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2월호

정밀분석

빈부격차 없는 천국에 매매가 72억 아빠트?

‘모순의 바벨탑’ 평양 아파트

  • 송홍근 기자 | carrot@donga.com

    입력2016-12-14 14:2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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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北, 여명거리 다룬 ‘신동아’ 기사에 발끈
    • 실패한 사회주의 + 경박한 자본주의
    • “초고층 마천루는 북한이 앓는 병의 징후”
    • ‘수령의 하사품’에서 ‘돈의 지배’로 변모
    “수령님의 업적과 위대성을 후세에 전하는 직관적이고 항구적인 수단은 기념비 건축물이다. 기념비 건축은 인간과 함께 영원히 존재하며 사회발전과 세대교체에 관계없이 사람들의 사상의식에 능동적으로 작용한다. 결국 건축은 순수 기술공학적 문제에 국한하는 것이 아니라 사상과 이념에 관한 문제에 귀착한다.”

    북한의 2대(代) 독재자 김정일은 자신의 이름으로 내놓은 ‘건축예술론’에 이렇게 썼다. 서구 건축가에게 평양은 ‘건축적 호기심의 땅’이었다. ‘사회주의적 근대’를 나타내는 평양 건축은 민주주의 체제에서는 무섭게 보일 만한 완벽함을 지녔다. 도시 디자인에 대한 과대망상적 환상을 벽돌과 회반죽으로 실현하려 했다.

    평양은 사회주의 건축이 잘 보존된 야외 박물관이다. 표준화한 대량 주거 개발, 넓은 도로, 야심 차게 디자인한 공동체 건물, 기념비적 공공건물이 ‘사회주의적 근대’를 과시한다. 간판이나 화려하게 장식한 상점은 눈에 띄지 않는다. 색상이 눈에 들어오는 것은 곳곳에 나붙은 선전 포스터뿐. 김정일이 저술한 ‘건축예술론’을 빌리지 않더라도 평양처럼 건축이 국가의 사상, 이념과 불가분하게 연결된 곳은 세계 어느 도시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3대 독재자 김정은 집권 후 평양의 스카이라인은 부산 해운대, 뉴욕 맨해튼을 닮은 형태로 치솟는다. 2016년 겨울 갈라파고스적 사회주의 국가의 수도 풍경은 혼란스럽다. ‘사회주의적 근대’와 ‘자본주의적 현대’가 모순(矛盾)의 형태로 공존한다. 평양은 더 이상 사회주의 건축의 야외 박물관이 아니다.

    ‘워싱턴포스트’ 5월 15일자는 ‘북한의 1%, 평해튼에서 운치 있는 삶을 즐기다’ 제하 기사에서 이렇게 썼다.



    “글로벌 의류 브랜드 자라, H&M, 유니클로를 즐겨 입고 1인분에 48달러(5만6000원)에 팔리는 1등급 쇠고기 스테이크를 먹는다. 헬스클럽에서 디즈니 만화영화를 보며 트레드밀(러닝머신) 위를 달리거나 요가를 한다.…”



    ‘평해튼’의 삶

    ‘평해튼(Pyeonghattan)’은 워싱턴포스트가 만들어낸 ‘평양 + 맨해튼’의 조어다. 평해튼에는 ‘사회주의적 근대’가 없다. 하늘로 치솟은 욕망의 바벨탑은 환한 조명을 내뿜으며 어쨌거나 평양이 바뀌고 있음을 웅변한다.    

    ‘신동아’는 2016년 8월호 ‘겹눈으로 본 북한’이라는 지면에 “여명거리가 ‘비명거리’ 된 사연 : 목숨 앗아간 죽음의 속도전” 제하 기사를 실었다. 200자 원고지 19매 분량의 기사다. 북한이 여명거리라고 부르며 평양의 신도심으로 건설하는 대성동 용흥사거리 일대에서 벌어진 일을 다뤘다.  

    북한 당국은 김일성·김정일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태양궁전에서부터 영생탑이 있는 용흥사거리까지 3㎞ 구간에 초고층 살림집(아파트) 단지를 짓고 있다. 70층, 55층, 50층, 40층, 35층 아파트와 상업·공공시설 등 100여 동을 신축·보수한다.

