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조선의 아버지들

문자향(文字香) 일깨운 지극한 서자 사랑

조선 최고 서예가 김정희

  • 백승종 | 한국기술교육대 대우교수 chonmyongdo@naver.com

문자향(文字香) 일깨운 지극한 서자 사랑

3/3



“보내준 인절미는 모두 썩어버렸습니다.”

“장아찌는 그런대로 괜찮으나, 무장아찌는 또 맛이 변했습니다.”

“민어를 연하고 무름한 것으로 가려서 사 보내주시오.”

“어란(魚卵)도 거기서 먹을 만한 것을 구해 보내주시오.”



“좋은 곶감이 거기서는 구하기 쉬울 듯하니, 배편에 4~5접을 보내주시오.”



친절하고 세심한 남편

후세가 인정하는 대학자 김정희가 아내에게 보낸 편지엔 이런 구절이 자주 등장했다. 그는 성질도 조급해, 아내의 소식이 늦어지면 발을 동동 굴렀다. 예순에 가까운 이 영감님을 우리는 체통도 모르는 사람이라고 혹평해야 할까. 아내는 이런 남편을 철부지 혹은 귀여운 도련님쯤으로 여긴 것 같다.

다른 한편으로 김정희는 너무도 친절하고 세심한 남편이기도 했다. “여름이라 참외가 맛있을 테니 자시기 바라오” 같은 글에선 아내를 아끼는 남편의 마음이 피부에 와 닿는다. 이런 구절도 보인다. “매양 잘 지내노라 하시나 말씀이 미덥지 아니하여, 염려가 무궁하옵니다. 부디 당신 한 몸으로만 알지 마옵고, 2000리 해외에 있는 내 생각을 하셔서 섭생을 잘하시기 바라옵니다.” 1841년 10월 1일, 56세의 김정희가 예안 이씨에게 보낸 편지다.

젊었을 적 김정희는 아내를 속상하게 했다. 평안감사 시절, 44세의 김정희는 평양 기생 죽향에게 마음을 빼앗겼다. 죽향은 난초와 대나무를 잘 그렸다. 결국 염문이 본가에까지 전해져 아내가 편지로 항의했다. 김정희는 시치미를 뗐다. “사람들이 주고받는 소문을 믿지 마오. 부디 내 말을 믿어주오.”

그는 곧 죽향과의 관계를 정리했다고 한다. 그러나 앞서 서울에서 벼슬살이를 할 땐 기생 첩을 두어 서자를 낳기도 했으니, 그만하면 ‘전과’는 충분했다. 그런 그였으나, 8년간의 제주도 유배 시절엔 첩을 두지 않았다. 나이가 들수록 아내를 더욱 사랑하게 된 것이다.

그는 남편의 권위 같은 것을 내세운 적도 없다. 아내는 늘 병약했으나 김정희는 그런 아내를 염려하고 그리워했다. 그 아내가 멀리 귀양 간 남편을 다시 만나지 못한 채 세상을 떴다(1842년 11월 13일). 부음을 받은 김정희는 통곡했다.

“부인이 먼저 세상을 뜨고 말았소. 먼저 죽는 것이 무에 유쾌하고 만족스러운 일이라고, 나로 하여금 두 눈 빤히 뜨고 홀로 살게 한단 말이오. 푸른 바다도 같고 먼 하늘도 같은 원한이 끝도 없습니다.”(‘부인 예안 이씨 애서문(夫人禮安李氏哀逝文)’, ‘완당전집’, 제7권)  



평범한 일상의 의미

71세를 일기로 김정희가 작고하자 세평은 이러했다.

“젊어서부터 영특한 이름을 드날렸다. 그러나 중간에 가화(家禍)를 만나 남쪽으로 귀양 가고 북쪽으로 유배 가서 갖은 풍상에 시달렸다. 세상에 쓰이기도 했지만 버림을 받기도 했다. (…) 세상 사람들은 그를 송나라 시인 소동파와 같다고 말한다.”(‘철종실록’, 제8권, 철종 7년 10월 10일)

김정희가 정치적 풍파에서 벗어난 것은 60대 후반이다. 말년의 그는 경기도 과천의 과지초당(瓜地草堂)에 머물렀다. 작고하기 2개월 전, 그는 의미심장한 대련(對聯) 한 구절을 세상에 남겼다. 지인 행농(杏農) 유기환(兪麒煥)을 위해 썼다고 하는데, 실은 후세를 위한 천재 예술가의 마지막 선물이었다.



좋은 반찬은 두부 오이 생강나물이오(大烹豆腐瓜薑菜),
훌륭한 모임은 부부와 아들딸 손자면 족하다(高會夫妻兒女孫).



이 대련에 김정희는 몇 줄의 설명을 붙였다. “이것이 시골 늙은이의 가장 큰 즐거움이다. 비록 허리춤에 말[斗]만큼 큰 커다란 황금인(黃金印)을 차고, 음식상을 한 길 높이로 차리더라도 (…) 이 맛을 즐길 수 있는 이는 과연 몇이나 될까.”

조선 최고 양반 집안에서 태어나 이조판서에 오르는 등 한때 부귀영화를 누렸으나, 정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파란만장한 삶을 견뎌야 했던 김정희. 그의 마지막 한 마디를 우리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인생의 행복은 외면의 성취에 있지 않다는 말이다. 평범한 일상생활의 의미를 깨치는 사람만이 행복을 누릴 자격이 있다는 것이다. 가족과의 소박한 일상이 있다면 그것으로 이미 족하다. 

백 승 종


문자향(文字香) 일깨운 지극한 서자 사랑
● 1957년 전북 전주 출생
● 독일 튀빙겐대 철학박사
● 서강대 사학과 교수, 독일 튀빙겐대 한국 및 중국학과 교수, 독일 막스플랑크 역사연구소 초빙교수, 프랑스 국립고등사회과학원 초빙교수
● 現 한국기술교육대 대우교수
● 저서 : ‘백승종의 역설’ ‘마흔 역사를 알아야 할 시간’ ‘금서, 시대를 읽다’ ‘정조와 불량선비 강이천’ 등




신동아 2016년 11월호

3/3
백승종 | 한국기술교육대 대우교수 chonmyongdo@naver.com
목록 닫기

문자향(文字香) 일깨운 지극한 서자 사랑

댓글 창 닫기

2019/07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