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3월호

정여울의 책갈피 속 마음여행

행복한 척, 착한 척, 괜찮은 척하지 않기

  • 입력2017-03-07 11:3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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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의 다른 행동, 가식적인 말, 억지로 하는 일들은 모두 언젠가 그 진실을 드러냅니다. 작은 틈만 있으면 되지요. 그 틈새로 튀어나오는 것들을 분석하는 일이 바로 정신분석입니다.

    -김서영, ‘프로이트의 환자들’ 중에서



    사회생활을 잘하는 게 정신건강에 좋은 걸까. 구김살 없는 성격은 건강한 걸까. 우울과 불안이 느껴질 때마다 ‘나는 괜찮아’라고 우격다짐하는 것은 정말 괜찮은 것일까. 이 모든 것이 ‘의식의 가면’이라는 것을 우리는 자주 잊고 산다. 직장에서 버텨내려고, 모난 사람으로 보이지 않으려고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다채로운 가면을 바꾸어 쓰고 살아가니까. 그러는 동안 우리의 무의식은 자꾸만 달아날 틈새를 찾는다. 그렇게 행복한 척, 괜찮은 척하는 것은 진짜 너 자신이 아니잖아. 너도 할 말이 있잖아. 용감히 나서서 부당함을 비판해야지. 하지만 사람들 앞에서는 좀처럼 의식의 가면이 완전히 벗겨지지 않는다. 그런데 억압된 것은 반드시 귀환한다. 짓눌린 감정, 꺼내지 못한 말, 표현하지 못한 행동은 언젠가는 ‘증상’이 돼 되돌아온다. 뼈 있는 농담 속에, 통제하지 못하는 실수 속에, 그리고 마침내 마그마처럼 폭발하는 분노를 통해.



    ‘프로이트의 환자들’은 ‘무의식의 목소리를 듣는 법’을 훈련함으로써 의식과 무의식의 분열을 극복하는 방안을 제시한다. 저자는 ‘프로이트는 모든 것을 성적인 문제로 환원한다’는 프로이트 비판론에 정면으로 맞서면서, 프로이트식 정신분석이 여전히 유효함을 수많은 사례를 통해 증명하고자 한다. 또한 프로이트 전집 중에서 무의식의 탐구에 도움이 될 만한 구체적인 사례를 모아 ‘100만 인을 위한 정신분석’에 도전한다. 아픈 사람, 심각한 증상을 보이는 사람, 정신과 치료를 받는 사람뿐 아니라 건강해 보이는 사람, 전혀 문제가 없어 보이는 사람에게도 정신분석은 커다란 도움이 된다.



    솔직해지자

    그렇다면 심리적으로 건강한 상태로 회복된다는 것은 어떤 것을 의미할까. 예컨대 어떤 남편이 아내를 데리고 와서 “선생님, 제 아내가 신경증을 앓고 있습니다. 저희는 별로 행복하지 않아요. 제발 제 아내를 고쳐주셔서 저희가 다시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라고 말한다면, 그는 정신분석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이다. 프로이트는 그의 아내가 분석을 통해 주체적인 사람이 된 뒤에는 십중팔구 남편을 떠날 거라고 생각한다. 부모가 “아이가 말을 지독하게 듣지 않는다”면서 제발 좀 ‘건강하게, 말 잘 듣게’ 고쳐달라고 한다면, 그 또한 정신분석의 본연과는 다른 것이다. 부모는 자신들이 생각하는 아이들의 ‘건강’ 탓에 때로는 폭압적으로 아이들을 길들이려 한다. 부모에게 정신적으로 건강한 아이란 ‘말 잘 듣는 아이’ ‘순종적인 아이’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정신분석에서 말하는 건강이란 ‘행복한 인간’이라기보다 주체적인 인간, 책임지는 인간, 자신의 부족함도 장점도 차별 없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이라는 의미에 가깝다. 항상 밝은 표정을 짓는 인간이나 순종적인 인간, 현재에 만족하는 인간이 결코 ‘건강하다’고 볼 수는 없는 셈이다. 불안이나 우울을 느끼더라도 그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때로는 그 감정 속에 빠져도 볼 수 있는 사람, 그 감정에 ‘솔직한 사람’이야말로 정신적으로는 더욱 건강한 셈이다.

    저자는 프로이트식 정신분석의 매력을 ‘사소한 일’에서 아주 중요한 메시지를 찾아내는 힘이라고 설명한다. “모두들 사소한 일이라 부르는 일상의 이야기를 정신분석은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 존중한다. 모든 감정, 모든 실수, 모든 기억을 소중히 감싸는 학문이 바로 정신분석이다. 정신분석은 나, 너, 우리를 이해하기 위한 필수도구다. 정신분석은 매순간 우리와 함께하며 우리가 미처 보지 못했던 세상 여기저기를 가리키는 손가락이 되어야 한다. 바로 이것이 꿈, 증상, 실수들의 분석을 통해 프로이트가 궁극적으로 꿈꾸었던 세상이다.” 아픈 사람들을 위한 즉각적인 치료 도구로서의 정신분석보다는 모든 사람의 의식구조를 궁극적으로 해명할 수 있는 정신분석의 담론이 여전히 힘을 발휘하는 지점이다.

