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3월호

김재욱의 대선삼국지

“대세론 타고 인재가 모여드네”

조조로 변해가는 문재인

  • 김재욱 | ‘군웅할거 대한민국 삼국지’ 저자 kajin322@hanmail.net

    입력2017-02-21 18:2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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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설 ‘삼국지’의 등장인물과 현재 우리나라 정치인을 일대일로 비교하면서 해당 정치인의 성격, 삶의 행적, 향후 전망을 담아낸 ‘삼국지인물전’(2014)과 ‘군웅할거 대한민국 삼국지’(2016)의 저자가 급변하는 대선 정국을 반영해 ‘대선 삼국지’를 연재한다.
    2017년 2월 현재, 상당한 지지를 얻고 있던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보수진영에서는 걸출한 후보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바른정당 유승민 의원, 남경필 경기지사 등이 거론되고 있으나 지지율이 턱없이 낮고, 아직까지는 약진할 가능성도 그다지 높아 보이지 않는다. 이 틈바구니 속에서 황교안 총리가 두 자릿수 지지율을 기록하며 보수진영의 희망으로 떠올랐으나, 출마 여부가 불투명한 상황이고, 상대 진영의 후보를 압도할 만한 기세를 보여주지도 못하고 있다. 오죽하면 바른정당 김무성 의원의 재등장설이 나올까. 이대로 시간이 흘러간다면 10년 만에 보수진영은 정권을 빼앗길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려운 처지가 됐다.

    반면 진보진영에는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이하 문재인으로 표기)가 지지율 면에서 부동의 1위를 차지하고 있고, 안희정 충남지사가 가파른 상승세를 타면서 그 뒤를 쫓고 있다. 반면 기세를 올리던 이재명 성남시장은 서서히 가라앉고 있다. 그사이 박원순 서울시장과 대구 입성에 성공한 김부겸 의원은 불출마를 선언했다. 한편 한때 폭발적 인기를 얻었던 안철수 국민의당 의원은 군소 후보로 전락했다. 이 추세에 큰 변화가 없다면 더불어민주당의 경선이 사실상 ‘본선의 결승전’이 될 수도 있다.



    유리한 전장의 상황

    각 당의 경선이 마무리되고, 대표로 나설 후보가 결정된 뒤, 이합집산을 거듭하다 보면 어떤 상황이 전개될지 알 수 없으나, 현재로서는 문재인이 양 진영을 통틀어 가장 강력한 대선 후보임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급기야 ‘문재인 대세론’까지 회자되기에 이르렀다.

    지난해 총선에서 새누리당은 과반의석 확보에 실패했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작년 총선에서의 패배는 보수진영의 위기를 알리는 전조였다. 여당이 국정 운영의 주도권을 야당에 내준 것은 국민이 총선 결과를 통해 여당뿐만 아니라 박근혜 대통령에게까지 경고의 메시지를 전한 것이라 하겠다. 설상가상 여당이 전열을 정비하기도 전에 온 국민을 충격에 빠트린 비선실세 최순실의 국정농단 사태가 일어났다. 이제 국민의 분노의 화살은 곧바로 박 대통령을 겨냥하고 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재작년 ‘당권재민 혁신위원회’를 출범시켜 당을 재정비하는 데 총력을 기울였고, 한때 안철수를 비롯한 호남 중진들이 탈당해 위기를 맞는가 싶더니 총선을 앞두고 문재인이 표창원, 조응천, 김병관, 김병기 등을 영입하면서 반전의 계기를 마련했다. 더욱이 상대 진영에 있던 김종인까지 영입해 총선에서 여당 독주를 막는 데 성공했다. 문재인이 영입한 이들 4명이 총선에서 모두 당선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다만 국민의당에 호남을 빼앗긴 것이 뼈아프다 하겠지만 오히려 ‘민주당은 호남 정당’이라는 고정관념을 불식하는 나름의 ‘성과’도 있었다.

    ‘문재인 대세론’은 여당이 국민의 신뢰를 잃으면서 총선에서 패배하고 구심점마저 잃어버리면서 자멸했고,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반사이익을 얻은 측면도 있지만, 그보다는 민주당이 수권정당으로 거듭나기 위한 노력의 결실이라고 보는 것이 온당하지 않을까. 거기에 진보진영에 비판적 시각을 견지하던 보수언론이 최순실 사태에 집중하면서 문재인을 효과적으로 공략하지 못한 점도 대세론 형성의 외적 요소 중 하나로 꼽을 수 있겠다.

