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2월호

현장취재

“내 남자친구 아버지를 그곳에서 만났을 때···”

4만 원짜리 性일탈 공간 키스방

  • 남훈희 | 자유기고가 brentnam11@gmail.com

    입력2016-12-14 14: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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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대생 키스녀 vs 교수 손님
    • 서울에서 제주까지 성황
    • “키스만? 진짜 몰라서 묻는 거야?”

    닫힌 문을 사납게 열어젖히고

     서로가 서로를 흡입하는 두 조각 입술

    생명이 생명을 탐하는 저 밀착의 힘



    문정희 시인이 지은 ‘두 조각 입술’이라는 시의 한 구절이다. 문 시인은 키스를 ‘절뚝이는 일상의 결박을 푼 채로 두 입술이 만나는 숨 가쁜 사랑의 순간’이라고 정의한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도 “키스는 마음을 빼앗는 가장 힘세고 위대한 도둑”이라고 했다.  

    이처럼 서로의 영혼을 담아 이뤄진다는 키스가 몇 만 원에 거래되는 곳이 있다. 세상에 등장한 지 어언 10년이 돼가는 ‘키스방’의 세계를 심층 취재했다.  



    “NF로 하시겠어요?”

    서울시내 여러 키스방은 ‘여성 매니저’가 남성 고객에게 키스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선전하고 있다. 남자들이 무슨 이유로 돈을 써가며 이런 곳에 가는지 궁금했다. 여성의 입술에 특별히 집착하는 변태적 성향의 남자들이 고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키스방은 서울에서 제주까지 전국 각지에 읍면동 단위까지 고르게 분포해 있다. 이는 키스방을 찾는 남자가 의외로 많으며, 그리 변태적이지 않은 평범한 남자들도 이곳을 찾는다는 의미일 수 있다. 30분 키스하는 서비스는 4만 원, 1시간 키스하는 서비스는 7만 원으로 요금은 전국적으로 같은 수준이라고 한다.

    필자는 오후 2시쯤 서울 강북의 한 키스방 업소에 전화했다. ‘실장’이 전화를 받았다. 그는 ‘방’을 빼고 자기 업소를 ‘○○키스’로 소개했다. 예약이 가능한지 묻자 “오후 6시 타임이 비었어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키스방은 고객이 아무 때나 가도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곳은 아닌 듯했다.

    예약시간 10분 전 키스방 입구에 도착했다. ‘회원 필독사항’ 문구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OO키스를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언제나 회원 만족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매니저에게 탈의를 강요하시고, 신체나 도구를 이용해서 성기 터치/성관계를 요구하시면 환불 없이 퇴장되십니다. 서로에게 불편함이 없고 즐거운 시간이 되기 위해 위의 규칙을 잘 지켜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돈으로 안 되는 게 있어?”

    “가슴 터치의 경우 상의 탈의가 원칙이 아닌 점 숙지해 주십시오”라는 중의적인 문구도 있었다.

    벨을 누르자, 머리에 두건을 즐겨 쓰는 모 아이돌 그룹 멤버 스타일의 ‘실장’이 문을 열고 필자를 맞이했다.

    “6시 예약하신 분 맞죠? 양치부터 하시면 됩니다.”  

    실장의 안내로 화장실에 들어갔다. 세면대엔 거친 모들이 빳빳하게 솟구친 일회용 칫솔과 치약, 비누, 로션, 종이컵이 놓여 있었다. 양치를 마치고 나오자 실장은 필자를 방으로 안내하면서 선불이라는 점을 고지했다.   

    지갑에서 돈을 꺼내는 동안 실장은 “우리 업소 매니저 중에 NF는 5000원이 더 저렴한 3만5000원(30분 서비스)이에요. NF로 하시겠어요?”라고 물어왔다. 필자는 ‘축구에서 미드필더를 MF라고 하는데, NF는 도대체 뭐지?’라며 순간적으로 추론했다. 도저히 답을 찾을 수 없어 실장에게 그 의미를 물었다. 실장은 “뉴 페이스(New Face), 신입 매니저”라고 설명했다. 필자는 경력이 있는 매니저가 취재 대상으론 더 적합하다고 판단해 그냥 4만 원을 쥐여줬다.

    키스 서비스가 이뤄지는 방엔 널찍한 2인용 소파가 놓여 있었다. 슬리퍼, 탁자, 1회용 티슈, 물티슈, 재떨이, 휴지통도 눈에 띄었다.



    다음 날 필자는 서울 강남에 있는 한 키스방을 찾았다. 강북과 강남의 키스방 문화에 차이가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전날 경험한 덕분인지, 업소에 전화해 예약한 뒤 방문하는 과정이 매우 수월하게 느껴졌다.  

    이 키스방에서도 먼저 화장실에 들어가 양치를 해야 했다. 이어 4만 원을 지불한 뒤 실장이 안내해 준 방에 들어가 소파에 앉아서 매니저의 입장을 기다렸다. 2분 후 경쾌한 노크 소리와 함께 매니저가 입장했다.

