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3월호

즉문즉답

“경부고속도로 지하화는 대선 이슈 돼야”

조은희 서울 서초구청장

  • 허만섭 기자 | mshue@donga.com

    입력2017-02-28 11:5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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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로운 국토개발 모델”
    • “양재·우면단지는 청년실업 해결책”
    • “어린이집 제조기…최고의 民生 행정”
    • “1등들이 찾아오는 2등 정신”
    구청장실 입구는 개방적이고 은은한 분위기였다. 교양서적, 커피, 그리고 클래식 음악이 있었다. 이런 것들은 주인의 성향을 반영하는지 모른다. 여기서 조은희 서울 서초구청장을 만났다. 조 구청장은 이화여대 영문과 학사, 단국대 행정학 박사 학력에다 그야말로 다채로운 경력을 지녔다.

    조 구청장은 경향신문 기자 시절 김대중 전 대통령이 괌에 체류중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회사의 승인이 나기도 전에 자비로 비행기 티켓을 끊어 괌으로 갔다. 그 결과 DJ 괌 구상이라는 특종으로 당시 정가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여기자의 추진력이 김 전 대통령에게 강한 인상을 준 것일까? DJ는 1998년 대통령에 취임하자 당시 37세인 조은희 기자를 청와대 행사기획비서관으로 발탁한다. 이렇게 정·관계로 들어온 조은희는 대통령직인수위 전문위원, 서울시 여성가족정책관(1급), 서울시 정무부시장을 거쳐 2014년부터 민선6기 서초구청장으로 일해오고 있다.

    조 구청장은 “구청 행정에서 틀을 깼더니 길이 열렸다”고 했다. 수십 년 묵은 서초구의 대형 민원인 국회단지 개발, 정보사 터널 착공, 원지동 국립중앙의료원 이전을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원만하게 해결했다고 한다. 서초구에 따르면, 방배동 511번지 국회단지는 40여 년간 무허가 난립지로 방치되어 있었지만 앞으로 3~4년 내 명품 전원주택마을로 재탄생한다.

    재건축 같은 현안업무도 빠른 일처리가 쾌도난마처럼 번뜩인다고 한다. 서초구의 경우 62개 아파트 단지에서 재건축이 진행 중으로, 서울에서 가장 활발한 편이다. 조 구청장은 “재건축 과정에서 분쟁이 발생하면 내가 직접 현장을 찾아 갈등 해결을 돕는다. 이런 ‘스피드 재건축 119’를 운영한다”고 말했다. 서초구는 지방재정개혁 최우수기관 등 지난해 66개의 상을 수상했고, 인센티브로 37억 원을 받았다.  

    언론도 대체로 “조 구청장이 새 리더십으로 어려운 문제들을 풀어냈다”고 평한다(국민일보 2017년 1월 23일 보도 등). 특히, 보육 문제는 국민적 관심사가 되고 있는데, 서초구는 어린이집을 상당히 빠른 속도로 늘려가고 있다. 지난해 13개에 이어 올해 19개 국공립 어린이집을 세운다고 한다. 2014년 조 구청장 취임 때 32개뿐이던 국공립 어린이집이 올 연말 72개가 된다. 이를 위해 자치구 중 처음으로 보육기금 80억 원을 조성했다. 조 구청장에게 ‘어린이집 제조기’ ‘엄마 행정가’ ‘복 손’이라는 별칭이 붙고 있다고 한다. “어린이집 늘리기야말로 최고의 민쟁(民生)”이라는 평가도 뒤따른다. 조 구청장은 “결혼을 앞둔 남녀, 아이를 둔 맞벌이 부부의 가장 큰 걱정거리가 보육 아니냐. 이런 보육 서비스에 최선을 다할 생각”이라고 말한다.



    서초구는 민간 어린이집에도 최고 매월 300만 원을 지원한다. 또 규모가 큰 재건축 단지에 최대 300명을 수용하는 ‘학교형 어린이집’을 각각 하나씩 넣는 사업도 시작한다고 한다. 다른 자치구에선 잘 보기 힘든 통 큰 보육정책인 듯 하다.

