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4월호

특집 | 이제는 대선이다 - 김종인과 개헌 ‘빅텐트’

“제3지대 빅텐트는 없다, 사람 대 사람 구도”

김종인 전 민주당 비대위 대표

  • 정현상 기자 | doppelg@donga.com

    입력2017-03-17 19:4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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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통령) 욕심 없다. 인생이 즐거운 자리 아니다”
    • 윤여준 ‘제3지대선 김종인만 한 후보 없다’
    • “나 국회의원 엔조이하는 거 안 해”
    • “순교는 정치적으로 내 할 일 다 한다는 뜻”
    • 민주당의 가장 큰 문제는 소수파 불인정
    • 제왕적 대통령의 역사는 망명·피살·탄핵·자살
    “김종인을 얻는 자는 천하를 얻고, 김종인을 잃는 자는 천하를 잃게 되리라.”

    정치권에 떠도는 이 말이 실감 나는 때다. 여야 핵심 인사들이 저마다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 대표를 만나기 위해 줄을 섰다. 김 전 대표는 민주당 탈당 뒤 손학규, 유승민, 남경필, 인명진, 김무성 등 여야 인사들을 꾸준히 만나왔다.



    “내가 먼저 만나자고 하지 않았다”

    정치권은 그가 개헌과 반문(反문재인)을 고리로 한 빅텐트를 치려는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대통령 임기 3년 단축과 분권형 개헌을 강조하면서 제3지대 연대를 발판으로 출마를 검토하고 있다는 것이다. 제3지대는 친문(친문재인)과 친박(친박근혜)을 제외한 영역을 말한다.

    기자는 3월 중순 밤늦게 그의 집에 들렀다가 인터뷰를 하게 됐다. 며칠 뒤 다시 서울시내 한 사무실에서 만났고, 향후 행보 등에 대해 두루 묻고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언론에서는 흔히 그가 제3지대에서 빅텐트를 형성해 직접 출마하는 것 아니냐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그런데 김 전 대표는 기자에게 “빅텐트는 없다. 사람 대 사람 구도”라고 정리했다.

    “빅텐트라는 말을 누가 했는지 모르지만 나는 내 입으로 빅텐트라는 말을 해본 적이 없다. 제3지대라는 게 지금 어디 있나. 각자 출마하는 상황인데.”

    ▼ 그러면 탈당 이후 왜 매일 여야 인사들을 만나고 다니는가.

    “오해하지 말라. 내가 자진해서 만나자고 한 사람은 한 명도 없다. 그들이 만나자고 하니 만난 거지. 내가 뭔가를 도모하고 나 자신을 위해 광폭행보를 했다고 언론이 보도한 건 사실과 다른 얘기다. 그리고 누구와 만나도 언론에 그걸 알려본 적도 없다.”

    ▼ 어쨌든 그렇게 만나서 정치가 가야 할 방향 등에 대해 의견을 나누는 것 아닌가.



    ‘비례대표 2번 문재인이 제안’

    “내가 만나자고 했어야 내가 이니셔티브(주도권)를 쥐고 얘기를 하지. 상대방이 만나자고 했으니 상대방의 말을 듣는 거다. 상대방 얘기를 듣다가 어느 정도 의견이 맞으면 거기에 대해 얘기하기도 하는 거다.”

    김 전 대표는 탄핵심판 선고 직전인 3월 8일 탈당을 선언했다. 비례대표 의원은 탈당하면 의원직을 자동으로 상실한다. 1월 말 그는 탈당 가능성을 내비쳤고, “2월 말까지 기다려보라, 순교하겠다”는 말도 했다. 김 전 대표는 개혁입법 명분을 움켜쥐고 있었다.

    “지난해 총선 때 셀프공천(스스로 비례대표 2번에 내정)이니 뭐니 해서 인격적 모독을 받았다. 그때 사실은 정치를 그만두려고 했다. 그런데 공천을 받고 선거를 기다리는 많은 사람을 생각해서 일단 참고 선거를 끝까지 이끌고 가자고 생각했다. 그리고 8월에도 한차례 더 회의가 들었는데, 정기국회에서 선거 때 약속한 상법개정안 등 개혁입법이 실현되는지까지는 보고 싶었다. 그러다 탄핵 사건이 나오게 됐고 2월까지 왔는데, 임시국회에서도 아무런 소득이 없었던 거 아닌가.”

    ▼ 아직도 지난해 총선 때 ‘셀프 공천’에 대해 젊은 층이 좋지 않게 생각한다고 한다.

