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3월호

부자와 미술관

황량한 해변의 문화 오아시스

아르켄 현대미술관

  • 최정표 |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jpchoi@konkuk.ac.k

    입력2017-02-28 13:4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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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르켄이란 이름은 노아의 방주(Ark)에서 따왔다.
    • ‘해변의 난파선’이란 구상에 따라 배 모양의 미술관을 짓고 주위 모래밭을 파내 해자(垓字)를 만들었다. 이렇게 탄생한 ‘예술의 섬’은 신도시 개발의 결정판으로 꼽힌다.
    현재 활동 중인 화가의 수가 과거 전체 화가의 수보다 더 많을지도 모른다. 인구도 많아졌고, 소득도 높아졌고, 예술도 대중화했기 때문이다.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많은 예술가의 작품을 사회는 어떻게 소화하고 있을까. 미술관들은 이들의 작품을 어떻게 취사선택하고 있을까.

    소장품이 300만 점이 넘는다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같이 큰 미술관도 모든 예술가의 작품에 관심을 갖기는 어렵다. 이미 검증이 끝나고 수요가 확실한 작가의 작품도 제대로 수용하지 못하는데 아직 검증 단계에 있는 컨템퍼러리 작품은 소홀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오늘날 이들만을 위해 따로 만든 것이 컨템퍼러리 미술관(museum of contemporary arts)이다. 컨템퍼러리 미술관은 현재 활동 중인 이 시대 작가들의 작품을 취급한다. 적어도 20세기 이후 또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작품을 다룬다. 더러는 전통 미술관보다 더 큰 인기를 누리기도 하는데, 새로운 볼거리가 있고 시대정신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덴마크의 코펜하겐에도 놀랄 만한 컨템퍼러리 미술관이 있다. 바로 ‘아르켄 현대미술관(Arken Museum of Modern Art)’이다. 코펜하겐에서 남서쪽으로 20여km를 가면 해변의 황량한 모래언덕에 화물창고 같은 커다란 건물이 있다. 주위에는 민가도 없고 건물도 없어 마치 사막 한가운데 달랑 서 있는 거상들의 대형 천막 같기도 하다. 이것이 미술관이라면 컨템퍼러리 미술관일 수밖에 없음을 겉모습에서 금방 알아차릴 수 있다. 이런 외양에 전통적인 아카데미즘 그림이 전시된다면 갓 쓰고 자전거 타는 꼴일 수 있으니 말이다.

    컨템퍼러리 미술관은 현대미술관이라고도 한다. 둘을 구분하는 기준은 없고 편의에 따라 어느 하나를 사용한다. 내 경험에 의하면 미국에선 주로 컨템퍼러리라는 명칭을 쓰고 유럽에선 현대로 쓰는 경우가 많다. 아르켄도 현대미술관이라고 이름 붙였다. 그러나 소장품과 전시품은 모두 컨템퍼러리 작품이다. 공식적으로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작품을 다루고 있다고 하나 대부분 1990년대 이후 작품이다.

    아르켄은 덴마크와 스칸디나비아 국가의 작가들을 우대하지만 국제적으로 알려진 외국 작가의 작품도 존중하고 있다. 미술관의 영구 소장품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작품 400여 점인데 스칸디나비아 국가에서는 컨템퍼러리 작품의 최고 컬렉션으로 인정받고 있다.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고 있는 동시대 작가의 작품은 수시로 전시회를 개최하기 때문에 소장품 이외의 훌륭한 컨템퍼러리 작품도 감상할 수 있다. 아르켄은 최고의 모더니스트 작가뿐만 아니라 재능 있는 신인 작가의 전시회까지 개최한다. 또 ‘아르켄 상’을 제정해 한 명의 동시대 작가에게 매년 10만 덴마크 크로네(한화 2000만 원)의 상금을 수여하고 있다.



    동시대 작가들에 주목하다 

    아르켄은 세계적인 컨템퍼러리 작가들과 인연이 깊다. 데미언 허스트(Damien Hirst·1965~ )는 그중 대표적인 인물이다. 특히 유럽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안젤름 라일(Anselm Reyle), 올라퍼 엘리아슨(Olafur Eliasson), 시린 네샤트(Shirin Neshat), 볼프강 틸만스(Wolfgang Tillmans), 드라그셋과 엘름그린(Ingar Dragset and Michael Elmgreen), 아이웨이웨이(Ai Weiwei),  제페 하인(Jeppe Hein), 탈 아르(Tal R) 등은 아르켄이 중시하는 컨템퍼러리 작가들이고 이들 전시회가 자주 열린다.

