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1월호

심층 리포트

美는 핵 통제권 나눈 적 없다 유일한 기회는 ‘트럼프 당선’?

‘전술핵 재반입’ ‘한미 핵 공유’ 가능한가

  • 스웨덴 스톡홀름=황일도 | 화정평화재단 연구위원, 국제정치학 박사 shamora@donga.com

    입력2016-11-09 13:3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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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핵무장이 안 된다면 미국 전술핵이라도 재반입해야 한다.’ 북한의 5차 핵실험 이후 쏟아지는 이런 주장들의 근거는 유럽에 남은 미군 전술핵탄두 B-61 200여 기다. 나토 5개국이 유사시 미국과 핵무기를 공유한다는, 듣기만 해도 파격적인 이 운용법의 실체는 무엇일까. 유럽 현지 관계자들의 설명과 공식 문헌을 통해 뿌리까지 파헤쳐본 ‘나토식 핵공유’의 모든 것, 그리고 한반도 적용의 가능성.
    B-1B 랜서(Lancer, 槍騎兵). 북한의 5차 핵실험(9월 9일) 대응조치로 9월 13일과 21일 미국령 괌의 앤더슨 공군기지를 이륙해 한반도 상공에서 대북 무력시위를 벌인 미국 폭격기다. 9월 13일 한반도를 스쳐 지나간 이 폭격기를 두고 제기된 ‘에어쇼’라는 비판이 신경 쓰인 것일까. 미국 측은 9월 21일 날아온 2대 중 1대를 괌으로 복귀시키는 대신 오산에 착륙시켜 주한미군 기지에서 열린 행사에 참가하도록 ‘배려’했다. 지상에 전시한 B-1B의 폭탄창을 열고 관람객이 내부를 구경하게 한 파격적인 세리머니였다.

    ‘한국 내에서 쏟아져 나오는 자체 핵무장 주장을 의식해 미국이 선보인 핵우산 과시.’ B-1B의 한반도 전개를 두고 국내 언론이 쏟아낸 주요 기사의 골자는 B-52, B-2와 함께 미국 3대 전략폭격기로 꼽히는 이 기종을 핵실험 직후 날려보냄으로써, 만에 하나 북한이 핵을 사용할 경우 워싱턴도 핵으로 보복에 나서리라는 약속을 물리적 실체로 보여줬다는 것이었다.

    다만 문제가 있었다. 이러한 평가에 결정적 오류가 있었기 때문이다. B-1B는 핵무기를 실어 나를 수 없는 기종이라는 점이다. 1986년 실전 배치된 이 기종이 원래 노후화한 B-52를 대체해 미국의 전략핵무기를 공중에서 투하하는 용도로 쓰인 것은 맞지만, 미국과 소련의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에 따라 2011년 핵무기 장착 모듈을 제거했다. 이에 따라 현재 미국이 운용 중인 95대 안팎의 B-1B 가운데 유사시 ‘핵우산 가동’ 작전에 투입될 수 있는 건 단 한 대도 없다. B-1B는 핵과 무관하다는 이야기다.

    이쯤 되면 드는 의문 하나. 왜 오바마 행정부는 북한의 5차 핵실험에 대한 무력시위용으로 하필 이 기종을 골랐을까. 1950년대에 개발됐지만 여전히 현역으로 활동 중인 B-52나 미국 본토에서 중간 급유 없이 한반도까지 날아올 수 있는 스텔스기 B-2 등 핵무기를 장착할 수 있는 다른 폭격기를 두고 굳이 B-1B를 선택한 게 과연 우연이었을까. 이 짧은 의문이 간단치 않은 것은, 핵을 둘러싸고 한미동맹 내면에 깊숙이 잠복한 이견의 주요 쟁점이 그 안에 모두 담겨 있기 때문이다.

