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1월호

정밀검증

“우주여행·화성정착 중 전원 사망” “정착촌 건설 후 1000년간 지구화”

화성 이주, 사기일까 도전일까

  • 이한음 | 과학 칼럼니스트lmglhu@daum.net

    입력2016-11-03 17:2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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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주공간 무중력, 방사선 심각한 위협
    • 영화적 상상력 자극하는 홍보성 기획
    • 식량 조달부터 남녀관계까지 완벽 대비
    • 현재 기술력으로 정착 난관 해결 가능?
    9월 27일 멕시코 과달라하라에서 열린 국제천문총회에서 스페이스X의 최고경영자(CEO)인 일런 머스크는 야심만만한 계획을 발표했다. 80일 만에 사람을 지구에서 화성까지 실어 날라 인구 100만 명에 달하는 지속 가능한 정착지를 건설하겠다는 것이다. 좀 황당해 보이기도 하지만, 지금까지 그가 해온 유별난 일들 덕분에 그의 말을 선뜻 내치기가 머뭇거려진다.

    테슬라의 전기자동차, 스페이스X의 재활용 로켓이 그의 기발한 성공 사례다. 게다가 고속철도보다 훨씬 빠른, 시속 1000km의 ‘하이퍼루프’라는 교통수단을 구축하겠다는 계획도 실현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그렇다면 화성을 인류의 식민지로 개척하겠다는 계획도 실현 가능하지 않을까.

    그는 구체적인 일정을 내놨다. 2018년 화성까지 가는 가장 빠른 궤도를 찾아내는 일에 나서고, 2022년까지 유인 우주선이 화성과 지구를 오가게 하겠다고 했다. 지금 기술로는 7개월 반쯤 걸리는 기간을 약 80일로, 나아가 한 달로 줄이겠다고 했다. 그는 화성으로 사람을 보내 자급자족이 가능한 도시를 건설하기까지 40~100년이 걸릴 것으로 내다봤다. 일정은 계속 바뀌겠지만, 인류의 화성 진출 가시화 의지는 확실하게 드러냈다.

    그러자 아마존 CEO 제프 베조스가 이끄는 우주선 개발사 블루오리진, 로켓 개발에 힘써온 보잉도 이에 뒤지지 않겠다고 열을 올린다. 이미 우주 개발을 향해 한발 들여놓은 마크 저커버그나 폴 앨런 같은 억만장자도 가만있지 않을 것 같다. 민간기업들이 느려터진 미국 항공우주국(나사, NASA)을 머쓱하게 만들기로 작정한 듯하다. 나사는 기껏 2020년 무인 착륙선을 화성에 보내 토양을 채취해 오겠다는 계획 정도만 내놓고 있다.



    ‘화성인’의 탄생

    화성에 대한 관심을 처음 불러일으킨 인물은 이탈리아 천문학자 조반니 스키아파렐리다. 그는 성능 나쁜 망원경으로 화성을 열심히 관찰한 끝에 1877년 화성 지도를 발표했다. 지도에는 물길처럼 보이는 것들이 쭉 뻗어 있었는데, 그는 이들을 ‘카날리(canali)’라고 했다.

    카날리는 망원경을 너무 열심히 들여다볼 때 으레 일어나는 착시 현상에 불과했다. 그 뒤로 화성을 관측한 이들도 비슷한 물길 같은 것이 나 있다고 했다. 머지않아 카날리는 영어 ‘canal’로 번역됐다. 운하라는 뜻의 이 단어를 접한 이들은 당연히 화성에 운하가 있다는 상상을 하게 됐다.

    이를 적극 받아들여 널리 퍼뜨린 사람이 미국 천문학자 퍼시벌 로웰이다. 1880년대에 외교관으로 한국을 찾기도 한 그는 애리조나 주에 직접 천문대를 지어 화성의 운하를 관측했다. 15년 동안 관측한 끝에 화성의 운하 지도를 그렸다. 직선으로 뻗은 운하망이었다.

    화성에 운하망이 있다면, 그것을 건설한 고도의 지능을 지닌 생명체도 있을 것이다. 로웰은 3권의 책을 써서 화성의 운하와 화성인 개념을 퍼뜨렸다. 소설 ‘타임머신’(1895)으로 유명한 영국의 H. G. 웰스는 화성인 개념을 재빨리 받아들였다. 그는 여기에 자신의 상상력을 보태 화성인이 지구를 침공한다는 장편소설 ‘우주전쟁’(1898)을 썼다. 이 소설은 지금까지 꾸준히 팔리며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를 낳았다.

