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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주의, 대중독재 시대의 새로운 도래

  • 임지현 | 서강대 사학과 교수

트럼프주의, 대중독재 시대의 새로운 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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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서구사회를 덮친 글로벌 트럼프주의
  • ● 1930년대 파시즘 시대로 회귀인가
  • ● 기층민중은 왜 트럼프에 열광하는가
  • ● “대중독재를 넘어 소수자 민주주의로”
트럼프주의, 대중독재 시대의 새로운 도래

매튜 에이블만의 작품 ‘모자 판매 급증’ (Hot Sales Are Up Again)

미국의 대선이 가열되던 2016년 8월 오리건 주 포틀랜드의 한 바에서 작은 소동이 있었다. 동네의 단골 주민들이 자주 모이는 바 라운지의 한 편에 마련된 전시 공간에 야구모자를 쓴 히틀러의 그림이 전시된 것이다. 히틀러의 야구모자에는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MAKE AMERICA GREAT AGAIN)는 도널드 트럼프(이하 트럼프) 당시 공화당 대선후보의 선거 문구가 적혀 있었다. 유대계 예술가 매튜 에이블만의 작품으로, ‘모자 판매 급증’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었다. 구설에 오르자 바의 주인은 이 작품을 떼어버렸고 작가는 풍자가 자신의 의도였다고 토를 달았다. 그러면서도 작가는 유대인들의 상처를 배려하지 않은 건 유감이지만, “1930년대 유럽의 파시즘과 지금 미국에서 포효하고 있는 움직임 사이에 무수한 이념적 유사성을 목도할 수 있다”며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선거가 본 궤도에 오를수록 트럼프의 식을 줄 모르는 인기는 미국의 리버럴 지식인들뿐 아니라 전 세계의 양식 있는 지식인들을 경악게 했다. 탈세와 여성 비하 발언 등 계속되는 악재에도 불구하고 펜실베이니아, 오하이오, 인디애나, 미시간 등 과거엔 제조업 중심지였지만 지금은 쇠락한 ‘러스트벨트’의 백인 기층민 사이에서 감지되는 트럼프 지지 열기는 이들에게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미국의 대선이 막바지에 접어든 작년 11월 초 이스라엘의 일간지 ‘하레츠’는 트럼프 현상과 1933년 나치당의 집권을 비교하는 흥미로운 칼럼을 게재해 눈길을 끌었다. 트럼프 현상을 보니 어떻게 해서 1930년대 독일의 히틀러가 선거에서 승리하고 집권했는지 이제야 어렴풋이 이해가 된다는 논조였다.

서구를 뒤덮는 트럼프주의

전체 유권자 투표에서는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이하 힐러리)이 트럼프를 200만 표 가량 앞섰지만 경선에서 이긴 주의 선거인단 수를 독식하는 미국의 독특한 반(半)간접 선거 덕분에 트럼프가 승리한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200만 표차에서 위안을 찾기엔 트럼프의 승리라는 선거 결과가 너무 충격적이었다. 1932년 나치당의 득표율이 33%에 불과했고, 히틀러가 총리로 있던 1933년 3월 의회선거에서 온갖 테러와 불법에도 불구하고 나치당의 지지율이 43.9%로 과반에 미치지 못했다고 해서 위안이 되는 것은 아니다. 비록 과반수 득표를 못했다고 해도 나치당의 득표율이 당시 선거에 참여한 정당 중에서 가장 높은 것은 엄연한 사실이며, 힐러리보다 적었다 해도 트럼프에 대한 대중적 지지가 결코 만만치 않았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문제는 트럼프주의가 미국만의 특수 현상이 아니라는 점이다. 중동부 유럽의 정치권에서 톡톡 튀는 트럼프류의 정치 신인들에 대한 2월 24일자 뉴욕타임스 기사는 ‘트럼프주의’가 지구 도처에서 발견되는 광범위한 현상임을 알려준다. 남성 국수주의를 대표하는 러시아의 푸틴은 말할 것도 없지만, 동유럽 국가들에도 반유대주의를 구태여 숨기려 하지 않는 헝가리의 빅토르 오르반이나 독선적 가톨릭에 기반을 둔 교권 파시즘에 성큼 다가선 폴란드의 야로슬라프 카친스키처럼 잘 알려진 트럼프의 선구자들이 있다. 그런데 카친스키와 오르반뿐이 아닌 것이다. 라트비아에서 폴란드, 체코를 거쳐 크로아티아와 세르비아에 이르기까지 준동하는 ‘새끼 트럼프들’의 존재는 ‘트럼프주의’가 동유럽에서 얼마나 뿌리 깊은지를 잘 보여준다. 그럼 ‘트럼프주의’는 동유럽과 같은 후진국만의 특수한 현상인가.

