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5월호

명사 에세이

‘시골 교수’의 조용한 강의혁명

  • 김성삼|대구한의대 상담심리학과 교수

    입력2017-05-11 17: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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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북 경산시 자인면 북사리. ‘한의대 오바마’라 불리는 나의 현주소다. ‘시골 교수’란 별명은 서울에 있는 동료 교수들이 붙여준 것이고, ‘한의대 오바마’는 학생들이 붙인 별칭이다. 둘 다 맘에 든다. 3월이면 수선화가 노래하고 4월이면 복숭아꽃이 붉은색 비단으로 수를 놓는 햇빛 좋은 언덕, 아침엔 왜가리를 저녁엔 고라니를 만날 수 있는 곳에서 나는 역설적으로 가장 강력한 ‘강의혁명’을 부르짖고 있다.



    五感 살리니 학생이 살아나

    교수가 주도하는 일방적 주입교육의 현장에서 소크라테스의 문답법식 수업을 하고, 집에서 선행학습을 한 후 학생이 주도하는 ‘플립러닝(flipped learning·온라인을 통한 선행학습 뒤 오프라인 강의를 통해 교수와 토론식 강의를 하는 역진행 수업 방식)’ 수업을 한다. 미술에서 음악을 듣고 영화에서 인문학을 그려내는 창조적 수업을 거침없이 쏟아낸다. 숨! 가쁘다. 누군가가 그렇게 하라고 했으면 아마 절대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 강좌에 모든 스킬을 다 집어넣어 강의하는 일명 ‘비빔밥 강의(감성 티칭)’를 가장 즐긴다. 오감(五感)을 총동원한 나의 전매특허인 이 강의는 시간 대비 학습효과가 가장 높다. 강의 만족도는 95%, 결과물의 평가는 87~90점대를 유지한다. 단점은 교수의 에너지 소모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이렇게 오감을 완전하게 살린 나의 강좌가 바로 ‘영화 속의 인간심리’다. 어떻게 하면 인간의 심리를 재미있게 강의할까 고민하다 영화라는 소재를 가져오게 됐고, 수업 방식을 고민하다 영화보다 더 재미있고 감동적으로 스토리를 구성했다. 강의 내용에 따라 직접 주인공의 명대사를 통째 외워 연극 형식으로 표현하기도 하고 학생들 사이를 헤집으며 함께 애드리브를 치면서 소통하고, 중간에 쉬는 시간엔 강의 몰입도를 높이려 영화 OST를 동영상으로 틀어주며 청각적 자극도 높였다. 강의에서 미술의 향기와 오케스트라의 장엄함을 느끼게 했고, 인문학의 감성이 깨어나게 만들었다.



    교수님의 강의에서 웃음과 해학, 지혜와 절제, 지식과 정보, 감성과 치유를 동시에 만납니다!
    강의 시작은 알았는데 마치는 걸 잊었습니다!
    한 편의 감동적인 영화를 본 듯한 강의는 처음이었습니다!

    시험 친 후 답안지 맨 끄트머리에 깨알 같은 글씨로 달아준 아이들의 응원 댓글이다. 반응이 좋아지면서 내 강좌를 사이버 강의용으로 촬영하게 됐고, 최대한 절제된 그 강좌가 지난해엔 전국 대학의 1만2500여 사이버 개설 강좌 중 ‘1위’인 ‘2016년 KOCW(고등교육 교수학습 자료 공동활용 서비스) 인기 강의 어워드’까지 수상했다.



    ‘죽은 시인의 사회’ 키팅처럼

    그러나 내가 이러한 감성을 일깨우는 강의를 개발하게 된 데에 개인적인 슬픈 사연이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 누구한테도 이야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난 쌍둥이로 태어났다. 이란성 쌍둥이다. 그 아이가 지금까지 잘 자랐더라면 나보다 훨씬 잘생기고 똑똑했을 것이다. 어릴 적 나는 약했고 어눌했다. 그러나 동생은 튼튼했고 총명했다. 그런 동생을 삼신할매가 시기한 것 같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동생은 소아마비에 걸렸고 17세에 숨을 거두기 직전까지 대소변을 다른 사람이 다 받아내야 하는 생활을 했다. 저주받은 몸으로 태어났지만 한 번도 자신을 원망하지 않았다. 장애는 동생이 입었지만 형인 나를 늘 챙겼고 위로했다. 새벽에 소변을 뉘게 하는 내게 단 한 번도 고맙고 미안하다는 말을 빠뜨리지 않았던 아이다. 어설프지만 한 손으로 그림을 그렸고 한글을 썼으며 천자문을 뗐고 띄엄띄엄 영어까지 읽었다.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는데 말이다. 눈빛으로 소통할 수 있음을 난 그때 처음 알았다.

    김제동의 토크 개그 감각과 마틴 루터 킹 목사의 폭발적 연설을 함께 표현할 수 있을까. 혹은 DJ DOC의 노래 ‘머피의 법칙’과 임재범의 노래 ‘여러분’으로 동시에 전 세대를 공감시킬 수 있을까. 일반적 접근법으론 어림없다. 강의 방법을 바꿔야 한다.
    강의 좀 한다는 사람도 쉽게 성공할 수 없다는 3대 강의처가 있다. 아무리 강의를 잘해도 본전이니 가능한 한 강의를 하지 말라는 곳으로, 강의 평가가 짜기로 유명하다. 교장선생님 교육과정, 공무원 교육과정, 초등학생이 그 대상이다. 이들의 마음 문을 열고 박수와 환호성을 끌어내는 유일한 방법은 바로 ‘거꾸로 수업’인데, 이는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하는 수업이고 학생이 주인공이 되는 수업이기 때문이다. 첫사랑이 아름다운 건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하기 때문이다!

    2008년 미국 민주당 대통령후보 경선에서 버락 오바마가 힐러리 클린턴을 이긴 유일한 이유는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연설했기 때문이다. 철저한 논리로 무장한 이성적 연설을 한 힐러리의 머리는 따뜻한 감동으로 다가선 감성적인 오바마의 가슴을 결코 이길 수 없었다. 오바마의 연설을 들은 수많은 청중은 눈물까지 흘렸고 그 감동을 주변 사람들에게 전했다. 바이럴 마케팅의 확산이다. 마케팅이 고객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과학이라고 한다면, 세일즈는 고객의 마음을 훔치는 예술이다. 사람의 행동을 결정하는 것은 이성이 아니라 감성이다. 오바마가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건 이 때문이다. 감성이 풍부한 사람은 감동을 줄 수 있고, 감동을 줄 수 있는 사람은 사람들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을 지닌다.

    반응 없는 이들을 이끌어낼 수 있는 강력한 무기는 바로 작은 ‘감동’이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 속 키팅처럼 아무도 알아주지 않더라도 난 학생들과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교감하는 영원한 ‘시골 교수’로 남고 싶다. 그래서 오늘도 ‘조용한 강의혁명’을 꿈꾼다.





    김성삼
    ● 1965년 경남 하동 출생
    ● 現 대구한의대 상담심리학과 교수, TBN ‘힐링감성충전’ 코너 진행 중
    ● ‘2016년 KOCW 인기 강의 어워드’ 수상, 공무원교육원·교육공무원교육원·기업체 등 강의 요청 1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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