    에드거 라이스 버로스의 ‘바숨’ 시리즈도 많이 읽혔다. 존 카터라는 미국인이 우연히 화성으로 전송돼 화성 문명의 전쟁에 개입한다는 내용이다. 2012년 ‘존 카터 : 바숨 전쟁의 서막’이라는 영화로 만들어졌다. 이 작품은 천문학자 칼 세이건의 화성 탐사 계획과 제임스 캐머런의 영화 ‘아바타’에 영향을 줬다. 결국 하나의 착시현상에서 시작된 화성에 관한 이미지가 한 세기에 걸쳐 인류의 뇌리에 형성된 셈이다.

    망원경의 성능이 향상되면서 화성에 운하 따위는 없다는 사실이 서서히 밝혀졌다. 상상 속의 화성 문명에 결정적 타격을 입힌 것은 바이킹 탐사선이다. 1975년 나사는 바이킹 1호와 2호를 화성으로 날려 보냈다. 이듬해 두 탐사선은 화성 궤도를 돌며 찍은 사진을 보내왔다. 운하는커녕 물 한 방울 보이지 않았다. 화성은 메마르고 황량하기 그지없는 행성이었다. 탐사선은 착륙선을 화성 표면에 내려보냈다. 토양을 채취해 생명활동이 있는지 알아봤는데 결과는 부정적이었다. 화성인은커녕 미생물조차 살지 않는 곳으로 평가됐다.



    얼음 녹여 바다 만들면…

    그 이후 화성은 인류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붉은 바위와 모래를 보기 위해 엄청난 비용을 들여 화성까지 갈 필요가 있느냐’는 회의론이 대두됐다. 너무 큰 기대가 과학과 대중문화 양쪽에 타격을 입힌 셈이다.

    나사는 회의론에 대응하고자 저렴한 비용으로 화성에 가는 방법을 모색했다. 1997년 바이킹 예산의 15분의 1에 불과한 비용으로 화성에 소저너라는 탐사 로봇을 내려보냈다. 소저너는 바퀴를 굴려 화성 표면을 돌아다니면서 사진을 찍었다. 여전히 돌과 모래뿐이었지만 대중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데에는 성공했다.

    2012년엔 최신 장비를 갖춘 탐사 로봇 큐리오시티가 화성에 착륙했다. 이 탐사 로봇은 예상 기한을 훌쩍 넘겨 지금까지 돌아다니고 있다. 그러면서 수많은 사진을 통해 화성 표면의 세세한 특성을 알려주고 있다.


    온실효과로 화성 녹화(綠化)

    화성에 정착하는 단계에서 발생하는 문제와 대응책은 마스원이 미리 조사해뒀다. 의료 문제, 노화 문제, 남녀 간 역할과 관계 문제, 지구 중력의 38%에 불과한 약한 중력이 뇌와 몸에 미치는 영향, 화성의 먼지가 호흡기에 주는 영향, 저체온증 가능성, 식량과 물 확보 방안, 자원과 에너지 조달 문제, 정치적 문제, 법적 문제, 여가 등 삶의 질 확보 문제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처럼 구체적인 고민을 보면 화성 이주는 홍보성 행사가 아닌 진지한 계획으로 믿겨지기도 한다.   

    예를 들어, 마스원은 토목, 환경, 생명의학, 화학, 전기, 항공우주, 소프트웨어 분야 기술자들이 화성 정착촌의 필수 인력이라고 본다. 가장 중요한 인력은 맥가이버 같은 사람이다. 어떤 문제가 닥쳤을 때 창의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인물이다. 그래도 안 될 상황에 대비해 여유분과 백업 시스템을 갖추라고 조언한다.

    마스원의 계획에 따르면 왠지 화성 이주에 별문제가 없을 것처럼 느껴진다. 아니, 문제가 좀 있어도 해결할 수 있는 양 보인다. 각 분야 전문가로 구성된 개척자들이 정착촌을 건설하기까지 여러 문제점을 예상해 대비할 수 있을 것처럼 믿겨지기도 한다.

    그렇게 정착촌을 건설한다면 그다음 단계는 무엇일까. 지하시설이나 돔 형태의 정착촌을 건설한 다음엔 화성 전체를 인류가 살 수 있는 환경으로 바꾸는 일에 착수할 것이다. 이 과정을 ‘테라포밍’이라고 한다.

    로버트 저브린과 리처드 와그너는 ‘화성 사례 연구’(2011)에서 테라포밍을 상세히 설명한다. 저자들은 서서히 변화가 일어나도록 한다면 화성의 지구화에 1억 년이 걸리겠지만, 그 과정을 단축할 수 있다고 제안한다. 가장 중요한 과제는 토양에 갇힌 기체를 대기로 빼내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기압을 상승시키고 온난화를 일으켜 거주할 만한 온도로 안정시킨다는 것이다.