    “안녕하세요, G예요.”

    이번엔 지체 없이 취재 목적임을 밝혔다. G도 사진촬영은 한사코 거부했지만 취재엔 잘 응했다. 역시 대학 재학생(23·서울 소재 모 대학 4학년생)이었다. 필자가 “나도 대학생”이라고 소개하자 그녀는 동질감을 드러내는 듯했다.  

    G의 외모는 웬만한 연예인 못지 않았다. “너 정도 외모라면 룸살롱이나 속칭 ‘텐프로’ 같은 데서 일해도 될 텐데…”라고 말을 꺼냈다. G는 “룸살롱은 일을 하기까지 얽히는 게 많아서 한번 발을 들여놓으면 빠져나오기 힘들다”고 말했다. “수입은 비슷한데 룸살롱은 ‘전업’ 개념이고 키스방은 ‘알바’ 개념”이라는 것이다. 그래도 키스방에서 번 돈으로 저축을 하진 못한다고 했다.

    “매니저 중에 나 같은 대학생은 번 돈의 대부분을 등록금과 생활비로 쓴다. 풀타임으로 키스방 일만 하는 매니저도 있는데, 이들 중 상당수는 명품을 사거나 호빠(호스트바) 드나드는 데 돈을 쓴다. 각자의 본업에 따라 생활양식이 다르다.”

    G는 8개월 동안 키스방에서 일하면서 ‘사람은 겉으로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다’라는 보편적 진리를 실감했다고 한다.



    계속 키스만 하는 곳?

    4개월 전까지 남자친구가 있었다는 그녀. 비록 키스방에서 다른 남자들과 입술을 섞지만  마음속 유일한 남자는 그 남자친구뿐이었다고 한다. 문제는 엉뚱한 곳에서 예상치 못하게 터졌다. 남자친구의 아버지를 이 키스방에서 고객으로 만나게 됐다는 것이다. 영화 같은 이야기지만, 단언컨대 이는 G의 진술을 있는 그대로 옮긴 것이다.

    남자친구의 아버지는 건실한 중소기업 사장으로 평소 근엄하기 그지없었지만 아들과 함께 G가 집에 드나들 때마다 “우리 아가”라고 부르며 아껴줬다고 한다. 그러나 키스방에서 G와 재회하게 되자 그는 성매매를 요구했다고 한다. ‘영화 같은’ 이야기의 결말은?

    “어차피 돈 때문에 하는 일인데 사람 가릴 게 뭐 있나? 결국 했다. 다만 평소에 무게를 잡던 분이 그런 요구를 하는 데 조금 속이 상해 가격을 좀 세게 불렀다. 그날 있었던 일을 서로 함구하기로 약속하고는 남자친구와도 헤어졌다.”

    ‘표지만 보고 책을 판단할 순 없다’는 서양 속담이 있다. G의 이야기들을 듣다 보니 이 속담이 떠올랐다.       

    G는 자신을 찾는 남성 고객들의 주된 직종이 교수, 의사, 사업가 같은 전문직으로 압축된다고 했다. G는 “자주 오는 손님들과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되는데, 그들이 자기 직업을 그렇게 소개하더라”고 했다. 전날 강북 키스방에서 만난 A의 말과 어느 정도 유사했다.



    구강 감염되는 성병

    많은 사람이 키스방을 ‘계속 키스만 하는 곳’쯤으로 여긴다. ‘입술에 대한 페티시(fetish, 집착) 증세가 있지 않은 이상 그런 델 왜 가나?’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취재 결과, 몇몇 키스방에선 전문직종 종사자를 포함한 평범한 남성들의 성적 일탈이 무한대로 허용되고 있었다. 다만 필자가 전국에 산재한 모든 키스방을 샅샅이 취재한 것은 아니므로 얼마나 많은 키스방에서 성매매가 이뤄지는지는 확인할 수 없었다. ‘회원 필독사항’을 엄격히 지키는 곳도 있을 것이다.   

    키스방에 관한 또 다른 이슈는 위생 문제다. 키스방에 종사하는 여성 매니저는 매일 적지 않은 수의 남성과 키스할 것이다. 여성 매니저는 감염 등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을까. 또한 이 여성들과 접촉하는 남성 고객들은 안전할까.

    한 키스방 관계자는 “양치 이외의 예방활동은 특별히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G는 “감염 우려가 없다면 거짓말이다. 내가 선택한 삶의 방식이니 그에 대한 책임도 내가 짊어지는 것”이라고 했다. 이양진 고려대 후생복지부 건강센터 간호사는 “임질이나 매독 같은 성병은 구강을 통해서도 감염될 우려가 있다”고 말한다.

    “삐삐삐~삐삐삐.” 이윽고 타임워치가 울렸다. 전날과 마찬가지로 필자가 구매한 G와의 30분이 종료됐다.

    “잘 가, 오빠.”

    그녀가 손을 흔들며 친절하게 배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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