    조 구청장은 무엇보다 ‘경부고속도로 지하화’를 추진하면서 지자체장들 중에 단연 주목을 받고 있다. 경부고속도로 한남~양재IC 6.8km 구간의 차도를 지하화하는 대신 지상엔 녹지, 공원, 상업시설등을 조성하는 구상이다. 지하에 2개 층의 터널을 조성함으로써 교통 흐름을 게선한다는 게 조 구청장의 주장이다.  

    기초단체 차원을 넘어 정부와 서울시가 나서야 하는 대형 프로젝트인데, 조 구청장은 처음 이 아이디어를 냈고 연구용역을 이끌었다. 이 프로젝트의 전도사로 맹활약하고 있는 셈이다.  



    “정주영 회장이 환생해도…”

    ▼ 이런 구상을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지하화는 기존의 프레임을 깬 것이지요. 서울 시내에서 경부고속도로가 지나는 주변은 소음과 분진에 시달려요. 전임자들은 고속도로에 덮개를 씌우는 방안을 검토했어요. 그러나 추진되지 않았죠. 제가 오세훈 당시 서울시장에게 ‘왜 이걸 해주지 않느냐’고 물었어요. 오 시장은 ‘덮개를 씌운다고 교통체증이 해결되지 않는다. 차에서 나오는 나쁜 공기가 덮개 안에 고여 있게 된다’고 답하더군요. 저는 ‘덮개 방식은 영원히 불가능하다’고 결론 냈어요. 자료를 검토하다가 다른 발상을 하게 됐죠.”

    ▼ 어떤 발상인가요?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1992년 대선에 출마하면서 경부고속도로 복층화 공약을 내걸었죠. 고속도로를 2층으로 지으면 확실히 체증 해소에 도움이 되죠. 저는 정주영의 공약을 거꾸로 뒤집어서 ‘지하로 1, 2층 고속도로를 만드는 건 어떨까’라고 생각한 것이죠. 그러면 원래 고속도로이던 지상엔 60만㎡(20만 평)이라는 오픈 스페이스가 새로 생겨요.”



    예상을 뛰어넘은 반응

    ▼ 그렇게 해서 얻어지는 편익이 무엇인가요?

    “무엇보다 고속도로 주변에서 소음·분진 공해가 말끔히 사라집니다. 서울 강남 한복판에 여의도 두 배만 한 금싸라기 땅이 새로 생깁니다. 여기가 국제적 관광지가 되죠. 경부고속도로 서울구간의 상습 체증 문제도 해결될 수 있고요. 정주영 회장이 다시 살아서 서초구청장이 된다면 저와 같은 생각을 하지 않을까 해요.”

    ▼ 만약 이 사업을 시행한다면 막대한 공사비가 들어갈 텐데요.

    “다들 비용문제를 걱정하지만 연구해 보니 그렇지 않아요. 소중한 세금을 한푼 들이지 않고 지하화 할 수 있어요. 지하화되는 도로와 사라지는 4곳의 IC 지상 부분을 개발하면 사업비 조달은 물론이고 되례 비용이 남는 사업이 됩니다.

    마침 저희가 예산을 알뜰하게 사용해서 행정자치부로부터 상금 3억 원을 받았어요. 이 돈으로 지하화 연구 용역을 시작했어요. 2015년부터  대한국토·도시계획학회, 대한교통학회, 한국도시설계학회, 한국환경영향평가학회, 도시정책학회 등 국내 5개 대표적 학회들이 용역에 참여했어요.”

    ▼ 그 용역 결과는 어떠했나요.