    안젤름 라일(1970~ )의 작품은 매우 난해하다. 추상화이기 때문이다. 아르켄이 기증받은 라일의 작품 9점 모두 추상화인 데다 대부분 제목이 무제(untitled)다. 추상화는 관람자 스스로 감상에 책임을 져야 한다. 구체적 제목이라도 있으면 거기서 어떤 힌트라도 받지만 무제여서 관람자는 더욱 난감하다. 관람자도 무심이라고 받아치면 되지만 나름대로 어떤 것을 찾아낼 수 있다면 더 좋지 않을까.

    라일은 독일 튀빙겐에서 태어났고 슈투트가르트와 카를스루에에서 미술학교를 다녔다. 1997년 베를린으로 옮겨가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지금도 독일 여기저기에서 강의를 한다. 2009년부터 함부르크대에서 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라일의 작품은 시장에서 아직 안정적인 가격이 형성되지 않은 상태다. 2007년 7억 원을 기록한 후 몇 차례 유찰되다가 최근에는 안정세로 돌아섰다. 컨템퍼러리 작가들은 여전히 검증 단계에 있기 때문이다.  

    볼프강 틸만스(1968~ )는 독일 사진작가다. 사진작가로는 처음, 그리고 영국인이 아닌 사람으로서도 처음 터너상을 받았다. 지금은 베를린과 런던에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해안가 황무지의 재탄생

    데미언 허스트는 세계 미술계의 기린아다. YBA(Young British Artists)의 선두주자이고 터너상(Turner Prize) 수상자다. 작품뿐만 아니라 행동도 기이해 항상 화제를 몰고 다닌다. 한때는 마약과 술에 빠져 10여 년 동안 어려운 시기를 지내기도 했다. 현역 작가로는 가장 돈이 많은 작가이기도 하다. 재산이 3억 달러 이상이라고 언론은 보도하고 있다. 1990년대에는 영국의 최대 컬렉터인 찰스 사치와 동업자라고 할 정도로 친밀했으나 잦은 마찰로 지금은 완전히 갈라섰다.

     화가는 화랑이나 딜러를 통해 작품을 판매하는 것이 정석이다. 경매는 작가의 손을 떠난 작품을 거래하는 곳인데 허스트는 이 원칙을 깨고 작가가 직접 경매시장의 판매자로 나섰다. 화랑을 거치지 않고 런던 소더비를 통해 직접 경매에 나선 것이다. 온갖 비난이 쇄도했지만 허스트는 개의치 않고 밀어붙였다. 결과는 대성공이었고 218점을 팔아 무려 2억 달러라는 판매액을 챙겼다.

    아르켄은 코펜하겐 카운티가 만든 공립 미술관이고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 공익 미술관이다. 1996년에 개관해 불과 20년밖에 되지 않은 새 미술관이지만 이미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미술관으로 성장했다. 정부의 노력에 민간 부문이 적극적으로 협조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개관식에는 마르그레테 여왕이 참석할 정도로 처음부터 국가가 공을 들인 미술관이다.

    아르켄이 들어선 코펜하겐 남쪽 해안가 황무지는 1960년대부터 개발이 논의됐다. 쾌적한 주거지역으로 개발해 코펜하겐 시내 거주자들을 이주시키겠다는 계획이었다. 이 계획이 실행되자 인구가 증가하기 시작했다. 거기다가 덴마크로 이민 온 외국인들도 이곳으로 몰려들었다. 쿠르드, 터키, 파키스탄 등에서 들어온 이민자들에게 특히 인기가 있었다. 그 결과 이 지역은 인구가 빠른 속도로 증가했고 덴마크에서 처음으로 대규모 다국가 다문화 지역이 만들어졌다.

    인구가 늘면서 문화정책도 강화되고 다양한 문화시설이 들어섰다. 정부는 이들에게도 수준 높은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려고 노력했다. 1990년대 초부터 이 지역을 문화 중심 공간으로 바꾸는 프로젝트를 마련했고 정치권에서도 이를 지원하고 나섰다. 이런 과정에서 정부는 아르켄을 구상하게 되었고, 아르켄 프로젝트는 20세기 후반 덴마크의 최대 문화 투자가 됐다. 이처럼 아르켄은 코펜하겐 개발 프로젝트의 한 부분으로 시작됐다.

    공개 경쟁을 통해 로버트 룬트가 미술관 설계자로 선정되면서 아르켄 프로젝트는 본격적으로 실천에 옮겨졌다. 1996년 미술관 이름이 아르켄으로 정해지고 3월에 개관식이 열렸다. 개관 전시회에는 에밀 놀데, 페르 키르케비(Per Kirkeby) 등의 작품이 전시됐고 28만 명 이상의 관람자가 다녀갔다.

