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4월호

이영미의 스포츠 ZOOM 人

“한 타석이라도 메이저리그 뛰는 게 꿈… 지금 너무 행복하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야구선수 황재균

  • 이영미|스포츠 전문기자

    입력2017-04-10 17:5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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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A 80억 원 몸값 뿌리친 간절한 도전
    • 한국 떠나면서 집과 차 팔며 배수진
    • “잘해서 꼭 살아남고 싶다”
    • “해보지 않던 야구 하고 있는 게 행복”
    “어릴 적부터 메이저리그에서 뛰는 게 꿈이었다. 메이저리그에서 한 경기라도 뛰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이번에 기회가 왔다. 그 기회를 살리고 싶어 도전을 택했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 스플릿 계약(메이저리그와 마이너리그 신분에 따라 계약 조건이 다른 걸 의미)을 맺은 황재균(30)이 미국 애리조나에서 펼쳐지는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스프링캠프에 합류하며 전한 소감이다. 황재균은 한국을 떠나면서 집과 차를 팔았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돌아갈 여지를 만들지 않겠다는 의미였다.

    거액의 FA(자유계약선수) 계약을 포기하고 자신의 꿈을 위해 도전에 나선 황재균의 현실은 녹록지 않다. 캠프에 합류한 선수 69명 중 기존의 주전 선수들을 제외하고 25인 로스터에 이름을 올리기란 ‘기적’에 가깝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의 주 포지션인 3루에는 에두아르도 누네즈, 코너 길라스피 등이 이미 자리를 잡고 있다. 황재균은 3루 외에도 1루와 외야 수비를 맡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내보이며 시범경기에서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황재균이 샌프란시스코 캠프에 처음 합류했을 때부터 시범경기를 치르는 과정을 직접 현장에서 지켜본 기자는 그가 메이저리그에 뿌리를 내리기 위해 얼마나 간절한 마음으로 훈련에, 경기에 임하는지 알 수 있었다. 황재균이 캠프 일정을 소화하며 인터뷰한 내용을 통해 그의 도전 과정을 조명해본다.

    지난 시즌까지만 해도 황재균에게 미국 애리조나는 롯데자이언츠의 스프링캠프였다. 롯데 유니폼을 입고 애리조나 캠프에서 구슬땀을 흘리던 그가 올 시즌에는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초청선수 신분으로 메이저리그 스프링캠프를 소화하고 있다.





    같은 훈련장 달라진 유니폼

    2016 시즌을 끝으로 FA 신분이 된 황재균은 FA 시장에서 형성된 몸값이 80억 원 안팎이었다. 원 소속팀 롯데자이언츠는 물론 kt위즈도 영입에 뛰어들면서 몸값 상승 폭이 컸던 것.

    이미 비시즌 동안 미국 진출을 위해 미국 플로리다에서 개인 훈련을 하며 메이저리그 스카우터들이 보는 가운데 쇼 케이스까지 마친 황재균이다. 메이저리그로의 ‘러브콜’을 기다렸지만 그에게 빅리그 영입을 제안해온 팀은 없었다. 당시의 분위기는 국내 잔류가 유력했다. 선수 입장에서 80억 원 이상의 FA 계약을 거절하기 힘들다는 시각도 존재했다.

    그러나 황재균은 1월 15일 원 소속팀인 롯데자이언츠 구단 관계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메이저리그에 도전하겠다고 밝혔다. “고민 끝에 메이저리그 도전을 선택하기로 했다”는 게 그가 롯데 측에 전한 입장 표명이었다. 당시만 해도 예상 밖의 선택이라는 게 대부분의 반응이었다. 미국에 진출한다고 해도 스플릿 계약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1월 24일 황재균의 에이전트사는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 스플릿 계약을 맺었다. 메이저리그 진입 시 연봉이 150만 달러(약 17억5000만 원)가 보장되고, 옵션 160만 달러를 포함해 총액 310만 달러(약 36억 원)이다’라고 공식 발표했다. 그러나 마이너리그(트리플 A)에 남는다면 그가 받을 연봉은 12만5000달러, 약 1억5000만 원에 불과하다. 그는 한국을 떠나면서 집과 차를 모두 처분했다고 말한다. 더는 뒤돌아볼 곳이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렇게 절박한 심정을 부여안고 그는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황재균은 어릴 때부터 메이저리그 무대를 동경했다. 메이저리그 타석에 단 한 번이라도 설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다는 생각뿐이었다. 2015년 시즌을 마치고 포스팅시스템을 통해 메이저리그 문을 두드렸지만 어느 팀에서도 응찰하지 않아 무위로 돌아갔다. 주변에선 만류했지만 그는 굴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은 ‘무모한 도전’이라고 손가락질했음에도 자신은 꿈을 이루기 위한 과정이라고 애써 위로했다. 그리고 그는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 스플릿 계약을 맺고 2017 미국 애리조나 스프링캠프에 합류한 것이다. 롯데자이언츠가 아닌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선수로 말이다(그런데 롯데와 샌프란시스코는 유니폼 디자인이나 색깔이 매우 흡사하다).