서유럽도 간단치는 않다. 진보 성향의 ‘가디언’을 읽는 자신이 무슨 ‘인민의 적’이라도 되는 양 흘겨보는 눈초리에 불안했다는 한 영국 친구의 소식은 ‘브렉시트’의 지지 기반이 만만치 않음을 말해준다. 제러미 코빈이 이끄는 영국 노동당은 1980년대 이래 최약체를 면치 못하고 있다. 3월 15일 네덜란드 총선과 4월의 프랑스 대선, 9월의 독일 총선을 앞두고 이민자와 난민 수용에 반대하는 극우 정당들의 폐쇄적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마린 르펜의 프랑스 ‘인민전선’이나 오스트리아의 자유당, 벨기에의 ‘플레미시 블록’, 스위스의 인민당, 이탈리아의 ‘북부동맹’ 같은극우 정당들은 익히 알려져 있지만, 극우파 헤이르트 빌더르스가 이끄는 네덜란드 자유당의 약진은 그야말로 충격적이다. 모로코인을 ‘쓰레기’라 부르고 모스크(이슬람 사원)를 ‘나치 성전’이라 칭하고 코란의 판매금지 조치를 공언하는 빌더르스의 인기는 프랑스 파리를 제치고 ‘문화적 관용’의 상징으로 군림해온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자유분방함을 생각하면 더 충격적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스칸디나비아도 더 이상 예외는 아니다. 반(反)이민 정서를 자극하고 그것을 정치적 자산으로 삼은 스웨덴 민주당은 2014년 총선에서 13%를 득표해 이미 제3당으로 도약했고, 지난해 한때는 지지율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진정한 핀란드인’ 당이라는, 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우익 포퓰리스트 정당을 가진 핀란드는 더 말할 나위도 없지만, 극우 정당에 가까운 덴마크 인민당이 지난 2015년 총선에서 사회민주당에 이어 제2당이 된 것도 놀랍다. 여기에 노르웨이의 진보당까지 가세했으니 그야말로 놀라움의 연속이다.

기층민중의 우경화

미국이나 유럽 언론의 논자들이 이미 지적했듯이, 세계는 그야말로 1930년대 파시즘의 시대로 회귀하는 것처럼 보인다. 제1차 세계대전의 참화를 겪은 후 역사와 진보에 대한 낙관적 믿음의 상실, 1929년 미국발 세계대공황의 반동으로 강화된 보호무역주의, 자국중심적 세계관의 강화에 따른 폐쇄적 민족주의와 인종주의, 반유대주의의 대두 등 파시즘의 시대로 접어든 1930년대의 상황은 현재의 상황과 많은 점에서 유사성을 보여준다. 구체적인 역사적 조건들이 다른 만큼 1930년대 파시즘과 2010년대 글로벌 트럼프주의를 기계적으로 동일시하는 것은 물론 위험하다. 비슷한 만큼 다른 점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들이 모두 노동자계급을 필두로 소규모 중소기업, 소상인, 수공업자, 자영업자 등 중하층 계급의 지지를 바탕으로 제도 정치권에서 약진하고 있다는 점이다. 노동시장의 유연성에 속수무책으로 던져진 개인들은 국가의 개입을 선호하기 마련이며 따라서 좌파 정당에 투표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종래의 분석틀은 이미 무너졌다. 1990년대 이래 유럽의 우익 포퓰리스트 정당이 새로운 유형의 노동자정당으로 탈바꿈하기 시작했고 유럽의 노동자들이 좌파 정당과 정반대의 정치적 입지를 가진 이들 우익 정당에 투표한 지 이미 오래됐다. 1990년대 이래 유럽의 정치를 추적해온 사람들에게, 러스트 벨트의 백인 기층민이 트럼프에게 다수표를 던진 지난 미국의 대선 결과는 놀랍다기보다는 “드디어 올 것이 왔다”라는 식이었다.

경제적 관점에서 보면 트럼프의 대선 캠페인은 세계화와 맞물린 자유무역과 국경을 넘는 자본과 노동의 자유로운 이주를 비판하는 데 주안점이 놓여 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같은 쌍무적 협정이든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같은 다자간 자유무역협정이 전부 트럼프의 표적이 됐다. 자본 주도의 지구화에 대한 그의 비판은 국제경쟁에서 도태된 미국의 전통 제조업에 종사해온 저학력 백인 노동자들에게 큰 호소력을 지녔다. 러스트 벨트에서 트럼프가 거둔 승리는 이들 높은 실업률과 가난에 시달리는 저학력 백인 노동자들의 지지 덕분에 가능한 것이었다. 서유럽의 노동자들이 그랬듯이 미국 러스트 벨트의 백인 노동자들 역시 신자유주의의 가장 큰 피해자였다. 노동이민과 자유무역으로부터 이들을 보호하겠다는 약속이 먹힐 수밖에 없는 조건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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