    먼저 미국 측 전문가의 평가를 살펴보자. 9월 13일 한스 크리스텐슨 전미과학자연합(FAS) 핵정보 프로그램 국장은 분석 보고서를 통해 워싱턴의 B-1B 선택이 충분히 의도적인 것이었다고 전한다. 오바마 행정부는 북한의 핵보유가 기정사실화하는 상황에서도 비핵-재래식 전력만을 활용해 대응하기로 마음먹었으며, 핵 장착이 불가능한 B-1B는 이를 공식화하는 수순이라는 평가다. 유사시 미국이 한국에 제공할 이른바 ‘확장억제(extended deterrence)’ 역시 재래식 순항미사일을 중심으로 하는 비핵 전력이 주축을 이룰 것이라는 시그널이라는 의미다.

    공교롭게도, 9월 13일 오산 공군기지 기자회견에서 빈센트 브룩스 주한미군사령관이 한 말에는 유사시 미국의 대응 수단과 관련해 ‘핵’이라는 단어가 한 차례도 등장하지 않는다. ‘확장억제를 확대, 강화한다’는 언급만 반복 사용했을 뿐이다. 한국 국방부가 확장억제라는 말을 사실상 핵우산의 동의어로 설명하는 데 비해 미국 당국자들은 이를 재래식 전력과 미사일 방어, 핵전력을 모두 포함하는 개념으로 사용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확장억제? 한미 동상이몽

    예컨대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의 한반도 배치를 확장억제의 일환으로 설명하는 식이다. 뒤집어 말해 5차 핵실험 이후 워싱턴에서 강조하는 ‘확장억제 강화’가 고스란히 ‘유사시 핵보복 원칙 천명’이라는 뜻은 아니라는 얘기다.

    미국은 최근 유럽에서 진행된 앰플 스트라이크(Ample Strike) 연습에도 재래식 미사일만 장착할 수 있는 폭격기를 참가시켰다. 앞서 본 B-1B와 함께 유독 최근 핵무장 장비를  떼낸 B-52를 골라 이 훈련에 참여토록 한 것. 30대가 현역에서 활동 중인 B-52 역시 2018년까지 핵무기 장착 능력이 모두 제거될 예정으로 현재 순차적으로 작업이 진행 중이다. 이후 B-1B와 B-52는 사거리 370㎞ 안팎의 JASSM 재래식 순항미사일만 탑재하게 된다.

    오바마 행정부는 핵무기의 역할과 비중을 줄여나가는 것을 8년 임기의 마지막 역점 사업으로 삼았다. 핵장착이 가능한 전략폭격기 수를 90대까지로 줄이고, 1550개 남짓한 핵탄두를 1000여 개로 감축하며, 예정돼 있던 3500억 달러 규모의 핵무기 현대화사업 예산 삭감을 시도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핵 없는 세계화’를 모토로 러시아와의 감축협상을 공격적으로 추진한 임기 첫해의 의욕을 막판에 이르러 다시 한 번 불태우는 듯하다. 국내외 반발에 밀려 결국은 백지화한 것으로 전해지지만, 최근까지 핵 선제불사용(No First Use) 선언을 검토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결국 9월 한 달간 이어진 B-1B의 한반도 전개는 이렇듯 핵우산과 관계가 없다. 오히려 ‘북한 정도를 상대하는 데는 핵 대신 재래식 전력만으로도 충분하다’는 미국의 자신감이 묻어날 따름이다. 미군 전략무기 자산의 동북아 전개에 유독 민감한 반응을 보이던 중국이 이번에는 잠잠했던 것도 다른 이유에서가 아니다. 우리와 달리, B-1B는 핵 전개용이 아니라는 사실을 꿰뚫어본 것이다.

    재래식 전력과 핵전력 관계에 대한 미국의 딜레마는 그 연원이 깊다. 구체적으로는 핵전력이 과연 재래식 무기체계와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전력인가, 아니면 핵 역시 다른 무기와 마찬가지 논리와 관점에서 사용할 수 있는 ‘무기들 중 하나일 뿐’인가라는 질문으로 요약할 수 있다.

