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1월호

“마지노선 男 30, 女 28 우리는 호모 인턴스”

또 한 해가 저물고…취업준비생들의 아우성

  • 김다혜 | 객원기자 happyemilee2@daum.net

    입력2016-11-03 17:2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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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男 32세, 女 30세는 이미 옛말”
    • ‘어린 나이’에 ‘직무경력’까지 요구…이중고
    • “정말 죽을 지경…우린 낙오된 인류”
    2016년도 두어 달밖에 남지 않았다. 요즘 몇 장 남지 않은 달력을 보며 가장 불안해하는 사람들은 아마 취업준비생일 것이다. 사상 최악이라는 청년실업은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안 보인다.

    취업준비생들의 고통이 언론을 통해 공론화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러나 목소리가 작다고 문제가 작은 게 아니다. 대놓고 실명으로 취준생임을 밝히기가 뭣하니 안으로 삭이는 것인지 모른다. 많은 전문가는 청년실업이 이 시대의 가장 심각한 이슈라고 진단한다.

    취준생들의 ‘소리 없는 아우성’을 취재하기 위해 먼저 ‘신동아’ 2015년 4월호 ‘인종차별보다 아픈 연령차별’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참고했다. 취업절벽 실태를 처음 본격적으로 공론화한 기사로, “남자 취준생은 32세, 여자 취준생은 30세가 넘으면 고령자로 분류돼 대기업 같은 곳에 사실상 취업이 되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그래서 처음엔 ‘32세 안팎 남자 취준생들의 이야기’로 앵글을 좁혀 기사를 쓰려고 했다. 하지만 취재 과정에서 여러 취준생의 말을 듣고 나서 기사 방향을 수정했다. 취재에 응한 취준생들은 “취업 마지노선 ‘남 32세, 여 30세’는 이제 옛말이 됐다”고 말했다. “취업 가능 연령은 ‘남 30세, 여 28세’로 당겨졌다. 이 나이를 넘기면 사실상 취업이 되지 않는다. 정말 죽을 지경”이라며 답답해했다.   





    “아주 드문 사례라…”

    김모(27·여) 씨는 이른바 ‘SKY대’ 가운데 한 대학의 행정학과를 졸업했다. 전공을 살려 3년 동안 고시를 준비했지만 합격하지 못했다. 그러나 매번 합격 커트라인 바로 아래에 걸렸기에 포기하기가 쉽지 않았다. 지난봄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마음 먹은 시험에 낙방한 후 결국 고시를 포기했다.

    김씨는 취업으로 돌아서면서 막막함을 느꼈다. 그는 “구인기업들을 상대하면서, 주변 친구들과 정보를 나누면서 27세라는 나이가 취업에 불리하게 작용한다는 걸 실감했다. 몇 년을 공무원 시험 준비하느라 보낸 것을 후회한다”고 했다. 현재 그는 고용노동부의 취업성공패키지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하지만 불안함과 답답함은 가시지 않는다. “대기업 취업은 기대도 않는다. 나이가 이렇다 보니 어떤 회사든 신입사원으로 취직할 수 있을지 정말 걱정스럽다”는 것이다.

    취업 포털사이트 잡코리아의 5월 조사에서 기업 인사담당자 714명 중 73.5%는 “신입사원을 뽑을 때 연령 상한선이 있다”고 답했다. 취업 포털사이트 사람인의 8월 조사에선 대기업이 신입사원을 채용할 때 가장 많이 보는 비공개 조건이 ‘나이’(44.8%)로 나타났다.

    국립대 생명과학계열 박사과정에 재학 중인 이모(29) 씨도 “가는 시간을 붙잡고 싶은 심정”이라고 했다. 담당교수가 연구년(옛 안식년)을 떠나게 돼 그의 박사학위 취득은 2년 미뤄지게 됐다. 이씨는 공부를 접고라도 일자리를 알아보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자신의 나이가 취업에 불리하게 작용하는 현실을 이내 깨달았다고 한다. 이씨는 “남자는 서른, 여자는 스물여덟이면 취업 막차다. 노예 같은 대학원생 생활을 계속하는 것도 스트레스, 나이 먹는 것도 스트레스”라고 한숨을 쉬었다.