    여명거리는 노동당 창건 70주년(2015년 10월)에 맞춰 건설한 미래과학자거리의 2배 규모다. 3월 18일 여명거리 건설을 공표하면서 김정은은 “미제와 그 추종세력(한국)과의 치열한 대결전”이라며 “올해 중에 반드시 일떠세우자(건설하자)”고 강조했다. “어떤 제재와 압력 속에서도 마음먹은 것은 다 할 수 있다는 것을 똑똑히 보여주는 정치적 계기로 만들자”고도 지시했다.


    北, 신동아 기사에 격분

    초고층 마천루를 짓는 게 어떻게 한·미와의 치열한 대결전이 될까. 왜 초고층 아파트에 상징적 의미를 부여할까.

    평양은 마천루를 주체사상탑이나 김일성 동상 같은 상징물로 여기는 듯하다. 김일성, 김정일 시대 평양 건축은 신화를 만드는 매체였으며 그 신화는 국가의 잠재의식으로 자리 잡았으나, 김정은 시대의 마천루를 ‘만리마를 타고 문명의 상상봉에로 질주하는 조국의 모습’이라고 선전하는 건 우스운 측면이 있다. 수령 절대화의 도구라거나 신화를 만드는 매체 기능을 하기는커녕 지구에 갈라파고스 제도처럼 남은 특이한 체제가 더는 지속되기 어렵다는 방증으로 읽혀서다.

    정부 당국이 확보한 자료 및 분석 등을 입수해 보도한 신동아 8월호 기사는 여명거리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전했다.

    “여명거리 공사는 4월 3일 시작됐다. 착공 석 달 만에 30층, 40층 높이까지 골조를 세웠다. 한밤중에도 등을 밝히고 공사를 계속한다. 건설 현장에는 군·청년돌격대 등 하루 3만여 명이 휴일 없이 24시간 2교대로 동원된다. ‘하루에 한 층을 건축’하라는 비상식적이고 과도한 목표가 하달됐다. 비정상적 속도로 공사가 진행되다 보니 사고가 잇따른다. 정통한 대북 소식통은 ‘북한 내부에서 여명거리가 아니라 ‘비명거리’라는 조소와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북한 당국은 터파기 공사에 앞서 사전 예고도 없이 ‘2일 내 철거지역 전체 주민을 소개(疏開)하라’고 지시했다. 주민들이 짐을 급하게 옮기려고 창밖으로 이삿짐을 던지는 진풍경이 연출됐는데, 행인이 떨어지는 짐에 맞아 사망했다. 상당수 군인과 주민이 중장비의 도움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낡은 건물을 철거하는 과정에서 다치거나 죽었다. 4월에는 금수산태양궁전과 영생탑 중간 지점에서 철거 중이던 건물이 무너져 60여 명이 매몰돼 사망하는 대형 사고가 발생했다.”

    신동아 8월호가 발간된 지 한 달쯤 뒤인 9월 12일, 북한 당국은 이 기사와 관련해 200자 원고지 14장 분량의 반론을 ‘우리민족끼리’ 등 북한 매체에 실었다. 한국 언론의 특정 기사에 대해 평양이 이처럼 장문의 반론을 제기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김정은의 지시로 이뤄지는 여명거리 건설이 북한에서 그만큼 중요한 사업인 듯하다.
     


    “례사로운 일, 응당한 속도”

    ‘주체105(2016)년 9월 12일’이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평양의 반론에 재(再)반론하면서 ‘모순의 바벨탑, 평양의 아파트’를 사회·경제적으로 들여다보는 게 이 글의 목적이다. 북한의 반론을 소개한 부분은 띄어쓰기, 맞춤법 등을 북한 방식 그대로 실으면서 누인 글씨체로 표기한다.  