    “1월 말에 연구 결과가 나왔어요. 3조2009억 원의 공사비가 들고, 개발에 따른 공공기여금 등으로 5조3389억 원의 재원을 너끈히 확보할 수 있습니다. 경부고속도로 서울 구간의 교통 흐름은 평균 시속 25km에서 50km로 개선됩니다. 편익비용(B/C)은 1.07로, 경제성이 있다는 결론입니다. 그뿐 아니라 4조9550억 원의 생산유발효과와 3만5000여 명의 고용유발효과가 발생한다고 해요. 아울러 지하 공간에 저류조를 두면 강남역의 상습 침수 문제도 해결됩니다. 한마디로 도시계획·토목분야 최고 전문가들이 ‘이 사업은 꼭 해야 한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조 구청장은 “경부고속도로 지상에 공원, 녹지, 레스토랑, 문화시설, 산업시설을 함께 넣어 많은 해외관광객들이 찾는 랜드마크가 되도록 하는 것이다. 많은 일자리가 생긴다”고 말한다. 서초구에 따르면 최근 국토교통부는 도로의 지하는 차도로, 지상은 다른 용도로 개발할 수 있는 도로법 개정안을 준비 중이라고 한다. 이 법은 경부고속도로 지하화에 날개를 달아주고 전국 다른 대도시에도 많은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고 한다.

    경부고속도로 지하화 사업안이 기초단체인 서초구에서 촉발됐지만, 여러 중앙 언론사는 이 사업안을 비중 있게 보도했다. 예상을 뛰어넘은 반응이었다. 조 구청장의 프레임을 깨는 독창적 아이디어, 서울 서초지역의 높은 위상, 이 지역에 새로 확보되는 너른 평지, 언뜻 봐도 성공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 사업계획이 미디어의 관심을 끌었다고 한다.   

    조 구청장은 “우리 구청은 한남IC에서 양재IC까지만 지하화를 고려하는데 한국도로공사는 서울톨게이트까지 지하화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안다. 서울 시내를 지나는 고속철도도 지하화해 지상 부분을 개발하는 것은 여러 자치단체에서 오래 전부터 소원해 오던 일”이라고 말했다. ‘강남만 더 좋아지는 것 아니냐’는 반론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했다.  

    “경부고속도로 정체가 해소되면 많은 사람이 그 혜택을 누리죠. 세금도 들지 않아요. 경부고속도로 위에 서울의 랜드마크가 생기고 환경이 좋아지고 경제가 좋아집니다. 우리나라 대도시 안에 도로를 입체적으로 개발할 수 있는 곳이 많다고 봐요. 국가적으로 신 영토가 생기는 겁니다. 해외에 이 기술을 수출할 수도 있어요.”

    나아가 조 구청장은 “경부고속도로 지하화가 올해 대선 이슈로 부각되면 좋겠다.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이 있는 유력 대선주자가 대선 공약으로 추진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경부고속도로가 지나가는 서초구 양재·우면동 일대 300만㎡엔 양재·우면R&CD특구가 조성될 예정이다. 독일의 국가경쟁력을 이끄는 수도 베를린의 아들러스 호프처럼,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함께 교류하는 우리나라 4차 산업혁명의 핵심지역으로 키우겠다는 것이 정부와 서울시의 방침이다. 양재·우면특구가 판교단지까지 이어져 세계적 연구 인력이 몰려오는 ‘한국의 실리콘밸리’가 되려면 경부고속도로 지하화는 필수적이라는 것이 서초구의 판단이다.



    “함께 가고 동반성장”

    조 구청장은 “양재·우면특구는 기업이나 연구자가 선호하는 강남권에 대규모로 들어서기 때문에 성공 가능성이 매우 높다. 대선주자를 초빙해 이 특구에 관해서도 토론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탄핵 정국 이후 국민은 경제를 살리고 청년에게 일자리를 줄 수 있는 구체적 복안을 묻게 될 것이다. 나와 서초구가 추진하는 일들이 대답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2등 정신’을 이야기한다. “1등이 되려는 마음이 적을 만들죠. 나 혼자 최고가 되려는 생각을 버리면 1등들이 찾아와요. 함께 가고 동반성장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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