    2001년에는 누적 관람객 수 100만 명을 기록했고, 2007년에는 200만 명을 넘어섰다. 현재는 1년에 20만 명이 넘는 관람객이 다녀간다. 대대적인 확장 공사를 거쳐 2008년에는 전시 공간이 두 배로 늘어났다. 2009년에는 입구를 확장해 새로운 용도의 여러 공간을 만들었다. 불과 20년 사이에 어디 내놓아도 손색없는 컨템퍼러리 미술관이 만들어진 것이다.

    문화시설은 신도시 또는 새 주거지역 개발의 결정판이다. 인간이 사는 곳임을 입증해줄 뿐만 아니라 인간을 끊임없이 끌어들이는 촉매제이기 때문이다. 이런 문화시설의 대표주자가 미술관이다. 아르켄은 그런 기능을 십분 수행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세종시, 분당, 일산 등을 개발할 때 정부가 미술관을 유치하기 위해 고민했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26세 신예 건축가의 솜씨

    아르켄은 그 이름(Arken)을 노아의 방주(Ark)에서 따왔듯이 ‘배와 해양’이 미술관의 핵심적 주제다. 아르켄을 처음 구상했을 때는 해변의 난파선을 상징화해서 파도가 부서지는 바닷가에 미술관을 짓기로 했다. 그러나 안전과 보존상의 이유 때문에 이 구상은 접고 내륙으로 들어와서 건물을 지었다. 지어놓고 보니 바다로부터 너무 떨어졌고 본래 의도했던 해양이라는 콘셉트가 살아나지 않았다.

    고민 중이던 차에 어느 독지가의 기부로 미술관 주위의 모래밭을 파내고 해자(垓字)를 만드는 공사를 했다. 공사가 완공되고 2016년 해자가 물로 채워지자 미술관은 섬이 됐고 다리를 건너야만 도달할 수 있었다. 그리고 본래 의도했던 주제도 살아났다.

    배 모양으로 설계된 건물이 물에 떠 있는 형상은 해변 풍경과 아주 잘 어울렸다. 건물 자체가 멋진 예술 작품으로 재탄생했다. 배 모양으로 지은 미술관 건물은 더욱 돋보이고 해변의 넓은 모래밭과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다. 하늘을 향해 뾰족하게 솟은 건물의 한쪽 끝은 배의 선미다. 미술관은 바다에 떠 있는 배이자 해변에 좌초해 있는 배이기도 하다. 전시실을 돌다보면 바깥 풍경을 내다보며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곳도 많아 실제로 마치 배 안에 들어와 있는 느낌을 가질 수도 있다.

    미술관의 해안 쪽 2층에는 통유리로 바깥이 완전히 노출된 카페가 있다. 미술관이 배라면 카페는 그 배에 매달려 있는 구명보트인 셈이다. 밖에서 미술관을 바라다보면 이런 구성이 분명해진다. 카페에서는 바다와 해변을 완전히 조망할 수 있다. 이곳에서의 차 한잔은 미술관 방문의 운치를 한층 북돋워준다.

    아르켄은 덴마크의 신예 건축가 로버트 룬트(Soren Robert Lund·1962~ )의 설계로 지은 개성 있는 첨단 건축물이다. 룬트는 1982년부터 1989년까지 왕립예술학교에 다녔는데 재학 중이던 1988년 아르켄 미술관 공모전에 당선됐다. 그의 나이 불과 26세였다. 그의 실력이 그렇게 출중했는지, 심사위원들의 안목이 대단했는지, 이 건물은 1996년 개관 이후 곧 국내외적으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미술관 주위는 온통 모래밭이고 여기저기 조각품이 설치돼 있다. 해자 안에도, 해자 밖에도 조각이 있다. 걸어서 미술관 주위를 한 바퀴 돌아보는 것도 필수 코스다. 걸으면서 작품 감상뿐만 아니라 주위의 색다른 풍광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미술관 건물 전체도 하나의 작품으로 감상할 수 있다.



    최 정 표
    ● 1953년 경남 하동 출생
    ● 미국 뉴욕주립대 박사(경제학)
    ● 공정거래위원회 비상임위원, 건국대 상경대학장
    ● 저서 : ‘경제민주화, 정치인에게 맡길 수 있을까’ ‘재벌들의 특별한 외도’ ‘한국 재벌사 연구’ ‘공정거래정책 허와 실’ ‘한국의 그림가격지수’ 등
    ● 現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경실련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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