    시작은 당연히 1945년 8월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피어오른 두 개의 버섯구름이었다. 예상치의 2배를 가뿐히 넘어선 사상자 수에 가장 놀란 것은 다름 아닌 백악관이었고, 해리 트루먼 대통령은 핵을 기존의 다른 무기와는 전혀 다른 ‘정치적 옵션’으로 인식하게 된다. 6·25전쟁 때 전황이 수세에 몰릴 때마다 더글러스 맥아더 사령관을 비롯한 현장 지휘관들이 핵 사용 승인을 거듭 요청했음에도 백악관이 끝내 수용하지 않은 배경이다.


    반복되는 ‘밀당’의 역사

    그러나 ICBM과 SL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기술이 일취월장함에 따라 워싱턴이 핵위협에 놓이게 됐고, 유럽에서는 ‘미국이 과연 워싱턴 핵 피격을 각오하면서까지 우리를 지켜내려 하겠느냐’는 의문이 증폭됐다. 핵우산에 대한 근본적인 의구심, 비유컨대 지금 한국에서 일고 있는 고민과 흡사한 상황이다.

    그 결과 프랑스는 독자 핵무장을 선택했고, 당초 프랑스를 은밀히 돕는 대신 핵 지분을 약속받는 방안을 추진한 서독은 이를 포기하는 대가로 미국 핵무기의 사용권을 실질적으로 공유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 마련을 요구하고 나선다. 앞서 살펴본 현재 수준의 핵공유, 미국의 핵탄두를 미국의 독점적 결정에 따라 서독 공군이 실어 나르는 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다는 논리였다. 유사시 핵 사용 여부를 비롯한 나토의 주요 군사행동 결정을 만장일치가 아닌 다수결로 내려야 한다는 게 대표적 주장이었다. 미국이 반대한다 해도 다수 유럽 국가가 찬성한다면 미군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취지다.

    그러나 이에 동의할 수 없었던 미국은 나토 군사 지휘부를 갈아치우는 초강수를 둬가며 격렬하게 반발한다. 대신 워싱턴이 꺼내놓은 카드가 중거리탄도미사일(MRBM)의 대규모 유럽 배치와 다국적군(Multilateral Force) 창설이라는 아이디어다. 나토 주요 회원국 병력과 미군 병력이 함께 부대를 편성해 폴라리스 핵미사일로 무장한 잠수함과 수상함을 운용하자는 게 그 골자다. 이탈리아 잠수함과 미군 함정을 대상으로 실험이 성공적으로 진행되는 등 아이디어는 그럴듯했지만, 여전히 미국의 독점적 핵 사용권에 대한 의구심을 지우지 못한 유럽 각국이 비용 갹출과 부대 구성 등에 이견을 표출하면서 끝내 백지화하고 만다.

    실제 전시 상황에서의 핵 사용 결정권 공유가 사실상 불가능한 것으로 결론 나자, 유럽 주요 국가들은 핵 사용과 관련한 작전계획(OPLAN) 수립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방향을 바꾼다. 그 결과물이 1966년 구성된 나토 핵계획그룹(Nuclear Planning Group, NPG)이다. 명목상 이 기구는 회원국 모두의 ‘군사 목적 핵 정책’을 관장하고 조율하는 기능을 맡는다.

    이후 공식적으로는 미국의 핵 사용 작전계획, 즉 냉전 시기 미군 전략공군사령부(SAC)가 작성하던 SIOP(단일통합작전계획)과 현재 전략사령부(STRATCOM)가 맡고 있는 유럽 전구(戰區) 관련 작전계획에 대해 모두 이 테이블에서 함께 작성 원칙을 협의해왔다. 물론 ‘공식적으로’ 그렇다는 것일 뿐, 실제로 미국 측이 유럽의 요구를 얼마나 반영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나토 군사 분야 고위직에서 일한 스웨덴의 예비역 전문가는 의미심장한 웃음으로 답을 대신했다.



