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3월호

영화, 그곳에 가고 싶다

칼바람 맞으며 첫사랑의 설렘 느껴

한 해의 시작 알리는 선댄스 영화제

  • 오동진|영화평론가

    입력2017-02-28 13:4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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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댄스영화제에 대해 한국 사람들의 반응은 두 가지 중 하나다. 전혀 모르거나, 잘 모르거나. “이름은 들어봤다”가 열 명 중 한 명 정도나 될까. 설상가상 국내 영화계도 선댄스영화제를 ‘버린 지’ 오래다. 국내 영화인들은 1월 말, 전 세계에서 가장 먼저 시작하는 이 국제영화제 대신 그다음 차수인 2월에 열리는 독일의 베를린국제영화제에 몰린다. 선댄스에서 한국 사람, 한국 영화인을 만나기란 가뭄에 콩 나듯 하다.

    그럴 만한 일이다. 선댄스는 사실 미국 영화제에 가깝다. 애초에 미국의 독립영화를 대상으로 만들어진 행사다. 그러다가 북미 대륙으로 그 대상이 넓혀졌고 다시 유럽과 아시아권 영화까지 포괄하게 되면서 세계적 영화제가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중심은 미국 영화, 특히 독립영화다. 선댄스에 가면 그래서, 지금 미국과 영어권에 속하는 영국, 캐나다, 호주 영화인들이 무엇을 고민하는지, 또 그래서 어떤 영화들을 만드는지, 그리고 그걸 어떤 방식으로 만드는지, 바야흐로 그 흐름을 읽을 수 있다. 그럼으로써 궁극적으로는 세계 영화계의 한쪽 축이 현재 어떻게 변화하는지 그 조류의 일단을 확인할 수 있게 된다.



    선댄스의 아버지 레드퍼드

    선댄스영화제가 유명해진 것은 거의 초창기부터인데 그건 순전히 할리우드 스타 로버트 레드퍼드 때문이다. 레드퍼드는 1978년 유타유에스필름페스티벌(Uta/U.S. Film Fetival)을 인수해서 영화제 주요 공간을 파크시티로 옮긴 후 이름을 선댄스영화제로 바꿨다.

    그 이름 자체가 의미심장하다. 레드퍼드의 출세작인 ‘내일을 향해 쏴라’에서 자신의 배역 이름을 딴 것이다. 조지 로이 힐 감독의 1969년 작인 이 영화의 원제는 극 중 두 주인공의 이름을 딴 ‘부치 캐시디 앤드 선댄스 키드(Butch Cassidy and Sundance Kid)’다. 폴 뉴먼이 부치 캐시디, 레드퍼드가 선댄스 키드 역을 맡았다. 미국 영화의 새로운 예술적 부흥기를 알리는 ‘아메리칸 뉴시네마’의 기수라 평가받는 이 영화를 발판으로 로버트 레드퍼드는 세계적 스타로 급부상했다.



    영화제의 이름을 ‘선댄스’로 정한 것은 레드퍼드가 이 영화에 바친 오마주(homage)인 동시에 자신을 스타로 만들어준 영화계와 관객에게 보답하고 헌신하겠다는 의지를 담은 것이다. 레드퍼드는 이 영화제에 막대한 돈을 쏟아 부었으며 이후 ‘선댄스 재단’을 설립하고 선댄스채널이라는 TV채널까지 만들며 영화인들의 조력자 노릇을 해오고 있다.

    하지만 레드퍼드는 이 영화제에서 아무런 직함을 갖고 있지 않다. 영화제 운영은 물론 프로그램에 대해서도 일절 간섭하지 않은 채 상징적인 존재에 머무는 것에 만족한다. 실제로 그는 개막식에 참석해 자신의 위엄 있는 얼굴을 한 번 비추는 것 외에는 좀처럼 등장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그런 그를 존경하고 추앙한다. 개막식에 오는 그를 보기 위해 미국 전역의 영화인과 저널리스트, 비평가가 구름 처럼 몰려든다.

    아무런 직함도 없지만 이 영화제가 레드퍼드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1999년부터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는 존 쿠퍼는  말 그대로  영화제의 관리자일 뿐이다. 선댄스를 소유하지도, 운영하지도 않는 로버트 레드퍼드야말로 이 영화제의 진정한 주인이다. 혹은 모두가 선댄스의 소유자이게 만든다. 지도자는 바로 이런 사람을 가리켜 붙이는 말이다.