    “그건 그 사람들이 나를 공격하기 위해 만든 말이다. 내가 선거를 이끌 장수 노릇을 하자면 필요하니 내가 비례대표를 맡은 거다. 내가 무슨 의원직을 꼭 하겠다고 욕심 부린 것으로 생각하면 그건 착각이다. 그런 생각에 집착했다면 이번에 어떻게 의원직을 버렸겠나. 비례대표 2번은 문 전 대표가 먼저 제안했다.”

    김 전 대표는 지난해 분열로 내홍을 앓던 민주당 비대위 대표를 맡아 총선을 승리로 이끌었지만 아직도 대중적 지지도는 높지 않다. 그런 그를 정치인들은 왜 모셔가려 안달할까.

    대선을 코앞에 둔 시점에 김종인이라는 인물을 다시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은 3월 13일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제3지대에선 김종인만 한 후보 없다”라고 말했다. 윤 전 장관은 경제와 안보 위기가 겹쳐서 올 때 경험이 많아 노련하고 과단성 있는 리더십이 필요한데, 그동안 보여준 김 전 대표의 모습이 거기에 가장 부합한다고 여기는 사람이 많다고 부연했다.

    탄핵 뒤 보수와 진보의 결집이 더 굳어지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지만 김 전 대표는 보수와 진보로 나뉘어 있는 현재의 정치 구도를 깨뜨리고 싶어 한다.

    “나는 진보, 보수를 다 겪어봤다. 진보정권 때 경제 운영이 어땠나. 똑같이 재벌 위주의 경제였다. 변증법적으로 생각하면 정(正)과 반(反)이 지났으니 이젠 합(合)이다. 진보, 보수를 따질 시대가 지났다. 우리가 당면한 현안이 무엇인지 제대로 인식하고 해결책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한다. 지금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갈림길에 서 있다고 생각한다. 두 가지 길이 정해져 있는 거다. 이전 방식대로 선거에서 적당히 지도자 뽑아 옛날 방식으로 갈 것이냐. 즉 제왕적 대통령제의 모순, 정경유착을 보고 그대로 갈 것이냐. 아니면 새로운, 제대로 된 지도자를 뽑아 정치·경제를 쇄신하고 희망적이고 새로운 나라의 기초를 다질 것이냐. 둘 중 하나다. 이건 국민의 몫이다. 막스 베버는 국가 지도자의 자질은 그 국민의 수준을 능가하지 못한다고 했다. 지금은 비정상적인 선거를 앞두고 있다. 그래서 더욱 국민이 냉철한 판단력을 갖고 투표에 임해야 한다.”

    김 전 대표는 일종의 책임감 때문에 고민하는 것 같았다. 뜬금없이 “내가 정치권에 들어오지 않았다면 현재와 같은 상황이 오지 않았을 거라고 얘기하는 이들이 있다”는 말을 꺼냈다.

    ▼ 지난해 1월 15일 민주당에 들어가 비대위 대표로 당을 이끌지 않았더라면, 또 총선을 승리로 이끌지 않았더라면, 민주당이 다시 패권지대로 바뀌지 않았을 것이란 말인가.

    “나에게 그 책임을 지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심지어 탄핵도 그 때문에 초래된 거라는 시각도 있다.”

    ▼ 당시 비대위 대표로 초빙될 때 어떻게 민주당에 가게 됐고, 어떤 과정이 있었나.

    “지난해 1월 초 제주도에서 쉬고 있었다. 다시는 정치에 관여하지 않겠다고 작심하고 있던 때였다. 그런데 민주당 인사들이 자꾸 전화해서 만나자고 했다. 서울에 돌아오니 민주당 중진의원이 자기 당의 상황을 좀 정돈해달라고 하고, 문재인 대표도 만나달라는 거였다. 그러다 1월 12일인가 밤 10시경에 문재인 대표가 우리 집으로 찾아왔다. 비례대표 2번을 드릴 테니 우리 당에 와서 당의 상황을 살펴달라고 했다. 처음에 난 거절했다. 조부(가인 김병로 초대 대법원장)가 정당을 만들 때 정치인들이 얼마나 거짓말을 잘하는지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에 문 대표의 말을 믿을 수 없다고 했다.

