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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미의 달콤쌉쌀한 스위스

합리적 직장문화와 직업교육의 힘

저녁이 있는 삶이 가능한 이유

  • 글·사진 신성미|在스위스 교민 ssm0321@hanmail.net

합리적 직장문화와 직업교육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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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직업이 교수나 의사라고 해서 무조건 우러러보지 않고 청소원이나 배관공이라고 해서 무시하지 않는다. 무슨 일을 하든 그 사람이 가진 전문성을 존중한다. 이런 사회적 문화가 가능한 건 스위스의 전문적인 직업교육제도 덕분이다. 한국의 대학진학률은 70%가 넘지만 스위스에선 20%대에 불과하다. 학문적 공부가 필요한 사람만 대학에 갈 뿐 나머지 사람들은 실용적인 직업교육을 받는다.
합리적 직장문화와 직업교육의 힘

초저녁 퇴근 후 공원에서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스위스 직장인.

스위스에 살면서 한국과 다르다고 느끼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그중 제일 다른 걸 꼽으라면 단연 직장문화다. 스위스인 남편과 친지들을 통해 스위스 직장문화를 간접적으로만 접하던 나는 올해 초부터 스위스 기업에서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면서 스위스 직장문화를 생생하게 경험하고 있다. 나는 현재 토종 스위스 기업에서 비즈니스 프로세스 매니지먼트 업무를 맡고 있다. 이전에 한국에서 7년간 경험한 직장생활과는 정말 확연히 다르다.

첫 출근한 날이었다. 직속 상사 다니엘(가명)이 나에게 오리엔테이션을 해주다가 낮 12시가 되자 칼같이 일을 중단했다. “난 이제 집에 가봐야 해요. 집에서 아이들과 함께 점심을 먹거든요. 오후 1시 반쯤 다시 사무실에 올 거예요.”



점심시간마다 집에 가는 상사

40대 초반의 다니엘은 부인과 함께 자녀 다섯을 키우고 있다. 회사에서 자전거로 5분 거리에 사는 그는 늘 집에 가서 점심을 먹고 다시 회사로 온다. 초등학교에는 급식이 따로 없다. 점심시간에 어린이들이 집에 가서 점심을 먹고 오후 수업을 위해 다시 학교에 가기 때문에 집에서 점심을 챙겨줄 사람이 필요하다. 이 때문에 다니엘은 점심에 집에 가서 아이들과 함께 식사를 하는 것이다. 다니엘뿐 아니라 회사에서 집이 가까운 동료들은 집에 가서 점심을 먹고 온다. 어느 날에는 오후 2시에 회의가 있었는데 그 시간에 맞춰 복귀한 그는 “딸을 치과에 데려다 주고 오느라 지금 왔어요”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물론 내 눈에 다니엘은 육아에 충실한 가정적인 남성이다. 그렇다고 일을 소홀히 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업무시간에는 철저히 효율적으로 일하고 나로서는 배울 점이 많은 상사다. 일과 육아에 모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랄까. 그런데 한국의 직장문화를 기준으로 따져보면 그는 고용주나 상사에게 눈칫밥 먹기 딱 좋다. 점심시간에 집에 갔다 온다? 그것도 1시간 반이나 자리를 비운다?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하는 것 아닌가?

그러나 스위스에서 이런 일상이 가능한 건 오히려 공과 사가 철저히 구분되고 직원의 사생활이 존중되기 때문이다. 스위스 직장인들에게 점심시간은 사적이며 법적으로 보장된 휴식시간이다. 따라서 이 시간에 헬스클럽에 가서 운동을 하든, 장을 보러 가든, 집에 다녀오든 아무도 뭐라 할 수 없다. 또 하루 8시간 근무자라면 점심시간을 최소 30분 이상 갖도록 법으로 정해져 있다. 미국 대도시의 직장인들처럼 책상에서 일하면서 샌드위치로 게 눈 감추듯 점심을 때우는 모습은, 쉴 땐 쉬어야 하는 유럽에선 찾아보기 힘들다.



오후 5시 음악방송 들으며 퇴근

합리적 직장문화와 직업교육의 힘

부업으로 사진가로 일하는 로저(맨 오른쪽)가 결혼식 사진을 찍다 신랑신부와 포즈를 취했다.


점심시간에 다니엘의 자유로운 이탈(?)이 가능한 이유는 업무시간이 칼같이 지켜지면서도 개인별로 유연하게 사용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스위스에서는 기업에 따라 주당 38.5~42.5시간을 근무시간으로 정하고 있으며, 일반 사무직의 경우 주당 45시간 이상 근무할 수 없도록 법으로 규정돼 있다. 우리 회사에서는 출퇴근과 점심시간에 단말기에 지문을 찍는 방식으로 업무시간을 집계한다. 점심시간이 길어졌다면 그만큼 더 일하고 늦게 퇴근하거나 다음 날 더 일찍 출근해서 근무시간을 보충하면 된다. 즉 근무시간은 협업에 지장을 주지 않는 한 개인의 책임과 재량에 맡기는 것이지, 상사가 눈치 줄 수 있는 게 아니다. 아이들을 아침에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바래다주고 오후에 데려오는 게 중요한 일상인 맞벌이 부부에게, 유연한 근무시간은 일과 육아의 조화를 가능케 하는 중요한 조건이다.

스위스 기업에서는 불필요한 눈치보기식 야근이 전혀 없다. 그 대신 업무시간 내에 맡은 일을 끝낼 수 있도록 철저하게 일에만 집중한다. 당연히 근무시간에 스마트폰을 보거나 개인적 용도로 인터넷 서핑을 하지도 않는다. 스위스 직장에서는 보통 오전에 10분, 오후에 10분 정도 휴식시간이 있는데 이때 동료들이 휴게실에 모여 함께 커피를 마시며 잡담을 나누거나 스마트폰을 본다. 불가피하게 야근을 하는 경우 야근수당을 주는 회사도 있고 휴가로 보상해주는 회사도 있다.

한국에서 신문기자 생활을 할 때  나에게 ‘오후 6시 퇴근’은 상상 속에만 있는 이야기였다. 그때는 가족보다 직장 동료들과 저녁식사를 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중요한 기사를 쓰거나 야근당번을 하는 날에는 오후 10시, 11시에 퇴근했는데, 그마나 바로 집에 가서 잘 수 있으면 다행이었지만 “맥주 한잔만 하고 가자”는 상사의 제안이라도 있을 땐 새벽 한두 시에야 택시를 타고 집에 가는 일도 다반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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