일가가 항일전에 몸을 바친 혁명가의 가문”(‘세기와 더불어’에서 인용)인 오태희가(家)는 오백룡가(家)보다 더 쟁쟁하다. 오태희와 오백룡이 먼 인척이라는 시각도 있으나 둘의 관계가 명확하진 않다. 오태희는 ‘세기와 더불어’에 12회 등장한다.

오태희의 아들 오중화, 오중흡, 오중기, 오중철, 오중식은 ‘유격대 5형제’로 불린다. 오중흡은 1930년대 김일성의 측근으로 ‘세기와 더불어’에 216회나 등장한다. 오중흡과 인민군 원수를 지낸 오진우는 4촌 관계다.

실세라던 오진우 아들도…  

오씨 일가가 북한군의 요직을 오랫동안 장악했다. 1995년 오진우가 죽은 후에는 오극렬이 북한군의 실세 노릇을 했다. 오극렬은 오중흡의 5촌 조카로 오중성의 아들이다. 오중성과 오진우는 ‘세기와 더불어’에 각각 15회, 11회 등장한다.

오극렬은 북한군 총참모장,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냈다. 혁명자금 일부도 관리한 것으로 알려진다. 사망할 때까지 권력을 누린 최현,  오진우와 달리 오극렬은 김정은 시기에 거세됐다. 노동당 정치국 위원에서 당 중앙위원으로 직급이 하락하면서 은퇴 수순을 밟았다.  

김정은은 오진우의 아들 오일정을 상장(국군의 중장)에서 소장(국군의 준장)으로 두 단계 강등시키면서 노동당 중앙위원 명단에서도 제외했다. 오일정은 혁명 가계에서 삼촌뻘인 이을설(전 인민군 원수)의 장의위원 명단에도 들지 못했다. 오일정과 오백룡의 아들 오금철, 오철산은 한때 ‘실세 3인방’으로 일컬어졌다. 오일정은 특히 군부에 대한 영향력이 컸던 것으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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