    이씨에 따르면, 문과계열 구직자는 말할 것도 없고 이공계열 구직자도 나이 차별을 받는다고 한다. “30대에 대기업 공채에 합격한 사람들이 취업 성공사례 강연을 다니는데 ‘아주 드문 사례’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31세 입사자가 최연장자

    서울시내 모 대학 이공계 학과를 졸업한 김모(29) 씨는 지난해 하반기 식품 관련 대기업에 지원했다. 이 회사 체인점에서 반년 정도 아르바이트한 경험을 적극적으로 알렸다고 한다. 김씨는 최종면접까지 올라갔지만 결국 고배를 마셨다. 그는 ‘그래도 희망을 봤다’면서 열심히 스펙을 쌓았다. 특히 어학점수를 크게 높였다.

    그는 올 들어 여러 회사에 지원했지만 결과는 참혹했다. 면접 근처에도 못 가고 서류전형에서 우수수 떨어졌다. 김씨는 “자기소개서는 더 노련해졌고 스펙은 더 화려해졌다. 그래도 이런 결과가 나온 데는 서른을 코앞에 둔 나이가 악재로 작용한 것 같다”고 말했다.

    천신만고 끝에 취업에 성공한 사람들도 취업 가능 연령대가 낮아지고 있다는 데 대체로 동의한다. 박모(32) 씨는 31세이던 지난해 모 제약회사 입사시험에 합격한 뒤 입사 동기들의 나이에 놀랐다고 한다.

    “50명 안팎의 동기 중 내가 가장 연장자였다. 물론 내가 어린 나이에 취업한 것은 아니지만, 취업한 사람들의 연령대가 이렇게 내려가 있을 줄 몰랐다. 더욱이 여자 동기들은 상상한 것 이상으로 어렸다. 가장 나이가 많은 여자 동기가 26세밖에 안 됐다. 대부분은 23~25세였다.”

    서울시내 K대학 출신 황모(27·여) 씨는 2년 전 공개채용시험을 거쳐 모 포털사이트에 입사했다. 황씨는 “입사 때 서른 살이 넘은 동기는 없었다”며 “일반적으로 서른이 넘으면 민간기업 취직을 포기하고 진로를 바꾸는 것 같다”고 전했다.

    서울의 한 헤드헌터 회사 간부인 배모(57) 씨는 “10년 전에 비하면 취업 시장 상황이 급변했다. 일반직군은 남자 30세, 여자 27세가 사실상 취업 상한선”이라고 귀띔했다. 취준생들은 여자 28세를 상한선으로 보는 편이지만, 전문가인 배씨는 그보다 한 살 더 낮게 보는 것이다. 물론 나이에 의한 차별을 공개적으로 밝히는 회사는 없다.

    많은 취준생은 나이 한 살 더 먹는 것에 큰 부담을 느낀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 수년간 취업난이 극심했기에 직장을 못 구한 채 20대 후반~30대 초반이 된 취준생이 널려 있다. 이들은 이제 나이 핸디캡까지 짊어지고 어린 후배들과 경쟁해야 하니 더 불안하고 초조한 것이다. 이들은 “사회로 진출할 문이 얼마 안 가서 완전히 닫혀 결국 빈곤층으로 전락할지 모른다는 공포를 실감하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미친, 누가 정했나, 그런 거”

    닉네임이 ‘소고기**’인 한 여자 취준생은 ‘27살 끝자락이 되니 내 나이가 실감난다’는 제목의 글을 온라인에 남겼다.

    “올해만 해도 친구 두 명이 시집을 가고, 2016년이 몇 달 안 남았다는 걸 알게 되니 내 나이가 와 닿는다. 중반도 아니고 후반인데. 세상 밖으로 나갔더라면 이 좋은 날 방구석에 틀어박혀 우울해할 일도 없을 텐데. 아르바이트 모집한다는 글을 봐도 25살까지 받는다는 글도 있고. 이제는 내 인생을 멈추어두면 안 되겠다. 나 하나 때문에 우리 부모님도 얼마나 인생이 재미없을까. 부모님 인생도 멈춰 있는데….”

    남자 구직자들은 4년제 대학 과정, 군 복무, 인턴 같은 대외 경력을 갖추면 26~28세가 된다. 상·하반기 공개채용에 몇 번 미끄러지면 곧장 나이 장벽에 다가서게 된다. 취업 시장 관계자들은 “30세 이상 남자 취업준비생이 급감하고 있다. 30세를 넘기면 해도 안 된다는 걸 알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취업 컨설턴트 김모(37) 씨는 “직무 연계성이 있는 스타트업 회사 같은 데에서 1년 이상 근무한 경력이 있거나 창업을 해 성과를 낸 경력이 있으면 30세 이상이어도 대개 어렵지 않게 취업한다. 이처럼 특별한 경력을 가진 취준생만이 나이 문제를 극복할 수 있다”고 했다.  