    “이렇게 야구하고 싶었다”

    2월 18일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스프링캠프가 시작된 날이다. 전날  황재균은 미리 훈련장을 방문해 구단 관계자들과 인사를 나눴다. 훈련 첫날 비로소 샌프란시스코 선수들과 만났고, 이 자리에서 샌프란시스코를 이끄는 브루스 보치 감독이 재미난 에피소드를 만들어줬다. 황재균의 설명이다.

    “훈련 시작하기 전 선수단 미팅이 있었다. 보치 감독이 날 앞으로 나오라고 하더라. 그냥 인사하는 줄 알았다. 부담 없이 감독 앞에 섰는데 갑자기 어떤 영상을 틀었고, 그 영상에는 내가 롯데 시절, 배트플립(타자가 홈런을 예상하고 1루로 출루하면서 야구 방망이를 던지는 행위를 의미한다)하는 장면이 소개되고 있었다.

    선수들은 폭소를 터뜨리며 환호성을 질렀고, 난 고개를 못 들었다. 한국에서 야구할 때는 배트플립 행위가 언급되는 걸 부담스러워했는데 이곳 선수들이 그 영상을 보고 날 더 좋아해주니 아이러니하더라. 내 첫인상이 선수들에게 재미있게 비친 듯해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황재균은 자신이 비록 스프링캠프 초청선수 신분이지만 브루스 보치 감독을 비롯해 버스터 포지, 헌터 펜스 등 스타플레이어들이 자신을 따뜻하게 맞이해준 데 대해 진심으로 고마워했다.

    캠프 시작일부터 황재균은 적극적인 모습으로 동료들과의 소통에 나섰다. 불과 하루밖에 안 됐지만 옆자리에 있는 선수에게 짧은 영어로 농담도 건네고 얼굴 가득 미소를 지으며 코칭스태프들과 인사도 나눴다.

    훈련장을 이동할 때 “(훈련이) 재미있어요?”라고 물었더니 그는 고민도 안 하고 “네, 정말 재미있어요. 이렇게 야구하고 싶었어요”라고 대답한다. 나중에 어떤 결과가 주어지든 황재균은 이 자체를 즐기고 싶어 했다. 선수들이 각자 자신의 부족한 점을 알아서 훈련하는 선수단 분위기가 자신에게 딱 맞아떨어진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메이저리그를 동경하던 황재균으로선 모든 게 신기하고 경이로울 수밖에 없었다. 특히 메이저리그 명문팀으로 꼽히는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입단은 설렘을 안겨줬다.

    “한국 MLB매장에서 보던 유니폼과 모자를 쓰고 야구하고 있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자이언츠 유니폼을 입고 뛰면서 개막 25인 로스터(빅리그 진입의 의미)에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더 간절해졌다.

    물론 마이너리그에서 시즌을 시작할 수도 있다는 각오를 하고 왔지만 TV로만 보던 선수들과 함께 야구한다면 그 재미가 만만치 않을 것 같다. 정말 행복할 것 같다. 무엇보다 내가 해보지 않은 야구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더욱 그렇다.”

    황재균은 캠프 시작일부터 아침 6시 40분에 출근한다. 이 출근 시간은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다. 오후 1시에 시작되는 시범경기를 위해 오전 9시에 출근하는 선수가 대부분이지만 황재균은 새벽 출근을 멈추지 않는다.



    등번호 1번

    “이곳 훈련은 오전에 다 끝난다. 지금까지 해오던 훈련량에 비해 한참 모자라는 부분이다. 그래서 일찍 시작한다. 타격 훈련이 부족하다 싶으면 코치랑 상의해서 내가 더 하면 된다. 배팅 게이지 안에 들어서면 코치가 내게 이런 질문을 한다.