    저자는 의식과 무의식의 차이, 의식의 통제대로 말을 듣지 않는 무의식의 반란이야말로 단지 고쳐야 할 증상이 아니라 ‘자유’를 찾아가는 과정임을 강조한다. “무의식은 의식과는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의식이 행복과 사랑과 기쁨에 대해 이야기할 때 무의식은 그 반대의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있다. 내가 생각할 때 나는 정말 효녀인데, 무의식은 어느 순간 내가 그렇지 않다는 증거를 제시한다. 나는 이 사람을 정말 사랑하는데, 무의식적 실수들은 내가 이 사람을 떠나고 싶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무의식의 진실은 의식의 일관성을 깨뜨린다. 하지만 의식의 일관성이 깨질 때 우리는 자유로워진다.” 더 이상 착한 척, 행복한 척, 기쁜 척을 할 필요가 없어지는 상태.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하며 ‘나는 괜찮다’고 다짐할 필요가 없어지는 상태. 그것이 정신분석이 추구하는 자유로운 주체 되기의 첫걸음이다.



    무의식의 진실

    정신분석에서 ‘증상’은 환자의 도피처일 때가 많다. 환자가 때로는 이상 징후를 치료하기를 거부하고, 증상 자체를 사랑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증상을 통해 ‘얻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외출을 싫어하는 남편이 아내가 밖에 나가자고 하면 갑작스레 천식이 도진다든지, 시험에 공포를 느끼는 학생이 시험 때가 되면 정말로 장염에 시달리는 것은 ‘증상’을 통해 위기 상황으로부터 도피하려는 무의식이 작용한 것이다. 우리는 증상에 차분히 귀 기울임으로써 치유를 향한 첫걸음을 시작할 수 있다. 무의식의 목소리를 부정하고 그저 모든 것을 통제하고 조절하고자 하면, 그것이 곧 불행의 시작이다. 증상 속에는 고통만 있는 것이 아니라 ‘치유의 열쇠’가 들어 있다.



    치유의 열쇠

    예컨대 프로이트는 한 남자가 시도 때도 없이 ‘마리아!’라고 외치는 틱 증상을 보이자, 정신분석을 통해 다음과 같은 결론에 이른다. 환자는 학창 시절 마리아라는 소녀를 좋아해 항상 마음속으로 ‘마리아’라는 이름을 되뇌곤 했다. 그런데 어느 날 수업 도중 ‘마리아’를 큰소리로 외치는 증상이 나타났다. 이러한 틱 증상은 수십 년이 지나 그녀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게 된 뒤에도 지속된다. 지나치게 억압하려 했기에, 과도하게 통제하려 했기에 오히려 ‘마리아’라는 짓눌린 이름은 틱이라는 증상 또는 실수를 통해 무의식의 고통을 드러낸 것이다.


    “피해야겠다는 생각을 수백 번 다시 해도 무의식이 그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다면 전속력으로 도망치다 제일 마지막에 도달하는 곳이 바로 내가 피해 달아난 그 사람 또는 그것이 된다.”

    김서영, ‘프로이트의 환자들’ 중에서


    이렇듯 마음속 이야기는 ‘증상’이라는 무기로 신체를 공격한다. 정신분석의 키워드는 ‘인정’이다. 그것이 아무리 견디기 힘든 고통일지라도,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것. ‘그 사람만 없었어도 내가 이렇게 되지 않았을 텐데’라면서 불행의 원인을 남의 탓으로 돌리는 것이 아니라 분명 내게 선택권이 있었는데도 용감해질 기회, 진정한 내 자신이 될 기회를 놓쳐버리는 것. 거기서 우리의 슬픔이 시작된다. 타인이 내 삶을 쥐락펴락한다고 느낀다면, 그 사람이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둔 나 자신에게도 책임이 있다. 그리고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 나를 보듬고 쓰다듬기 시작해야만 치유는 가능하다. 저자는 “세상과의 싸움이 가능해진 상태, 정신분석은 그것을 ‘치유’라고 부릅니다”라고 적었다. 치유는 ‘행복한 상태’로 곧바로 나아가는 것이라기보다는 ‘행복을 스스로 쟁취할 용기’를 가지는 상태에 가깝다. ‘행복한 사람’이 되게 만든다기보다는 ‘주체적인 사람’이 되도록 만드는 것이 정신분석의 진정한 목적이다. 착한 척, 기쁜 척하지 않기, 행복한 척하지 않기. 바로 그 솔직한 받아들임에서 진정한 치유는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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