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6월호

특집 1 문재인 정부사용설명서

“民心은 절묘한 황금분할 그렸다”

5·9 대선 표심 분석 & 정국 전망

  • 김성곤|이데일리 정치경제부 기자 skzero@edaily.co.kr

    입력2017-05-18 15: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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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호남 구도 약화, 세대 대결 강화, 소신 투표 확립
    • 文 득표율 41.1%…‘협치하라’는 경고장
    • 지방선거 앞두고 정계개편 솔솔…정치적 격랑 예고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제19대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9년간의 이명박·박근혜 보수정권은 진보정권으로 역(易)정권교체가 됐다. 노무현 정부 말기 이른바 ‘폐족(廢族)’을 자처한 친노(친노무현) 세력은 기사회생하며 정치 무대 전면에 재등장했다. 역대 대선 사상 최대 표차(2위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와 557만951표차)로 문재인 대통령을 선택했지만,국민은 경고장도 함께 날렸다.

    19대 대선 최종 개표 결과는 절묘한 황금분할이다. 이번 대선은 역대 대선과 달리 유례없는 5자 구도로 치러졌고, 문 대통령은 후보 단일화나 선거 연대 없이 독자 집권했다. 과거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의 경우 호남과 진보가 똘똘 뭉쳤지만, DJP(김대중·김종필) 연대와 노무현·정몽준 후보 단일화를 통한 중도·보수 세력으로 외연 확장을 통해 집권한 바 있다. 

    그러나 득표율을 보면 마뜩잖다. ‘대세론’을 구가해온 만큼 문 대통령의 41.1% 득표는 기대에 못 미친다. 과거 노무현(48.9%)·이명박(48.7%)·박근혜(51.6%) 전 대통령은 과반 안팎 득표율을 기록했다. 1987년 대선 당시 1노3김(노태우·김영삼·김대중·김종필) 4자 구도에서 노태우 대통령의 36.6%보다는 높지만,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선된 1997년 대선(40.3%) 이후 최저치다. 따라서 문 대통령은 물론 원내 5당은 무엇인가를 도모해야 하는 절묘한 처지에 놓이게 됐다.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이번 대선은 지역구도 완화, 세대 대결 강화, 소수당 약진이란 특징을 보인다. 특히 ‘보수=영남’ ‘진보=호남’이라는 지역주의 투표 성향이 크게 흔들렸다. 여야 각 정당이 대선 이후 발 빠르게 움직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합종연횡 나타날 수도

    문재인 정부에서 대규모 정계개편이나 여야 정치권의 합종연횡이 나타날 수 있다. 특히 문 대통령이 여소야대 정치 지형에서 국정 운영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협치’나 ‘연정’ 카드를 선택할 경우, 정국은 또 한 번 격랑 속으로 빠져들 것으로 예상된다. 1년 앞으로 다가온 내년 6월 전국동시지방선거와 2020년으로 예정된 21대 총선을 앞두고 여야는 벌써부터 계산기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역대 대선의 가장 큰 특징은 지역주의 투표 성향이었다. 1987년 대선 당시 ‘1노 3김’ 4자 구도의 산물이었다. 대구·경북(TK), 부산·경남(PK), 충청, 호남에서 각각 노태우, 김영삼, 김종필, 김대중이 지역 맹주로 자리매김하면서 지역 몰표를 얻었기 때문이다. 이후 1990년 3당 합당을 거치면서 ‘영남=보수’ vs ‘호남=진보’라는 지역 ‘몰표 대결’ 양상이 더욱 뚜렷해졌다. 지역주의 타파를 내세운 노무현 대통령이 2002년 대선에서 승리하면서 잠시 완화될 듯하던 지역주의 투표 성향은 이후 철옹성이었다.

    문 대통령은 보수 심장부 TK 지역을 제외하고는 전국 거의 모든 지역에서 1위를 기록했다. 특히 서울에서 보수 성향이 가장 짙은 강남3구(강남·서초·송파)를 포함해 서울 25개 선거구를 휩쓸었다. 이전 대선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현상.

    민주당 계열 정당의 대선 승리 공식은 ‘호남 몰표, 수도권·충청 선전’이었다. 특히 1990년 3당 합당 이후 보수의 아성으로 자리매김한 영남지역은 난공불락이었다. 문 대통령도 2012년 18대 대선에서는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영남 모든 지역에서 1위 자리를 내주며 패배했다.

    그러나 이번 대선에선 문 대통령은 △부산(문 38.71 vs 홍 31.98) △울산(38.14 vs 27.46)에서 1위를 차지했고 △경남(36.73 vs 37.24)에서도 1위 홍준표 후보와 비슷한 득표율을 보였다. 보수 색채가 강한 강원(34.16 vs 29.97)에서도 선두를 달렸다.

