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4월호

신동아 초대석

“값싼 전기로 4차 산업혁명 주도해야”

‘특허왕’ 김성조 국제통신공업 대표

  • 허만섭 기자|mshue@donga.com

    입력2017-04-07 09:5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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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대론 한국 제조업 모두 쓸려나가”
    • “대선주자들, 아베보다 안목 떨어져”
    • “전기 싸게 만드는 기술이 세상 바꿀 것”
    • “혁신 또 혁신…특허 30여 개”
    2016년 8월 독일 베를린에서 에너지 분야의 저명한 회의(IEC TC 120 Working Group 2 회의)가 열렸다. 에너지저장시스템에 관한 국제표준을 제정하기 위한 회의였다. 삼성, LG, 국제통신공업 등 한국의 여러 기관이 관련 내용을 오후 4시간 동안 발표할 예정이었다. 국제통신공업의 이동주 이사가 첫 발표를 시작했다.



    “질문이 쏟아졌고 난리가 나”


    이날 오전 일본 측 발표 땐 회의장이 꽉 차 있었다. 한국 측 발표가 시작되자 절반도 채우지 못했다. 4차 산업혁명과 관련해 ‘한국의 대학교수나 학술계가 내놓는 논문이 대개 알맹이가 없다’는 평판이 형성돼 있었다고 한다. 이 자리에서 국제통신공업 측은 기존의 시스템과 달리 어떠한 상황에서도 정전(停電)되지 않는 기능을 가진 하이브리드 에너지 저장 시스템을 소개했다. 이 회사가 자체적으로 개발한 기술이다.  

    어느덧 외국인 참석자들로 회의장이 꽉 찼다. 참석자들의 질문과 발표자의 답변, 토론이 거의 오후 내내 이어졌다. 다른 한국 측 발표는 뒷전으로 밀릴 정도였다. 다음 날 다른 나라의 발표가 예정돼 있었는데 그 시간 중 일부를 할당받아 다시 질문을 받아야 할 정도였다. 그야말로 뜨거운 관심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이에 대해 이동주 이사는 “정전사고가 없고 에너지 효율이 탁월한 신기술이다. 실용성이 크니까 질문이 쏟아졌고 난리가 난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국제회의 주최 측은 국제통신공업의 이 기술을 국제표준으로 제정하는 문제를 검토 중이라고 한다. 국제통신공업 측은 2016년 12월 회의에선 이 기술이 적용된 완제품을 선보였다. 이동주 이사는 “이 기술이 국제표준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기술은 국내에서 대학교수들 위주의 심의에선 제외됐다. 이와 관련해 “4차 산업혁명에 대해 유력 대선주자들을 비롯해 너도 나도 요란하게 말을 하지만 내실이 없다”는 평가가 나온다.

    산업계 내에서 ‘4차 산업혁명 전도사’로 통하는 김성조 국제통신공업 대표를 만나 4차 산업혁명에 관한 여러 이야기를 들어봤다. 김 대표는 “4차 산업혁명은 무서운 존재다. 지금 준비가 안 된 한국엔 기회가 아니라 오히려 공포다. 한국 제조업의 모든 것이 쓸려 가버릴 수 있다”고 말했다.



     “한 방 맞더니 맥 못 춰”


    -어떤 면에서 무서운 존재인가요?
    “단적인 예로, 미국 보잉이 여객기, 제트기, 전투기 같은 비행기를 만듭니다. 당연히 비행기엔진도 만듭니다. 비행기엔진은 비행기 날개에 떼었다 붙였다 하는 거죠, 날개. 그런데 이 비행기엔진에서 보잉은 미국의 GE에 이미 따라잡혔어요. 단 3년 만에 GE는 전 세계 비행기엔진의 60%를 차지했어요. 앞으로 2년 정도 지나면 GE가 독차지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옵니다.”

