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4월호

영화로 읽는 세상

삭막한 도시의 직장인이 꿈꾸는 판타지

라라랜드

  • 노광우|영화 칼럼니스트 nkw88@hotmail.com

    입력2017-04-10 17:30:58

  • 글자크기 설정 닫기
    할리우드는 지금도 세계 영화시장을 주름잡지만 그 전성기는 1930~60년대였다. 이 시기에 무성영화(배우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영화)는 지금의 유성영화로, 흑백영화는 색채영화로 전환된다. 데이비드 보드웰은 이 영화들을 고전적 할리우드 영화(Classical Hollywood Cinema)라 한다. 이 시기에 가장 유행한 장르가 뮤지컬 영화였다.

    경제대공황에 지친 대중은 화려한 음악과 영상을 동반하는 현실 도피적 뮤지컬에서 위안을 찾았다. 뮤지컬 영화는 재즈, 모던댄스, 발레를 접목해 풍부한 볼거리를 제공했다. 아마 나이가 지긋한 독자는 1950년대를 석권한 뮤지컬 영화인 ‘사랑은 비를 타고(Singing in the rain)’의 멜로디를 지금도 흥얼거릴 수 있을 것이다. 

    1950년대 이후 텔레비전의 등장으로 영화산업 자체가 위기를 맞았다. 1960년대 이후 미국에선 베트남전쟁 반대 운동과 인권 운동이 일어났다. 이 여파로 뮤지컬 영화는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간주됐다. 1970년대 이후 모험영화, 공상과학영화, 스릴러 영화가 주로 블록버스터가 됐다.



    아카데미상 해프닝으로 더 떴다?

    지난해 말 개봉된 ‘라라랜드(La La Land·데미언 채즐)’는 이런 점에서 실로 오랜만에 접하는 제대로 된 뮤지컬 영화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이 영화는 올 2월 제89회 아카데미상 시상식 사고에 휩싸이기도 했다. 시상식에서 작품상 수상작이 ‘라라랜드’로 발표돼 라라랜드 제작진이 수상 소감까지 말했다가 수상작이 ‘문라이트’로 정정 발표된 것이다.



    라라랜드의 제작진은 겸연쩍은 표정으로 트로피를 반환해야 했다. 그런데 이 아카데미상 해프닝으로 라라랜드의 인지도는 더 치솟았다. 국내 많은 영화 팬도 이 사건 후 라라랜드를 찾아서 보게 됐다.

    이 시상식에서 라라랜드는 14개 부문 후보에 올라 6개 부문에서 상을 받았다. 이 영화의 예술적 성취나 만듦새가 어느 정도 공인받은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 영화는 고전적 할리우드 뮤지컬 영화의 분위기를 재현했고 특히 아름다운 선율의 재즈음악을 들려준다. 연출자인 데미언 채즐은 고교 시절 재즈 드러머였다.



    겨울, 봄, 여름, 가을

    라라랜드는 재즈 피아니스트와 악질적인 밴드 지휘자의 갈등을 중심 이야기로 설정한다. 이야기 구조와 주연배우들의 성격은 단순하지만 음악의 강렬함이 관객을 압도한다. 이 영화는 재즈와 춤을 최우선으로 두고 이들을 부각하게끔 이야기와 인물들을 배치했다고 할 수 있다.

    이 영화의 초반 10분은 극심한 교통체증이 발생한 미국 로스앤젤레스 외곽 출근길 고속도로를 배경으로 한다. 현실에서 자가용을 몰고 출근하는 직장인들은 차가 밀려 무척 짜증스러워할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차에 탄 이들은 이 상황에 대해 몇 소절씩 노래를 부른다. 이어 운전자들이 각자의 차 지붕 위에 올라가 함께 춤을 춘다.

    지옥 같은 출근길 도로가 아름다운 선율이 흐르는 천국으로 변한다. 이 강렬한 도입부만으로 이 영화는 예술적 성취의 80% 이상을 이룩한 셈이다. 이 영화에서 남자 주인공인 세바스천(라이언 고슬링)은 사장이 정한 레퍼토리대로 연주하지 않고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연주했다는 이유로 나이트클럽에서 쫓겨난 가난한 재즈 피아니스트다.

    여자 주인공인 미아(에마 스톤)는 대형 영화사 스튜디오 옆에 있는 카페에서 웨이트리스로 일하면서 오디션을 전전하는 영화배우 지망생이다. 이 둘의 만남, 사귐, 헤어짐은 겨울, 봄, 여름, 가을 순으로 배열된다. 예술학교의 교육과정을 다룬 뮤지컬 ‘페임(Fame·1980년·알란 파커)’도 비슷한 시간적 나열(대학 1~4학년) 구조를 갖고 있다.


    “당신은 내 타입이 아니고…”

    라라랜드에서 겨울에 나이트클럽에서 쫓겨난 세바스천과 오디션에서 떨어진 미아가 만난다. 봄에 둘은 재회하고 사귄다. 여름에 세바스천은 옛 친구의 퓨전 재즈 밴드에 들어가 형편이 나아지지만 원래 추구하던 정통 재즈로부터 멀어지고 미아는 자신의 경험을 소재로 모노드라마를 짠다. 가을에 세바스천은 공연 투어를 떠나고 미아는 모노드라마 실패에 낙담한 채 고향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이 모노드라마에서 미아의 모습을 눈여겨본 한 영화사의 캐스팅 담당자가 세바스천에게 연락하고 세바스천은 미아의 고향으로 찾아가 설득한다. 미아는 로스앤젤레스로 와서 오디션에 임한다. 이렇듯 이 영화의 이야기에선 대단한 반전이 없다. 각 장면에서 세바스천과 미아가 추는 춤과 그들이 즐기는 재즈 음악이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다.

    봄의 어느 날 저녁 세바스천과 미아는 로스앤젤레스 시내 불빛이 멀리 보이는 한 공원 언덕에 올라간다. 세바스천은 미아에게 “당신은 내 타입이 아니고 당신을 볼 때 전기가 통하지도 않는다”고 말한다. 미아도 이런 세바스천이 입은 ‘값싼 폴리에스테르 양복’을 거론하면서 반격을 가한다.

    ‘썸’을 타던 이 남녀는 어디에선가 들려오는 음악에 맞춰 차츰 몸을 흔들더니 대도시의 푸른 저녁 하늘 아래에서 더없이 조화로운 몸짓으로 춤을 춘다. 삭막한 도시에 사는 직장인이 꿈꾸는 판타지는 아마 이런 모습일 것이다. 여름에 둘은 플래니터리움이라는 곳에서 인공적 우주를 배경으로 날아다니며 재즈 선율에 몸을 맡긴다. 둘의 춤은 20세기 뮤지컬 영화를 풍미한 프레드 아스테어와 진저 로저스, 진 켈리와 시드 채리스 콤비의 춤을 연상케 한다.





    노광우

    ●    1969년 서울 출생
    ●    미국 서던일리노이대 박사(영화학)
    ●    고려대 정보문화연구소 연구원
    ●    논문 : ‘Dark side of modernization’ 외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