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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욱의 대선 삼국지

“강자를 섬기며 때를 기다렸건만”

안희정, 적벽대전을 치르지 못한 손권

“강자를 섬기며 때를 기다렸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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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동의 맹주를 꿈꾸던 오나라 손책은 독화살을 맞고 쓰러지자 열아홉 살 아우 손권에게 나라를 맡기며 이렇게 당부한다. “강동의 많은 인재를 데리고 조조와 유비한테 맞서서 싸우는 일은 네가 나보다 못할 것이다. 그러나 현명한 사람을 부려서 이 땅을 보전하는 일은 내가 너만 못하다. 너는 늘 아버지와 나의 어려웠던 일을 생각하면서 대업을 도모해라.”
“강자를 섬기며 때를 기다렸건만”

[캐리커처· 디기리]

한달 사이에 참 많은 일이 일어났다. 삼성의 이재용 부회장이 구속됐고, 보수진영은 세력을 결집해 탄핵 반대 집회를 열었으며, 황교안 권한대행은 특검 수사 연장을 불허했고 결국 특검 수사는 종결됐다. 이런 가운데 헌법재판소는 3월 10일 오전 11시,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인용했다. 현직 대통령이 파면되는 일대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그간 야권 지지자들 사이에서 회자되던 이른바 ‘벚꽃 대선’이 현실로 다가왔다. 이제 60일 안에 각 당은 경선을 통해 후보를 선출하고 본선을 준비해야 한다.

먼저 ‘빅 3’ 후보를 보유한 더불어민주당의 상황을 살펴보자. 문재인 전 대표가 부동의 1위 자리를 지키고 있고, 한때 20%의 지지율을 기록한 안희정 충남지사(이하 안희정으로 표기)는 ‘대연정’과 ‘선의’ 발언 이후 하향세다. 이재명 성남시장은 한 자릿수 지지율을 획득하고 있으나 반등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국민의당 안철수 의원은 두 자릿수 근처에서 오락가락하고 있고, 보수진영에서는 현재까지 두각을 나타내는 후보는 없으나 황교안 권한대행이 대안으로 떠오르면서 안희정을 제치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오고 있다. 그러나 황 권한대행은 아직 출마 여부를 밝히지 않은 상황이므로 이번 호에선 야권 2위 후보인 안희정을 중심으로 이야기하려 한다.

분노와 미움을 넘어서

“강자를 섬기며 때를 기다렸건만”

2009년 5월 23일 서거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시신이 빈소가 마련된 봉하마을로 이동하고 있다. 운구 행렬 앞줄 오른쪽이 안희정 충남지사. [사진 제공·노무현 장례위원회]

2009년 5월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했다. 안희정은 식음을 전폐한 채 노무현의 죽음을 애통해했고 그 모습을 지켜본 모친의 말을 전한 글이 있다.

“에이구, 제 어미가 죽었어도 그리 슬플까. 물 한 모금 안 넘기고 자지도 먹지도 않고…기진해 있어서 내가 뭐 약 좀 가져갔더니 어머니나 드시라고 거들떠도 안 봐.…그려 알어, 온 나라 사람이 다 슬퍼하니께. 아녀, 좋아서 신나는 인간도 있을껴. 내가 왜 이런다냐.…당최 나잇값도 못 하고 악담이나 하다니.”(2010년 5월 26일 딴지일보)

안희정은 스물일곱 살 되던 1994년에 지방자치실무연구소 사무국장이 되면서 공식적으로 노무현과 손을 잡았다. 이후 2001년 노무현 대통령후보 경선캠프 사무국장을 지냈고, 2002년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 비서실 정무팀장을 맡으면서 노무현 대통령 당선과 참여정부 출범에 기여했다. 이런 사람이니 이처럼 슬퍼하는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겠다.

2010년 안희정은 제36대 충청남도 도지사가 됐다. 이전까지 현실 정치 경험이 없다시피 했고, 인지도도 높다고 할 수 없었으며, 확고한 지지기반을 다져놓지 못한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유력한 자유선진당 후보를 2.4% 차이로 따돌리고 당선됐다.