    얼마전 남조선잡지 신동아가《겹눈으로 본 북》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였다. (…) 마치 제가 려명거리건설장을 직접 다녀보기나 한것처럼, 그와 관련한 평양의 민심을 직접 들어보기나 한것처럼《비상식적인 속도》니,《근로자들의 불만》이니 뭐니 하며 별의별 거짓말을 다 늘어놓았으니 그의 《상상력》은 병적으로 풍부한 모양이다. 그런데 개구리의 상상력이 아무리 풍부해야 우물밖의 세상을 그려볼수는 없다. 우리 공화국의 건설속도를 《비상식적인 속도》라고 하는것은 그야말로 개구리의 눈으로 세상을 재단하는것이나 다름없다. 굳이 말해준다면 기적창조가 몸에 배인 우리 인민에게 있어서 이제는 단 몇달만에 현대적인 새 거리를 일떠세우는것쯤은 례사로운 일이고 응당한 속도이다.《신동아》의 기사를 읽으며 특히 앙천대소하게 되는것은 지금 평양에서《속도전으로 지은 살림집은 위험하다.》는 말이 나돈다는 터무니없는《글짓기》까지 한것이다. 세상사람들에게 오직 진실만을 전해야 할 언론인으로서 부끄럽지 않은가.  



    평양에 있는 사람들과 스마트폰으로 실시간 대화와 사진 전송이 가능한 세상이다. 평양 여론을 파악하는 게 정보 당국은 물론 개인에게도 가능한 시절이 됐다는 것을 이 반론의 필자는 잘 모르는 것 같다.

    2014년 5월 평양 평천구역 23층 아파트가 붕괴해 대규모 사상자가 발생하는 참사가 빚어졌다. 최부일 인민보안상이 주민에게 공개사과까지 했다. 한국 정보 당국은 당시 300여 명의 인명 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파악한다.  

    최부일이 무너진 건물 잔해를 뒤로하고 눈물을 찍어내는 주민들 앞에서 고개를 숙인 사진은 외신을 통해 한국으로도 전해졌다.



    와우아파트 붕괴 떠올라

    2013년 7월에는 평양의 위성도시 격인 평성 구월동의 7층짜리 아파트가 완공 2년도 되지 않아 무너져 내렸으며, 2014년 10월에도 평양 낙랑구역에서 건축 중이던 38층 아파트 일부가 붕괴돼 작업하던 인부들이 목숨을 잃었다.

    세계 건축 시장에서 공기(工期) 단축에 탁월하다는 평가를 듣는 한국 건설사도 아파트 1개 층을 건설하는 데 7~10일이 소요된다. ‘하루에 한 층을 건축’하는 것은 ‘예사로운 일’ ‘응당한 속도’가 되기 어렵다.

    조선중앙TV와 인터뷰한 리용익(군인)은 “74일 만에 초고층 살림집 골조 공사를 끝내게 됐다. 매일 한 층씩, 최고 18시간 만에 한 층씩 올렸다”고 했다. 두 달 남짓에 골조 공사를 끝낸 것도 자랑이 되기 어렵다.

    4월 여명거리 공사 현장에서 건물이 무너져 60여 명이 매몰돼 사망하는 대형 사고가 발생한 것도 이 같은 속도전 탓이다. 북한 대외 홍보용 잡지 ‘금수강산’ 7월호에 실린 ‘여명거리 건설지휘부 일꾼 김진성’ 인터뷰 중 “70층짜리 살림집은 지어본 경험이 없다”는 말도 위험하게 들린다.  

    46년 전 한국에서도 참담한 일이 있었다. 1970년 와우아파트가 붕괴해 33명이 사망하고 39명이 다쳤다. 박정희 정권의 밀어붙이기식 개발사업을 주도하면서 ‘불도저 서울시장’으로 불리던 김현옥이 그 일로 시장 자리에서 쫓겨났다. 부실 공사를 주도해 주민의 목숨을 잃게 한 최부일이 평양에서 지금껏 직(職)을 유지하는 것은 난센스다.  



