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4월호

직격 인터뷰

“탄핵 인용, ‘박근혜 소송’ 승소 가능성 높여”

노무현 전 대통령 사위 곽상언 변호사

  • 김진수 기자 | jockey@donga.com

    입력2017-03-21 15:2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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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민 9161명·45억 원대 위자료 청구소송 대리
    • “대통령 측 변호인단, 일반적 변론 방식 아냐”
    • “정계 입문 의향? 지금은 없다”
    • ‘한전 소송’, 전국 9개 법원에서 산발적 진행
    • “‘회피하지 않는 변호인’ 되고 싶다”
    곽상언(46·사법시험 43회, 사법연수원 33기) 변호사에 관해 세간에 알려진 ‘팩트(fact·사실)’는 크게 두 가지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위이자 법무법인 ‘인강’ 대표변호사라는 점, 2014년 8월부터 ‘공룡 공기업’ 한국전력공사(이하 ‘한전’)를 상대로 잇따라 제기한 주택용 누진제 전기요금 부당이득 반환청구소송(이하 ‘한전 소송’) 및 2016년 12월과 올해 1월 박근혜 대통령을 상대로 낸 위자료 청구소송(이하 ‘박근혜 소송’) 등 정치적·사회적 파장이 큰 2건의 국민 참여 소송 대리인이라는 점이다.

    그런 그가 최근 대선 행보로 분주한 안희정 충남지사를 향한 비판 글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연이어 올려 한바탕 논란의 중심으로 떠오른 뒤 그에 대한 세인들의 관심도 새삼 커지고 있다.

    서울 태생인 곽 변호사는 서울대 국제경제학과 출신으로, 서울대 대학원 법학과와 미국 뉴욕대 로스쿨(법학석사)을 졸업했다. 법무법인 화우 변호사, 중국 상하이 화동정법대 한국법연구센터 초빙교수, 법률사무소 ‘푸른 언덕’ 대표변호사 등을 거쳐 2014년부터 법무법인 인강을 이끌고 있다.

    그러나 그의 일상사와 생각이 대중에게 알려진 바는 거의 없다. 그는 3월 3일 ‘신동아’의 인터뷰 요청에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하며 망설이다 3월 6일 제의를 받아들였다. 그를 만난 때는 3월 10일 오후 3시. 공교롭게도 헌법재판소가 박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 선고에서 국회가 청구한 탄핵소추안에 대해 ‘전원일치’로 인용 결정을 내려 박 대통령이 ‘자연인’ 신분으로 급전환된 직후였다.

    서울 서초동 중앙서초프라자 빌딩에 자리한 법무법인 인강은 소규모다. 옆 건물과 부산 연제구에 각기 분사무소를 뒀지만, 전체 소속 변호사는 7명. 일반 사무직원까지 합쳐도 14명으로 단출하다. ‘인강(印江)’은 ‘월인천강(月印千江·달은 하나지만 달빛은 1000개의 강에 고루 비친다는 의미)’에서 따온 명칭으로, 곽 변호사의 지인이 붙여준 것이다.





    “굉장히 긴장했다”

    ▼ 주로 맡는 소송사건은.

    “다 맡는다, 못 하는 것 빼곤.”

    ▼ 그래도 주력 분야가 있을 텐데.

    “그렇게 물어오는 이가 많긴 한데, 내 개인적 견해로는 무슨 무슨 전문 변호사라는 표현을 그다지 믿지 않는다. 왜냐면 한 분야에 특화한다고 해도 동일한 사건은 전혀 없기 때문이다. 당연히 사건마다 해결 방법도 다르고.”

    ▼ 케이스 바이 케이스(case▼ by▼ case)?

    “그렇다. 사건 분야가 비슷하더라도 사건별 실질은 모두 다르다. 그럼에도 변호사가 그 일을 다 할 수 있는 이유는 공통적인 풀이방법이 있어서다. 그런데 그 공통적인 풀이방법, 흔히 변호사들 얘기로 법리(法理)를 다루는 능력은 모든 법 분야를 관통하는 것이지, 특별한 차이가 있는 게 아니다. 변호사는 본질적으로 의뢰인이 사건을 맡기지 않으면 아무 일도 못한다, 소송을 대리하기에. 제아무리 뭘 많이 안다 한들 누군가 사건을 의뢰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내가 ‘한전 소송’을 처음 제기할 때 그보다 2년 전인 2012년부터 이미 연구에 착수해 마침내 끝냈는데도, 의뢰인이 없었다. 그만큼 그 소송은 생소하고 어려운 분야다. 그래서 한 명, 한 명 주변 사람들에게 소송 참가를 독려해 지금까지 온 거다.”