그를 당선시킨 힘은 무엇일까. 표면적으로는 당시 이명박 대통령의 세종시 수정안에 대한 충남도민의 반발을 적절히 이용한 안희정의 전략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보다는 노무현 대통령 서거 1주기를 맞이하며 전국에 잠재돼 있던 추모 열기 아니었을까. 아닌 게 아니라 2010년 지방선거를 대변한 핵심어 중 하나가 ‘친노의 부활’이었다. 노무현의 죽음이 이른바 ‘폐족’이 됐던 친노를 부활시킨 셈이다.

“나에게도 분노가 있다.…‘미안해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라는 노무현 대통령의 마지막 메시지도 결국 ‘분노를 넘어서달라’라는 의미로 이해하고 있다. 분노와 미움이 더 이상 우리 안에 자리를 잡지 못하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더 좋은 민주주의다.”(안희정 ‘산다는 것은 끊임없는 시작입니다’, 위즈덤하우스, 2013)

그러나 안희정은 노무현의 복수를 꿈꾸지 않고, 오히려 분노를 넘어서기 위해 노력했다. 도지사가 되고 난 이후 충남 지역의 현안 해결에 주력했다. 그가 말한 것처럼 어디에서도 ‘노무현을 위한 분노’를 찾아볼 수 없었다.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해) 강력한 리더십도, 그의 죽음도 국민의 용인하에 이뤄진 것.… 진보진영은 박 대통령이 1963년, 1967년 대선에서 선출됐다는 사실을 역사로 인정해야 한다.…(다만) 박 전 대통령의 공적을 아무리 찬양해도 공칠과삼(功七過三)을 넘지 않는 합리성을 가져야 한다.…전두환 정권은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지만 외환 자유화, 물가 안정 등을 통해 역사적 전환을 이뤘다.…노태우 정권은 북방외교를 적절하게 추진했다.”(2013년 11월 13일 동아일보)

진영 논리가 사회의 분위기를 좌우하는 상황인데도 안희정은 자신의 진영에서 벗어나 상대 진영까지 감싸 안으려고 했다. 안희정의 이러한 태도는 자칫하면 양 진영 모두에게 배척당할 수 있겠는데, 어찌됐건 안희정은 자신의 태도를 바꾸지 않았다. 동시에 좌고우면하지 않고 지역 일꾼으로 남았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안희정은 2014년 충남지사 재선에 성공했다. 섣불리 단정할 순 없겠으나, 선거 결과만 놓고 본다면 충남 유권자들이 안희정의 태도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고 볼 수 있다.

강동의 주인에서 천하의 주인으로

2014년 ‘삼국지인물전’을 쓰면서, 안희정을 오나라의 기반을 마련한 손책(손권의 형)에 비유했다. 손책은 기반이 다져지지 않은 상태에서 성급히 조조를 치려다 자객의 손에 허무하게 죽었다. 안희정의 결말이 그렇게 된다고 예상한 게 아니라, 안희정의 당시 상황이 그와 유사하니 성급하게 전국의 주인이 되려 하지 말고 먼저 기반을 다져 주기 바랐던 것이다.

다행히 안희정은 손책처럼 서두르지 않았다. 우리는 분노와 진영 논리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안희정의 태도에 주목해야 한다. 그런 안희정에게서 오나라 손권(孫權·182~252)의 모습이 비친다. 손권은 아버지 손견을 죽인 유표에게 곧바로 복수하지 않고 먼저 기반을 다졌으며, 강동 지역을 평정한 뒤 강력한 조조에게 맞서기 위해 라이벌인 유비와 손잡기도 하고, 조조에게 머리를 숙이기도 하면서 오직 때를 기다렸다. 

소설 ‘삼국지’에서 손권은 황제가 됐지만 유비나 조조에 비해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한 인물이다. 주로 방어전을 했고, 강동 지역을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일 것으로 짐작한다. 이래서 손권을 진취적이지 못하고 큰 뜻이 없는 사람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손권은 노숙을 처음 만났을 때 이렇게 말했다.

“춘추시대의 제나라 환공(桓公)이나 진나라 문공(文公)처럼 패권을 차지하고 싶은데, 당신은 나를 어떤 방향으로 인도하겠소?”

노숙이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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