    이처럼 주변 환경은 문재인을 도와주고 있다. 그럼 오로지 이것 때문에 ‘문재인 대세론’이 유지되고 있는가. 문재인이 실제로 대통령에 당선될지는 쉽게 예단할 수 없다 해도 한 가지 분명한 점은 대세론의 한 축을 차지하는 내적 요소가 충실하지 않으면 대세론은 무너지게 돼 있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대선 레이스에서 마지막까지 대세론을 유지하느냐는 곧 문재인의 역량에 달려 있다.

    그동안 문재인은 보수·진보 양 진영 유권자들로부터 “비서에 적격이지, 대통령감은 아니다” “사람은 좋은데 정치력이 없다” “카리스마가 없다” “결단력이 없다” “친노 성향이 강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현재 지지율 1위를 차지하고 있음에도 여전히 이런 이유로 문재인에게 의구심을 품거나, 지지하지 않는 유권자가 적지 않다. 나 역시 이런 지적에 일리가 있다고 보고 문재인을 소설 ‘삼국지’의 등장인물인 유표(劉表·142~208)에 비유한 바 있다.



    싸울 줄 모르는 사람 유표

    소설 ‘삼국지’에 등장하는 유표는 군웅이 패권을 다툴 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자신의 지역인 형주를 지키다가 병으로 죽은 사람이다. 190년, 강력한 군벌 원소를 비롯한 17명의 제후가 한나라 황제인 헌제(獻帝)를 끼고 권력을 독점하던 동탁(董卓)을 치기 위해 연합군을 결성했을 때, 유표는 풍부한 물자와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었음에도 연합군에 가담하지 않고 형세를 관망했다. 이전까지 사회의 민감한 이슈에 적극적으로 반응하지 않던 문재인의 모습과 닮아 있다고 하겠다.

    이후 강동지역의 손견이 유표를 공격했다. 손견은 의욕만 앞세우고 공격해 들어오다가 시석(矢石)에 맞아 전사했다. 유표의 참모 괴량은 상대의 주장이 죽었으므로 여세를 몰아 강동지역을 차지하자고 권유했다. 그러나 이때 부하인 황조가 손견군의 포로로 잡히는 바람에, 유표는 손견의 시체와 황조를 맞바꾸고 싸움을 끝내버렸다. 이처럼 유표는 넉넉한 인품을 소유했을지는 모르나 싸움을 할 줄 아는 사람은 아니었다. ‘사람은 좋은데 정치력이 없다’는 평가와 궤를 같이한다.

    북쪽에서 당시 가장 강력한 군벌인 원소와 조조가 맞붙었다. 두 영웅은 싸움을 앞두고 동시에 유표한테 동맹을 제의해왔다. 둘 모두 유표를 강적으로 인정한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정작 유표는 둘 사이에서 어찌할 줄을 모르고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 부하 장수 한숭은 군사를 일으켜 둘을 공격하라고 권유했지만 유표는 망설였다.

    “내가 어떻게 조조와 원소의 군대를 당할 수가 있겠나.”

    그러자 한숭은 이렇게 말한다.



    “그렇다면 둘 중 한 명에게 항복하십시오. 조조는 용병에 능하고, 그 부하들은 매우 뛰어납니다. 제가 보니 조조는 원소를 친 뒤에 우리를 공격할 것입니다. 그때가 되면 막기 어렵습니다. 조조에게 형주를 바친다면 조조는 반드시 주공을 중용할 겁니다.”

    유표는 한숭의 말을 따르지 않았다. 조조는 유표에게 싸울 맘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마음놓고 원소를 공격했다. 조조는 원소를 죽인 뒤에 유비마저 궁지에 몰아넣었다. 이 지경이 될 때까지 유표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이 일이 있기 전 조조는 원소의 잔당을 제거하기 위해 본거지인 허도를 비우고 요동지역으로 원정을 갔다. 이때 유표 진영에 의탁하고 있던 유비가 유표에게 허도를 습격하라고 권유했다. 역시 유표는 군대를 일으키지 못했다. 조조가 요동을 평정하고 돌아오자, 유표는 그제야 유비에게 이렇게 말했다.

    “자네 말을 듣지 않아서 이런 큰 기회를 놓쳤구나.”

    이런 유표의 태도는 ‘카리스마가 없다’ ‘결단력이 없다’고 비판받는 문재인과 상당 부분 닮은 점이 있다. 이처럼 유표는 살아생전 자신의 지역인 ‘형주’를 벗어나지 못했다. 형주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형주를 벗어나서 군웅과 패권을 다퉜어야 함에도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고 시간만 허비하다가 병으로 죽었다. 한때 광활한 지역을 차지했지만 무엇 하나 남긴 것 없이 허무하게 생을 마감했다. 아들인 유종이 형주를 물려받았으나, 조조한테 항복했고, 이후 청주지역으로 발령받아 임지로 가다가 조조의 부하에게 독살당했다.