    ▼ 오늘은 박 대통령뿐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 모두에게 ‘운명의 날’이 됐다. 헌재의 탄핵심판 선고를 지켜본 단상은.

    “굉장히 긴장했다.”


    ▼ 혹시라도 기각될까봐?

    “맞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긴장했고, 변호사로서도…. 변호사로 일하다보면 어떤 감정을 갖게 된다. 이길 수 있고 이겨야만 하는, 그러니까 실제 승소 가능성이 높고 당위성까지 갖춘 사건이 있다. 하지만 그런 소송에서 지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질 것 같은데도 이기는 소송도 있다. 그런 경험을 반복해 겪다보면 판결 결과를 예측하기가 참 어렵다. 변호사에게 소송 관련 사안의 실질이 중요한 건 당연하고, 그 실질에 더해 소송 상대방 측 변호사가 누구인지, 재판장이 누구인지에 따라서도 변수가 있어서다. 대다수 국민이 탄핵 인용 결정이 내려질 것이라 예상하는 판인데도, 사실은 알 수 없는 거니까.”

    곽 변호사는 원래 이날 오전 11시 30분 인천지법에서 열린 한 재판에 변론차 참석하게 돼 있었다. 하지만 의뢰인에게 양해를 구한 뒤 다른 변호사를 대신 보냈다. 탄핵심판 선고 결과가 ‘박근혜 소송’에 끼칠 영향이 지대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4160명’의 의미

    제기 시점으로 보면, ‘박근혜 소송’은 현직 대통령을 상대로 한 첫 소송이다. 곽 변호사는 자신을 포함한 국민 5001명이 참가한 이번 소송의 첫 소장을 2016년 12월 6일 서울중앙지법에 제출했다. 이는 같은 달 23일 청와대에 우편 송달이 완료됐다. 4160명의 국민이 참가한 같은 사건의 두 번째 소장은 올해 1월 4일 서울중앙지법에 접수됐다. 현재 두 번의 소장 모두에 대해 박 대통령 측 변호인이 답변서를 낸 상태다.

    위자료 청구금액은 1인당 50만 원. 두 번째 소장의 원고인단 수가 4160명인 까닭은 세월호 참사(2014년 4월 16일)를 떠올리게 하자는 지인 변호사의 제안 때문이라고 한다. 해외 거주 재외국민의 소송 참가 신청도 많다. 탄핵사태로 인해 급전직하한 모국의 명예를 회복하고 싶다는 게 주된 이유다.

    소송 취지는, 대통령의 직무 범위가 국정 전반에 미치는데도 박 대통령은 대통령의 직무를 이용해 범죄행위를 저질렀고, 이로 인한 장기간의 헌정 질서 중단 사태로 마음에 큰 상처를 입은 국민에게 위자료를 지급할 책임이 있다는 것.

    곽 변호사가 이번 소송을 맡은 건 촛불집회가 한창이던 시기에 받은 페이스북 메시지에서 비롯됐다.

    “직접 아는 분은 아닌데, 내게 메시지를 보냈더라. ‘박 대통령을 상대로 위자료 청구소송을 해야 하지 않느냐’고. 일단 법리적으로 가능한지부터 검토해봤다. 그런 뒤 주위 변호사들에게 자문도 구했다, 같이 회의도 하고. 처음엔 내가 직접 맡지 않고 대신 소장을 써줄 테니 다른 변호사더러 맡으라고 권유했다. 그런데 다들 난색을 표했고, ‘다른 변호사가 맡으면 호응이 크지 않을 수 있으니 당신이 희생 좀 해라’는 의견도 많아 고민 끝에 수락했다.”

    ▼ 굳이 곽 변호사를 적시한 이유가 뭐라 생각하나.

    “빤하지 않나.”

    ▼ 노 전 대통령 사위여서 상징성과 대표성을 지닐 수 있기에?

