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2월호

Interview

“개헌, 논의는 끝났다. 선택만 남았다”

10차 개헌 산파 역 이주영 국회 개헌특위위원장

  • 배수강 기자 | bsk@donga.com

    입력2017-01-20 10: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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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0년 만의 특위, 헌법개혁 이뤄내야
    • 4월 재·보궐에서 국민투표…새 헌법으로 대선
    • ‘특정 주자’ 입김 작용…百年大計 생각해야
    • “‘최순실 사태’ 후 이원집정·내각제 선호 높아져”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개헌특위)가 1월 5일 전체회의를 시작으로 기본권, 지방자치, 헌법개정절차 등 본격 개헌 논의에 돌입했다. 국회에 개헌특위가 설치돼 회의가 열린 것은 1987년 이후 30년 만이다.

    공감대는 형성됐다. ‘87년 체제’ 이후 박근혜 대통령을 포함한 역대 대통령들의 말로(末路)를 지켜본 국민들은 ‘보다 나은 대통령’ 대신 ‘보다 나은 통치 체제’가 필요하다는 데 공감한다. 국민기본권 강화와 분권, 협치 같은 개헌 방향은 국회에서도 충분히 합의를 이룬 상태다.

    갈 길은 멀다. 국회는 “여론을 토대로 헌법개정안을 심도 있게 마련하겠다”고 천명했지만, 각 정파의 이념 스펙트럼이 넓고, 대선을 앞두고 차기 ‘주자’들의 입김도 배제할 수 없어 납득할 만한 개헌안이 나오기까지 산고(産苦)가 예상된다. 벌써부터 개헌을 고리로 특정 정치세력이 연대를 추진한다는 시나리오가 나돌고, 반대로 특정 유력 대선주자를 고립시키려는 정략적 의도라는 반발이 나오면서 개헌 논의가 정쟁으로 흐를 가능성도 엿보인다.  

    ‘개헌 산파역(産婆役)’을 맡은 이주영 국회 개헌특위위원장은 1월 9일 ‘신동아’와의 인터뷰에서 “정파적 이해관계에서 벗어나 국가 100년 대계(大計)를 세운다는 마음으로 임해야 한다”며 “‘대선 전 개헌’에 대한 국민적 요구가 높은 만큼, 4월 재·보궐 선거일에 개헌안을 완성해 국민투표에 부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비선·형님·아들 국정농단

    ▼ 30년 만에 국회 개헌특위가 구성됐다.  

    “그렇다. 1월 5일 첫 전체회의를 열고 논의를 시작했다. 국회에 개헌특위가 구성됐다는 건 개헌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의미다. 개헌 필요성을 인정한 각 정당의 개헌 의지가 결집된 거다. 1987년 9차 개헌은 민주화에 기여한 것은 사실이지만 대통령 중심제로 인한 권력 집중, 예를 들어 인사, 예산권은 물론 검경(檢警) 수사권, 정보권,  감사권 등 모든 권력이 집중되다 보니 비선실세나 대통령의 형님·아들의 국정농단 문제가 불거졌다. 아무리 자신(대통령)이 잘하려고 해도 이런 문제가 생기니 이번에는 대통령 권력을 분산시켜야겠다는 컨센서스가 형성됐다.”

    ▼ 특위는 어떻게 운영되나.

    “36명의 위원(더불어민주당 14명, 새누리당 12명, 국민의당 5명, 바른정당 4명, 정의당 1명)이 개헌 이슈와 쟁점이 뭔지 리뷰(검토)하는 전체회의를 연 뒤 분과위원회를 구성해 분과별로 논의를 시작한다. 헌법학자나 정치학자, 사회학자 등 전문가로 구성된 자문위원단의 도움도 받고, 공청회를 열어 개헌 논의를 진행한다.”



    “항상 ‘改憲 스탠바이’”

    ▼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이후 개헌에 대한 공감대가 커졌다고 보나.

    “개헌 동력은 정치권에 있지만 개헌의 큰 힘은 국민으로부터 나와야 한다. 이번 사태를 겪으면서 ‘제도개혁이라는 열매를 맺어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게 하라’는 국민적 요구가 커졌다. 그런 국민적 요구를 수렴하는 게 개헌특위다. 반드시 헌법개혁을 이뤄내겠다.”

    ▼ 국회의 탄핵소추로 대선 시계가 빨라질 수 있는데.

