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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라, 오페라처럼

금지된 연인에서 불멸의 사랑으로

트리스탄과 이졸데

  • 황승경 | 국제오페라단 단장, 공연예술학 박사

금지된 연인에서 불멸의 사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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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그는 다시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으며 그나마 정치적인 자유가 보장된 스위스 취리히로 이주했다. 그곳에서 부유한 상인 오토 베젠돈크를 만나 많은 도움을 받게 된다. 하지만 여기서도 베젠돈크의 아내 마틸데에게 흠뻑 빠지게 된다. 바그너는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처럼 깐깐하고 이성적인 인물이었지만, 사랑에서는 한없이 열정적으로 불타올라 좌우를 둘러보지 않았다. 다만 이번에는 자신의 불장난으로 초래된 경제적 곤란을 되새기며, 서로의 안녕을 유지하는 ‘플라토닉 러브’를 이어가길 원했다.

대신 바그너는 끓어오르는 사랑의 에너지를 새 작품에 쏟아부었다. 이미 그는 후에 최고작으로 평가되는 ‘니벨룽의 반지’의 ‘지그프리트’를 작곡하고 있었지만, 모든 것을 멈추고 자신의 사랑을 대변할 ‘트리스탄과 이졸데’에 전념하며 열정을 불태웠다. 바그너는 고달프고 우울한 현재와 기약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 속에서 절박한 삶의 희망을 이 사랑에서 찾았을 수도 있다. 바그너는 트리스탄이 되어 이졸데와의 순수한 사랑에 탐닉했다. 비록 금지된 사랑이지만 그 애절함으로 대중의 마음을 흔드는 탁월한 작품을 창조해낸 것이다.



사랑의 묘약

금지된 연인에서 불멸의 사랑으로

◀바이로이트 축제극장.[황승경] ▶바이로이트의 바그너 흉상.

원작에서 트리스탄은 마르케 왕의 조카로 아일랜드 공주 이졸데를 데려오는 구혼 사절이다. 이졸데는 트리스탄이 자신의 약혼자를 전투에서 죽인 살인자라는 것을 알고는 트리스탄에게 복수를 다짐한다. 이졸데는 이동하는 배 안에서 트리스탄과 함께 독약을 마실 계략을 짠다.

그런데 충직한 시녀 브란게네는 이졸데가 죽지 못하도록 독약 대신 사랑의 묘약을 준다. 이졸데의 어머니가 미래의 사위를 위해 마련해둔, ‘하루를 못 보면 병이 들고, 사흘을 못 보면 죽는다’는 묘약이다.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이렇듯 황당하게 묘약을 마시면서 서로를 향한 주체할 수 없는 사랑의 폭발을 경험한다.



바그너는 이 사랑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오페라에 몇 가지 변화를 준다. 원래 이야기와 달리 묘약을 마시기 전부터 이미 두 사람은 사랑에 빠져 있었다고 바꾼다. 그리고 실타래처럼 얽히고설킨 숙명이나 주인공들의 복잡한 관계를 과감하게 생략하고, 오로지 인간의 내면적 감정만을 노래하게 만든다. 그래서 가사는 매우 시적이고, 운율에 충실하다.



아내에게 들킨 러브레터

이 오페라에서 바그너는 철저하게 유도동기(Leitmotive, 라이트모티브)를 사용한다. 요즘 TV 드라마를 보면 ‘○○의 테마’라고 해서 특정 인물이 등장하면 일정한 멜로디를 반복해서 들려준다. 시청자는 그 멜로디를 들으면 무의식중에 그 주인공을 연상하게 된다. 이러한 음악적 방법은 바그너가 원조 격이다. 바그너가 ‘트리스탄과 이졸데’에서 처음 시도한 것은 아니지만 이 오페라에서 꽃을 피웠다.

공연이 시작되면 연주되는 서곡에서 갈망의 동기, 사랑의 동기, 운명의 동기가 이어진다. 순차적으로 사랑의 동경, 설렘, 희열, 희망, 공포, 고통이 강렬하게 표현되지만 고요하게 종결되며 그들의 안타까운 운명을 미리 암시한다. 트리스탄은 유복자로 태어나 어머니마저 출산 도중 사망했다. 그래서 ‘슬픔(라틴어로 tristis)’ 속에서 태어났다고 트리스탄이라고 명명된다. 죽음에서 잉태되고 죽음에서 태어나는 운명이라 이미 미래의 불행이 암시돼 있다.

1막에서는 사랑의 묘약을 마시고, 2막에선 아슬아슬한 사랑의 줄다리기 속에서도 변함없는 ‘사랑의 밤’을 노래한다. 무려 40분이나 연결되는 사랑의 이중창은 감미롭게 시작하지만 서서히 관능적인 전개로 이어지며 반음계의 격정 속에 휘몰아친다. 두 사람은 온몸이 녹아내릴 것만 같은 사랑의 황홀을 노래하며 절정에 다다른다. 가사의 함축성을 볼 때 이 부분은 오페라를 포함한 클래식 음악 중에서 가장 에로틱하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금지된 사랑에는 끝이 존재하게 마련! 이들은 트리스탄의 숙부이자 이졸데의 남편인 마르케 왕 에게 발각되고 만다. 트리스탄은 치명적인 부상을 당하고 쓰러진다.

3막이 시작되면 음악은 이 상황을 반영하듯 음울하고 구슬프게 시작한다. 외딴 성(城)에서 정신이 혼미한 트리스탄은 오로지 이졸데만 부르짖는다. 이내 도착한 이졸데의 품 안에서 그녀가 부르는 ‘탄식의 노래’를 들으며 숨을 거두고 이졸데도 그를 따라 죽음의 문턱으로 간다.

이때 마르케 왕이 화해를 청하기 위해 도착한다. 여기서 바그너는 피해자인 마르케 왕이 부적절한 관계의 두 사람을 오히려 미약(媚藥)의 희생자로 규정하게 만든다. 왕은 사랑하는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몰아야 하는 운명에 대한 아린 마음을 담아 진솔하게 아리아를 부른다. 잠시 정신을 차린 이졸데는 죽은 트리스탄이 깨어나 제3의 환상 세계로 가는 모습을 보며 사랑의 기쁨 속에서 ‘사랑의 죽음’을 노래하며 영원한 사랑을 찬미한다.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바그너가 마틸데를 향한 간절한 사랑의 환희와 기대를 표현한 오페라다. 하지만 그녀에게 보내는 절절한 편지를 자신의 아내 민나에게 발각당하며 이번의 사랑도 허무하게 끝나버린다.

이후 바그너는 11년 만에 독일에서 해금돼 자유롭게 왕래하고 여러 작품을 무대에 선보일 수 있게 됐지만, 늘 부족한 제작비 탓에 제대로 된 공연을 하지 못했다. 비평도 야박했다. 이렇듯 바람 앞 촛불이던 그의 인생에 더 이상의 경제적 위협을 당하지 않을 서광이 비쳤다. 바이에른의 국왕 루드비히 2세가 그를 전폭적으로 후원하면서 그는 마음껏 자신의 예술적 이상을 펼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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