    나이 장벽에 이른 남자 구직자들은 불안, 불만, 좌절, 고통을 토로한다. 29세인 한 남자 취준생(brad****)은 ‘서류결과 초창기나 이 정도일 줄은’이라는 글에서 공황상태의 심리를 드러낸다.

    “29세 남자입니다. 스펙은 서성한, 최상위학과, 학점 3.95, 토익 920, 인턴 1회(경영 컨설팅), 4년 정도 고시 준비하느라 나이 등 걸림돌이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했는데…현재 발표 난 현대, 기아, LG 등 7군데가 전부 탈락이네요.”

    스펙이 ‘서성한’이라는 건 서강대, 성균관대, 한양대 중 한 곳을 졸업했다는 뜻이다.  

    30세인 한 남자 구직자(myde****)의 말도 들어보자.

    “내 나이 서른. 한국에서 취업하기엔 늦은 나이 서른. 미친, 누가 정했나, 그런 거. 지난해 가장 자주 들은 말. ‘올해 안엔 취업해야겠네?’ 스물아홉 살의 나와 서른 살의 나. 뭐가 다른 걸까. 뭐가 그토록 다르기에 20대였던 나보다 30대인 내가 이토록 못난 걸까.”



    기업 서버 마비

    취준생들은 2016년 하반기 공채 경쟁이 그 어느 때보다 치열했다고 말한다. 기업들은 채용 규모를 줄였고 지원자는 더 늘었다. 취업 전문가들도 하반기 공채에 대해 “꽁꽁 얼어붙었다”고 표현한다. 한 기업은 모집인원이 가장 많다는 영업직에서조차 20명만 선발했다. 400명을 뽑는 KT엔 6만 명의 지원자가 몰렸다. 예년엔 2만~3만 명 수준이었다고 한다. CJ의 경우 ‘서류전형’에서만 300~400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고 한다. 한 기업의 인사, 구매, 마케팅, MD 계열 공개채용 인원은 1명이었는데 여기에 수천 명이 지원했다.

    ‘1분 전까지 수정하다 서버가 터져 제출을 못했네요.’ 취업 관련 인터넷 카페엔 이런 글이 자주 올랐다. 원서 제출 마감일에 구직자가 한꺼번에 몰리면서 기업 서버가 감당을 못해 마비된 것이다. 취업 컨설턴트 김씨는 “중국 최고 명문 베이징대를 졸업하고도 우리나라에서 취업을 못하더라. ‘명문대만 졸업하면 어떻게든 취업이 된다’는 말도 이젠 안 통한다”고 했다.

    결국 올해 하반기 취업에 성공한 젊은이는 소수에 그쳤고, 그보다 수천 배 많은 이가 또다시 좌절을 맛봐야 했다. 취업 최종면접에 합격하는 것이 수백 대 1의 서울 강남 아파트 청약에 당첨되는 것보다 더 힘든 현실이다.

    여러 선진국은 직원 채용 때 연령에 의한 차별을 법으로 금지한다. 입사 지원서에 나이를 적는 항목이 아예 없다. 반면 우리나라에서 나이, 학벌, 성별 등을 표기하지 않는 표준이력서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이정미 정의당 의원에 따르면, 채용 이력서를 홈페이지에 공개한 73개 공공기관 중 표준이력서를 사용한 기관은 한국관광공사 한 곳뿐이었다.



    오스트랄로스펙쿠스, 부장인턴

    통계청에 따르면, 30~39세 취업자는 지난해 567만 명에서 올해 565만 명으로 되레 줄었다. 채이배 국민의당 의원은 청년고용촉진특별법에서 ‘만 15세 이상 29세 이하’를 ‘청년’으로 규정한 조항을 34세 이하로 상향하는 개정안을 최근 발의했다.   

    나이 장벽과 함께 취준생에게 다가온 또 다른 부담은 직무연계 경험이다. 기업들은 응시생의 자기소개서를 볼 때 다양한 인턴 경력이나 창업경험 같은 직무 관련 경험을 가장 중시한다고 입을 모은다. 취준생으로선 긴 시간을 투여해 직무연계 경험을 쌓아야 하면서 나이까지 어려야 하니 난감한 처지가 아닐 수 없다.

