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2월호

이색 제언

‘콩글리시’를 許하라!

  • 신견식 | 번역가 kyonshik@hanmail.net

    입력2016-12-06 13:4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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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콩글리시(Konglish)’는 천덕꾸러기일까. 지난 한글날 570돌 직전 출간된 ‘콩글리시 찬가’(뿌리와이파리 刊)는 콩글리시의 기원과 현재, 올바른 사용법을 다루며 콩글리시의 명예회복을 주창한다. 이 책의 저자는 15개 언어 해독이 가능해 ‘언어 괴물’로 불리는 신견식 씨. 그의 ‘콩글리시’ 예찬론을 들어보자.
    현대 영어를 비롯해 세계 문명을 주도한 여러 언어와 견주다보니 한국어가 별 볼일 없다고 여기는 이들을 종종 접한다. 그러나 한국어는 모어(母語) 사용자가 7500만 명 남짓해 지구상 수천 개 언어 중 15번째쯤 되고, 출판과 언론에서 활발히 쓰여 규모가 매우 큰 언어다.

    한국어는 우랄알타이어족 또는 알타이어족에 속한다고 하나 아직 가설일 뿐이고, 사실상 어느 어족(語族)에도 끼지 않는다. 이런 고립적 성격이 있고 문자의 역사가 뚜렷한 한글을 쓰다 보니 우리말이 매우 독창적이라며 자부심을 갖는 한국인이 많다. 그래서 지나친 외래어 사용에 거부감을 드러내기도 한다.

    다른 한편으로, 많은 한국인이 영어 앞에서 작아지고 영어를 굴레처럼 여긴다. 이런 현상이 한국만의 특징은 아니다. 어느 언어든 외래 요소와 적당한 긴장관계를 유지하면서 위세를 지닌 외국어를 배우는 사람은 그 언어에 신경 쓰게 마련이다. ‘콩글리시’는 이런 복합적 맥락에서 살펴야 한다. 콩글리시 자체는 한국만의 특성이지만, 언어 접촉의 산물은 세계 어느 곳에서나 비슷하게 찾아볼 수 있다는 뜻이다.

    유라시아 동쪽 끄트머리에 자리한 한국은 지리적 특성 탓에 주요 접촉 언어가 그리 많진 않다. 역사시대 이후 거의 끊임없이 중국어(한문)의 영향을 받았고, 근·현대엔 일본어와 영어의 영향이 두드러진다. 여러 민족이 교차하던 지역의 언어들과는 차이가 있지만, 한국어도 고립돼 있기만 한 건 아니었다.





    혼합 없는 언어는 없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 수메르어, 아카드어, 아람어로 이어지는 영향 관계에서도 드러나듯 언어 접촉의 역사는 길다. 이렇게 기록을 남기지 못한 언어들도 서로 영향을 주고 받았다. 그리스어 어휘의 상당 부분도 선주(先住)민족 언어에서 유래했기에 인도유럽어로 거슬러 올라가지 않는다.

    한국어도 유사 이래 단일 언어로 존재한 게 아니다. 한반도에 살던 수많은 종족의 방언이라든지 계통적 관련이 있는 언어들이 알게 모르게 뒤섞였을 것이다. 우리가 고유어라고 생각하는 많은 어휘 중엔 알고 보면 어원이 중국어인 것도 있고, 다른 인접 언어가 어원인 경우도 많다. 독일 언어학자 후고 슈하르트가 설파했듯 혼합을 겪지 않은 언어는 없다. ‘전혀 섞이지 않은 순수한 언어란 없다’는 것이다.

    언어 접촉은 대개 이런저런 혼합으로 이어지는데, 콜롬비아 동남부 브라질 접경 아마존 부족들은 서로 여러 언어를 구사함에도 특별한 경우 말고는 자기 언어에 타 부족의 언어를 절대로 섞지 않기에 매우 특이하다. 인구가 적은 집단일수록 이런 경향이 두드러진다. 아이슬란드어도 외래어가 없기로 유명하다. 웬만하면 고유어의 요소를 결합해 말을 만들어낸다. 한국어가 참고할 면도 물론 있겠지만, 과연 아마존 부족들이나 아이슬란드를 얼마나 모범으로 삼아야 할까.

    독일어도 낭만주의 시대에 잠시 언어 순화에 공을 들여 성과를 거뒀으나 차용어도 많다. 케말 파샤의 서구적 근대화로 터키어도 아랍어나 페르시아어 요소를 많이 갈아치웠으나 성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언어 순화는 어느 한 시대에 집중적인 노력으로 빛을 볼 수는 있지만, 다른 언어를 영원히 등지지 않는 한 꾸준히 지속되긴 어렵다. 효율성으로만 따져도 외래 요소를 무조건 내치기보다는 받아들여서 녹이는 쪽이 낫다.