    -GE는 우리나라의 한국전력과 같은 전기회사인데요. 어떻게 생소한 비행기엔진 분야에 진출해 업계 정상인 보잉을 꺾을 수 있었을까요?
    “이유는 ‘소프트웨어’입니다. GE는 비행기엔진 안에 소프트웨어를 넣었어요. 엔진에 100이라는 에너지가 들어가야 하는데 98이 된다든지 하면 먼지나 이물질 같은 것이 끼었다는 뜻이겠죠. 이 소프트웨어가 이런 걸 찾아내줍니다. 그러면 그 원인을 제거하는 거죠. 비행기가 엔진 이상으로 제때 날지 못하거나 회항하거나 하면 그 손실이 어마어마합니다. 이 소프트웨어는 이런 손실을 막아주죠. 지금 거의 모든 항공사가 GE 엔진을 달아달라고 해요. 보잉은 이런 소프트웨어를 개발하지 못해 엔진 시장을 다 뺏기는 거죠.”

    4차 산업혁명은 흔히 전통적 제조업과 ICT(정보통신기술) 혹은 소프트웨어의 결합으로 일컬어진다. “비행기엔진 사례는 4차 산업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보여 준다”는 김 대표의 말은 잘 이해됐고 흥미로웠다. 김 대표는 다른 사례도 제시한다.

    “포클레인 같은 중장비를 만드는 한 미국 기업은 이 중장비에 소프트웨어를 집어넣었어요. 보통 중장비를 쓰다가 고장이 나면 한 달씩 수리를 맡깁니다. 그런데 이 소프트웨어 덕분에 수리에 드는 시간과 비용이 크게 줄어드는 거예요. 당연히 이 미국 기업은 큰 성공을 거두고 있죠. 반면, 중장비를 생산하는 한국의 두산인프라코어는 그렇게 잘나가다가 얼마 전 신입사원까지 구조조정한다고 하면서 어려움을 겪었어요. 바로 이 소프트웨어 측면에서 뒤처졌기 때문이죠.”

    -4차 산업혁명에서 몇몇 선진국 기업들은 이미 멀찌감치 앞서나가는 것 같네요. 우리나라가 따라잡을 수 있을까요?
    “지금부터 출발해도 8~10년 걸려요. 그럼 그사이 어떻게 합니까? 그러니 신입사원까지 자르는 거예요. 과거 전통적 방식으로 잘나가다가 소프트웨어 한 방 맞더니 맥없이 무너지려 해요. 우리나라는 제조업으로 사는 나라인데, 산업계 곳곳에서 이런 위기가 닥칠 수 있어요.”

    -우리나라는 전반적으로 4차 산업혁명에 어떻게 대처해왔나요?

    “산업현장에 투입할 기술자도 구하기 어렵습니다. 반면, 저는 GE나 슈나이더 같은 글로벌 기업에서 일한 사람들을 채용했어요. 그래서 에너지사업 등에서 소프트웨어가 접목된 독자적 기술을 여럿 확보하고 있죠. 30여 개의 특허를 갖고 있어요. 국가는 4차 산업혁명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아직도 잘 모르고 있더라고요.”

    -왜 그렇게 보나요?

    “예컨대, 3차 산업혁명까지는 사람의 손으로 대량생산하지만 4차 산업혁명에선 로봇이 생산하죠. 사고로 공장이 정전되면 문제가 발생합니다. 우리는 정전을 막는 신기술을 국내에서 유일하게 개발했어요. 교류를 직류로 바꿔 배터리에 저장한 뒤 이 직류를 다시 교류로 바꿔 흘리는 거죠. 사고가 나도 전기의 흐름이 끊어지지 않습니다. 여기서 신속하게 많은 양의 전기를 충전하는 기술이 진정한 기술입니다. 우리가 혁신적 기술을 개발했지만 정부나 대학이 신경을 안 써요.”
    김 대표는 내친김에 우리나라 전기자동차의 경쟁력도 평가했다. 전기자동차가 미래엔 대세가 될 가능성이 높은데 배터리 충전기술 부족으로 우리나라의 상황이 좋지 않다고 설명한다.



    "세상이 뒤집힌다."

    김 대표는 무정전 하이브리드 에너지 저장 시스템이 우리나라의 에너지 문제를 획기적으로 개선할 4차 산업혁명의 사례일 수 있다고 말한다. 저소득층엔 무상으로 전기를 공급할 수 있다고 한다. 그가 주창하는 ‘값싼 전기’는 앞으로 공론화해야 할 이슈라는 느낌이 들었다. 관련된 그의 말이다.

