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史論으로 본 조선왕조실록

종친 vs 대신 “왕의 친척이라도 법 앞에선 평등” || 병자호란 還鄕女 문제 “백성을 지키는 것은 국가 책임”

  • 이규옥|한국고전번역원 수석연구위원, 강성득|한국고전번역원 선임연구원

종친 vs 대신 “왕의 친척이라도 법 앞에선 평등” || 병자호란 還鄕女 문제 “백성을 지키는 것은 국가 책임”

1/4
  • 조선시대 국정 기록을 전담한 사관은 임금과 신하의 대화를 기록하고 국정과 관련된 주요 문건을 인용, 발췌해 사초를 작성했다.사건의 시말(始末), 시시비비, 인물에 대한 평가 등 사관들의 다양한 의견(史論)이 함께 실렸다. 당대에 첨예한 논란을 빚으며 사관들의 붓끝을 뜨겁게 한 사건을 2편씩 소개한다. 이 글은 한국고전번역원이 발간한 ‘사필(史筆)’에서 가져왔다.
종친 vs 대신 “왕의 친척이라도 법 앞에선 평등” || 병자호란 還鄕女 문제 “백성을 지키는 것은 국가 책임”

한국고전번역원 刊 ‘사필(史筆)’


종친 vs 대신

“왕의 친척이라도 법 앞에선 평등”
이규옥|한국고전번역원 수석연구위원

조선 시대에 임금의 친족인 종친과 정치권력을 쥐고 있던 대신들은 어떤 관계였을까. 조선 초기에는 왕자들 간 참혹한 왕위 쟁탈전을 겪은 터라 세조 때부터 종친들의 정치 참여를 아예 금지해버렸다. 그러나 종친은 임금의 친척으로서 명예와 부를 누렸고, 정치 상황에 따라 왕위에 오를 수도 있는 특별한 지위에 있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정치적 야망을 숨기고 살아야 하는 종친과 실질적으로 정국을 운영하는 대신 사이에는 서로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한 갈등이 늘 있어 왔다.

영조 9년(1733), 종친과 대신 사이에 이런 갈등이 불거졌다. 해흥군 이강(李橿)은 선조의 아들인 영성군의 증손자로, 종친 가운데 비교적 품계가 낮은 종2품이었다. 그런 그가 난데없이 대신과 비변사 당상들이 모여 회의하는 빈청에 나타나 턱하니 대신 자리에 앉은 것이다.

이에 좌의정 서명균은 하리(下吏)가 제대로 인도하지 못한 탓이라 하고 종친부 서리(書吏)를 잡아다 가두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해흥군의 아우 해춘군이 종친을 모독했다며 의정부 서리를 잡아다 가두었다. 이렇게 옥신각신 한차례 힘겨루기가 끝난 뒤, 이번에는 조정에서 영조와 신하들 간에 한바탕 설전이 벌어졌다.



영조와 신하들의 舌戰

종친 vs 대신 “왕의 친척이라도 법 앞에선 평등” || 병자호란 還鄕女 문제 “백성을 지키는 것은 국가 책임”

영조대왕(왼쪽), 박문수(오른쪽) [동아일보]

영의정 심수현
: 종친으로서 대신만이 들어갈 수 있는 빈청에 들어가고, 게다가 의정부의 서리를 잡아 가두었으니 잘못된 일입니다.
영조 : 왕자와 대군은 대신과 자리를 같이하지 않고, 1품 종친은 대신과 대등한 예를 행한다. 빈청은 다른 사람이 들어갈 수 없는 곳이라고 하지만, 내가 왕위에 오르기 전에 빈청에 앉아 술을 하사받은 적이 있다. 그리고 종친부는 모든 관사의 우두머리여서 전에는 왕자나 대군이 아니면 제조(提調·우두머리가 아닌 사람이 관아의 일을 다스리게 하던 벼슬)가 될 수 없었는데, 지금은 촌수가 먼 종친이 제조로 있기 때문에 신하들이 얕보고 있다. 해흥군이 빈청에 들어와 대신의 자리에 앉은 것은 참으로 분별없는 행동이기는 하다. 그렇긴 하나 청지기를 가두는 것이라면 모를까 종친부 서리를 곧바로 가둔 것은 잘못된 일이다.
좌의정 서명균 : 종친부도 중요한 곳이기는 하지만 의정부는 체통이 더욱 각별하니 결코 의정부 서리를 가두어서는 안 됩니다.
영조 : 그렇지 않다. 근래 종친의 힘이 약해졌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좌의정 서명균 : 더구나 관직을 가진 종친이 혹시라도 일을 소홀히 하면 의정부에서 단속해야 합니다.
영조 : 그렇지 않다. 종친부는 의정부가 간섭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영조는 ‘경국대전’에도 종친부는 의정부보다 우위에 있는 관사로, 명목상으로는 모든 관사의 우두머리인데, 의정부의 통제를 받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이에 반해 조정 신하들은 아무리 종친부라 하더라도 국정을 총괄하는 의정부의 통제를 받아야 국가의 질서가 바로잡힌다고 생각한 것이다. 왕실의 존엄이 먼저다, 나라의 질서가 먼저다 하는 임금과 신하 사이의 살얼음판 같은 대화는 더욱 날선 대립으로 이어졌다.
영성군 박문수 : 대신을 공경하는 것은 나라의 체통을 높이는 것입니다. 종친부가 존중해야 할 곳이기는 하지만, 왕자와 대군도 아닌 2품의 종친이 어떻게 의정부의 서리를 직접 가둘 수 있습니까. 신은 개탄스러운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영조 : (진노하여 큰 소리로 꾸짖으며 말하기를) 박문수를 엄하게 추고(推考)하라. 너희들은 내가 왕자로 있다가 보위에 올랐다고 우습게 여겨서 종친부를 업신여기는 것이냐.

영조가 책상을 치며 오열하니, 신하들이 두려워 떨며 허둥지둥 물러났다.


1/4
이규옥|한국고전번역원 수석연구위원, 강성득|한국고전번역원 선임연구원
목록 닫기

종친 vs 대신 “왕의 친척이라도 법 앞에선 평등” || 병자호란 還鄕女 문제 “백성을 지키는 것은 국가 책임”

댓글 창 닫기

2017/12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