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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리스트 흑역사

‘차별과 배제 넘어 헌법 가치 파괴’

쁠랙크리스트에서 화이트리스트까지

  • 김당 | ‘시크릿파일 국정원’ 저자 dangkim@empas.com

‘차별과 배제 넘어 헌법 가치 파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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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리스트 원조(元祖)는 일제 사상경찰

‘차별과 배제 넘어 헌법 가치 파괴’

일제강점기에는 블랙리스트가 ‘요시찰인’이라는 말로 쓰였다. 동아일보 1928년 10월 28일자.

일제 경찰(총독부 경무국)은 사상이 불온하거나 총독 정치에 찬성하지 않는 행동을 취하는 인물을 요시찰인으로 규정해 위험성의 경중에 따라 ‘갑종’과 ‘을종’으로 분류해 오다가 1928년 7월 갑-을종을 폐지하고 요시찰 명부를 새로 작성했다. 당시 동아일보(1928년 7월 28일자)는 ‘黑標帳中의 人物 全朝鮮에 3천명’이란 기사에서 “개명되는 소위 ‘쁠랙크리스트’에 드는 사람은 3천명 내외에 달하여 3·1운동이 일어나던 기미년까지 약 1천명에 불과하던 것이 그후 차차 증가해 현재의 3천명에 달한 것”이라고 보도했다. 또한 새로 만든 ‘쁠랙크리스트’는 각 도(道)의 명부를 통일해 사진까지 첨부해 배치하게 되며, 종래는 정치 요시찰인과 사상 요시찰인으로 구분했으나 조선인의 행동은 정치운동과 사상운동의 차이를 분간할 수 없어 민족운동자들도 사상 요시찰인 명부에 들어가게 되었다고 전했다.

그런데 당시에도 이미 ‘쁠랙크리스트’(블랙리스트)라는 용어를 사용했고 이를 한자로는 ‘흑표장(黑標帳)’이라고 표현한 것이 눈에 띈다. 일제 경찰이 만든 ‘요시찰인 명부’, 소위 ‘블랙리스트’는 8·15광복 이후 친일파가 득세한 한국 경찰에 그대로 승계돼 사상범, 즉 ‘빨갱이’를 감시하고 잡는 근거로 활용됐다. 그로 인해 블랙리스트 때문에 고초를 겪거나 공무원 취업에 지장을 받은 사람들은 경찰서에 비치된 ‘요시찰인 원본대장’에 기재된 자신의 명단을 지우기 위해 경찰에 뇌물을 주고 말소한 사례도 있다.



요시찰인 명부

그러다가 6·25전쟁으로 ‘요시찰인 명부’가 일부 소실된 가운데 북한의 간첩 남파가 빈번해지자 대검찰청은 1958년 3월 ‘사상검사’로 유명한 오제도 검사의 주도로 ‘반국가적 행동 단속요강’을 작성해 전국 각급 검찰에 시달했다. 검찰이 당시 국가보안법 위반사범에 대한 단속을 강화한 데는 그 직전에 발생한 김정제(金正濟) 간첩 사건과 KNA 여객기 납북 사건이 영향을 미쳤다.

‘반국가적 행동 단속요강’에서 특히 이목을 끈 것은 ‘요시찰인 명부’ 작성에 관한 지침이다. 당시 검찰이 내세운 ‘요시찰인 명부’ 작성의 의의는 3가지였다. 첫째, 6·25전쟁으로 인해 수사기관에 비치돼 있던 명부가 소실됐기 때문에 재작성하는 것이다. 둘째, ‘명부’가 없으면 자칫 무고한 사람까지 괴롭히게 되는 경우가 있을 수 있어 이를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셋째, ‘명부’가 있어야 사찰경찰의 인사이동이 있어도 ‘불온분자’ 파악 등 사찰업무의 연속성이 유지된다는 것이다. ‘요시찰인 명부’ 대상자는 6·25전쟁 당시 부역자로 재판소에서 유죄를 선고받고 그 형이 종료된 자나 또는 실형은 아니지만 자유형(집행유예, 선고유예 등)을 받은 자로 제한했다(동아일보, 1958년 3월 31일자).



그러나 ‘요시찰인 명부’에 이름이 오르면 개인의 행동 반경과 사생활이 크게 제약받을 수밖에 없다. 검찰은 당시 이런 우려와 반발을 고려해 당초에는 ‘단속요강’의 명칭을 ‘대공사찰 강화요강’이나 ‘간첩 단속요강’으로 했다가 ‘반국가적 행동 단속요강’으로 순화했다. 또한 검찰 당국이 “‘요시찰인 명부’에 이름이 오른다고 해서 연행이나 예비검속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면서 “어디까지나 객관적인 위치에서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일시적-구체적으로 염탐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강조한 것이 눈에 띈다.



옐로리스트

5·16군사정변으로 집권한 박정희 정권은 공안기관의 블랙리스트와 별도로 존안 자료를 만들어 활용했다. 5·16 군사정변 직후 육군 방첩부대가 A4 크기의 종이에 ‘안보’를 명분으로 주요 인사의 인적사항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것이 그 시초였다. ‘반혁명세력’을 감시하기 위해 만든 중앙정보부는 이를 그대로 차용했다. 생년월일, 출생지 등 기초 정보인 ‘1호 정보’부터 가족사, 정치·사상 성향의 ‘2호 정보’와 최근 동향, 접촉 인물 등에 관한 ‘3호 정보’로 분류해 속속들이 기록했다.