    “일본에서 전기의 95%는 민간이 생산합니다. 낮과 밤의 전기요금 격차가 크죠. 지금 일본에선 전기가 남아돕니다. 우리나라에선 한전이 독점 생산합니다. 낮과 밤의 전기요금 차이가 별로 없어요. 독점이어서 가만히 있어도 돈을 버는데 굳이 밤에 전기를 할인해줄 필요가 없다는 거죠. 그러면서 여름철마다 블랙아웃을 걱정해야 합니다.

    저희가 만든 ESS에선 이런 게 통하지 않죠. 밤에 아무도 안 쓰는 전기를 충전했다가 낮에 공급합니다. 지금은 발전한 전기를 다 흘려버리거든요. 저희 방식대로 하면 앞으로 10년 동안 원전 더 지을 필요도 없어요. 전기요금도 떨어지죠. 저소득층엔 공짜로 전기를 줘도 됩니다. 전기를 싸게 생산하는 건 4차 산업혁명 중에 가장 핵심적인 부분입니다. 세상이 뒤집힙니다. 한국 제조업이 다시 살아납니다. 값싼 전기는 경제를 살리고 일자리를 늘릴 묘책이죠.” -일본이 이미 그런 방향으로 가고 있다 이거네요.

    "후쿠시마 원전 폭발 이후 일본은 원전을 추가로 짓지 않았는데도 전력 예비율이 30%선으로 넉넉합니다. 전기가 얼마나 중요하냐면, 중국 경제가 발전한 건 전기가 대륙 곳곳에 깔려 있는 점과 무관치 않아요. 베트남의 인건비가 싸도 베트남에 활발하게 진출하지 못하는 건 베트남에 전기가 충분치 않기 때문이죠. 필리핀이 못 사는 가장 큰 이유는 섬으로 된 나라여서 발전-송전이 불리하기 때문이죠. 인도도 마찬가지고요. 땅도 넓고 값싼 노동력도 풍부한데 전기가 부족해서 중국처럼 발전하지 못했죠. 우리가 전기를 갖고 이런 나라에 들어갈 수 있죠. 2010년 이전만 해도 오일이 세계를 지배했습니다. 이제 오일은 셰일가스 때문에 배럴당 60달러 이상 받기 힘들죠. 60달러를 넘어서면 셰일가스가 가격경쟁력이 생겨서 나와버리니까요. 결국 오일의 지배력은 떨어졌어요. 미국도 중동 문제에서 슬슬 빠져나오지 않습니까? 전기가 이제 더 중요해졌죠.”



    "독일 모델로 좋은 일자리를…”

    우리나라에선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임금격차,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임금격차가 큰 편이다. 청년들이 좋은 일자리를 구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는 주된 이유이기도 하다. 사업관계로 독일 경제를 잘 아는 김 대표는 파격적으로 보이는 독일 모델이 우리 일자리 문제의 해법이 될지 모른다고 제안한다.

    “독일에선 대기업과 협력회사의 순이익이 같아지게 해요. 이걸 우리에게 적용하면 삼성전자가 9%의 순이익을 낼 때 삼성전자는 자사의 협력회사도 9%의 순이익이 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죠. 이 비율을 맞추지 못하면 세금을 더 내야 하는 거죠. 독일도 법인세가 센 편이 아니죠. 이러니 독일에선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임금격차가 크지 않고 양질의 일자리를 구하기도 수월하죠.”

    김 대표는 “국민의 80%가 삼성에 다니면 복지는 저절로 해결된다. 이케아도 본사와 주력 사업장이 스웨덴 본국에 있다. 대기업들이 해외에 공장을 짓는 대신 국내에서 새로운 활로를 열어 투자하도록 사회적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대선주자를 비롯한 모든 사람이 4차 산업혁명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옳은 방향으로 뜻을 모으면 좋겠다. 가까운 미래에 한국이 경제대국이 되어 있을지, 아니면 쇠약한 나라가 되어 있을지는 지금의 선택에 달린 것 같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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