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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인터뷰

“자총을 산업화세력과 민주화세력 화합의 구심점으로 만들겠다”

취임 1년 김경재 한국자유총연맹 총재

  • 최호열 기자|honeypapa@donga.com

“자총을 산업화세력과 민주화세력 화합의 구심점으로 만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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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유주의자

자유총연맹은 1954년 아시아민족반공연맹으로 창립해 지난 60여 년간 대한민국의 유일한 이념단체이자 대표적인 국민운동단체로 자리매김해왔다. 1989년 4월 한국자유총연맹으로 명칭을 바꾼 후 ‘반공’보다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를 옹호·발전시키며 국가 정체성을 바로 세우는 일에 주력해왔다. 전국 17개 시·도 지부와 228개 시·군·구 지회, 3500여 읍·면·동 분회와 해외지부, 직능단체로 이뤄져 있으며, 회원 수 350만 명이 넘는 국내 최대 조직이다.

-자유총연맹은 보수단체의 맏형 격으로 불린다. 그래서 김 총재가 출마했을 때 보수층에서 적임자가 아니라는 말도 나왔다.
“그렇다고 내가 좌파는 아니지 않은가. 나는 자유민주주의자다. 나도 자유총연맹이 ‘꼴통보수’ 집합소인줄 알았는데 꼭 그렇지만도 않더라. 무작정 공산주의 반대만 외치는 세상은 지났다. 새로운 시대에 맞춰 개혁, 혁신이 있어야 한다. 내가 그걸 할 수 있다고 자신한다.”

-청와대 홍보특보를 그만두고 자유총연맹 회장에 도전하게 된 계기는.
“원래는 20대 총선에서 비례대표 출마를 준비했다. 그런데 정치란 게 아사리판 같아서 선거 때가 되면 온갖 루머가 난무한다. 자칫하면 내 얼굴에 먹칠을 할 수도 있겠더라. 그때 후배들이 ‘자유총연맹 회장을 하시는 게 어떠냐’고 권유했다.”

그의 회장 출마에 대해 청와대가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그에게 “후배들이란 청와대에 있는 후배들이냐”고 단도직입으로 물었다. 김 총재는 “전혀 아니다. 당에 있는 후배들”이라며 구체적 실명까지 밝혔다.
 
-당시 조윤선 청와대 정무수석이 자유총연맹 선거에 관여했다는 보도도 있었는데.
“조윤선은 까마득한 후배인데 감히 내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었겠나. 청와대와는 전혀 상관없는 결정이었다. 오히려 당시 이병기 비서실장이 ‘(허준영 회장과 맞붙는데) 되겠습니까’ 하고 걱정했을 정도였다.”





기울어진 선거판

“자총을 산업화세력과 민주화세력 화합의 구심점으로 만들겠다”

2016년 4월 열린 취임식에서 김경재 총재가 연맹기를 들어 보이고 있다.

-행정자치부에서 선거에 과도하게 개입했다는 시비가 있었다.
“선거 과정에서 허준영 전 회장 측도 불만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도 처음엔 황당했다. 기울어진 선거판이었기 때문이다. 선거기간 전에는 대의원과 접촉 자체가 불법이었고, 열흘간의 선거 기간 동안에도 전화는 할 수 있지만 만나는 건 금지였다. 현직 회장은 회장 업무라는 이유로 선거 전에 대의원들을 직접 만나는 것은 물론 식사 대접까지 가능했다. 현직 회장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구조였다.”

-그런데 어떻게 이겼나.
“대의원을 직접 만날 수 있는 유일한 기회가 투표 직전 30분 연설하는 시간이었다. 그 자리에서 내가 한 말이 이거였다. 지금까지 자유총연맹을 직접 찾은 대통령이 딱 두 사람 있다. 박정희와 김대중이다. 내가 두 분에 대한 책을 쓰면서 느낀 게 ‘산업화’의 상징 박정희 대통령과 ‘민주화’의 상징 김대중 대통령이 꿈꾸던 나라가 결국은 같은 국가였다. 나도 그런 나라를 만들기 위해 자유총연맹이 앞장설 수 있도록 하겠다고 이야기했다. 그게 공감을 얻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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