    ‘어떤 공을 더 쳐보고 싶어?’라고. 즉 어떤 연습이 내게 더 필요하냐고 묻는 것이다. 이곳은 선수들이 알아서 훈련을 해나간다. 물론 수비나 타격 훈련을 같이 하지만 남은 부분은 내가 찾아가면서 훈련한다. 그런 방식이 나한테 더 맞는 것 같다.”

    황재균은 샌프란시스코에서 등번호 1번을 달고 뛴다. 야구선수 등번호치곤 이색 번호일 수밖에 없다. 그도 선수 생활하며 단 등번호 중 가장 적은 숫자의 번호라고 말한다. 하긴 1번보다 더 적은 번호가 있을까 싶다. 그런데 이때 브루스 보치 감독 전에 샌프란시스코를 이끈 펠리페 알루 전 감독(스프링캠프 내내 훈련장에 나와서 선수들 모습을 지켜본다)이 1번을 달고 뛰는 황재균을 가리켜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1번은 딱 봐도 야구 선수처럼 생겼다. 유니폼도 기존의 선수들처럼 잘 어울린다. 마치 오래전부터 이 유니폼을 입었던 것처럼 말이다. 등번호가 한번 보면 절대 잊을 수 없는 번호인데 1이란 숫자처럼 홈런도 1등을 차지했으면 좋겠다. 분명 팀에 도움이 될 선수로 보인다.”

    2월 26일, 샌프란시스코와 시카고 컵스와의 시범경기에서 황재균은 6회초 5번 3루수로 교체 출전했다. 6회말 4-3으로 앞선 상태에서 타석에 들어선 황재균은 무사 1,3루에 우완 짐 헨더슨을 상대로 투 스트라이크로 불리한 볼 카운트에서도 우측으로 밀어치는 3점 홈런을 터뜨렸다. 시범경기 첫 안타를 홈런으로 장식한 것이다. 그의 3점 홈런을 지켜본 샌프란시스코 전담 기자들은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시범경기 첫 홈런

    샌프란시스코 선수단을 이끄는 리더, 헌터 펜스는 황재균의 홈런에 대해 “정말 좋은 스윙을 보여줬다”면서 “황재균은 항상 자신감이 넘친다. 선수는 기회가 주어졌을 때 자신의 재능을 보여줘야 하는데 오늘 황재균이 그걸 해냈다. 그가 계속 우리 팀과 함께하길 바란다”고 기자에게 말했다.

    황재균의 첫 홈런이 의미가 있는 건 전날 시범경기에 첫 출전했다가 6구 2삼진을 당했기 때문이다. 그는 다음 날 일찍 출근해 전날 경기 영상을 확인하며 문제점이 무엇이었는지를 체크했다.

    자신의 왼쪽 어깨가 빨리 열린 데다 잘하려는 욕심이 앞서다보니 자꾸 당겨 치려 한 모습을 보고 오전 내내 배팅 게이지에서 무조건 오른쪽 방면으로 밀어치는 훈련을 반복했는데 훈련한 대로 홈런 타구가 우측 담장 밖으로 뻗어나간 것이다. 황재균은 홈런을 칠 때 처음에는 공이 넘어갈 줄 몰랐단다.

    “방망이를 세게 돌린 게 아니고 투 스트라이크 노 볼이라 우측으로 살짝 밀어치자 한 건데 그게 넘어갔다. 처음에는 빨리 뛰었다. 3루타라도 만들려고 말이다.”

    황재균은 불리한 볼 카운트에서 홈런을 만들어냈다. 그는 전날처럼 삼진을 당하지 않으려고 맞춰갔다면 이상한 스윙이 나왔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시범경기 첫 홈런도 기뻤지만 자신이 연습한 타격 폼과 방향대로 홈런이 나온 데 대해 더 큰 기쁨을 느낀 황재균이다.



    필요한 건 적응할 ‘시간’

    두 번째 홈런은 3월 8일 LA다저스 원정 경기에서 나왔다. 황재균은 이날 경기에 7번 3루수로 선발 출전해서 3타수 1안타를 기록했다. 홈런은 5회 두 번째 타석에서 다저스의 스티브 겔츠를 상대로 좌측 담장을 넘기는 솔로 홈런이었다. 첫 번째 홈런이 속구를 상대해서 나온 거라면 두 번째 홈런은 변화구를 때려 홈런으로 만든 것이었다.