    번역을 업(業)으로 삼기 전부터 나는 여러 언어를 공부해왔다. 유창한 외국어 구사를 목표로 하기보다는 여러 언어의 공통점과 차이점이 무엇인지 탐구하길 좋아한다. 그러다보니 언어의 접촉에도 흥미를 갖게 됐고, 한국어가 받아들인 여러 언어가 어떤 변용을 겪는지 살펴보는 것에 큰 재미를 느낀다. 번역도 언어 접촉의 일종이므로 관심사와 직업이 어느 정도 겹친다. 괴테의 말대로 ‘외국어를 모르는 사람은 자기 언어도 모른다.’



    영어의 막강한 위세

    한국어만의 특징도 있지만, 다른 언어도 함께 살피면 인류의 언어가 얼마나 보편성을 띠는지 알 수 있다. 외래어나 콩글리시도 한국어와 영어라는 좁은 틀 안에서만 보면 그냥 ‘잘못 쓰는 영어’라는 시각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한국어 안에도 여러 요소가 있다. 다양한 언어를 거친 낱말도 많다. 가령 ‘오렌지’는 그저 영어 orange의 발음과 다른 게 아니라 타밀어, 산스크리트어, 페르시아어, 아랍어, 스페인어, 프랑스어, 영어, 일본어를 거치면서 수많은 언어의 발자취를 담고 있다.

    한국어 안에서 영어가 누리는 특권은 그 이름에서도 잘 드러난다. ‘영국어’도 ‘미국어’도 아니고, 영어는 딱 두 음절의 그 명칭뿐이다. 미스코리아 출신 가수 김성희의 1982년 곡 ‘세계는 친구’에서 “국어, 영어, 독어, 불어, 일어, 쓰는 말은 달라도 표정만 봐도 알 수 있죠. 생각은 같잖아요…”라는 노랫말은 국내 여러 언어의 위상을 순서대로 보여준다. 국어가 영어보다 먼저 나오긴 하지만, ‘국어’로 주로 불리고 문자체계 ‘한글’로도 자주 잘못 불리는 ‘한국어’보다는 ‘영어’의 위치가 한국어 안에서 더 굳건한 듯하다.

    시대에 따라 영향력을 행사한 언어들은 대개 일정 지역에 국한됐다. 동아시아의 중국어(한문)와 일본어, 남아시아의 산스크리트어와 팔리어, 서아시아와 중동의 페르시아어와 아랍어·터키어, 유럽의 그리스어와 라틴어·프랑스어·독일어, 옛 소련의 러시아어, 중남미의 스페인어가 다 그렇다. 그런데 영어는 20세기 이래 거의 모든 언어에 크든 작든 영향을 미친다. 세계 공통어로서 영어에 맞먹는 언어가 없다. 이런 영어의 위상  때문인지 콩글리시는 천덕꾸러기 신세를 면치 못한다.



    언어는 요동치는 액체

    콩글리시는 크게 두 가지를 가리킨다. 첫째는 한국인이 외국어로 구사해 원어민의 발음과 문법, 어휘 규범에서 벗어난 영어, 둘째는 한국어에 들어온 차용어로서 영어의 본뜻이나 본꼴과 달라진 어휘를 일컫는다. 표준국어대사전엔 ‘한국식으로 잘못 발음하거나 비문법적으로 사용하는 영어를 속되게 이르는 말’로 나오는데, 이는 외래어가 아닌 외국어로서의 영어만 정의한 것이다.

    ‘영어 섞기’는 많은 언어에서 나타난다. 한국에선 패션잡지의 영어 혼합 문체가 지탄과 조롱도 받지만, 사실 전문 분야에서 영어를 그대로 섞어 쓰는 일은 매우 흔하다. 규범적으론 바람직하지 않지만, 언어는 제자리를 지키는 고체라기보다는 요동치는 액체에 가깝다. 따라서 틀에 가둘 수 있는 것은 잠시뿐이다.



    내가 말하는 콩글리시는 영어라는 외국어를 마구잡이로 섞는 것과는 좀 다른 문제다. ‘핸드폰’과 ‘파이팅’처럼 한국어 안에 녹아들어 나름의 자리를 차지하는 주요 요소로서 바라보려는 것이다. 물론 순수한 언어를 좇는 사람들의 눈엔 둘 다 매한가지로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떤 언어와 문화든 만남을 통해 더욱 다채롭게 발전한다는 것을 감안하면 닫힌 마음보다는 열린 마음으로 보는 쪽이 낫겠다. 들어오면 다 재산이다.

