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5월호

새 대통령 ‘지옥처럼 암담한 100일’ 맞는다

4차원 대선과 새 정부의 미래

  • 이종훈|시사평론가 rheehoon@naver.com

    입력2017-05-11 11:2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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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당기간 정부 구성 못 할 수도
    • 공약을 내년 정부 예산에 반영하기 어려워
    • 소수여당에 연정도 불투명, 한동안 동거정부
    • 사드 재검토 시 한미동맹 균열, 한반도 위기 증폭
    • 내년 개헌 추진 시 임기 1년 만에 식물 대통령 된다
    참으로 이상한 선거다. 그런데 긍정적일 수도 있다. 많은 것이 깨져나가는 속에 희망도 보인다. 그 희망 속에 암운도 드리워져 있다. 무엇보다 ‘3탈(脫)’이 눈에 띈다. 탈지역, 탈이념, 탈이슈다.

    탈지역  과거 대선과 달리 이번 대선에서는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도,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도 호남 몰표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2012년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는 호남에서 무려 89.2%의 지지를 획득했다. 영남 유권자 사이에서도 문재인과 안철수 가운데 누구를 선택할지가 오히려 더 큰 관심사다. 대구경북 지역이 안철수 후보를 더 선호하고 부산경남 지역이 문재인 후보를 더 지지하는 여론조사 결과도 심심찮게 나온다. 영남에서도 남북으로 표심이 갈릴 조짐이다.

    탈이념  2012년 대선에서도 보수정당의 좌향좌, 진보정당의 우향우 현상은 없지 않았다. 새누리당의 박근혜 후보가 경제민주화를 내건 것이 대표적이다. 이번 대선에서는 그런 흐름이 더 강해졌다.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는 양극화와 불평등 해소 그리고 재벌개혁을 강조한다. 기업 기(氣) 살리기를 외치며 친(親)기업 경제정책을 표방하는 훙준표 자유한국당 후보도 재벌개혁만큼은 단호하다.

    진보진영은 경제 공약에서 성장이란 단어를 강조한다. 문재인 후보가 내건 경제정책은 소득 주도 성장론이다. 안철수 후보가 내건 공정 성장론도 흐름은 포용적 성장론과 크게 다르지 않다. 범(汎)야권은 전통적으로 분배를 강조해왔는데, 이제 성장에도 반쯤 발을 담그는 형국인 것이다. 보수진영 여러 유권자는 대연정을 주장한 안희정 충남지사를 밀었다. 문재인 후보를 경선에서 떨어뜨리려는 역선택의 결과로 분석하기도 하지만, 어차피 보수 후보 가운데 마땅한 사람이 없다면 차라리 안희정을 선택하겠다는 이도 적지 않았다고 본다. 경계는 확실히 무너질 조짐이다.



    경험하지 못한 이상한 선거

    탈이슈  이번 대선에는 뚜렷한 대형 이슈가 없다. 2002년 대선 당시에는 노무현 후보의 행정수도 이전이 대형 이슈였다. 2007년 대선에서는 이명박 후보의 대운하가, 2012년 대선에서는 박근혜 후보의 경제민주화가 뜨거운 논란을 유발했다. 선거 때마다 대형 이슈가 등장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볼 순 없다. 북유럽 국가처럼 안정적 선진국이라면, 잔잔한 선거가 오히려 정상이다. 하지만 초단기 경제성장과 정치 민주화를 이룬 탓에 우리나라엔 언제나 이슈가 넘쳐난다. 그래서 적폐청산이 화두로 등장한 마당이기도 하다. 그러나 문재인의 적폐청산은 경제민주화처럼 압도적이지 못하다. 오히려 ‘문재인 측은 분열세력’이라는 역풍도 맞는다.

    4월 13일에 첫 대선후보 TV토론이 열렸다. 이날 토론을 주도한 사람은 의외로 유승민 후보와 심상정 정의당 후보였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최하위권인 이들이다. 반면 각종 여론조사에서 양강 구도를 형성 중인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는 토론을 지지리도 못했다. 

    ‘준비된 후보’라는 문재인 후보는 말할 것도 없고, 문 후보에게 끝장 토론을 제안한 안철수 후보도 소화가 덜 된 공약을 설명하느라 진땀을 흘리는 모습을 자주 연출했다. 무엇보다 당선에 근접한 주요 대선후보라는 이들이 일생일대의 사명감을 가지고 달성하고자 하는 일이 없다는 것이 우려스럽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영삼 전 대통령에게는 민주화가 그랬고,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는 지방분권이 그랬다. 문 후보에게서도 안 후보에게서도, 그 ‘무엇’이 잘 보이질 않는다.



    올해는 ‘쉬어가는 해’

    무성과  협치도 이뤄내지 못하고 초기부터 내각 구성에 애로를 겪는다면, 취임 첫해는 거의 쉬어가는 해가 될 가능성이 높다. 6월이면 정부의 내년도 예산이 내부적으로 확정되는 시기다. 이후 기획재정부와 각 부처 간 미세 내부 조율을 거쳐 9월 정기국회에 예산안을 제출하는 일정이다. 5월 9일 당선 직후부터 청와대 비서진을 동원해 아무리 열심히 달려도 내년 예산안에 공약사업을 포함시키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국회 인사청문회 절차를 거치지 않는 청와대 인선도 최소 1개월은 걸릴 것으로 봐야 한다. 비서실장과 수석비서관들이 인수인계를 받고 업무를 파악하기에도 벅찬 시간이다. 하물며 총리도 장관도 모두 지난 정부 출신이다. 그들이 적극 협조할 것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결국 공약사업은 집권 2년 차인 2018년 예산안 작성 때부터 반영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게 반영된 예산안이 집행되는 첫해가 집권 3년차인 2019년이다. 시행 1년 만에 초고속으로 성과가 나오더라도 집권 4년차다. 레임덕이 오기 시작하는 해다. 성과가 나오기도 전에 관심은 이미 차기 대통령으로 넘어가는 억울한 정부가 되는 것이다.



    한미관계 視界 제로 되면…

    이 모든 시나리오도 국회에서 협치가 잘 이뤄져 거대 야권이 적극 협력해줄 경우에 달성 가능하다. 협치가 물 건너가면 이조차 이룰 수 없다. 최악의 경우에 공약사업 하나도 제대로 예산안에 반영시키지 못한 채 임기 말을 맞을 수도 있는 것이다. 더욱이 4월 12일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가 주최한 토론회에서 5당의 대선후보가 모두 임기 내 개헌을 공약했다. 내년 지방선거 때 개헌 국민투표 실시에도 의견이 일치했다. 개헌 국민투표까지 이뤄지고 나면, 현 정부에 대한 관심은 더 떨어질 것이다. 새 대통령은 1년 만에 식물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말이 그래서 나오는 것이다.

    정치권 일각의 우려대로 새 대통령이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재검토 등의 과정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마찰을 빚고 한미관계가 시계(視界) 제로 상황으로 빠져들 가능성도 있다. 이럴 경우 미국이 한국 정부와의 협의 없이 북한 공격에 나선다는 한반도 위기설은 더 심화될 것이다. 가뜩이나 안 좋은 경제는 직격탄을 맞을지 모른다.

    탄핵 과정에서 국민은 촛불과 태극기로 분열됐다. 촛불 국민의 힘으로 임기가 남은 대통령을 몰아내고 당선된 새 대통령은 임기 초반 아주 작은 계기로도 태극기 국민에게 대통령으로 인정받지 못한 채 배척당할 수 있다. 새 대통령의 앞길에 대해 기대보다 걱정이 훨씬 앞서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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