    취업 시장의 신조어들은 이런 취업 실태를 어느 정도 반영한다. 학벌, 학점, 토익점수 등 ‘3종 스펙 세트’만 갖추면 웬만큼 취업이 되던 이전 세대는 ‘오스트랄로스펙쿠스’로 불렸다. 요즘엔 더 복잡한 스펙 세트(학벌, 학점, 토익점수, 어학연수, 자격증, 봉사활동, 공모전 입상 등)에다 인턴 경력까지 덧붙여야 한다. 그래도 취업이 잘 되지 않는다.

    현 세대는 이렇게 인턴만 하다 끝난다는 의미로 ‘호모 인턴스’로 불린다. 여기저기 회사를 옮겨 다니며 인턴 생활을 이어가는 고참급 취준생은 ‘부장인턴’으로 불린다.

    김모(28) 씨는 “내가 호모 인턴스라는 것을, 낙오된 인류라는 것을 온몸으로 체험했다”고 말한다. 그는 모 기업에 인턴사원으로 채용된 후 신사업 프로젝트에 투입됐다. 본업은 홍보영상 제작이지만 거래처 영업 등 시키는 일은 다 했다고 한다. 그는 드라마 ‘미생’의 장그래나 영화 ‘오피스’의 이미례처럼 회사에서 가끔 투명인간 취급을 받기도 했고, 무시하는 말을 듣기도 했다. “겨울에 전기난로 쬐며 사무실에서 쪽잠 자는 날도 많았다. 그러나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돈을 받았다”고 한다.

    이 기업은 김씨에게 열심히 하면 정규직으로 채용할 것처럼 조건을 걸었다고 한다. 그러나 고용기간이 끝나자 계약서 조항을 거론하면서 수십 명의 인턴 중 한 명도 채용하지 않았다. 김씨는 “뽑지도 않을 거면서 연봉협상을 하는 할리우드 액션은 하지 말아야 한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적정 연령’을 지나 민간기업 취업을 포기한 사람 중 상당수는 나이 제한 없이 시험 성적만으로 채용하는 공무원(경찰 포함) 시험이나 일부 공공기관 시험을 준비한다. 그러나 대기업 입사시험보다 경쟁률이 더 치열해 이들의 앞길은 여전히 험난하다.



    “서른 되는 내년이 두렵다”

    오모(32) 씨는 올해 경찰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다. 오씨는 “명문대 편입 등 스펙을 열심히 쌓았다. 그러나 입사시험에 낙방을 거듭했다. 취업은 내 능력 밖의 일처럼 보였다.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경찰공무원 시험에 죽기 살기로 매달려 운 좋게 붙었다”고 말했다.  

    취업을 포기한 몇몇은 창업을 하기도 한다. 이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목돈을 저축한 적이 없기에 대개 부모로부터 지원을 받는다. 그래서 창업은 ‘금수저 취준생’의 마지막 특권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한 30세 취준생은 “평범한 가정의 취준생이 부모 돈으로 창업했다 실패하면 부모의 노후가 위태로워진다. 어떻게든 자기 힘으로 안정된 직장을 구해 돈을 벌어야 하는데, 그게 안 되니 본인은 물론 가족까지 어려운 처지에 놓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나이 든 취준생은 그 존재만으로도 부모에게 큰 부담을 준다.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해도 아예 생활전선에 뛰어든 것이 아니어서 제대로 돈을 벌기 힘들다. 여기에다 취업 준비까지 하느라 상당한 돈이 든다. 결국 부모에게 어느 정도 경제적으로 의존하는 캥거루족이 되기 쉽다. 한 구직자(맨체스터***)는 “서른이 넘었다. 집에서 이리저리 눈치 보이고 무시당하고…”라고 썼다.  

    마음고생이 적지 않을 것이다. 사람인의 조사에 따르면, 적지 않은 취준생에게 우울증 증세가 있다. 필자가 만난 29세의 한 남자 취준생은 “좌절을 너무 많이 했다. 서른 살이 되는 내년은 더 암울할지 모른다. 늘 가슴이 무언가에 막혀 있는 듯 답답하다. 해가 바뀌는 게 정말 두렵다”고 고개를 떨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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