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3월호

벚꽃대선〈조기 대선〉의 함정

‘새 대통령 불인정’ 사태 우려, 쫓겨난 朴 대통령 ‘무죄’ 시 ‘국난(國難)’

  • 이종훈 | 시사평론가 rheehoon@naver.com, 허만섭 기자 | mshue@donga.com

    입력2017-02-28 11:4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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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탄핵 추진 후보에 절대 유리한 불공정 게임
    • 문재인(안희정·이재명) 정권과 트럼프 정권의 예고된 파국?
    • “벚꽃대선은 기만적 비유”
    벚꽃대선, 축복일까 저주일까.

    화창한 날이었다. 이런 날 투표를 할 수 있다는 사실에 행복했다. 어두운 투표소를 나서자 햇빛이 눈을 가린다. 운동장에서 뛰어놀던 아이들이 두 팔을 펼치고 달려온다. 품 안 가득 안고 웃었다. 하지만 마음이 개운치 않다. 시간이 좀 더 필요했다.

    여권 일부 인사들은 벚꽃대선에 대해 “탄핵을 지지하는 야당과 일부 언론이 조기 대선을 미화하기 위해 가져다 붙인 기만적 비유”라고 말한다.

    “우리나라에서 벚꽃은 3월 마지막 주부터 4월 첫째 주까지 개화한다. 벚꽃은 탄핵에 의해 대선이 열릴 가능성이 높은 4월 말에서 5월 초와는 시기적으로 무관하다. 계절적으로 보면 4월 말과 5월 초 중국에서 황사가 밀려오므로 조기 대선은 ‘황사대선’이라 하는 게 더 적합하다.”         



    졸속 경선·본선

    조기 대선이 실시되면 엄동설한에 투표하지 않아도 된다. 좋은 일임에 분명하지만 우려도 없지 않다. 가장 큰 문제는 후보자를 검증할 시간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과거 대선도 검증이 부실했다. 경선과 공천이 공식 선거운동 기간에 임박해 이뤄진 탓이다. 그래도 적어도 각 당의 경선과 대선 본선을 합쳐 8개월 정도 검증할 시간이 있었다. 최소한 1년 전부터 검증을 거쳐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던 중이었다. 대선 주자들도 그런 일정에 맞춰 출마 선언 시기를 조율하고 있었다. 캠프 구성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갑자기 탄핵소추가 이뤄진 것이다.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대선을 치르라고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조기 대선 일정은 거의 전적으로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달렸다. 헌재의 결정이 2월 말에서 3월 초 사이에 날 것이란 설이 다수였으나, 최근 박근혜 대통령 대리인단의 추가 증인 신청과 헌재의 일부 수용으로 2월 말은 물 건너갔다. 3월 13일 이정미 재판관 퇴임 이전에 결정이 날지가 마지막 남은 관심사다. 3월 13일 이전에 인용 결정이 나온다면, 대선 투표는 그로부터 60일 이내에 실시돼야 한다. 4월 마지막 주 또는 5월 첫째 주가 유력하다는 관측이다.

    결과적으로 검증 기간이 4분의 1 토막이 난 셈이다. 초단기 검증이 이뤄질 수밖에 없다. 사상 초유의 일이다. 출마하는 대선주자도 국민도 당황스럽다. 물론 심판을 보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도 마찬가지다. 황급히 선거관리 일정과 지침을 내놓았지만, 검증 부분은 그들도 자신하기 어렵다. 이미 선관위는 경선과 본선이 상당부분 겹치므로 주요 정당의 경선을 공정하게 관리해주기 어렵다고 말한다. 결국 국민과 언론은 더 집중해야 한다. 하루가 멀다 하고 후보자 토론회도 개최해야 한다. 경선 단계에서도 본선 단계에서도 그렇게 하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일하며 싸워야 하는 돌발 상황인 셈이다. 일정을 쫓아가기 바쁠 것이므로 새 대통령 감을 검증하고 숙고하는 일이 제대로 이뤄질 리 없다. 