    “그래서 더 고민이 많았다. 현실적으로도 ‘한전 소송’처럼 원고인단 수가 매우 많은 소송을 다뤄본 변호사가 달리 없기도 했다. 원고인단 관리 노하우를 지녔기에 결국 내가 맡게 됐다.”

    ▼ 탄핵 인용이 ‘박근혜 소송’에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까.

    “간단히 이론적으로 말하면, 탄핵 인용의 근거는 대통령이 직무행위를 함에 있어 헌법과 법률을 위반했느냐, 그 위반 정도가 중대하냐 하는 두 가지다. 이번 소송의 청구 원인도 대통령이 직무상 불법행위를 저질러 직무행위의 상대방인 국민에게 손해를 가했다는 것이다. 탄핵심판 내용과 기본 구도가 같다. 그런데 단 한 명의 변호사가 각종 증거를 수집하는 데는 엄연히 한계가 있다. 변호사는 수사기관과 달리 수사력 발동 권한도 없다. 그래서 탄핵심판 사건 선고 결과는 물론이고, 거기에 제출된 증거자료를 확보하는 게 제일 중요하다. 박 전 대통령이 검찰 특별수사본부의 수사를 받게 되면 그 수사기록 또한 마찬가지다. 물론 형법상 형벌을 부과하는 근거로서의 범죄행위와 민법상 불법행위 구성엔 차이가 있다. 실제로 파면 사유로서의 헌법·법률 위반과 민사상 불법행위가 같은지 여부도 여태껏 다뤄진 적이 없다. 하지만 판단의 근거는 동일하다. 따라서 탄핵 인용으로 대통령이 파면되면 민사사건에서도 승소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더욱이 소송 참가자가 1만 명에 육박하기에 법원도 이 사건을 결코 함부로 다루지 못할 것이다. 보다 많은 국민이 소송에 참가해야 하는 이유다.”

    곽 변호사는 2016년 11월 22일 ‘박근혜 소송’ 전용 홈페이지(www.p-lawyer.co.kr)를 개설해 소송 참가 신청을 받는 한편, 43쪽에 달하는 소장 문서 파일도 올린 바 있다. 주위 변호사들에게도 소장을 다 뿌렸다. 함께 참가하자는 뜻에서다. 곽 변호사는 “소송 참가 신청자가 조금씩 더 늘고 있어 일정 인원이 차면 추가로 세 번째 소장을 낼 수도 있다”고 했다.



    촛불집회에 서너 번 참가

    ▼ 재야 법조인으로서 탄핵심판 사건과 관련해 박 대통령 측 변호인단이 보인 행태에 대해선 어떻게 보나. 그들 중 일부는 막말을 하고 ‘광장’으로도 뛰쳐나갔다.

    “변론 방식이 법정(法定)된 건 아니니 그럴 수도 있다고 본다. 그런데 만일 통상적 형태의 변론이었다면 언론보도도 나지 않았을 거고, 지금 김 기자도 질문을 던지지 않았을 거다. 하여튼 일반적 변론 방법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 촛불집회에 참가한 적 있나.

    “물론. 매번은 아니고, 서너 번쯤 갔다. 아내와 아이들 데리고. 아이들에겐 큰 교육 효과가 있었다. 더욱이 역사의 현장에 한 점이라도 찍는 게 얼마나 영광인가.”

    익히 알려졌듯, 곽 변호사는 노 전 대통령 취임 직전인 2003년 2월 초 노 전 대통령의 딸 정연 씨와 결혼했다. 현재는 올해 중학교에 입학한 큰딸과 초등학교 5학년인 작은딸, 여섯 살배기 아들을 두고 있다. 그는 최근 10년간 휴가를 간 적이 없을 만큼 바쁘게 지냈다고 했다.


    대법원 판례 반대 해석

    ▼ 박 대통령은 헌재의 선고 즉시 대통령직을 상실했다. 전직 대통령이 됐는데 이번 소송은 유효한가.

    “유효하다.”

    ▼ 재임 당시 제기된 소송이기에?

    “그렇다. 대통령으로서 직무를 이용해 저지른 불법행위는 완료됐지만 손해배상책임은 남는다. 교통사고를 내면 배상 문제가 남듯.”

    ▼ 하지만 선례가 없지 않은가.

