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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崔&朴 슈퍼게이트

“朴-崔 일가 악연 딸바보(박정희)가 끊었어야”

‘최태민 문제’ 조사한 김재규 변호, 안동일 변호사

  • 정현상 기자 | doppelg@donga.com

“朴-崔 일가 악연 딸바보(박정희)가 끊었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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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박정희 ‘親鞫’이 崔-박근혜 관계 인정한 셈”(김재규)
  • ● “朴, 자식들 싸고돌며 이기심, 집권욕 드러내”(김재규)
  • ● “邪敎의 홀림에 빠졌다고 볼 수밖에…”
  • ● ‘공개된 법정에서 밝힐 수 없는 이야기’
“朴-崔 일가 악연  딸바보(박정희)가 끊었어야”

[김성남 기자]

“영부인 노릇을 하던 이가 사이비 종교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고, 최태민 비리가 중앙정보부 보고서에 다 나오는 데도 박정희 대통령은 외면했습니다. 어머니를 잃은 20대 여성이 사이비 종교에 빠질 수는 있어요. 하지만 대통령이, 아버지가 그런 딸을 그대로 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때 끊었어야 했어요. 그러질 못해 40년 악연이 지금껏 이어진 것이죠. 지금 생각해보면 크나큰 과오였습니다.”

1979년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박정희 대통령을 시해한 10·26사태 재판에서 김재규의 변호를 맡았던 안동일(76) 변호사는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을 접하는 마음이 남다르다. 안 변호사는 10·26 직후 김재규의 변호인으로 선임된 뒤 1980년 5월 20일 대법원 선고 때까지 줄곧 재판 과정을 지켜봤다. 김재규는 안 변호사에게 10·26의 직접 동기는 유신 정권과 긴급조치 체제 종식, 자유민주주의 회복이고, 간접 동기는 대통령의 가족 문제임을 분명히 했다고 한다.



무서운 업보

김재규는 구국여성봉사단과 관련한 최태민 씨와 박근혜 양의 문제, 박지만 군의 비행 문제가 심각했고, 그것을 수차례 보고했으나 묵살당했다고 밝혔다. 그는 항소이유 보충서에 ‘자녀들의 문제를 대하는 박정희 대통령에게서 강한 이기심과 집권욕을 읽었고, 박 대통령이 국민을 우매하게 보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고 썼다.

결국 박근혜 대통령은 최태민과 얽힌 자신의 문제가 하나의 계기가 돼 아버지를 잃었고, 그때의 교훈을 받아들이지 않은 탓에 37년 뒤 최태민의 딸 최순실 씨로 인해 자신의 대통령직 하야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이르게 됐다는 것이다. 안동일 변호사는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며 착잡한 심경을 드러냈다. 안 변호사는 김재규 외에도 KAL기 폭파범 김현희, 구미유학생간첩단 사건에 연루된 ‘야생초편지’ 주인공 황대권 씨 등의 변호를 맡았으며, 노무현 대통령 탄핵 때는 국회 탄핵심판 수행대리인단에 이름을 올린 바 있다.

▼ 요즘 최순실 사태를 보면서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 생각이 많이 났을 것 같습니다.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일반인도 사교(邪敎)에 빠지면 헤어나지 못하고 패가망신하는 경우가 많은데, 박근혜 대통령이 40년에 걸쳐 최씨 일가에게 당한 것을 보면 정말 믿기 어렵고 이해할 수도 없습니다.

10·26 직후 김재규 부장이 제게 ‘박정희 대통령에게 사이비 종교인으로 조사된 최태민과 큰 영애(박근혜)의 관계를 단절시키라고 여러 차례 건의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오히려 대통령이 친국(親鞫)까지 해 두 사람의 관계를 인정해주는 결과가 초래됐다’고 개탄했습니다. 만약 그때 두 사람 관계가 끊어졌다면 지금의 최순실 사태는 없지 않았을까요. 업보란 게 이렇게도 무서운 것인지….”



邪敎에 빠진 게 아니라면…

▼ 박근혜 대통령은 자신은 사교에 빠지지 않았다고 반박했습니다.

“그 말을 믿고 싶고, 그러기를 바라는 마음도 간절합니다. 그러나 사교에 빠지지 않았다면 40년 악연을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큰 영애는 열 살도 안 돼 청와대에 들어가 1979년 27세 때 나왔습니다. 그때껏 박정희 독재정권의 구중궁궐에서 공주처럼 살았지요. 1974년 어머니 육영수 여사를 여의었을 때가 22세, 최태민을 만난 1975년엔 23세에 불과했습니다.

최태민은 1912년생으로 큰 영애보다 40년 연상입니다. 1970년대 초부터 불교, 기독교, 천도교 등을 뒤섞어 만든 영세교 교리인 영혼 합일법을 내세우고 사이비 종교 행각을 벌였습니다. 안수기도로 난치병 환자를 치유한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1975년 2월 말경 큰 영애에게 3차례 서신을 보냈고, 큰 영애가 3월 초에 청와대로 그를 불러 접견했다고 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처음 최씨를 만났을 때는 어머니를 총탄에 잃고 외로운 처지에서 그의 위로와 격려가 큰 힘이 됐을 것으로 짐작합니다. 그러나 이후 두 사람 사이에 어떠한 관계가 형성됐는지는 정확하진 않지만 영애의 영(靈)이 최씨에게 함몰됐다는 설도 있습니다. 이후 최씨는 영애의 후견인 노릇을 했고, 영애는 김재규 부장이 최씨의 비리와 비행을 박정희 대통령에게 보고해도 최씨를 옹호하는 관계가 됐습니다.

최순실 씨는 구국봉사단 대학생 회장을 맡으면서 영애와 밀착했습니다. 영애가 청와대를 떠난 후에도 관계가 유지됐죠. 1980년대 후반 육영재단에서도 최태민과 최순실이 관여하며 물의를 일으킵니다. 박근혜 대선 후보 시절에 이것이 문제가 되자 박 후보는 음해이며 모략이라고 그들을 적극 감쌌습니다.

그 무렵 언론 인터뷰에서 박 후보가 “친구는 누구이고, 얼마나 있으며, 자주 만나느냐”는 물음에 “친구 없습니다”라고 답한 것을 보고 경악했습니다. 중·고교와 대학을 나온 사람이 친구가 없다면 누구를 만나고, 중요한 일을 누구와 상의할까요. 이런 사정을 종합해보면 박 대통령이 그동안 사교(邪敎)의 홀림에 빠져 있었다고 볼 수밖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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