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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 이식 개척자’ 이종수의 독일 편지

영혼은 언제 육체를 떠나나

선조의 묘와 수술실

  • 이종수 | 독일 본대 의대 종신직 교수

영혼은 언제 육체를 떠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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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일로 유학해 58년간 의술을 편 이종수 박사의 수필을 2월호부터 연재합니다. 이 박사는 독일에 살면서 느낀 동·서양 문화의 차이와 다양한 이면을 구수한 입담으로 들려줄 계획입니다. 유럽 대륙에서 최초로 간 이식에 성공한 선구적 인물인 이 박사는 아흔을 앞둔 나이에도 여전히 연구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국내에선 ‘새로 쓰는 간 다스리는 법’ 등 베스트셀러를 펴내기도 했습니다.
영혼은 언제 육체를 떠나나
내가 독일에서 살아온 날이 58년. 몸은 독일 땅에 있지만, 영혼은 아직도 얼마간은 한국인이다. 특히 한국의 명절이나 기념일이 되면 옛일이 주마등처럼 떠오른다. 이번 설날에도 고향인 전남 영암 땅을 밟지는 못하겠지만, 친지들이 모여 가족의 정을 나누는 정경이 눈에 밟힌다.

가족의 정뿐 아니다. 서양에서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한국의 전통이나 습속에 대해서도 여전히 나는 그 끈을 끊지 못하고 살고 있다. 그 하나가 영혼과 죽음에 대한 생각이다. 죽은 조상을 땅에 묻고 섬기는 풍수지리 풍습에 대한 것도 마찬가지다. 언젠가 시사뉴스가 자주 방송되는 DLF방송에서 한국의 묏자리 문제와 풍수지리설을 다룬 적이 있다.

“한국에는 산세, 지세, 수세 등을 판단해 인간의 길흉화복과 연결시키는 풍수설이 있습니다. 한국인은 이것을 수백 년간 믿어와 지금도 일상생활에서 영향을 많이 받고 있습니다. 특히 조상의 묏자리가 명당이면 자손이 복을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집안에 우환이 있거나 사업에 실패하면 조상의 묘, 주로 자기 부모의 묘가 풍수지리설로 판단해 좋지 않은 자리에 있기 때문으로 여기고 묏자리를 옮긴다고 합니다. 우리 유럽인이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선거에 출마하는 사람마저 당선되기 위해 선거 전에 지관의 조언을 듣고 부모의 묘를 이장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시체에 대한 동서양의 다른 시선

“한번 묏자리를 봐주는 데 경비를 얼마나 받습니까?”라는 독일 기자의 질문에 한 지관은 “우리는 일정한 비용을 받지 않고 묏자리를 구하려는 사람의 경제 능력에 따라 사례를 받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독일 기자는 한국을 차로 여행해보면 길가의 언덕 위에 또는 산허리 중턱에 멜론 반쪽을 엎어놓은 모양으로 흙을 쌓아놓은 것이 보이는데 이것이 한국의 묘이며, 부잣집 조상의 묘는 그 주변에 나무도 심고 비석도 만들어놨다고 했다. 한국인이 이렇게 조상의 묘를 정성 들여 관리하면 앞으로 몇 년 후에는 낮은 산이 전부 묘로 덮일 수도 있다고 그 기자는 말했다. 그리고 한국인은 묘 앞에 음식을 차려놓고 술잔을 올려 살아 있는 사람을 접대하는 것처럼 절을 하고 혼잣말로 조상에게 속삭인다고 덧붙였다.

나는 이 방송을 들으면서 죽은 사람의 영혼과 시신(屍身)에 대한 동서양의 서로 다른 견해가 내 머릿속에 혼재돼 있음을 새삼 느꼈다.

먼저 한국식 견해다. 이것은 어릴 때 받은 유교적 가정교육에 의해 세뇌된 것이다. 조상의 시신을 묻은 묘를 명당에 잘 쓰고 가꿔야 후손이 번성해가고 집안에 경사가 많다는 생각이 평생 내 머릿속 한구석에 숨어 있다가 한국에만 가면 재차 소생한다. 독일에서 반세기 이상 살았어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기독교 교리에 입각한 유럽식 견해다. 사람은 죽는 순간 영혼과 육체가 분리된다고 보는 것이다. 이 견해는 특히 유럽에서 장기 이식을 해온 의사로서의 직업의식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나는 한국에 나가면 2~3년에 한 번 정도 고향에 있는 산소에 성묘를 간다. 그곳에는 조상의 묘가 모여 있는 선산이 있다. 원래 내가 자란 마을에는 일가친척 대부분이 살며 농업에 종사했는데 이제는 그 마을에 친척이 두 집만 남아 있다. 비행기로 광주에 도착하면 나는 공항에 마중 나온 조카와 함께 가게에 가서 성묘할 때 차릴 음식을 산다.

“얘야, 여러 가지 좀 더 많이 사거라. 모처럼 고향에 왔으니 선영 상에 많이 놔드려야 하지 않겠니?”

마치 살아 있는 분들을 만나러 가는 것처럼 겸허한 생각을 하게 된다. 나는 특히 아버지 묘 앞에선 항시 어릴 때 들은 설교를 떠올린다.

“사범학교 졸업하면 인근 학교에 교사로 부임해서 조상 모시고 농사도 겸해 살아가는 것이 가장 행복한 생활이다. 그것 잊지 마라.”

나는 묘 앞에서 “아버지가 원하셨던 대로 가까이 있지 못하고 먼 외국에 있으니 그 불효를 용서하세요”라고 빌며 절을 한다. 죽은 사람의 영혼이 그 묘 속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어머니의 묘, 조부모의 묘에  절을 할 때도 마찬가지 대화를 하고 잘못을 용서해달라고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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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수 | 독일 본대 의대 종신직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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