    토론 기피

    토론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다. 주요 후보자가 참여해야 일단 성립한다. 최근 문재인 전 대표의 토론 기피가 정치권에서 논란이다. 각종 여론조사 결과에서 지지율 1위를 기록 중인 문 전 대표다. 부자 몸조심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이미 따놓은 지지율을 잃을 위험성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문 전 대표는 대세론을 형성했고 당내 경선 경쟁 상대인 안희정 충남지사와 이재명 성남시장은 말이 청산유수다. 차라리 피하는 게 상책인 것이다.

    시간 부족으로 부실 검증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이처럼 토론회까지 열리지 않으면, 유권자는 ‘깜깜이 선거’를 치러야 한다. 정보를 얻을 기회가 원초적으로 봉쇄된 상황에서 투표에 임해야 한다. 이것은 어떻게 보면 대통령을 뽑을 선택의 자유를 제한당하는 격이다. 알 권리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국민의 정당한 투표 권리 행사 방해에 해당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것은 촛불민심에도 반한다.

    최근 국민의 주권 의식이 높아졌다. 그래서 다음 대통령을 정말 잘 뽑아야 한다는 결의에 차 있다. 그런데 현실은 정반대로 돌아가는 것이다. 몇몇 유력 대선주자의 기피로 토론회마저 형식적으로 몇 차례 하는 선에서 넘어가고 만다면, 숨겨진 제2의 최순실을 발견하지 못하는 오류를 범할 가능성이 크다.


             


    선심성 공약

    정밀 검증이 어려워진 틈에 난무하는 것은 선심성 공약이다. 일단 솔깃한 공약을 쏟아내 환심을 사려는 의도다. 이번 대선은 역대 어떤 선거보다 포퓰리즘이 판을 칠 가능성이 높다. 일부 경제전문가들은 “벌써 그런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한다.

    최근 문재인 전 대표는 공공부문 일자리 81만 개 창출 공약을 내놨다. 문재인 캠프의 선대본부장으로 영입된 송영길 의원은 “국가 예산과 세금으로 나눠주는 것을 누가 못하느냐. 메시지가 잘못 나갔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한다. 안철수 국민의당 의원은 이 공약에 대해 “매년 20조~30조 원의 국가예산이 들어갈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종인 민주당 전 대표도 “공공부문 일자리를 만든다는 게 말은 쉬운데, 그 재원은 무엇으로 다 충당할 것이냐”고 반문했다.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은 “공무원이 현재 100만 명인데 앞으로 5년 안에 100만 개에 가까운 일자리를 또 만들겠다는 것은 국민을 우롱하는 처사”라고 했다. 문 전 대표는 ‘하겠다’는 쪽이고 ‘격론’이 벌어지니 선거전략 차원에서 유리하다고 판단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뒷감당은 국민이 해야 한다.

    거기에다 문 전 대표는 북한 개성공단을 2000만 평으로 늘려 다시 여는 공약도 내놨다. 핵미사일 개발 저지를 위한 대북 제재와는 분명히 다른 흐름이다. 이에 여권 한 관계자는 “‘81만 개’ 공약으로 나라 곳간 거덜 내고 ‘2000만 평’ 공약으로 북한 핵미사일 만들어준 뒤 ‘재벌과 수구보수세력 탓’이라고 하면 되겠네”라고 했다.   

    이재명 성남시장도 기본소득 도입을 공약해 논란이 일고 있다. 정부 재정의 낭비 요인을 줄이고 여기에다 법인세를 인상해 그 재원으로 2800만 명에게 월 130만 원을 지급하겠다는 것이다. 이 시장은 이것이 서민증세 없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또 이 돈이 소비로 이어질 것이므로 지역경제도 살아난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재계 한 인사는 “듣고 있으면 황홀하다. 하지만 지난해 6월 세계에서 가장 잘사는 스위스에서 도입하려고 국민투표까지 실시했다가 부결된 사안”이라고 말했다.