    “그렇다. ‘다음 대선은 새로운 체제에서 치러야 한다’는 국민적 욕구에 발 빠르게 대응하려면 특위는 항상 ‘스탠바이’하고 있어야 한다. 이미 국회는 두 차례 개헌자문위를 구성해 많은 연구를 진행했고, 최적의 안을 도출해놓았다. 쟁점을 연구하는 단계는 생략해도 될 정도다. 각 정당이 개헌안을 선택해 결정을 내리고 합의안을 도출하면 된다. 개헌안을 마련하는 토양은 갖춰졌다. 결정, 선택의 문제다.”

    ▼ 기본권 등 많은 부분은 공감대가 형성됐지만 권력구조는 각 정파의 이해관계에 따라 진통이 클 거 같은데.

    “물론 생명권이나 생태환경권 같은, 인류 보편적 기본권에 대해선 이견이 없다. 말씀대로 문제는 권력 분산인데, 권력 분산은 대체로 동의하는데 대통령과 내각 중 어디에 책임 비중을 더 두느냐를 놓고 스펙트럼이 나눠질 수 있다. 지방정부에 권력이양 문제도 마찬가지다. 입법·재정권 등을 지방정부에 넘겨주는 데에는 공감하지만, 지방정부에 권력이 집중되면 견제하는 방안도 생각해야 한다.”

    ▼ 권력구조와 관련해 각 당의 당론은 검토하지 않았나.

    “어느 정당은 대통령제, 어느 정당은 내각제, 이원집정부제 얘기를 하지만 당론 차원은 정해지지 않은 것 같다. 앞으로 각 당이 어느 방향으로 가겠다고 정할 거고, 개헌특위 분과소위원회는 그런 당론을 가지고 합의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개헌자문단의 참여를 통해 여론을 반영하고, 개별 협상하면 합의를 찾아갈 수 있다.”

    ▼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는 ‘4년 대통령 중임제’를 주장한다. 4개 정당의 이념적 스펙트럼이 넓고, 특위위원들도 대선주자의 입김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을 텐데.

    “정치하는 분들의 이합집산이라고 할까, 자신의 지지자 중심으로 모이는 경향이 있고, 지지하는 대선주자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에 따라 영향을 받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특위가 권력구조를 정할 때는 대선주자들의 개인 취향을 넘어, 정당 견해나 개인적 선호를 넘어, 국민 전체가 바라보는 바람직한 방향을 도출해야 한다. ‘국민 눈높이’에 맞춰 다수가 지향하는 정부 형태로 가야 한다. 국가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를 생각하면서….”

    최근 언론사의 여론조사를 보면 대체로 개헌에 대해 ‘찬성’ 의견이 높다. 연합뉴스·KBS 여론조사 결과 ‘개헌 찬성’ 65.4%, ‘반대’ 28.2%였다. 개헌 시기는 ‘대선 이전’(51.8%)이 ‘차기 대통령 임기 중’(45.3%) 응답보다 높았다. ‘개헌 찬성’ 응답자(1323명)들이 선호하는 권력구조는 △대통령 4년 중임제(45.9%) △이원집정부제(29.2%) △총리 의원내각제(16.1%) 순이었다(코리아리서치 12월 28~29일 전국 성인남녀 2022명 대상. 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 2.2%포인트). 반면 동아일보·리서치앤리서치 조사에서는 ‘대선주자들이 공약으로 내건 뒤 차기 정부 추진’이 47.5%, ‘대선 전 추진’이 39.6%였다(자세한 조사 개요와 결과는 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 홈페이지(www.nesdc.go.kr) 참조).


    바뀌는 여론

    ▼ 국민은 ‘4년 대통령 중임제’를 선호하는 거 같다.    

    “의원내각제는 5·16군사정변으로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국민에게는 대통령제가 익숙하다 보니 선호도가 높은 거 같은데, 최근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를 겪으면서 조금씩 바뀌는  모습도 나타난다.”

    ▼ 어떻게 바뀌나.

    “예전 조사와 비교하면 대통령제 선호는 줄고, 이원집정부제와 내각제를 합한 권력구조를 선호하는 비율은 높아지는 변화가 감지된다. 대통령 중심제 원형 국가는 미국인데, 미국은 연방정부라는 특수한 형태의 국가다. 권력과 주권 대부분이 주정부에 있다. 대통령제를 실시하는 다른 나라들은 대통령에게 집중된 권력을 컨트롤하지 못해 실패하는 경향이 있다. 미국만큼 성공적으로 대통령제를 수행하는 나라는 많지 않다.”