    오늘 여기 평양의 민심을 그대로 전한다면 아침과 저녁이 다른 비상한 건설속도의 주인공이 되였다는 무한한 긍지이고 무엇이나 마음만 먹으면 못해낼 일이 없다는 든든한 배심이며 려명거리에서 살게 될 사람들에 대한 진심어린 축하와 부러움이다. 날마다, 시간마다 가속되는 이러한 건설속도, 진군속도로 계속 내닫는다면 앞으로 10년, 20년후 평양의 모습, 조선의 모습은 얼마나 몰라보게 천지개벽할것인가 하는것이 지금 우리 인민 모두의 흐뭇한 심정이다. (…)   

    려명거리건설은 단순히 하나의 거리형성이 아니다. 그것은 적대세력들의 그 어떤 제재와 압력속에서도 더욱 억세게 뻗치고 일어나 세계를 향해 과감히 돌진하는 조선의 기상이고 인민의 최고리상실현을 위해 나아가는 조선의 모습이며 우리 식대로 남들이 보란듯이 잘 살수 있다는것을 똑똑히 보여주는 정치적계기이다. 우리 인민은 려명거리를 통해 절세위인의 손길따라 일떠서고있는 사회주의문명강국의 모습, 만리마를 타고 문명의 상상봉에로 질주하는 조국의 모습, 온 세상이 부러워할 래일의 자신들의 모습을 그려보고있는 것이다. (…)



    “원쑤들의 비명소리”

    우리 인민의 앞날에 대한 믿음과 리상은 절대로 헛된것이 아니다. 피눈을 한 모략군들이 아무리 못된 소리를 다 줴쳐도 우리 인민의 신념의 눈은 최후승리의 그날을 내다보고있다.

    어제는 창전거리, 미래과학자거리가 세상을 놀래우고 오늘은 려명거리가 원쑤들의 비명소리를 자아냈다면 래일은 보다 아름답고 보다 황홀한 인민의 새 거리들, 제2, 제3의 려명거리들이 온 나라에 수풀처럼 일떠서게 될 것이다. 그 어떤 모략과 훼방으로써도 우리 인민의 신념은 추호도 흔들지 못할것이며 경제강국, 문명강국의 령마루에로 질풍노도쳐 내닫는 우리 공화국의 전진은 절대로 가로막지 못할것이다.





    북한 당국은 여명거리를 다룬 신동아 기사를 이렇듯 모략과 훼방으로 규정했다. 앞서 언급했듯 평양은 초고층 아파트를 기념비 건축물로 여기는 듯하나, 제2과학자거리를 다녀온 이들이 하나같이 “멀리서 보면 그럴듯한데 가까이 다가가니 조악하기 그지없다”고 입을 모은 것을 보면 “만리마를 타고 문명의 상상봉에로 질주하는 조국의 모습”이라는 표현은 과한 듯싶다.

    ‘마천루의 저주’라는 경제학 용어가 있다. 도이치뱅크의 분석가 앤드루 로런스가 1999년 ‘마천루 지수(sky scraper index)’란 제목으로 발표한 개념이다. 마천루 건설 붐이 일면 경제 파탄이 찾아온다는 게 골자다. 경기 순환이 느려지고 경제가 침체 직전에 있을 때 초고층 빌딩 건설 투자가 최고치를 기록한다는 것이다.

    북한 경제를 연구하는 한국의 경제학자들도 평양이 김정은 집권 이후 급상승한 지하자원 가격에 힘입어 로또 같은 돈을 번 것을 알고 있다. 북·중 무역에서 발생한 킥백(kickback, 리베이트, 뇌물), 중국과 러시아에 파견한 근로자가 획득하는 외화도 쏠쏠했다. 지하자원 수출 황금기 동안 천안함을 폭침시키고 연평도를 포격하는 등 기고만장했다.



    “어디에 돈 쓸지 몰라”

    북한 당국이 확보한 외화를 마식령스키장 같은 전시성 사업에 낭비하면서 살림이 쪼그라들고 2014년부터 지하자원 수출로 벌어들이는 외화 수입도 감소했다. 산업을 키우려면 투자를 합리적으로 해야 한다. 맨해튼 흉내나 내고 있을 때가 아니다. 김병연 서울대 교수(경제학)는 다음과 같이 평가한다.