    20세기 중반 이후 영어에 주도권을 빼앗긴 프랑스어도 영어의 침투를 막으려 갖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문화의 흐름이 인위적으로 바뀌진 않는다. 프랑스어는 유명인을 일컬을 때 영어 people의 차용어도 쓰는데 시쳇말로 ‘셀럽’과 같다. 영어 people의 어원은 프랑스어 peuple이다. 이렇듯 언어들은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게 마련이다.

    콩글리시는 영어교육이나 외국인과의 영어 커뮤니케이션에 방해가 된다면서 수난을 겪는다. 하지만 몇 해 전 화제가 된 ‘어린쥐(오렌지)’ 타령에 코웃음들을 쳤듯이 외래어와 외국어가 다르다는 사실은 최소한 중등교육을 받았거나 상식을 갖춘 사람이라면 다들 안다. 그런데 교육수준이 높은데도 이 둘을 구별하지  못하는 경우도 왕왕 보인다.



    메테인, 저마늄, 바이타민…

    대한화학회가 주도한 화학용어의 영어식 변경이 그런 사례다. 요오드, 부탄, 메탄, 비닐이 영어에 가까운 아이오딘, 뷰테인, 메테인, 바이닐이 돼버렸다. 한국어의 화학용어는 단순히 영어를 잘못 쓴 콩글리시가 아니라 대개 그리스어나 라틴어를 기반으로 독일어와 일본어를 거쳐 들어왔다. 따라서 철자와 발음의 간극이 큰 영어에 바탕을 두기보다는 기존 방식이 오히려 여러 언어와 더 잘 들어맞는다. 독일어, 프랑스어, 러시아어, 일본어도 ‘메탄’과 가까운 발음이다. 영어 [ˈmɛθeɪn]은 한글 표기대로는 ‘메세인’이니 메테인은 참 어정쩡할 뿐이다.

    나라 이름을 딴 원소명도 번잡스럽다. 독일의 라틴어 명칭 게르마니아(Germania)에서 따온 게르마늄은 저마늄이 됐는데 영어로는 [dʒɚˈmeɪniəm](저메이니엄)이다. 프랑스(France)에서 따온 프랑슘은 놔뒀는데 영어로는 [ˈfɹrænsiəm](프랜시엄)이다. 프랑슘보다 게르마늄이 사람들에게 더 익숙할 텐데 왜 굳이 이것만 바꿨을까. 도대체 왜 비타민을 바이타민으로 쓰면서 미국에 질질 끌려 다녀야 할까. 영국식 발음이[ˈvɪtəmɪn]이라는 것을 굳이 들먹거리지 않아도 ‘비타민’은 이미 한국어 낱말이다. 국제학회에서 영어라는 외국어를 쓰는 것과, 한국어 안에서 외래어를 쓰는 건 다른 차원의 문제인데 국립국어원은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우리는 할로겐, 게르마늄 같은 용어도 일상에서 왕왕 쓰므로 전문용어와 일상용어의 경계가 늘 뚜렷하진 않다. 이미 일상적으로도 쓰는 말을 전문가의 오판과 독단으로 바꿨으니 재고할 여지가 많다. 메테인이나 저마늄을 굳이 좋게만 보자면 영어 발음을 그대로 따라 하지는 않은 절충주의라 할 순 있겠다.



    콩글리시는 외롭지 않다

    어느 언어든 접촉을 통해 차용어가 생기면 소리나 뜻이 원어와 달라지게 마련이다. 영어 blitz(기습, 물량 공세)와 resume(이력서)은 독일어 Blitz(번개)와 프랑스어 résumé(요약)가 어원이고, 일본어 가라오케와 가라테는 영어에선 캐리오키와 커라티에 가까운 발음이다. 물론 대다수 미국인은 원어의 뜻과 발음에 개의치 않는다. 한국의 한자어가 중국이나 일본 것과 다르다고 해서 콤플렉스를 느끼는 사람도 드물다.

    그런데 정규 교육을 받은 한국인 상당수가 어느 정도 영어 지식이 있다 보니 일상적인 외래어조차 드물지 않게 영어를 잣대로 삼게 된다. 화학용어 사례에서도 잘 드러나듯, 다른 서양 언어가 기원인 것을 모르고 영어 발음과 다르다는 것만으로 콩글리시로 오해한다.