    핵우산의 물리적 상징일 뿐

    이렇게 놓고 보면, 지금 유럽에 남아 있는 미국의 전술핵은 핵무기에 대한 독점적 결정권을 놓치지 않으려는 미국과, 이를 어떻게든 나눠 가지려던 유럽 각국의 오랜 줄다리기가 만들어낸 기묘한 결과물이다. 앞에서 봤듯 이 과정에서 미국은 자국의 결정권을 근본적으로 흔들 수 있는 어떤 체제나 제도적 장치도 수용하지 않았고, 유럽 나라들의 의구심이 커지면 ‘대안을 논의하자’며 회의체를 열었다가 이내 지지부진해져 좌초되는 패턴이 반복됐다.

    냉전이 종식되고 핵 위협이 사실상 사라진 1990년대 이후엔 관련 논쟁 자체가 아예 사라졌음은 불문가지. 핵공유는 유럽에서도 구시대의 유물로 취급받기 시작했고, 정상회의 등 나토의 주요 논의 테이블이 열릴 때마다 남은 전술핵마저 폐기하거나 미 본토로 보내야 한다는 주장이 반복적으로 제기되곤 한다는 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가장 본질적인 한계는 NPT 문제다. 냉전 시기 미국은 유럽의 전술핵이 평시에는 모두 자국의 전적인 통제 아래 있으므로 NPT 위반이 아니고, 전시에는 NPT 자체가 효력을 잃게 되므로 그 운반작업에 비핵 국가들이 참여한다고 해도 문제 될 게 없다는 주장을 견지해왔다. 이 논리에 따르자면, 핵 사용 권한을 실질적으로 나눠 갖는 체제는 NPT 위반이라는 혐의를 벗어나기 어렵다. 더욱이 해당국 군대가 핵무기를 다루는 연습에 상시 참여하고, 그 운반 등을 위한 개조장비를 개발해 자국 항공기에 장착하는 것만으로도 위반 소지가 있다는 비판이 적지 않았다. 나토 핵공유 정책 폐기를 주장하는 이들이 맨 먼저 내놓는 논리적 근거다.

    그러나 정작 미국에 골치 아픈 문제는 따로 있다. 무엇보다 이들 B-61 탄두를 비롯한 전술핵 탄두 자체가 워낙 구시대적인 무기 체계라는 점이다. 미국은 ICBM과 핵잠수함을 활용해 유럽 밖에서도 얼마든 유럽을 침공한 가상 적국에 핵을 투사할 수 있고, 실제로 미국의 관련 작전계획에서 유럽 내 전술핵을 사용해 핵우산을 가동한다는 개념은 이미 오래전에 폐기됐다는 게 정설이다.

    요컨대 유럽의 B-61 탄두는 군사적으로는 그다지 의미가 없는 체계라는 것. 오로지 유럽 국가들에 심리적 안정감을 줄 ‘핵우산의 물리적 상징물’이라는 의미가 유일한 효용인 셈이다. 이를테면 ‘국제정치적 고려에 의한 제스처’ 정도라는 얘기다.



    전술핵은 미국의 골칫거리

    이렇듯 유럽 내 전술핵이 미국의 핵전력 구성에서 사실상 제외돼 있는 상태다 보니 그 관리 역시 부실하기 짝이 없다. 앞의 5개국 6개 기지에 미군은 항공기 격납고에 WS3(Weapons Storage and Security System)라는 전용 보관시설을 구축해 탄두를 보관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시설이 워낙 오래돼 보안이나 유지 관리에 계속 문제가 발생한다는 게 미국 국방부의 고충이다. 이를 관리하는 MUNSS 부대원이나 그 대비 태세를 감독할 인원들 역시 훈련 부족 등의 이유로 정기 검열에서 낙제점을 받기 일쑤라는 사실이 미군 당국 공식문서를 통해 확인된다.