박정희는 이후 1970년대 중반에 군 정보기관에 지시해 연대장급 실병 지휘관 이상 장교 800명의 신상카드(일명 옐로카드)를 작성토록 했다. 군(軍)내 사조직 ‘하나회’의 존재를 처음 세상에 알린 김충립 전 수도경비사령부 보안반장은 1974~1975년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보안사 대전복계(係)에서 연대장급 실병 지휘관인 대령급 이상 장교 800명의 신상카드를 작성했다고 증언했다.

“1974~1975년 청와대의 지시로 보안사 대전복계에서 대령급 이상 장교 800여 명의 신상카드인 일명 ‘옐로카드’를 작성했다. 장군 1명의 존안 자료를 차곡차곡 쌓으면 높이 50cm가 넘었다. 그 기록을 대통령이 한눈에 알 수 있도록 한 장에 담는 작업이었다.”(김충립 前 수경사 보안반장 ‘1963년 전두환·노태우 쿠데타 음모 옐로카드 신상카드 기록하려다 무산’, 신동아, 2016년 1월호)

고위 장교 800명의 ‘옐로카드’가 작성된 1974~1975년경에는 재일교포 문세광에 의한 박정희 대통령 암살 미수사건(육영수 사망, 1974년 8월 15일), 베트남 공산화 통일(1975년 4월 30일) 같은 대형 안보 사건이 발생했다. 그전인 1973년에는 윤필용 당시 수도경비사령관이 술자리에서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에게 “박정희 대통령은 노쇠했으니 물러나게 하고 형님이 후계자가 돼야 한다”고 말한 게 쿠데타 음모설로 번져 윤 사령관과 손영길 준장 등 장교 30여 명이 횡령과 수뢰 혐의 등을 덮어쓰고 숙청된 ‘윤필용 사건’이 터졌다. 이런 정치·사회적 배경 속에서 존안 자료가 작성된 것이다.

블랙리스트를 창건한 원조(元祖)가 일제 사상경찰이라면, 일본군 장교 출신인 박정희는 블랙리스트를 재건한 중시조(中始祖)인 셈이다. 군부를 감시하는 보안사령관을 지낸 박정희의 후계자 전두환-노태우도 블랙리스트를 이어받았다.



보안사의 ‘청명계획’

보안사(현 기무사)는 노태우 정부 당시 공안정국이 조성되자 비상계엄에 대비해 반정부인사 목록을 만들고, 이들을 D-데이 전후해 전원 검거한다는 예비검속 계획(작전명 청명계획)을 세우는 등 사실상 ‘친위 쿠데타’를 준비한 것으로 2007년 국방부 과거사위원회(위원장 이해동 목사) 조사에서 드러났다.

1989년 3월 당시 보안사 3처(우종일 처장)는 계엄에 대비해 각계 주요인사 923명의 인적사항·예상 도주로·예상 은신처·체포조 등이 기재된 ‘청명카드’를 작성하고, 계엄 시 이들을 검거·처벌하기 위한 청명계획을 수립했다. 그러나 청명계획은 1989년 계엄령을 실시하지 않아 실행에 옮겨지지 않았다. 이후 민간인 사찰로 변질되면서 그 대상자는 1311명으로 늘어났다. 개인별 신상자료철(1만2100쪽)은 기무사에 보관돼 있다.

‘청명’ 대상자 선정과 등급은 공안합수부 정책협의회에서 검찰·경찰의 좌익인사 자료와 보안사의 좌익인사 명단과 등급 등을 참조해 분류했다. 보안사는 청명카드 작성 작업을 완료한 뒤, 1989년 8월 을지훈련 기간에 8개 부대를 선정해 도상훈련까지 실시했다. 보안사는 1990년 10월 윤석양 이병의 민간인 사찰 폭로 사건이 발생하기 전까지 ‘청수’(동향파악) 대상자라는 명칭으로 민간인 1300여 명에 대해 공개 자료와 예하 보안부대의 ‘동향관찰보고서’ 등을 바탕으로 개인별 신상자료철을 작성·관리했다. 과거사위 조사 결과, 보관 자료에는 김영삼-김대중 두 전직 대통령은 빠져 있었다. 윤석양 이병이 폭로할 때 명단에 포함됐던 노무현, 이강철, 문동환, 박현채 등 4명의 신상 자료도 누락됐다.

‘청명(예비검속) 카드’ 또는 ‘청수(동향파악) 카드’의 어두운 그림자는 이미 1990년 10월, 보안사에서 복무하던 윤석양 이병이 정치계·노동계·종교계·재야 등 각계 주요 인사와 민간인 1303명을 상대로 정치사찰을 벌였다고 폭로함으로써 세상에 알려졌다. 보안사에 연행돼 과거 학생운동권에 함께 몸담았던 동지들의 동태를 파악하는 프락치 노릇을 강요받은 윤 이병은 민간인 사찰자료 디스켓 30장과 명부철을 들고 나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 인권위의 도움으로 기자회견을 하고, 보안사의 민간인 사찰활동을 폭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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