    “특정인과 가깝다고…”

    ▼ 이 위원장도 ‘4년 중임제’를 선호했는데, 생각이 바뀐 건가(이 위원장은 2016년 8월호 ‘신동아’ 인터뷰에서 ‘대통령제를 유지하되 임기를 국회의원 임기와 맞춰 4년 중임제를 해야 한다. 이원집정부제는 우리 현실에 맞지 않다’고 했다).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이 ‘국회의원 임기에 맞춰 4년 중임제를 하자’는 이른바 ‘원포인트 개헌’을 제안했을 때 현실적 대안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최순실 사태를 겪으면서 권력이 집중된 걸 분산시키는 게 개헌의 중심이 돼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 이원집정부제 말인가.

    “이원집정부제는 대통령이 외치(外治)를, 총리 등 내각이 내치(內治)를 맡는 걸 떠올리는데, 이 경우 외치 내치 구분이 모호해 서로 충돌하는 비효율도 예상할 수 있다. 그런 걸 구분하지 않고, 모든 권력은 내각에 두되 대통령은 상징적인 국가대표로서의 권력을 갖거나, 국가비상사태 때 권력을 행사하는 등 다양한 형태를 검토하고 있다.”

    ▼ 이 위원장은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과 가까운 것으로 안다. 혹시 이원집정부제 선호에 영향을 미쳤나.

    “이미 말한 대로, 특정 대선주자의 선호를 넘어 국가 백년대계를 보면서 국민 눈높이에서 합의해나가는 것이지, 특정인과 가깝다고 그에게 유리하게 합의할 수도 없다. 나머지 대선주자들과 개인적으로 모두 가깝다.”

    ▼ 특위에서 권력구조 합의가 안 되면?

    “4년 중임제를 주장하는 문 전 대표도 권력분산 얘기를 많이 했으니 어떻게 권력분산을 할지 대화하면서 합의를 이뤄나가겠다.”

    ▼ 개헌 시기도 관심사다. 개헌을 매개로 한 정계개편 시나리오도 나오는데.   

    “사실 (개헌 시기는) 단정 지어 얘기할 순 없다. 합의를 이루는 게 쉽지는 않겠지만 대선 전 개헌이 가능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대선 전에 개헌을 완료하라는 요구가 높은 만큼, 대의기관으로서 국민 요구에 맞춰 준비하는 거다. 일단 해보는 거다.  합의가 잘되면 거기에 따라 대선을 하고, 또 안 되면….”  

    이 대목에서 그는 조선 중기 문인 양사언의 시조 한 수를 읊은 뒤 웃었다.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리 없건만은/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

    ▼ 대선주자들이 ‘개헌 공약’을 하고 대선 이후 추진할 수도 있지 않나.

    “그동안 개헌 요구는 많았고, (당선 후) 개헌하겠다는 분도 많다. 공약했지만 개헌이 안 된 것은 권력이 주어지면 개헌보다 다른 일을 먼저 하고 싶기 때문이다. 국가 경제를 챙겨야 한다든지, 개헌 추진하면서 합의를 못해 왈가왈부하면 이른바 ‘블랙홀론’(개헌 논의가 시작되면 모든 국가적 어젠다가 개헌 논란으로 빨려 들어간다는 뜻)이 생긴다(웃음). 그런 일이 반복되지 말라는 보장이 있나. 개헌 분위기가 고조된 이 시점에 개헌하지 않으면 개헌은 공염불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대통령이 주도해 개헌을 하면 진정성과 순수성이 의심받고, 개헌 동력은 꺼진다. 특정 대선주자가 나서서 개헌하자고 해도 자신에게 유리한 룰을 만든다고 의심받는다.”  

    ▼ 로드맵은 없나.

    “합의만 이뤄진다면 4월 12일 재·보궐 선거 때 개헌을 국민투표에 부치는 게 좋을 거 같다. 2월에 합의가 이뤄지면 공고 기간을 감안해도 충분히 가능하다.”



    블랙홀론, 공염불론

    개헌은 대통령 또는 국회 재적의원 과반 찬성으로 발의, 20일 이상 공고일을 거쳐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 찬성으로 의결한다. 이후 30일 이내에 국민투표에 부쳐 유권자 과반 투표·찬성하면 공포한다.

    ▼ 의원내각제로 합의가 되면 대선은 치르지 않는데.

    “그렇다면 간접선거로 국가원수를 뽑고, 직접 대선은 없는 거지. 대통령 중심제 유지하면 대선을 치러야 하고.”

    ▼ 결선투표제는 헌법에 명시해야 하나.

    “논의를 해봐야 한다. 현행 헌법 조문으로 가능하다는 분도 있고, 안 된다는 분도 있다. 결선투표제는 민심을 왜곡하는 경우도 있어 바람직한 방향인지도 더 논의해야 한다. 만약 도입한다면 헌법에 명확하게 하는 게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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