    “선례는 없지만 근거로 삼을 만한 2015년 대법원 판례가 있다. 과거 박정희 대통령의 긴급조치로 인해 피해를 입었으니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해달라는 사건인데, 쟁점은 대통령의 권력 행사가 민사상 불법행위를 구성하는지다. 판시 사항을 보면, 유신헌법에 근거를 둔 대통령의 긴급조치권 행사, 즉 대통령의 권력 행사는 고도의 정치성을 띤 국가행위로서 대통령은 국가긴급권 행사에 관해 원칙적으로 국민 전체에 대한 관계에서 정치적 책임만 지고 국민 개개인의 권리에 대응해 법적 의무를 지는 건 아니라고 했다. 대통령의 권력 행사가 헌법에 근거를 두고 고도의 정치성을 띤 국가행위에 해당한다면 국민 개개인에 대한 관계에서 민사상 불법행위는 성립하지 않는다는 거다. 그런데 이를 반대로 해석하면? 박근혜 대통령의 권력 행사가 헌법에 근거를 둔 게 아니고 고도의 정치성을 띤 국가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면 민사상 불법행위가 성립한다고 볼 수 있지 않나. 국민 전체에 대한 관계에서 정치적 책임을 지고 국민 개개인에 대해 민사상 불법행위도 구성하게 되는 거다. 난 여기서 가능성을 봤다.”

    ▼ 패소해도 원고들이 원하면 항소할 건가.

    “해야지, 변호사로서 당연히.”



    “왜 잔치판 벌이나”

    곽 변호사는 2월 9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안희정 지사? 글쎄…(1)죽음을 대하는 자세’라는 제목의 비판 글을 올렸다. 노 전 대통령 장례기간 중, 그를 죽음으로 내몬 세상과 권력을 원망하며 포효하기도 한 사람들 중 한 명인 안 지사가 노 전 대통령이 수사를 받고 모든 언론의 표적이던 때 대체 뭘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이 글이 높은 휘발성으로 논란을 불러일으키자 곽 변호사는 2월 12일 자신의 입장을 전하는 글을 올려 “저는 안희정 지사를 싫어하지 않는다. 싫어할 이유가 전혀 없는 좋은 분”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3월 1일에도 ‘안희정 지사? 글쎄…(2)언어의 의미: 민주세력 장자론’이라는 제목의 장문을 올렸다. 장자(長子)는 가족을 돌보는 천형(天刑)을 자신의 삶으로 택하는 사람에게 붙이는 칭호인데, 수년 전부터 자신이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의 장자이자 적자(嫡子)로서 민주세력의 적통’이라며 언론 인터뷰를 해온 안 지사가 김 전 대통령과 노 전 대통령의 정치를 지향하는 세력이 고초를 겪을 때 책임지고 돌봤거나 그들을 위해 자신을 헌신했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했다는 게 요지다.

    그러나 곽 변호사는 결국 3월 초 관련 글들을 모두 삭제했다.

    ▼ 안 지사에 대한 비판 글을 올렸다 내린 이유는.

    “아, 그런 거 물어보지 마라, 정치적인 거.”

    ▼ 그동안의 조용한 행보와는 대조적이니 당연히 국민들로선 궁금하지 않나.

    “봐라. 이번 탄핵사태 국면은 정치인들에 의해 조성된 게 아니다. 방송과 언론에서 먼저 치고 나왔다. 불과 6개월 전만 해도 박 대통령의 서슬이 퍼렜지 않나. 그런데 언론보도가 터져 나오면서 국민들이 반응하기 시작했다. 국민들이 촛불집회를 할 때도 정치인들은 안 나왔다. 국민들이 들끓고 일어나니 그제야 조금씩 모습을 비췄다. 더 들끓으니 국회의 탄핵소추안 의결로까지 이어진 거다. 근데 가결되니 여러 사람이 앞다퉈 대선 출마 선언을 하더라. 표현을 좀 격하게 하자면, 헌재의 최종 결정을 앞둔 위중한 시점에 국민들은 불안해하는데 왜 자기들은 잔치판을 벌이나. 난 그런 행태를 이해할 수 없었다, 진심으로.”       

    ▼ 그러면 왜 글들을 모두 삭제했나. 모종의 ‘압력’이라도 있었나.

    “아니, 응원과 비난의 강도가 너무 세서.”