    기후 온난화를 촉진하는 방법엔 몇 가지가 있다. 먼저 화성 궤도에 거대한 거울을 띄워 햇빛을 화성 표면으로 반사시키는 방법이 있다. 비교적 간단한 공학적 해결책이다. 불화탄소를 이용하는 방법도 있다. 불화탄소는 지구 오존층을 파괴하는 염화불화탄소에서 염소를 제거한 것으로서, 강력한 온실효과를 내는 기체다. 이런 방법으로 기온이 좀 올라가 극지방에 얼어 있던 물이 녹기 시작하면, 미생물도 이용할 수 있다. 미생물을 퍼뜨려 암모니아와 메탄을 발생시킨다는 것이다. 이 두 기체도 강력한 온실효과를 낸다.



    “화성에 핵폭탄 터뜨리자”

    더 과격한 방법으로, 거울로 빛을 북극지방에 집중시켜서 얼음을 녹일 수도 있다. 머스크는 아예 “핵폭탄을 터뜨려 얼음을 녹이자”고 했다. 온난화에 성공한다면, 남은 문제는 산소다. 운 좋게도 화성 토양에는 산소가 풍부한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토양에 갇힌 산소를 뽑아내는 방법만 찾아내면 된다.

    이렇게 보면, 화성 개척에 필요한 문제는 인류의 기술력으로 해결이 가능해 보인다. 머스크는 “머물러 있으면 멸종한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라고 말한다. 인류는 어딘가로 끊임없이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하필 화성일까.

    화성을 후보 지역으로 꼽는 이들은 화성이 지구와 가깝고, 물이 풍부하며(30년 전만 해도 화성에는 물이 없다고 여겨졌지만, 지금은 엄청난 양의 물이 있다고 본다), 태양에서 어느 정도 가까워서 태양계 내에서 지구 다음으로 거주가 가능한 행성이라고 본다. 대기도 얼마쯤 있고, 낮과 밤의 주기도 약 24시간으로 지구와 비슷하다고 한다.

    화성 개척을 미국 서부 개척에 비유하는 이들도 있다. 아마존이나 테슬라의 CEO들은 우주 개척이 필요한 시대임을 인식하고 있다. 홍보 효과와 경제적 가치도 덩달아 커질 것이라고 한다. 화성 개척의 꿈은 미국인만 꾸는 것은 아니다. 마스원이 이를 잘 보여준다. 마스원이 지원자를 공모했을 때 화성 편도행 표를 얻겠다고 140개국에서 신청자가 몰렸다.

    하지만 화성 개척을 마뜩지 않게 보는 사람도 많다. 화성에 쓸 돈과 시간이 있으면 이를 지구 온난화 해결에 쓰는 게 현실적으로 훨씬 낫다는 것이다. 바이킹 탐사 이후로 과학계는 유인 우주 탐사를 회의적으로 본다. 로봇이 훨씬 효율적이고 저렴하다고 한다. 인공지능이 발달할수록 이 경향성은 더 가속화할 수 있다. 미래엔, 화성에 정 가보고 싶으면, 가상현실이나 증강현실 장치를 쓰고 체험하면 된다는 것이다. 실제 화성에 가 있는 것과 같은 느낌을 갖게 된다고 한다.



    인류 멸망에 대한 대비?

    여러 과학자의 시각에서 보면, 인류는 ‘지금 당장’ 화성으로 이주해야할 절박한 이유를 갖고 있지 않다. 지구 안에서 얼마든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인류가 화성에 가야 할 상황은 두 가지 정도다. 소행성과 지구의 충돌로 인류의 멸종이 명백해지는 경우, 핵전쟁이나 인구 폭증 등으로 생존이 불가능할 정도로 지구환경이 파괴되는 경우다.

    이에 대해 화성 이주에 찬성하는 이들은 “화성을 미리 개척해놓고 있어야 그러한 인류 멸망의 상황이 닥칠 때 화성으로 옮겨와 살아남을 수 있다”고 말한다. 이들은 나아가 “인류가 중력도 기압도 환경도 다른 화성에 정착하는 데 성공한다면, 이후 인류의 활동 무대는 지구와 화성뿐만 아니라 은하계와 우주 전체로 확대될 것”이라고 내다본다.

    머스크의 발표 제목도 ‘행성 간 운송 시스템’이다. 화성까지 사람을 보내는 것을 행성 간 운송의 첫 단추로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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