    더 이상 ‘노무현의 비서’가 아니다

    유표가 천하통일의 위업을 달성하려 했다면 우선 형주에서 벗어났어야 했다. 이처럼 문재인 역시 벗어나야 할 형주가 있다. 앞서 밝힌 것처럼 유권자들이 문재인에게 아쉬워하는 그 점이 바로 형주인 셈이다.

    문재인은 그간 이슈를 선점하지 못하고 주변에 머무르면서 평론가처럼 원론적인 말만 되풀이했다. 그런 가운데 유독 ‘노무현 대통령’이 거론되는 일에는 적극적으로 반응했다. 이런 점 때문에 문재인은 ‘대선 후보’ 문재인이 아니라 ‘노무현의 비서’ 문재인으로 각인된 점이 없지 않다고 본다.

    그간 문재인의 말과 글을 살펴보면 원칙을 제시한 후, 반드시 상대의 의중을 묻는 버릇이 있다. 이것은 언뜻 보면 열린 태도 같지만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를 원하는 유권자들에게는 ‘자기 소견이 없는’ 것처럼 비칠 수 있다.

    아울러 문재인은 이미 결정이 난 사안에 대해서 뒤늦게 토론을 제안하거나 원점에서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하곤 했다. 이런 태도를 ‘신중하다’고 평가할 수도 있겠으나, 관점에 따라 ‘타이밍이 늦다’ ‘감각이 둔하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점 때문에 조금 더 강력한 지도자를 원하는 유권자들은 문재인에게 집권 의지가 없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단호하고 기민해진 정치 행보

    이와 같은 단점이 완벽히 보완되진 않았지만, 문재인은 이전과 다른 모습을 보이면서 조금씩 ‘형주’에서 벗어나고 있다. 문재인은 ‘인재 영입’을 통해 자신의 인품과 정치력을 과시하기 시작했다. 정계 입문을 한사코 거부하던 표창원을 영입해 신선한 충격을 안기더니, 박근혜 대통령 민정수석실 공직기강비서관을 지낸 조응천, 국정원 인사처장을 지낸 김병기를 영입해 상대 진영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이는 상대 진영의 발목을 잡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자, 더욱 중요한 것은 이와 같은 영입을 통해 더 이상 ‘친노’ ‘노무현의 비서’가 아닌 ‘대선 후보 문재인’의 탄생을 알렸다는 점일 것이다.

    문재인은 이들 이외에도 사회 각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낸 인재를 꾸준히 영입하면서 자신의 세력을 확장했다. 박근혜 후보 대선캠프의 핵심 인물이던 김종인에게 민주당의 총선을 지휘하도록 했고, ‘자진 철회’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전인범 전 특전사령관을 영입해 상대 진영의 허를 찔렀다. 이런 행보를 보면 문재인은 그 옛날 움츠리고 있다가 생을 마감한 유표가 아니라 ‘능력 있는 인재라면 출신을 가리지 않고 등용한’ 조조(曹操)를 닮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조조에게 친위부대 ‘청주병’이 있었던 것처럼 문재인에게는 ‘10만 온라인 당원’이 있고, 조조가 여러 번의 전투에서 기민하게 움직인 것처럼 문재인 역시 기존과는 다르게 사회의 민감한 이슈에 발 빠르게 대응하고, 상대 진영의 공격에도 당황하지 않고 역습을 펼치며, 이곳저곳을 누비면서 자신의 정견을 당당하게 피력하고 있다. 어투가 눈에 띄게 단호해졌지만 기품을 잃지 않는다. 이런 문재인 주위로 유력 인사와 인재들이 끊임없이 모여들고 있다.

    ‘이를 어떤 시각으로 보는가’ ‘이것이 어떤 결과로 나타날까’ 하는 물음은 차치하고, 문재인의 ‘변화한 모습’에 우선 주목해봤다. 나는 ‘문재인 대세론’의 ‘안쪽’을 차지하는 문재인의 역량이 표면적으로나마 갖춰져 있다고 본다. 물론 언제라도 이 대세론은 깨질 수 있다. 그러나 대세론이 일조일석 간에 형성된 것 또한 아니므로 쉽게 깨지기 어렵지 않을까. 문재인은 조조로 변해가는 중이다.



    김 재 욱

    ● 1972년, 경북 봉화 출생
    ● 동국대 한문학과(학사), 교육대학원(석사)
    ● 고려대 국문학과 한문학 전공(박사, 한국한시, ‘목은 이색의 영물시 연구’)
    ● KBS대하드라마 ‘징비록’ 고전철학 자문
    ● 現 고려대 한자한문연구소 연구교수
    ● 저서 ‘삼국지인물전’ ‘한시에 마음을 베이다’ ‘군웅할거 대한민국 삼국지’외 5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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