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3월호

명사 에세이

다섯 딸에게 쓰는 편지

  • 이은경 | 한국여성변호사회 회장

    입력2017-02-28 13:3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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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에겐 딸이 다섯 있다. 다인승 승합차에서 아이들이 차례로 내리면 사람들이 휘둥그레 쳐다본다. 다섯 딸은 꽤나 다른 성격을 갖고 있다. 로스쿨 입시를 준비 중인 큰애는 책임감이 강하고 포용력이 있다. 맏이 구실을 톡톡히 한다. 미대 휴학 중인 둘째는 좀 시크한 듯하지만, 참 착하고 정도 많다. 남다른 감수성도 갖췄다.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쌍둥이는 늘 다정다감하고 배려하는 성격이다. 그리고 성실하다. 중학생 막내는 조금 독특하다. 보이시하고 쿨한 성격이면서도 가끔 뜻밖의 말로 나를 놀라게 한다.

    아이들은 물론 ‘그분’의 소유다. 이들이 자라는 동안 나에게 맡겨진 것뿐이리라. 아마도 가장 소중한 미션일 테지. 다섯 딸을 키우다 보니 삶의 느낌도 무지개같이 다채롭다. 하지만 아이들을 바라보는 나의 심정은 때론 천국과 지옥도 넘나든다. 아이들도 때때로 무척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자아의 성장통에 몸부림치고, 미래의 불안에 넋을 잃기도 한다.

    나는 늘 아이들의 아픔을 가슴 한쪽에 달고 산다. 물론 나의 원죄도 크다. 바쁜 일상, 아이들을 제대로 보듬어주지 못한 채 숨 가쁘게 살았다. 나를 가장 필요로 할 때 옆에 있어주지 못했다는 자책에 늘 가슴이 시렸다. 아이들이 실존의 고통과 마주할 땐 나도 가만히 눈물을 흘렸다. 밤잠 설친 나날도 적지 않았다. 아이들에게 잘못한 일도 꽤 있었을 게다. 조급한 마음에 크고 작은 상처도 많이 주었으리라.

    나는 아이들의 울타리다. 가만히 지켜보면서 엄마의 마음에 두 가지가 필요한 걸 깨달았다. ‘기다리는 것’과 ‘기대하는 것’이다. 하나는 끝까지 기다려주는 거다. 때론 기대에 영 미치지 못할지라도, 혹여 낙담이 치올라오더라도 마지막 순간까지 무작정 기다려주는 거다. 아이에겐 돌아갈 자리 곧 엄마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조급함은 결코 아이를 바꾸지 못한다. 다른 하나는 믿고 또 믿는 거다. 포기는 절대 금물! 희망의 끈을 굳게 잡고 아이의 미래를 기대하는 거다. 지금은 넘어졌더라도 다시 일어설 거야. 당장은 외롭고 슬프더라도 부디 힘 내거라. 너희들은 엄마의 찬란한 보석이다. 혹시 좌절하고 있니? 엄마는 절대 지치지 않는다. 수백 번, 수천 번 응원할 거다.





    ‘기다리는 것’과 ‘기대하는 것’

    사랑하는 딸들아! 엄마의 부탁이 몇 가지 있다. 남에게 보이려고 살지 마라. 그건 부질없는 헛고생일 뿐이다. 남이 어떻게 생각할까 너무 걱정할 필요도 없다. 사람들은 자기 일에 몰입해 있고, 너도 남에 대해선 하루 몇 분도 생각지 않지 않니. 출세하려 지나치게 애쓰는 것도 좋지 않다. 특히 돈, 명예, 권력엔 속박되지 말아야 한다. 그것들에 종노릇하고 살기엔 인생이 너무 짧다. 그저 그분의 순리대로 살아라. 물결치면 물결치는 대로, 바람 불면 바람 부는 대로 내면의 굳건함을 붙들고 당당히 살아라. 마음이 강해야 한다. 살아 보니 그렇다. 내가 바꿀 수 있는 상황이란 게 별로 많지 않다. 그 상황에 대응하는 ‘나’를 바꿀 수 있을 뿐이다. 부디 순명(順命)의 자세로 기쁘게 살아라.

    사실 많은 사람이 인생에 저항하는 자세로 살아간다. 삶은 투쟁이 아닌데도 말이다. 애들아, 원하는 것 때문에 괴롭다면 집착을 버리고 그분의 때를 기다려라. 원치 않은 일이 일어났다면, 결국은 내게 필요한 것이겠거니 생각하고 담담히 받아들여라. 원하는 걸 얻지 못할까봐, 원치 않는 게 일어날까봐 전전긍긍 두려워하는 건 지금 당장 그만둬도 된다. 삶에 섞여 있는 고통이란 것도 너희들의 행복을 빼앗지는 못한다. 엄마의 경우, 고통은 희미해지는 훈련이었다. 애들아, 인생을 선물로 받아들이고 오늘 하루를 한껏 포용해라. 삶이 훨씬 쉬워지고, 삶의 기쁨도 느끼게 된다. 이게 바로 마음을 비우는 거다.