    그런데 한편으로 우리나라에 야당이 소멸돼버리고, 1당 장기집권으로 갈 경우 일본처럼 ‘잃어버린 10년’을 겪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일본의 경우 자민당이 50년 이상 장기집권하면서 나라에 변화를 가져오지 못한 탓에 그런 경제적 위기를 겪었다. 그래서 야당을 살려서 국민이 원할 때 수권할 수 있도록 해둔다면 우리 경제에도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 다시 두 사람은 헤어졌다. 문 전 대표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

    “현 상황에 대한 인식을 전부 다 객관적이고 철저하게 하면 좋겠다. 그리고 뜻이 맞지 않는 사람도 포용하는 그런 아량을 갖는 것이 좋은 지도자의 덕목이라고 본다.”

    3월 14일 민주당 대선주자 합동 토론회에서 문 전 대표는 “김 전 대표의 탈당은 혁신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떠난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에 대해 김 전 대표는 국민대 강연 뒤 기자들과 만나 “패권정치를 하는 것이 혁신이냐, 문재인 전 대표가 무엇을 혁신했나”라고 비판했다.



    “포용할 줄 알아야 좋은 지도자”

    ▼ 민주당 경선을 앞두고 안희정 지사가 문 전 대표를 힘겹게 추격하고 있다.

    “민주당 내부적으로는 밖에서 보는 것보다 문 전 대표가 더 앞서 있다. 그만큼 민주당 구조 자체로는 누구도 당내 경선에서 문 전 대표를 이길 수 있는 사람이 없다. 경선 룰이 공정하지 못하다.”

    ▼ 완전국민경선제, 결선투표제 등에 후보자 대부분이 동의했는데.

    “민주당이 지도부를 개편하면서 친문의 당으로 짜여버렸다. 내가 민주당에 대해 가장 회의를 느끼는 것이 뭔 줄 아나. 지난해 1월 내가 민주당에 가기 전의 민주당 상황이 총선 이후 그대로 재현됐다. 그러니 지도부 개편할 때 선출된 이들이 63~66%의 비슷한 비율로 일사불란하게 표를 얻었다. 최고위원, 여성위원장, 노인회장, 청년위원장 다 그랬다. 소수 계파를 포용하지를 못했다. 문 전 대표는 자신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이 저절로 그렇게 됐다고 얘기한다. 그러나 당의 지도자가 되려면 그것을 조정할 능력을 지녀야 한다. 반대 세력이 없으면 결국 그 당은 효율도 안정도 없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겪은 게 바로 그런 것 아닌가. 맹목적으로 찬성하는 사람하고만 모든 걸 해나가니 세상을 모르게 됐던 거고, 결국 파면에까지 이른 것 아닌가.”



    암탉이 밉다고 목을 비틀어서야

    ▼ 재벌개혁에 대해선 어떤 생각을 갖고 있나.

    “나는 재벌개혁이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재벌을 어떻게 개혁하나. 제도를 확립해서 그걸 지키도록 감시하는 것이 중요한 거다. 암탉이 밉다고 목을 비틀면 암탉이 알을 낳지 않아서 먹을 게 없어진다. 그와 마찬가지로 재벌이 밉다고 목을 틀어쥐고 경제활동에 지장을 초래하면 경제는 더 어려워진다. 그러니 재벌기업이 국가가 정한 룰을 제대로 지켜나가도록 철저히 감시해야 한다. 그런 룰을 새롭게 설정하자는 것이다. 암탉이 앞마당에서 이리저리 쑤시고 다니며 먹이를 다 쪼아 먹어버리면 안 되니까 원을 그려서 그 안에서 모이를 먹으라고 하면 된다.”

    ▼ 이번 탄핵심판의 교훈은 무엇인가.

    “장차 대통령 될 사람이 다시는 그런 어리석음을 반복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제왕적 대통령제를 바꿔서 국가의 모든 권력을 혼자서 휘두르는 그런 제도를 벗어나야 한다. 지난 70년 동안 제왕적 대통령의 역사를 보라. 한 명은 망명하고, 한 명은 부하에 의해 살해되고, 한 명은 자살하고, 한 명은 탄핵됐다. 이런 모순을 바꿔야 한다.

    그리고 재벌이 비선을 찾았고, 그 비선이 대통령에게 영향을 미쳐서 최순실 사태가 생긴 것 아닌가.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정권이 몇 번 바뀌어도 이것을 해결하지 못했다. 1988년 정치민주화 이후 경제세력이 정치세력을 압도하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다. 국회는 대통령은 탄핵할 수 있어도, 재계에는 제대로 저항하지 못한다. 그래서 경제민주화가 필요한 것이다. 이것을 이루려면 최고 통치자의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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