    칼바람에도 꺾이지 않는 열기

    레드퍼드만큼 특이한 것은 바로 영화제가 열리는 장소다. 선댄스영화제는 유타 주 솔트레이크시티에서 열린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곳에서 열리는 게 아니다. 정확히는 솔트레이크에서만 열리는 게 아니다. 실제로 영화제의 주 공간은 솔트레이크에서 차로 약 30분 거리에 있는 파크시티에 있다. 파크시티를 중심으로 유타의 주도(州都)인 솔트레이크와 프로보라는 작은 도시에서 열리는 행사다.

    파크시티는 주민 수가 7000명 안팎의 작은 마을이다. 주요 도로라고 해봐야 반경 2㎞가 채 안 될 정도다. 여기에는 대단히 잘 닦인 스키장이 있는데 활강 코스가 좋은 것으로 유명해서 2002년 동계올림픽 장소로도 쓰였다. 스키를 타는 데는 최적이다. 그건 거꾸로 말해서 영화제를 열기에는 최악일 수 있다는 얘기다.

    실제 영화제 상영극장 중 하나인 ‘이집션 시어터’를 비롯해 브로드웨이, 예로(Yerrow) 극장 등을 포함해 영화제작자나 배우 등과의 오픈 토크가 열리는 ‘필름 메이커 로지(Film Maker Lodge)’ 혹은 ‘뉴 프런티어 섹션’을 볼 수 있는 행사장 등은 스키 활강장 바로 아래에 조성돼 있다. 그곳 한가운데에 서 있으면 계곡 맨 꼭대기에서 아래로 내리꽂히는 칼바람을 맞게 된다는 것이다.

    파크시티는 영화제가 열리는 1월 말이면 기온이 급강하하고, 해가 떨어지는 저녁에는 체감 온도가 영하 20도 아래로 떨어진다. 낮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눈이 펑펑 내린다. 그 정도가 발목은 충분히 빠지고도 남을 만큼이다. 그 눈은 밤이 되면 꽝꽝 얼어붙는다. 이런 상황에서는 사실 영화제가 진행될까 싶은데 영화제가 열리는 파크시티, 솔트레이크시티, 프로보에 산재하는 16개 상영관에는 세계 곳곳에서 몰려든 유명 스타(올해는 트와잇라이트 시리즈의 여주인공 크리스틴 스튜어트와 ‘인디펜던스 데이’의 주연인 빌 풀만이 주목받았다)와 영화인, 영화팬으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첫사랑의 설렘을 안겨주는 곳

    웬만한 영화들은 일찌감치 ‘솔드 아웃’(매진)된다. ‘선댄스에서 영화 세 편을 보면 많이 보는 것’이라는 말은 그래서 나온다. 그만큼 영화제 자체의 인기가 절정이다. 살을 에는 눈보라에도 사람들은 꾸역꾸역 극장으로 몰려간다. 영화는 편안한 조건에서만 보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영화를 만들고, 그 영화를 나누는 행위는 세상에서 가장 낮은 자세를 요구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선댄스영화제의 공간은 역설적으로 그런 ‘초심’을 확인하게 한다.

    그곳에선 첫사랑을 다시 만나는 설렘 같은 걸 느낄 수 있다. 영화를 하다가 방향을 잃은 사람들, 인생을 살면서 길을 잃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일수록 선댄스영화제를 찾는다. 자신이 처음 어떠한 존재였으며 지금 그것을 어떻게 망각하며 살고 있는지를 새삼 깨닫게 해주기 때문이다. ‘영화로 장사를 하고 싶은 사람은 베를린이나 칸으로 가고 영화를 다시 한 번 사랑하고 싶은 사람은 선댄스로 가라’는 얘기는 그래서 나오는 것이다.