    이를테면 아르바이트(부업)는 어원인 독일어 Arbeit(일, 노동)보다 뜻이 축소됐는데, 이를 모르거나 되레 콩글리시로 착각한다. 한 언어 안엔 여러 언어의 영향이 여러 층위로 자리 잡는다. 여러 언어의 교차 때문에 다른 언어에서도 콩글리시와 비슷한 말이 보인다. 추리닝 또는 트레이닝복이라 불리는 운동복은 영어에선 training이 안 들어가고 tracksuit라 하는데 루마니아어 trening, 스웨덴어 träningsoverall처럼 영어 training을 변용시킨 말을 쓰는 언어도 있다. 콩글리시는 외롭지 않다(표 참조)!

    지금까지 외래어나 콩글리시를 다룬 책은 외래어를 순화하자거나 잘못된 영어를 바로잡고 올바른 영어를 쓰자는 식으로 계도하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물론 이 둘의 효용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니다. 훈민정음 창제로만 따지면 거의 600년이 다 돼가지만 그 뒤로도 공적 영역에선 한문을 썼기에 한국어는 실제로 모든 영역에서 글말로 쓰인 지 100년 남짓밖에 안 된다. 따라서 문자 언어에 새겨진 시간의 두께가 여러 주요 언어와 다를 수밖에 없다.

    이제 한국어는 여러 영역에서 온전히 기능하는 언어가 됐다. 수동적 방어에만 급급할 때는 지났고, 외래 요소를 쓸고 청소해서 버리기보다는 한국어를 더욱 다채롭게 꾸밀 장식품으로 볼 때가 왔다. 외국어로서 영어를 습득하고 사용하는 사람도 많다. 영어권 안에서도 비판받는 ‘표준 영어’라는 좁은 잣대를 들이밀 때도 지났다. 외래어나 콩글리시도 한국 근현대사의 문화유산이며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수많은 언어와 뿌리를 함께한다.

    영어를 비롯한 외국어로 번역되는 한국 소설이 점점 늘고 있다. 거기에 쓰인 콩글리시는 영어 낱말로 다시 옮겨진다. 예컨대 ‘마트’는 big-box store 또는 상황에 따라 그냥 market으로 번역된다. 영어 mart도 시장, 상점을 뜻하지만 고유명사 월마트(Walmart)처럼 상호의 일부로 주로 쓰는 반면, 한국어 ‘마트’는 그런 고유명사에서 따와 일반명사인 대형 할인점 또는 대형 소매점을 일컫기에 차이가 생겼다.



    포용력 커야 세계 공통어

    한국어를 배우거나 구사하는 외국인도 이제 콩글리시를 자연스레 섞어 쓴다. 그것도 한국어를 이루는 성분이기 때문이다. 영어 발음 또는 어휘를 쓴다면 아직 한국어를 제대로 못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한국인끼리 말하는 한국어에 들어가는 콩글리시는 아무 문제가 없고, 한국인이 외국인과 영어로 말할 때 콩글리시를 섞으면 의사소통이 안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영어를 잘하고 싶다면 아예 한국어 어휘를 몽땅 영어로 바꿔야 할까? 당연히 아니다.

    당분간 영어의 힘이 쭉 강해질 테니 한국어의 외래어도 영어에 더욱 가까워질지 모른다. 그것도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다만 우리가 지금 쓰는 말들에 괜히 주눅 들거나 애먼 메스를 댈 까닭은 전혀 없다는 점을 짚고 넘어가고 싶다. 영어만 바라보거나, 외래어나 콩글리시를 무조건 없애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영어는 규범이나 순화에 매달리기보다 여러 변용과 수많은 외래 요소를 받아들이는 포용력이 컸기에 세계 공통어가 됐다. 영어만 그런 것이 아니다. 포용력이 큰 언어일수록 다채로운 문화를 뽐내며 다른 언어와 문화에 영향을 줬다.

    다른 한편, 이제 영어는 모어 화자보다 외국어로 쓰는 이가 훨씬 많다 보니 영어학 연구자뿐 아니라 영어권 일반인 사이에서도 영어의 다양성 논의가 점차 활발해지고 있다. 한국인도 영어 강박에서 벗어나 한국인끼리는 자연스럽게 콩글리시 어휘를 쓰면 되고, 외국인을 대할 땐 소극적 자세보다 공격적으로 영어를 쓰되 협력적으로 세계와 소통하면 된다. 혹시 상대가 콩글리시를 못 알아듣는다면 당황하지 말고 가르쳐주라. 굽실대지도 으스대지도 말고 서로 배우며 상대방 말을 더 잘 들어보겠다는 교감이 중요한 시대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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