    ▼ 댓글 줄줄 달리고 언론에 보도되고 하는?

    “그럴 줄 몰랐던 게지. 그런데 반응이 좀 과하더라. 개인적으로 의아했다. 내 생각으론 내가 올린 글의 중요도는 높지 않다. 정작 분노하려면 ‘한전 소송’에 잇따라 패소한 데 대해 분노해야 한다. 대한민국 국민은 참 착하다. 해외에선 전기요금 조금만 올려도 폭동이 나는데 우리 국민은 40년 이상 슬금슬금 뜯어먹히고도 그러려니 한다. 마땅히 그런 것에 분노해야지(웃음).”

    ▼ 혹시 당적을 갖고 있나.

    “지난해 취득했다.”

    ▼ 더불어민주당?

    “그렇다.”

    ▼ 정계 입문 의향은.

    “그런 건 묻지 않기로 했지 않나.”

    ▼ 너무 민감한 질문으로 받아들이지 마라. 없다면 없다고 하면 될 것을.

    “지금은 없다. 그러니 더는 묻지 마라. 왜냐면 난 진짜 내 말로 인해 가족과 타인에게 폐 끼치는 게 싫다.”

    ▼ 이른바 친노(親盧)그룹의 러브콜도 여러 번 있었을 법한데.

    “러브콜의 정의가 뭔가?”

    ▼ 정치 같이 해보자, 출마할래? 그런 것.

    “지나는 말로 몇 번 들은 적 있지만, 응하지 않았다.”

    ▼ 앞으로 당분간 페이스북에 글을 안 올릴 것 같다.

    “정치인 관련 글은 안 올린다, 이제.”

    ▼ 전혀?

    “특단의 사정이 없는 한. 난 올해 들어 ‘박근혜 소송’에 매진해왔다. 소송을 진행하려면 사건 추이를 일일이 확인해야 한다. 아침마다 언론보도를 다 챙긴다. 그중 유의미한 기사들을 모아둔다. 그렇게 바쁜 상황이라 정치권 소식에 신경 쓸 겨를 없다.”


    ‘한전 소송’, 세계 유일의 사건

    곽 변호사가 맡은 또 다른 국민 참여 소송인 ‘한전 소송’ 역시 선례가 없다. 2014년 8월부터 이어져온 12차례의 소송 중 지금껏 판결이 난 5차례의 소송에서 모두 원고 패소했다. 2만여 명의 소송 참가 신청자 중 현재 소송에 참가 중인 인원은 1만 명. 곽 변호사는 앞으로도 1000명 단위로 끊어 소송을 계속해나갈 계획이다. 소송은 서울중앙지법, 서울남부지법, 부산지법, 대구지법, 인천지법, 대전지법, 광주지법, 전주지법, 춘천지법 등 전국 9개 법원에서 산발적으로 진행 중이다. 국민 생활과 직결되는 중대한 사안인 만큼, 특정 판사 한 명의 독단적 판결에 의존치 않고, 전국 곳곳에서 소송이 제기될 수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곽 변호사로선 ‘한전 소송’이 최순실 씨 국정농단 사건과 박 대통령 탄핵사태로 인해 한동안 국민적 관심사에서 멀어진 게 아쉬운 부분이다. 그래도 정부의 전기요금 체계 개편을 이끌어내 국민의 요금 부담을 지난해 5000억 원, 올해부터 매년 1조 원 줄어들게 한 것으로 스스로를 위무한다.

    “‘한전 소송’은 세계 유일의 사건이다. 대한민국처럼 불평등하고 불공정한 전기요금 체계를 가진 나라가 없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도 유례가 없다. 그걸 증명하려 국가독점사업을 연구하면서 중국 한나라 때의 ‘염철론(鹽鐵論)’까지 검토했다. 소금과 철을 국가가 독점하는 게 정당한지에 대한 논의를 정리한 책인데, 그 경우에도 우리나라 전기요금 체계처럼 수요자별로 가격 차별을 한 예가 없다. 누진제도 마찬가지다. 그런데도 1974년 이후 석유파동을 이유로 대한민국에서만 국가도 아닌 한전이라는 회사가 전기를 독점 판매하면서 소비자에 따라 가격을 차별하고, 주택용 전기요금에만 징벌적인 누진제 요금을 적용하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곽 변호사는 이 소송을 위해 전기요금 산정 공식까지 만들었다. 수학을 잘 못하는데도 내내 고민하다보니 밤에 자다 불현듯 떠올라 그날 밤 바로 사무실로 나와 공식을 완성했다고 한다.