    “북한의 정책 결정자들이 경제를 성장시키려면 돈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모르는 게 문제다. 김정은은 모던(modern)한 나라가 되려면 건물이 좋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초고층 아파트는 북한 경제의 업적이 아니라 북한이 앓고 있는 병의 징후다. 소득 불평등을 보여주는 상징이기도 하다. 돈이 갈 곳이 없어 건설로 몰렸다. 신흥 자본가가 권력기관과 결탁해 아파트를 짓고 그 기관에 일부를 상납하고 나머지는 분양하는 독특한 형태다.”(신동아 1월호 “경제학의 ‘窓’으로 본 북한” 제하 기사 참조)

    북한에서 아파트 거래는 ‘국가살림집리용허용증’(입사증)이 사고 팔리는 형태로 이뤄진다. 입사증은 소유권이 아닌 사용권이지만 영구적으로 유지가 가능하다. 입사증 거래가 돈 벌이 수단으로 떠올랐으며 완공되지 않은 아파트를 사고파는 선분양 방식까지 등장했다.

    반(半)공식화한 뇌물 시스템에 힘입어 부를 쌓은 초기 자본가들이 부동산 투기에까지 나선 게 오늘날의 평양이다. 직접 비교하기엔 무리가 따르지만 1970년대 한국의 부동산 투기 열풍과도 유사점이 있다.

    ‘집데꼬’라는 평양 말이 있다. 살림집 분양을 맡은 브로커(주택거래중개인)를 가리킨다. 국가 기관이 건물을 짓기 시작하면 ‘집데꼬’가 수요자를 모집한다. 입사증을 산 이들에게 돈을 받아 건설 자금으로 충당한다. 입사증은 아파트가 완공될 때까지 웃돈이 붙어 반복적으로 거래된다.  

    이렇듯 건설비용을 충당하고자 민간에 분양되는 아파트는 40%가량이고 나머지는 기관의 몫이다. 최근에는 개인이 나서 아파트를 지으면서 각 기관의 명의를 빌리기만 하기도 한다. 정은이 경상대 사회과학원 연구교수에 따르면 평양·신의주 등 대도시를 중심으로 입지 조건이 좋은 재개발 부지를 확보하려는 경쟁도 벌어진다.



    “어느 아빠트가 미남자입네까”

    《신동아》의 모략군들은 희한한 자태를 드러내는 려명거리를 두고 《소득불평등의 상징이 될것》이라는 악담도 쏟아냈는데 우리 공화국은 부익부, 빈익빈이 존재하는 남조선이 아니며 평양의 려명거리는 서울의 갑부들이 모여산다는 강남구가 아니다.

    요즘 평양시민들속에서 《류행》되는 인사말이 무엇인지 아는가.《려명거리건설장에 가봤습니까.》《려명거리건설장의 모습이 또 어떻게 달라졌습니까.》《려명거리아빠트들중에서 어느 아빠트가 제일 〈미남자〉같습니까.》 (…)



    직업과 나이, 취미는 서로 달라도 평양시민 모두의 마음은 이렇듯 하나같이 들끓는 려명거리건설장으로 향하고있다. 그래서 려명거리건설장의 곳곳마다에는 낮에는 낮대로, 밤에는 밤대로 각계각층의 지원자들로 차고넘치며 건설지휘부에서는 엄청나게 밀려오는 지원자들때문에《애》를 먹는다.

    이런 현상을 리해할수 있는가. 이런 나라를 본적이 있는가. 어째서 평양시민모두가 려명거리건설을 두고 그처럼 흥분하는지, 어째서 남녀로소 모두가 려명거리건설장에 달려가 구슬같은 땀방울을 흘리고있는지 지옥같은 남조선땅에만 앉아있어가지고는 백년, 천년이 가도 리해하지 못할 것이다.

    평양의 려명거리가 뉴욕의 맨하탄이나 서울의 강남구와 같은 《소득불평등의 상징》이라면 절대로 그런 인사말이 생겨날수도 《류행》될수도 없으며 평양시민 모두가 스스로 려명거리건설장에 달려가 자기를 바치는 광경도 펼쳐질수 없다.

    바로 그래서 평양시민 모두가 자기 집을 꾸리는것처럼 려명거리건설에 관심을 쏟고있는것이며 우리 인민 모두가 자기가 직접 려명거리에 들어가 살 주인들처럼 그리도 기뻐하고있는것이다.



    ‘이런 현상을 리해할수 있는가. 이런 나라를 본 적이 있는가’에 대한 대답은 “그런 현상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런 나라를 본 적도 없다”다.