    이날 황재균은 자신이 그토록 만나고 싶었던, 아니 한 번쯤 상대해보고 싶었던 LA 다저스의 클레이튼 커쇼를 상대팀 투수로 만났다. 다저스 소속인 동갑내기 친구 류현진으로부터 “커쇼의 속구를 노려라”는 조언을 들었지만 커브는 예상보다 낙차 폭이 컸고, 속구도 휘어져서 들어오는 바람에 빗맞은 땅볼을 만들어냈다.

    황재균은 강속구에 대한 갈증이 있었다. 동료 선수들에 의하면 시범경기 동안에는 투수들이 속구 위주로 공을 던진다고 말해줘 타석에 설 때마다 속구, 즉 직구가 들어올 줄 알았다고 한다.

    “메이저리그 투수들이 어느 정도의 빠른 볼을 던지는지, 그리고 그걸 내가 어떻게 상대할 수 있는지 경험해보고 싶었다. 그런데 투수들이 속구도 던지지만 의외로 변화구를 많이 구사하더라. 그게 좀 놀라웠다.

    아니면 동료 선수들이 내게 잘못된 정보를 줬거나. 강정호, 김현수 등 메이저리그에 먼저 진출한 친구들이 내게 귀가 따갑도록 해준 말이 ‘무조건 타석에 많이 올라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론적으로 알고 있는 것과 타석에서 메이저리그 투수들의 공을 직접 상대해보는 것은 큰 차이가 있기 때문에 직접 보고 적응해야 한다는 이유였는데, 보치 감독님이 자주 타석에 내보내줘 좋은 경험을 하는 중이다.”

    메이저리그 ‘명장’으로 평가받는 샌프란시스코 브루스 보치 감독은 황재균이 수비 실책을 범하거나 헛스윙 삼진을 당하고 돌아설 때마다 “이 모든 건 적응하는 과정”이라며 황재균을 감싸 안았다.

    “황재균은 재능이 뛰어난 선수다. 타자로서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선수이고, 3루에서 뛰는 모습도 더 지켜볼 생각이다. 지금 그에게 필요한 건 ‘시간’이다. 주위의 모든 환경이 낯설게 느껴지는 게 당연하다. 그래서 더 많은 기회를 줘야 한다.

    적응할 수 있는 기회를. 그는 미국 투수들이 어떻게 공을 던지는지 잘 모른다. 그러나 그가 계속 출전하면서 경험을 쌓다보면 금세 적응할 것으로 믿는다. 좀 더 적응한 모습을 본 다음에 그를 평가하고 싶다.”


    멀티 내야수

    보치 감독은 이후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황재균에 대해 좀 더 자세한 생각을 드러냈다.

    “처음 황재균과 계약을 맺었다는 얘기를 전해 듣고 그의 경기 영상과 스카우팅 리포트를 꼼꼼히 들여다봤다. 그러나 그 어떤 자료도 직접 보지 않고선 언급하기가 어려웠다. 황재균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다. 알고 있는 것보다 더 단단하고, 욕심이 많은 선수더라. 그리고 경기에 대한 습득 능력이 기대 이상이다. 확실히 야구에 대한 감각이 뛰어나다.”

    물론 메이저리그 감독이 하는 얘기가 100% 진심일 수는 없다. 종종 ‘립서비스’로 선수의 기를 살려주기도 한다. 무엇보다 스프링캠프에 참여하는 선수가 69명이나 된다. 시범경기가 거듭될수록 캠프에서 떨어져 나가는 숫자도 늘기 마련이다. 메이저리그 캠프에서 탈락한 선수들은 마이너리그 캠프로 향하거나 방출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치 감독은 초청선수 신분인 황재균을 살뜰히 챙겼다.