    부디 너희들 자신과는 불화하지 마라. 재빨리 화해하는 게 좋다. 애들아, 인간은 누구든 완벽하지 않다. 엄마도 늘 건망증에 시달리고, 길눈도 어둡고, 때론 어처구니없는 실수도 하지 않니. 절대 자학과 자책에 오래 머무르지 마라. 설령 잘못했더라도 그냥 돌이키면 된다. 되도록 나에게도, 남에게도 너그럽게 대하렴. 무슨 일이든 쉽게 판단하고, 쉽게 정죄하지 마라. 나를 사랑하고, 남을 사랑해라. 뭐니 뭐니 해도 ‘사랑’만이 해답이다. 하지만 자기애(自己愛)의 동굴에 계속 머물러 있는 건 정말 곤란해. 이기심은 사랑의 반대편에 있단다. 하여튼 자기연민, 자기혐오는 둘 다 멀리하는 게 상책이다.

    다음은 정말 중요한 거다. 사람을 의지하지 말되, 사람에게 최고로 투자해라. 내 인생에 맞닥뜨린 바로 그 한 사람을 돕는 게 가장 남는 장사임을 잊지 마라.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기는 게 아니다. 사람은 죽어서 자신이 도움을 준 사람들을 남긴다. 삶이 위기에 부닥쳤을 때도 너희를 살리는 건 돈, 명예, 권력이 아니라 바로 ‘사람’이란 걸 명심해라.

    그리고 엄마는 다양한 사람과 폭넓게 교류하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 창조주가 인간의 얼굴을 단 한 명도 똑같이 만들지 않았다는 건, 모든 인간이 전능한 신의 능력을 골고루 나눠 가졌기 때문이라지 않니. 지위나 계급에 상관없이 터놓고 대화하고, 내게 돌아올 게 없더라도 아낌없이 베풀어라. 설령 은혜를 원수로 갚는다 해도 너무 개의치 마라. 손해 보는 걸 두려워하지 말고, 과감하게 빵을 물 위에 던져라. 특히 너희들에게 갚을 능력이 없는 사람을 돕는 건 가장 좋은 일이다. 그분께 꾸어드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고 경외해라. 너희들은 어느 한순간도 혼자가 아니다. 엄마가 이 세상에 없더라도 마찬가지다. 엄마는 삶의 어느 지점에 이르렀을 때 그분을 끊임없이 의식하고 기대하고 사는 게 지상 최고의 복이란 걸 알았다. 이 비밀이 무척 놀라웠다. 삶과 죽음의 여정에 맞닿는 실존의 근본적 고통과도 화해할 수 있었다. 얘들아, 한번 생각해봐라. 온 우주에, 내 안에, 너 안에 실존하시는 그분과의 공존을 말이다. 초월을 의식하는 실존은 모든 한계를 뛰어넘는 절대선의 지고함을 누린다.

    사랑하는 딸들아! 엄마는 솔직히 ‘비우는 삶’보단 ‘채우는 삶’에 급급했고, ‘존재’나 ‘의미’보단 ‘성공’과 ‘성취’에 내몰린 순간이 많았다. 이를 위해 돈이든, 평판과 영향력이든 무언가를 부지런히 쌓아두라는 조언에 공감했다. 그런데, 지천명(知天命)이라던가. 오십을 훌쩍 넘긴 지금, 성공과 실패 그리고 반전이 있었던 엄마의 삶이 잠깐씩 행복했고, 긴 시간 불행했음을 고백한다. 그리고 깨닫는다. 내 뜻대로 되는 건 그리 많지 않다는 것, 내 뜻대로 되는 게 반드시 좋은 것도 아니라는 걸 말이다. 그분의 뜻이 내 생각보다 더 큰 위대함으로 나를 이끌었을 뿐이다.

    이제 엄마는 움켜쥐었던 삶의 주도권을 하나씩 내려놓는다. 내 자아의 의지로는 되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전혀 없건만, 그 어느 때보다 행복에 가까이 있다. 아마 더 치열하게 살게 될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이 은 경

    ● 고려대 법학과 졸업, 고려대 법무대학원 국제거래법 석사
    ● 사법시험(30회), 사법연수원 20기, 서울남부지법·서울중앙지법·전주지법·서울동부지법 판사
    ● 現 한국여성변호사회 회장, 법무법인 산지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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