    영화제 측은 가능하면 많은 사람에게 영화를 볼 수 있는 기회를 공평하게 나눠주기 위해 ‘이웨이트리스트(ewaitlist)’라는 앱을 개발했다. 표가 매진된 작품이라도 예약 취소 등 변수가 있기 때문에 2시간 전에 이 앱을 통해 티켓을 재판매한다. 사람들은 2시간 1분 전 혹은 2시간 3분 전부터 카운트다운되는 앱을 보고 있다가 정확히 2시간 전에 열리는 전자 판매소의 버튼을 눌러 자신이 몇 번째 관객이 되는지를 확인한다. 순번에 따라 ‘관람가(available)’ 또는 ‘관람불가(unavailable)’란 자막을 보내준다. 이에 따라 영화관으로 갈지 말지를 정하면 된다. 이 앱 하나만으로도 선댄스영화제가 얼마나 관객 중심으로 편성돼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부산국제영화제 같은 우리 영화제들이 진작 벤치마킹했어야 할 기술, 아니 이미 실천하고 있어야 할 영화적 태도다.

    사람들은 다 똑같다. 생각하는 것,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그렇다는 것이다. 선댄스영화제 현장에서 상영되는 200편 안팎의 영화를 들여다보고 있으면 작품마다, 이들을 만든 감독과 프로듀서마다 세상과 세계에 대한 걱정과 근심이 가득하다는 게 절실하게 느껴진다. 올해의 화두는, ‘난민(Refugee)’과 ‘새로운 기후(The New Climate)’다. 불가리아에서 만들어진 일종의 페이크 다큐인 ‘착한 우체부(A Good Postman)’는 국경 접경지대에 살면서 계속해서 넘어오는 시리아 난민과 집시를 보며 어떻게 하면 한 명이라도 구제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늙은 우체부의 얘기를 다룬다. 이란 감독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영화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의 성인 버전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드는 이 영화는 지구상의 한 마을을 행복하게 만드는 일, 단 몇 명이라도 난민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미는 것이야말로 지구 전체를 구하고 세계 평화를 가져오게 하는 일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올해의 화두는 난민과 환경

    올해 선댄스에는 난민뿐만 아니라 국제 분쟁으로 인해 야기되는 여러 인권 문제를 다룬 작품들이 극영화 혹은 다큐멘터리로 다양하게 소개됐다. 시리아의 독재자 바샤르 알 아사드는 중동 지역에서뿐만 아니라 이곳 영화인들의 공적(公敵)임을 보여줬다. 그 작품들을 보면서 몇 년 뒤 한국의 박근혜 대통령이 영화에서 어떻게 그려질까를 살짝 상상해봤다.

    영화 미학은 사회적, 정치적 재앙을 먹고 자란다. 재난에 가까운 사건이 터진 후 10여 년이 지나면 예술적으로 뛰어난 영화들이 등장한다.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폭 투하 17년 뒤 알랭 레네가 ‘히로시마 내 사랑’을 만든 것도 같은 맥락이다. 미국의 9·11 테러 사태에 대해서도  언젠가 제대로 된 영화가 나올 것이다. 이번 영화제에는 1992년 LA흑인 폭동사태를 최종 정리한 다큐멘터리도 공개됐다.

    기후변화 문제는 이번 선댄스영화제가 특히 각을 잡고 프로그램을 대거 편성한 주제다. 엘 고어의 ‘불편한 진실’의 속편 격인 ‘불편한 진실 그다음(An Inconvenient Sequel)’은 영화뿐 아니라 ‘관객과의 대화’도 표가 동이 났다. 해수 온도의 상승으로 산호초가 죽어가고 있다는, 심각한 환경문제를 다룬 ‘산호초를 찾아서(Chasing Coral)’는 환경 다큐멘터리로는 처음으로 관객상을 받기도 했다.

    좋은 작품이 너무나 많이 나온 해였기에 영화 하나 하나를 논하기가 어려울 정도다. 망자와 생자의 엇갈린 사랑을 다룬 케이시 에플렉과 루니 마라 주연의 ‘유령 이야기(A Ghost Story)’, 인스타그램에 미쳐 있는 젊은 세대의 명암을 그린 ‘서부로 간 잉그리드(Ingrid Goes West)’, 한 시대를 풍미한 미셸 파이퍼 주연으로 뉴욕 중산층 여성이 홈리스로 전락하는 얘기를 그린 ‘키라는 어디에(Where Is Kira?)’ 등은 선댄스가 아니면 보기 힘든 작품이다. 이들 영화를 한국에서 볼 수 있을까. 온통 할리우드 상업영화만 걸고 있는 국내 극장가가 이들 영화에 눈곱만큼이라도 관심이 있을까. 이럴 때일수록 영화인들이 선댄스에 주목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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