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4월호

미디어 비평

“미래권력 떠받드는 조공방송”

‘대선주자 국민면접’의 한계

  • 정해윤 | 시사평론가 kinstinct1@naver.com

    입력2017-03-21 15:2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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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검증’ 빙자한 ‘미화(美化)’
    • 압박면접? 오글거리는 칭찬 남발
    • 문재인·안희정·이재명은 환대, 유승민은 홀대
    탄핵 정국으로 공중파 TV 3사가 예정보다 일찍 대선방송을 시작했다. 2월까지 모두 한 차례씩 대선주자를 검증하는 프로그램을 방영했다. KBS와 MBC가 비교적 평이했던 것과 달리, SBS의 ‘대선주자 국민면접’은 시사와 예능을 접목해 주목을 받았다. 진행자로 여성 아나운서(박선영)를 내세운 것은 차별화 의도로 비쳤다. 해당 프로그램은 화제성 지수에서 드라마 ‘피고인’을 제치는 성과를 거뒀지만 비판적인 의견도 많았다. 그래서 필자는 이 SBS 대선주자 검증 프로그램을 검증해보고자 한다.

    이 프로그램 콘셉트는 대선주자들이 대통령직에 취업을 원하는 구직자로서 국민의 면접을 받는다는 설정이다. 이력서 면접, 악플 읽기, 위기대처, 역량면접 등의 챕터로 구성되었는데 사전에 준비한 영상이 자주 등장해 산만하다는 느낌을 줬다.

    진중권, 강신주, 김진명, 전여옥, 허지웅 등 패널들에 대해서도 전문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이들은 “고스톱을 치느냐” “게임을 하느냐” “부부싸움 스트레스는 어떻게 푸느냐” 같은 신변잡기 식 질문을 남발했다.



    낯간지러운 칭찬

    무엇보다, 대선주자 국민면접을 본 많은 시청자가 “힐링캠프를 떠올렸다”는 반응을 보였다. 힐링캠프는 홍보나 변명의 기회를 갖기 원하는 유명인사들이 선호한다. 힐링캠프를 닮았다는 것은 결코 칭찬이 아니다. 하나는 이 국민면접 방송이 재미는 어떨지 몰라도 대선주자에 관한 정직한 정보를 제공하는 데에 완전히 실패했다는 의미다. 다른 하나는 시청자의 공익이 아닌 출연자의 이익을 우선시했다는 뜻이다. 공중파가 시청자 대신 미래권력인 출연자를 떠받들고 ‘조공방송’을 한다는 느낌까지 줬다. 그래서 언론계 일각에선 “유력 대선주자가 출연해주는 대가로 방송사가 살살 검증하기로 한 것 아니냐”는 의문까지 나온다.  



    국민면접 방송은 도입부에 박근혜 전 대통령의 대선후보 시절 모습을 보여주면서 탄핵 사태가 검증 실패에서 비롯됐음을 암시했다. 하지만 정작 이 방송은 허술한 검증으로 일관했다.  

    초반부터 긴장감은 찾을 수 없었다. 이력서 면접에서 여론조사 지지율 1위인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에게 “특전사 출신의 상남자”라고 했다. 역시 유력 대선주자인 안희정 충남지사에겐 “충남 EXO”라고 했다. 이렇게 지지자가 아니면 듣기에 오글거릴 칭찬을 남발했다.

    이 유력 주자들에게는 검증해야 할 사안이 있다. 문재인은 종북 논란, 총선 당시의 조건부 정계 은퇴 발언이 문젯 거리다. 안희정은 불법 정치자금 수수로 실형을 산 경력을 갖고 있다. 이재명은 형수 욕설 사건으로 구설에 올라 있다. 하지만 패널들의 질문은 방송사가 공언한 압박면접과는 거리가 멀었다. 하고 싶은 말을 하게끔 멍석을 깔아주는 수준이었다.

    진중권은 “호남의 지지를 받지 못하면 정계 은퇴를 하겠다”는 문재인의 발언에 대해 “아직도 호남의 나이 든 층을 중심으로 비토 감정이 남아 있다”고 운만 띄웠다. 그러면 문재인이 “그것은 여전히 유효한 진심” “부족한 점이 있으면 끊임없이 노력하겠다”고 장황하게 늘어놓는 식이었다.



