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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85주년 특별기획 | 우리에게 北·中·日은 누구인가

“내가 제일 잘났어” 광기의 ‘삼국 阿Q정전’

한·중·일 비교문화학

  • 정윤수 | 문화평론가, 한신대 정조교양대학 교수 prague@naver.com

“내가 제일 잘났어” 광기의 ‘삼국 阿Q정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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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西勢東漸에 응전한 제각각의 몸부림
  • ● 서울, 베이징, 도쿄의 삶 다를 바 없어
  • ● 3국의 ‘21세기적 파탄’ 살펴야 할 때
“내가 제일 잘났어”  광기의 ‘삼국 阿Q정전’
“내가 제일 잘났어”  광기의 ‘삼국 阿Q정전’
우선, 광기로부터 시작하면 안 될까. 왜? 그러니까 이런 질문이다. 한·중·일, 이 세 나라의 문화와 그것에 의한 장구한 삶을 살피면서, 곧 비교하면서, 우리는 꽤 오랫동안 이 세 나라의 문화적 유형의 같고 다름에 너무 주목한 것은 아닐까, 이런 질문 말이다.

물론 한·중·일 세 나라의 문화는, 그 유형에서나 가치의 재현이라는 측면에서, 적어도 현상적인 측면의 차이가 분명히 있고 그것은 문화사적으로나 인류학적으로, 세 나라를 구분해 판단하는 데 중요한 요소가 된다. 식기, 수저, 기와 문양, 전통 가옥의 지붕, 정원의 꾸밈새, 장례 절차, 사찰의 조성 원리 등은 기나긴 역사적 연대기 동안 세 나라의 적층된 삶의 정서들이 물질의 형태로 굳어진 것이므로, 그 세부 사실이 어떻게 같고 다른지를 검토하는 것은 틀림없이 비교문화학적 의의가 있다.

이를테면 김신연 한양여대 교수는 ‘한중일 차 문화 비교’(2013년)라는 논문으로 동북아 세 나라의 차 문화를 비교문화적으로 분석했는데, 우선 차를 따스한 물로 우려내서 마시는 행위를 가리키는 세 나라의 용어 자체가 다르다.



3국 문화의 같고 다름

“내가 제일 잘났어”  광기의 ‘삼국 阿Q정전’
우리는 주로 ‘다례(茶禮)’라고 하고, 중국은 ‘다예 표연(茶藝 表演)’이라고 하며, 일본은 ‘다도(茶道)’라고 한다. 이에 가치를 부여해 풀이하자면, 한국은 차를 마시는 과정에서 상대와의 관계와 예법을 존숭하고, 중국은 차를 우려내는 공정의 예술적 숙련과 기교에 집중하며, 일본은 그들 특유의 도를 차를 통해 구현한다. 김신연 교수는 특히 이 과정에서 한국은 맛, 중국은 향, 일본은 빛깔을 중시하는데 이를 다시 풀어보면 한국은 그윽한 맛을 추구해 녹차를 가까이하며, 중국은 은은한 향을 추구해 발효차를 선호하고, 일본은 빛깔이 고운 말차를 좋아한다고 설명한다.

이러한 접근법은, 비록 차를 우려내 마시는 단순한 행위를 통해서도 세 나라 고유의 일상 문화와 삶의 지향점을, 마치 곽 모양 휴지통에서 휴지 한 장을 탁 뽑는 듯한, 절묘한 이해를 도와준다. 예컨대 한국의 차 마시는 공간이 대개 온돌방이고 중국은 탁자를 둔 마루방인가 하면 일본은 다다미방에 무릎으로 앉아 저마다의 예법을 다하는데, 이 형태적 차이는 세 나라의 기질을 현상적 측면에서 설명해준다.

다시 풀이하건대, 한국은 찻잎을 가마솥에 넣어 덖으면서 이미 햇살과 바람과 토양에 의해 숙성된 찻잎에 더운 기운을 불어넣는 숙성의 문화를 선호하는데, 이는 각종 음식에서도 발견되고 사람살이의 관계를 강조할 때도 비슷하게 나타난다. 깊게 사귀고 오래 가까이한 사람, 즉 친구의 의미가 자연을 머금은 찻잎을 한 번 더 덖어내는 것과 같다.



 한·중·일의 당대성

그런가 하면 향이 짙어 그것을 한 잔 머금은 사람에게서도 향이 우러나는 중국의 우롱차(烏龍茶)는 역시 대륙의 어떤 기질을 엿보게 하며, 집요하다고 할 정도로 극한의 탐미를 추구하는 일본 사람들이 빛깔이 선명하고 고운 찻잎에 열중하는 것 또한 단순한 차 문화 이상의 삶의 방법을 떠올리게 한다.

이렇게 차 문화를 포함해 의식주의 여러 측면, 즉 방의 원리, 전통 복식의 선, 마을 조성의 원리, 생로병사의 의례 등은 단순한 취미, 관심을 넘어서 비교문화적 의미가 있다.

그럼에도 맨 앞의 질문, 즉 ‘광기로부터 세 나라를 이해하는 것은 가능할까’라는 질문은 여전히 타당하다.

당장 베이징과 도쿄와 서울로 가보자. 고층 빌딩에서 쏟아져 나온 기진맥진한 사람들, 맥도날드와 스타벅스에 홀로 앉아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거나 맥북을 두드리는 사람들, 초점을 잃고 거리를 배회하는 노숙인들, 젊고 화사한 옷차림을 했으나 피로에 지친 굳은 표정으로 좀비처럼 걷는 세 나라의 젊은이들, 그 틈틈이 보이는 연로한 사람들의 불만 가득한 얼굴, 거침없이 질주하는 오토바이와 급히 경적을 울리며 좌회전하는 차량들.

만일 지금 우리 눈앞에 이런 냉정한 풍경 사진이 한 장 있다면 그것만 보고 어찌 베이징과 서울과 도쿄를 구분할 수 있겠는가. 심지어 언뜻 봐서는 인종적으로 명확히 구분되지 않으니 오직 분류 가능한 방법은 거리의 간판에 어느 나라 문자가 씌어 있는지 하는 것뿐이다.

21세기 글로벌 도시들의 이 놀라운 질적 유사성은 오랫동안 누적돼온 각 나라 전통문화의 형태적 차이보다 더 엄연하다. 게다가 실제로 지금 당대의 일상에 깊은 영향을 미친다.

이 점을 주의하지 않은 채 세 나라 (특히 전통) 문화의 외적 형태의 같고 다름에 주목하다 보면 실제로 중요한 요소, 즉 지금 이 순간 경쟁과 긴장과 충돌의 21세기 동아시아에서 형성되는 세 나라 주요 도시들의 실질적 삶이 사라지고, 갑자기 시곗바늘이 과거로 돌면서, 세 나라의 봉건 시기에 형성된 문화 요소들, 그것도 그 외적 형태의 유사성만으로 어느 나라는 자연친화적이고 어느 나라는 인공적이고 어느 나라는 과시적이고 어느 나라는 정교하고 또 어느 나라는 소박하다는 식의, 부분적으로는 맞지만 21세기의 격정적인 삶을 해명하는 데는 그리 중요하지 않은 구태의연의 진부함을 벗어나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다시 묻건대, 광기! 동북아 세 나라의 근현대사를 격동으로 몰고 간 광기로부터 시작하면 안 될까, 그런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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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수 | 문화평론가, 한신대 정조교양대학 교수 pragu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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