    ▼ 왜 판·검사 아닌 변호사가 됐나. 곽 변호사의 성장과정에 대해선 알려진 게 거의 없다.

    “여러 요인이 있는데…내가 어르신(곽 변호사는 노 전 대통령을 ‘어르신’이라 호칭했다)이 대통령으로 취임하기 직전에 결혼했지 않나. 그런 상황에서 사실상 내가 할 수 있는 게 뭐 있었겠나. 그리고 난 고등학교도 이과를 나왔다. 대학 학부 전공은 국제경제학이고. 고교 때부터 치면 전공을 두 번 바꾼 셈이다. 사람들이 ‘왜 사시 공부를 했느냐’고 물어보곤 하는데, 그럴 때마다 ‘아주 소박한 소망’ 때문이라고 답한다.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난 학창시절 내내 무척 고단한 삶을 살았다. 1남1녀 중 맏이인데, 고교 졸업 이후로 줄곧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고학생이었다고만 말하련다.”

    ▼ 생전의 노 전 대통령과는 어땠나.

    “글쎄. 내가 평할 처지는 아닌데….”

    ▼ 평을 하라는 게 아니라 장인-사위 관계이니 묻는 거다.

    “그게 참 개인적으로 아쉬운 건데…왜냐면 우리 부부의 결혼과 거의 동시에 대통령이 되셨기에 난 내 나름대로 어르신께 폐를 끼치지 않는 방법은 대통령으로 예우해드리는 것뿐이라 여겼다. 또한 가능하면 그 어떤 의견도 표명하지 않는 게 옳다고 생각했고, 실제로도 그렇게 했다.”

    곽 변호사는 노 전 대통령, 본인 가족과 관련한 질문엔 극도로 말을 아꼈다.



    ‘누군가의 변호인’

    ▼ 노 전 대통령 사위라는 팩트가 부담스러울 때가 적잖겠다.

    “난 그냥 ‘곽상언 변호사’다, 내 페이스북 계정을 통해 이미 밝혔듯.”

    곽 변호사는 노 전 대통령의 사위이기 이전에 ‘곽상언 변호사’로 불리길 원한다. 하지만 한국적 현실에서 일종의 굴레처럼 작용할 수 있는 그 팩트는 그의 인생에서 줄곧 따라다닐 수밖에 없는 숙명이기도 하다.

    그는 2013년 12월 23일 영화 ‘변호인’을 본 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영화를 봤다. 아내가 옆에서 서럽게 운다. 나도 누군가의 변호인이 되어야겠다’라는 짧은 글을 올린 적이 있다. 영화 ‘변호인’은 전두환 정권 시절이던 1981년 ‘부림 사건’을 통해 인권변호사로 거듭난 노 전 대통령의 일화를 모티프로 했다. 곽 변호사는 정녕 누군가에게 어떤 변호인이 되고 싶은 걸까.

    “지금 하고 있지 않나, 이렇게 힘들게. 그런 욕구가 없었다면 이런 방대한 규모의 소송에 두 번이나 나섰겠나. 솔직히 1인당 소송비용을 5000원(‘박근혜 소송’), 1만5000원(‘한전 소송’)씩 받아서는 소송을 유지하기에도 벅차다. 인지대, 송달료 내고 복사비용으로 쓰면 끝난다. 특히 ‘한전 소송’은 집단소송법 자체가 없는 우리나라에선 기술적으로도 정말 어렵다. 내겐 오직 경제적 지출과 엄청난 에너지 소모를 요하는 사건이다. ‘박근혜 소송’ 또한 난도는 ‘한전 소송’보다 떨어지지만 당연히 일반적인 불법행위 손해배상 사건보다는 훨씬 어렵다. 게다가 내게 어떤 현실적인 불이익이 가해질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나와 친한 변호사가 건넨 말 때문에 책임의식을 느끼는 것이다. ‘네가 (그런 소송을) 회피하면 창피한 줄 알아라.’ 난 내게 주어지는 사명을 회피하지 않는 변호인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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