    불법행태마저 감싸

    전여옥은 문재인의 종북 논란에 대해 “본인의 안보관, 대북관을 밝혀야 되지 않겠느냐”고 묻는 것이 고작이었다. 문재인의 종북 논란은 송민순 회고록으로부터 비롯된 것으로, 탄핵 정국이 아니었다면 문재인은 정치적 위기를 맞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 방송에서 송민순이라는 이름은 언급도 되지 않았고 당연히 해명도 없었다. 문재인은 “가장 앞서가는 야권 후보에 대한 프레임 공격에 불과”하다며 두루뭉술하게 지나쳤다.

    안희정 편에서 전여옥은 “다른 사람들이 노 전 대통령을 뿔뿔이 떠날 때 왜 옆에 있었느냐”고 물었다. 안희정에 대한 검증이 아니라 미화(美化)로 들렸다. 더구나 전여옥의 이 단정적 표현은 노무현의 사위가 SNS에 올린 내용과 상반된 것이다. 노무현의 사위는 노무현 대통령이 검찰조사를 받는 동안 안희정이 무엇을 했는지 기억할 수 없으며 장례식에서 언론을 상대로 자기 정치에 열중했다고 폭로했다.

    전여옥은 안희정의 불법 정치자금 수수에 대해서도 “혼자서 뒤집어썼다고 볼 수도 있다. 억울하지 않았는가?”라고 질문했다. 김진명은 한술 더 떠서 “결심공판 최후진술이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방송사는 이때 구속 당시 영상을 배경음악까지 넣어 내보냈다.

    하지만 안희정의 혐의는 단순히 정치자금 심부름을 한 것이 아니라 그중 일부를 자신의 아파트 구입과 총선 출마를 위한 용역비 등으로 사용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파렴치한 행태지만 패널들은 마치 안희정이 총대를 메고 수난을 자초한 인물인양 둔갑시켰다. 이런 옹호 속에 안희정은 대선자금 문제에 대해 “개인 범죄행위가 아니라 선거제도의 문제”라는 취지의 궤변을 늘어놓았다.

    명색이 검증을 자처하면서 나선 패널들은 유력 대선주자의 불법행태마저 감싸주고 대선주자는 마치 면죄부나 받은 양 고고한 척하는 것으로 비쳤다. ‘국민의 재산인 공중파를 이렇게 특정 정치인을 위해 오용할 수 있는가’라는 의문이 드는 대목이다. 
     


    황송한 듯 묻기도

    이재명 시장의 형수에 대한 욕설은 촛불집회 이후 그의 인기가 치솟자 당내 경쟁후보 측에서 제기한 문제였다. 그런데 패널인 허지웅은 “가족 간의 시비 문제는 외부에서 보는 것과 또 다른 맥락이 있는 경우가 많아 질문하기가 그렇다. 어쨌든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고, 윤리적으로 비난해야 한다고 지적하는 사람들이 있다”며 황송한 듯 물었다. 결과적으로 이재명의 일방적 주장만 전파를 타면서 이재명의 형제들은 해명할 기회도 없이 나쁜 사람으로 몰리고 말았다.

    이런 상황은 충분히 예견된 것이었다. 국민면접 방송의 패널들은 전여옥을 제외하면 다들 자칭타칭 진보 쪽 인물들로 구성돼 있었다. 애초에 야당 주자들에 대한 질문의 칼끝이 무딜 수밖에 없었다.

    흥미롭게도, 이 패널들은 문재인·안희정·이재명을 환대한 것과 달리 보수 후보인 유승민 의원에겐 대조적 태도를 보인 것으로 비쳤다. 유승민이 자기소개를 끝내고 자리에 앉았을 때 패널들이 약속이나 한 듯 긴 침묵을 지켰다. 유승민이 “제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라고 뼈 있는 말을 할 정도였다. 이 패널들은 유승민에겐 박근혜 전 대통령과의 관계, 최순실 씨 존재에 대한 인지 여부 등 날카로운 질문들을 던졌다.

    SBS는 스타를 신비화하고 영웅시하는 예능 프로그램 방법으로 대선주자를 검증했다. 방법과 목적이 불일치했다. 유력 대선주자에 대한 그 낯간지러운 찬사가 ‘문빠’ ‘안빠’가 아닌 다른 누구를 위한 것인지 의심스럽다. ‘그 어느 때보다 검증 시간이 촉박한 이번 대선에서 공중파 TV가 의무를 방기했다’는 비판은 면키 어려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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