    더욱이 앞서 살펴본 대로 오바마 행정부는 전체 미군의 전력 구성에서 핵무기가 차지하는 비중을 줄여나간다는 원칙을 적극 밀어붙이고 있다. 사용가치가 크게 낮아진 전술핵은 그 첫 번째 감축대상이다. 이를 실어 나를 항공전력 문제도 간단치 않다. 당초 이 임무를 맡았던 토네이도 전폭기의 퇴역이 예정돼 있어 자국 내에서 아예 전술핵을 철수해달라고 요청한 독일이 대표적이다.

    미국 역시 이 임무에 투입돼 있던 F-16이 F-35로 대체될 예정이어서 이 기종에 B-61 장착 장비를 부착해야 하는 추가 부담을 안고 있다. 새로 장착되는 B-61 12번 모듈의 탑재장비를 미 공군 항공기에 장착하는 사업에만 2019년까지 10억 달러가 투입될 계획. 군사적 가치가 높지 않은 현실에서 적지 않은 예산을 투입할 필요가 있느냐는 의문이 제기된다.

    또 다른 걱정거리는 자칫 이들 전술핵무기의 통제권을 잃을 수 있다는 점이다. 7월 터키에서 쿠데타가 시도된 당시 인지를릭의 미군 공군기지에 공급되던 전력이 끊기고 미군 항공기의 이착륙이 금지된 사건이 대표적이다. 시리아로부터 불과 100㎞ 떨어진 인지를릭 기지는 전술핵 50여 기가 보관된 곳으로, 미국으로선 심각하게 우려할 만했다. 만에 하나 터키에서 내전이 발생할 경우 그 통제권을 장담할 수 있겠느냐는 것.



    북한은 소련이 아니다

    이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친(親)러시아 행보를 강화하고 나서면서 미국 측이 이 기지의 전술핵을 루마니아로 이전하는 계획을 검토 중이라는 외신보도가 나온 바 있다. 예비역 터키군 관계자는 “이란의 핵 의혹이 한창일 때만 해도 미국으로서는 터키가 이를 의식해 자체 핵무장에 나서지 않을까 달랠 필요가 있었지만, 이란과의 핵협상 타결 이후 계산이 달라졌을 것”이라고 풀이했다.

    상황을 여기까지 정리해놓고 나면 최근 오바마 행정부가 한국 측에서 거론되던 전술핵 재반입 논의를 일언지하에 거절한 이유가 무엇인지 명확히 확인할 수 있다. 성 김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는 9월 13일 서울 외교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한미) 양국의 정상, 더 중요하게는 군사전문가들이 ‘핵무기를 한반도에 재도입할 필요는 없다’고 결정했다고 생각한다”고 잘라 말했다. 이미 유럽의 전술핵이 미국의 골칫거리가 된 마당에, 더욱이 핵 감축 협상에 따라 수량을 대폭 줄이기로 한 구식 무기체계의 생명을 한국에서 되살린다는 것은 오바마 행정부로선 고민해볼 필요조차 없는 일이다.

    2016년 현재 한반도 전장 상황까지 감안하면 결론은 한층 명확하다. 냉전 시기 유럽과 한반도에 전술핵이 필요했던 이유는 유사시 상대가 소련이기 때문이었다. 이 무렵 미국의 핵전쟁 교리는 상황을 크게 재래전 - 전술핵 사용 - 전략핵 사용의 3단계로 나눠 상대의 반응에 따라 확전 여부를 결정한다는 이른바 탄력적 대응전략(flexible response strategy)이었다. 소련이 막대한 숫자의 전술핵으로 서유럽이나 한국을 유린하면 그에 맞춰 미국도 동유럽이나 북한을 전술핵으로 공격한다는 게 그 기본 개념이다. 전략핵으로 상대의 수도를 노리는 최악의 상황까지 가지 않도록 전장을 관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관건이었다.