    “황재균의 장점에 대해 알고 있나. 그건 바로 실수를 해도 계속 경기를 해나가는 것이다. 실수했다고 해서 거기에 신경 쓰다 보면 남은 경기를 망치기 마련이다. 황재균은 빨리 깨우치고 다음으로 넘어갔다. 그게 프로다운 자세다. 실수는 누구나 하는 것이다. 그래서 괜찮다. 경기 중에 벌어진 실수를 마음에 담아두지 않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샌프란시스코 주전 3루수는 에두아르도 누네즈가 유력하고 백업 멤버로 코너 길라스피가 거론되는 상황에서 황재균은 1루수나 외야수를 염두에 둬야 하는 상황이다. 그래서인지 보치 감독은 다음과 같은 얘기를 전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1루 수비도 경험하게 할 것이고(3월 7일 클리블랜드전에서 3루 수비를 보다 1루 수비를 보기도 했다), 외야수에 세우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

    자신에게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모르는 상태에서 황재균은 스프링캠프에 합류하며 3루, 1루, 외야 수비용 글러브를 챙겨왔다. 이미 롯데자이언츠 훈련 캠프에서 세 포지션을 돌아가며 수비 훈련을 했다(황재균은 친정팀인 롯데 캠프에 미리 합류해서 이전 동료들과 함께 훈련을 이어가다 메이저리그 스프링캠프 일정에 맞춰 샌프란시스코 캠프로 이동했다).

    “나는 도전자다. 밑바닥에서부터 다시 시작하겠다는 각오를 하고 들어왔다. 주 포지션이 3루이지만 1루, 외야도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25인 로스터에 들어갈 수만 있다면 멀티 수비에 나서도 전혀 상관이 없다.”



    잘해서 꼭 살아남고 싶다

    황재균은 이런 상황에서 보치 감독이 기자들에게 전하는 한 마디 한 마디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보치 감독은 선수에게 직접 얘기하지는 않지만 황재균에게 끊임없이 격려의 메시지를 전했다. 황재균은 “보치 감독님이 인터뷰를 통해 하신 말씀을 챙겨 보는 편이다. 나와 관련된 부분에서 좋지 않은 말씀을 하셨다면 의기소침했을 텐데 매번 좋은 내용으로 격려를 보내주셔서 큰 힘이 된다”고 말했다.

    3월 4일 오클랜드와의 원정 경기에서 황재균은 시범경기가 시작된 이후 처음으로 3루수 선발 출전했다. 전날 LA 에인절스전에서 2안타를 몰아친 이후라 얼굴에는 자신감이 역력했다. 더욱 이날 라인업은 샌프란시스코 주전들이 거의 포함된 터라 황재균이 갖는 감회는 남다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디나드 스판- 조 패닉-버스터 포지-헌터 펜스-브랜든 크로포드-자렛 파커-크리스 마레로-맥 윌리엄슨-황재균. 황재균은 9번 타자로 나섰지만 “그래도 좋았다”고 말했다.



    간절함을 되찾고 싶다

    “TV에서 보던 대단한 선수들 아닌가. 그들 이름이 적혀 있는 라인업에 내 이름이 함께 있는 것 자체가 좋았다. 타순은 전혀 상관없었다. 계속 이 선수들과 함께 이름이 올라갔으면 좋겠다.”

    그러면서 황재균은 덧붙였다.

    “여기서 잘해서 꼭 살아남고 싶다. 이 선수들과 야구할 수만 있다면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다.”

    황재균의 간절함이 묻어나는 답변이었다. 보치 감독은 이런 황재균의 반응에 “나중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겠지만 그에게 행운을 빌고 싶다”면서 “지금처럼 즐겁고, 자신감 있는 야구를 해나갔으면 좋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황재균은 야구를 시작한 이래 ‘간절함’이란 단어를 되찾고 싶어 했다. KBO리그에도 어려운 상황이 펼쳐지지만 이미 경험한 리그가 아닌 상위 리그에서 그 ‘간절함’을 느끼고 싶었다. 다음의 얘기에서 그가 어떤 심경으로 메이저리그 스프링캠프를 소화하는지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진짜 힘들고 어려운 길이다. 어떤 이는 가시밭길이라고도 하고, 어떤 이는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기보다 더 어려운 길이라고 표현한다. 그래서 더 도전하고 싶었다. 물론 거액의 돈에 흔들리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그러나 그 도전에 대한 꿈을 접고 KBO리그에 남았더라면 평생 후회했을지도 모른다.

    TV로 메이저리그를 시청하며, 인터넷을 통해 뉴스를 접하며, 마음 한구석에 남은 미련과 아쉬움을 어떻게 해소할 수 있었겠나. 내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였다. 그리고 지금까진 열심히 하는 중이다. 결과는 내 몫이 아니다. 결과에 이르는 과정은 내 몫이다. 그런 상황이 흥미진진하고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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