    보수진영 후보들도 아마 포퓰리즘 공약을 내놓을 것이다. 선거운동 기간이 짧고 검증 기회도 적으니 일단 던져놓고 보는 대선주자가 늘어날 것임에 틀림없다.
             


    개헌 불발

    조기 대선으로 가면서 개헌은 무산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지금이 87년 헌정체제를 바꿀 절호의 기회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최순실 게이트로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에 대한 문제의식도 그 어느 때보다 높다. 그래서 대선 전에 원 포인트 개헌이라도 하자는 주장이 힘을 얻었지만, 집권이 임박해 있다고 판단한 문재인 전 대표와 민주당 지도부는 이를 반대한다.

    반 전 총장의 조기 탈락은 개헌의 동력이 되는 제3지대에 치명적이었다. 안철수, 유승민, 손학규의 지지율이 급등세로 돌아서야 하는데, 아직은 싹이 보이질 않는다. 오히려 민주당 내 안희정 충남지사가 중도노선을 표방하면서 지지율이 오르고 있다. 안희정이 뜨면 개헌은 더 멀어진다.
                 


    식물 정권

    박근혜 정부는 일을 제대로 못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2016년 총선에서 패배해 과반 의석이 붕괴된 이후 더 그러했다. 그래서 협치가 화두로 떠올랐지만, 박 대통령에게 그것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였다. 다음 정부는 어떨까?

    이번 대선은 다자구도로 치러질 가능성이 높다. 자유한국당은 황교안 대행이든 누구든 후보를 내서 완주할 것이다. 안철수 국민의당 전 대표도 경선을 통과한다면 끝까지 갈 것으로 보인다. 2012년 대선 때 문재인 전 대표에게 양보하는 바람에 본인도 정치생명에 결정타를 맞은 탓이다. 바른정당 역시 탈당까지 결행한 마당에 후보를 내지 않는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바른정당 후보가 국민의당 또는 자유한국당 쪽과 단일화를 이뤄낸다면 3자 구도가 된다. 아니면 4자 구도다. 정의당까지 포함하면 5자 구조다.

    민주당이 집권한다고 전제해보자. 여당인 민주당 의석수는 121석에 불과하다. 자력으로 공약 이행에 필요한 어떠한 법률도 통과시키기 어렵다. 자유한국당이 집권해도 마찬가지다. 자유한국당 의석수는 최근 김종태 의원의 당선 무효 형이 확정되면서 94석으로 줄었다. 국회선진화법에 따라 원활하게 법안을 통과시키려면 전체 의석 대비 60%, 180석을 확보해야 한다.

    한번 ‘피맛’을 본 국회는 여차하면 대통령을 탄핵하겠다고 나설지 모른다. 누가 집권하든 야당이 똘똘 뭉치면 대통령은 위협을 느낄 수밖에 없다. 자유한국당은 자력으로 탄핵을 방어할 수 없고 민주당도 이탈 표가 나오면 탄핵을 방어하기 벅차다.

    민주당은 집권 시 국민의당과 강력한 연정을 구축해야 한다. 자유한국당은 집권 시 바른정당 및 국민의당과의 연정을 성사시켜야 한다. 국민의당이나 바른정당이 집권하면 문제는 더 심각하다. 연정 구성 과정에서조차 칼자루를 쥐기 힘들다. 총리와 장관 자리 대부분을 내줘야 할지 모른다.

    합당은 아마도 어려울 것이다. 각 당이 2020년 총선을 내다보고 버티기에 들어갈 가능성이 높다. 결국 연정인데, 문제는 조각 이후 내부 갈등이다. DJP(김대중·김종필) 연합처럼 내분에 휩싸인다면, 정국은 혼미 상태에 빠진다.

    적지 않은 국민은 박 대통령의 조속한 퇴진을 원하지만, 이래저래 벚꽃대선은 너무 많은 함정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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