    그런데 지금의 상대는 더 이상 소련이 아니고, 북한에는 전술핵이 없을뿐더러, 이렇듯 전술핵과 전략핵 투입 단계를 나눠가며 핵전쟁을 수행하기에 한반도는 너무 좁은 땅덩어리다. 북한의 핵위협을 이유로 한반도에 전술핵을 들여와봐야 미국의 핵전쟁 수행교리로는 써먹을 방법이 없다는 뜻이다.

    상대를 중국으로까지 넓혀봐도 결론은 마찬가지다. 전략핵을 중심으로 하는 최소억제(minimal deterrence) 전략을 채택한 중국의 특성상 역시나 전술핵을 써먹을 방법이 마땅치 않다. 주한미군 기지에 전술핵을 반입할 경우 베이징이 불 지필 격렬한 반발을 무릅쓸 만한 전략적 이익을 찾을 수 없다는 의미다. 최소한 워싱턴의 시각에서 보자면 그렇다.



    아이젠하워의 기시감

    그렇다면 전술핵 재반입은 완전히 불가능한 카드일까. 유일한 가능성은 11월 미국 대선의 향배에 달렸다.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는 국무부 장관 재직 시절 “미국의 모든 핵전력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하겠다”고 선언한 당사자다. 그가 당선될 경우 자신이 입안에 참여한 오바마 행정부의 핵정책을 고스란히 승계할 개연성이 높고, 상황은 현재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당선된다면 얘기가 달라질 수 있다. 그는 핵을 재래식 무기와 같은 방식으로 접근하는 사고방식을 거듭 내비쳐온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핵전력과 재래식 전력의 관계에 대한 미국의 정책기조는 트루먼과 아이젠하워 행정부에서 크게 엇갈렸다. 오바마는 핵을 완전히 다른 물건, 최소화해야 옳은 선택이라고 믿는 반면, 트럼프는 “그것도 무기인데 왜 사용할 수 없느냐”고 되묻는 현재 상황은 트루먼-아이젠하워 때의 기시감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한국의 방위비 분담과 관련해 여러 차례 불만을 제기해온 트럼프의 이력을 감안할 때 전술핵을 재반입하는 ‘아이젠하워식 접근법’이 그럴 듯하게 들릴 수 있다는 의미다. 한국이 정말 전술핵 재반입을 원한다면 먼저 나서서 주한미군 감축을 카드 삼아 협상에 나설 수도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심리적 위안이 전부?

    물론 여전히 한계는 명확하다. 일단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 후 정말로 해외 주둔 미군을 줄이려 하겠느냐는 질문이 남는다. 동맹국 방위비 분담에 대한 그의 주장이 정치적 논쟁으로 번지면서 미 국방부는 주한미군 규모의 부대가 미 본토에 주둔하려면 엄청난 추가 재정 부담이 불가피하므로 한국에 그대로 두는 게 오히려 ‘남는 장사’라고 강조하고 나선 바 있다. 아예 미군 지상군의 규모 자체를 감축할 게 아니라면 주한미군을 줄이는 건 재정적으로는 마이너스라는 얘기다. 이 ‘자명한 원리’를 트럼프가 깨닫는다면 주한미군 감축을 카드 삼아 전술핵 재반입을 관철한다는 아이디어는 불가능해진다.

    더욱 근본적인 문제는 나토식 핵공유의 본질적 한계다. 이름은 그럴듯해 보여도 미국은 실질적 권한을 나눠준 적이 한 번도 없다. 워싱턴 정책결정자들에게 나토와 한국이 갖는 의미 차이를 감안한다면, NPT를 비롯한 다양한 국제법적 논란을 무릅쓰고 유독 한국과만 전례를 넘어서는 ‘진짜 핵공유 체계’를 만들어줄 것이라는 기대는 현실성이 떨어져 보이는 게 사실이다.

    우연이 겹쳐 ‘트럼프 대통령’이 나토식 핵공유를 수용한다 해도, 남는 건 ‘우리 땅에도 핵이 있다’는 심리적 위안이 전부일 것이다. 핵을 탑재할 수 없는 B-1B를 두고 핵우산이라 믿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하면 너무 인색한 평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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