    “여명거리 건설장의 곳곳마다에는 낮에는 낮대로, 밤에는 밤대로 각계각층의 지원자들로 차고 넘치며 건설 지휘부에서는 엄청나게 밀려오는 지원자들 때문에 ‘애’를 먹는다”는 평양의 반론도 사실과 달라 보인다. 아파트 건설을 담당하는 인력은 인민보안성 내무군 8총국인 것으로 한국 정부는 파악한다. 8총국은 병력 규모가 4만~5만 명으로 도시 인프라 건설을 담당해왔다.



    ‘수령’에서 ‘돈’으로

    경제학자들은 북한에서 ‘주택의 시장화’가 상당히 진척된 것으로 파악한다. 대다수 주민은 ‘여전히’ 가난하지만, 경제 상황은 ‘의미 있는 속도’로 개선된 것으로 본다. 한국 돈 1억~2억 원에 거래되는 아파트가 평양에 등장했으며, 북중 접경도시의 20평대 아파트는 한국 돈 1000만 원가량에 사고 팔린다.  

    김병연 서울대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북한의 지난해 1인당 GDP는 750달러로 한국의 3%에 못 미친다(같은 해 한국의 1인당 GDP는 2만7214달러). 북한 전체 GDP는 광주광역시의 절반 정도다.

    평양 아파트값 2억 원은 북한 1인당 GDP의 230배에 달한다. 한국 1인당 GDP의 230배는 72억 원가량이다. 한국과 북한의 GDP를 이렇듯 거친 방식으로 보정해 살펴보면 빈부격차가 없다는 사회주의 나라에서 한국 돈으로 72억 원짜리 아파트가 사고 팔리는 격이다.

    “절대빈곤 속의 빈부격차와 풍요 속의 격차는 다르다”는 것을, 반론을 쓴 필자는 잘 모르는 것 같다. 지방 도시와 농촌의 현실을 한번 살펴보는 게 어떠냐고 반론을 쓴 필자에게 조언하고 싶다. 물론 한국 사회의 양극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작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거듭 강조하건대 평양의 아파트는 모순적이다. 갈라파고스적 사회주의 나라의 지도자가 훗날 기념비 건축물로 남을 것이라고 착각해 짓는 동시에 자본주의의 경박함이나 천박함도 고스란히 담겼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북한 주민의 정체성이 ‘수령’에서 ‘돈’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해석한다. ‘사금융 확대’ ‘돈주의 성장’ ‘주택의 시장화’ 등이 변화를 일으킨다는 것이다. ‘돈주’는 북한의 신흥 부유층을 가리키는 말이다. 시장이 활성화하고 돈주가 형성되면서 재산 축적이 일어난다. 축적된 재산이 사금융을 일으켜 ‘사기업’과 자영업을 탄생시키고 있다. ‘사기업’은 형식적으로는 국영이지만 실제로는 개인 단위로 경영된다. 국가의 명의를 빌려 비즈니스하면서 이익금 일부를 국가에 바치는 개인과 국가의 동업 형태인 것이다.

    요컨대 북한은 사회주의도, 자본주의도 아닌 ‘짬뽕 경제’로 나라를 지탱한다. 부동산 시장의 아찔한 질주와 반(半)공식화한 뇌물 시스템에 힘입어 부를 쌓은 돈주의 존재는 북한 체제가 처한 아이러니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과거의 평양에서 ‘사는 곳’은 지위의 정도를 나타냈다. 주거지는 권력의 하사품이었다. 2016년 겨울 평양의 아파트는 ‘자본주의적 돈’이 지배한다. 가진 돈이 얼마나 되는지 보여주는 곳이다. 북한 당국이 밀려드는 자본주의의 압력을 버텨내고 언제까지 갈라파고스 체제를 유지할지 궁금하다.






    ※ 참고문헌
    : ‘이제는 평양 건축’(필립 뭬제아) ‘김정은 시대의 북한경제’(임을출) ‘북한 부동산 개발업자 등장에 관한 분석’(정은이) ‘북한의 아파트 건설시장과 도시정치’(홍민) ‘북한 주민의 주택 이용관계와 민법상의 임대차계약’(장병일) ‘북한의 주택정책과 이용권 제도에 대한 고찰’(송현욱) ‘북한 지역의 토지·주택·기업 사유화에 대한 연구’(이해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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