    이는 문 대통령이 부산에서 오랜 기간 인권변호사로 활동했고, 지역구(부산 사상) 국회의원을 한 ‘부산 사람’이었기에 가능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물론 새누리당이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으로 분열되고, 홍준표 후보가 과거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만큼 강력한 지역 기반을 갖춘 후보가 아니라는 점에서 ‘일시적 선전’이라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지난해 20대 총선에서 부산에서만 5석을 차지하는 등 민주당이 영남권에서 국회의원 당선자를 낸 것부터가 지역구도 완화의 신호탄으로 받아들여진다.


    호남의 변화, 세대 대결

    호남의 변화도 주목할 만하다. 호남은 역대 대선에서 민주당 계열의 야당 후보에게 표를 몰아주어 90% 안팎의 득표율을 올리게 했다. 호남을 기반으로 한 유력 정치인이 동시에 출마해 표의 양분 현상이 일어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문 대통령은 호남에서 압승을 거뒀다. 광주(문 61.14 vs 안 30.08), 전남(59.87 vs 30.68), 전북(64.84 vs 23.76)에서 라이벌인 안철수 후보를 거의 더블스코어 차이로 제치면서 호남 지지를 재확인한 것. 전략적 투표를 한다는 호남의 투표 성향이 명확하게 드러난 것으로 해석된다. 특히 이는 20대 총선에서 호남 전체 지역구 28석 중 23석을 국민의당이 싹쓸이한 것과도 대비된다.
     
    국민의당 관계자는 “선거 막판 홍준표 후보의 지지율 상승이 이어지자 호남은 ‘확실한 정권교체’를 위해 문재인 후보에게 표를 주는 전략적 투표를 했다”며 “대선 이후 호남지역을 돌면 굉장히 미안해하며 ‘다음 번에는 꼭 지지하겠다’는 분이 많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번 대선이 보여준 또 하나의 특징은 세대 대결과 소신 투표 현상이 강화됐다는 점이다. 먼저, 세대별로는 진보·보수 후보에 대한 표 쏠림 현상이 극명했다. 이는 5월 9일 투표 종료 직후 방송 3사 출구조사에서도 드러났다.

    세대별로 문 대통령은 △20대(문 47.6 vs 홍 8.2) △30대(56.9 vs 8.6) △40대(52.4% vs 11.5)에서 홍 후보를 압도했다. 50대(36.9 vs 26.8)에서도 10%포인트 격차를 유지했다. 반면 60대(24.5 vs 45.8)와 70대 이상(22.3 vs 50.9)에서는 홍 후보가 더블스코어 격차로 문 대통령을 눌렀다.

    흥미로운 것은 2012년 대선 당시 ‘청춘 멘토’를 자처하며 젊은 층의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던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이번에는 젊은 층의 외면을 받았다는 점이다. 20대 17.9%, 30대 18.0%, 40대 22.2%로 홍 후보보다는 앞섰지만, 문 후보의 절반 수준에도 미치지 못했다.



    유승민 심상정 선전했지만…

    보수적 성향의 50대와 60대 이상은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황교안 국무총리→안희정 충남지사를 거쳐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를 지지했고, 대선 막판에는 홍 후보로 표 쏠림 현상이 일어났다. 

    소신 투표 성향도 이번 대선의 특징이다. 역대 대선에서 지지율 5% 안팎의 군소 후보는 단일화를 위해 사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꼴찌에게 갈채를”이라는 호평이 나올 정도로 유승민 심상정 두 후보는 이번 대선의 최대 수혜자라는 평가도 나온다.

    선거 초반 배신자 프레임에서 악전고투하던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는 220만여 표(6.76%) ‘정치적 우군’을 얻었고, 심상정 정의당 후보 역시 기대했던 10% 득표에는 못 미쳤지만, 진보정당 대선후보 사상 처음 200만 표 이상(득표율 6.17%, 201만7458표)을 얻어 선전했다. TV토론에서 선전한 것이 밑바탕이 됐다. 특히 유승민 후보는 바른정당 국회의원 13명의 집단탈당에 대한 역풍과 동정여론을 바탕으로 지지율이 상승했다. 그러나 여전히 낮은 지지율로 수권정당의 길은 멀기만 하다.

    대선에서 승리했지만, 여소야대 지형을 고려하면 민주당도 마냥 웃을 수만은 없다. 물론 가장 비상이 걸린 정당은 국민의당이다. 막판 대역전극을 자신했던 안철수 후보가 홍준표 후보에게 밀리며 3위로 내려앉았고, 믿었던 호남에서도 참패를 당하면서 당 존립이 흔들렸다. 자유한국당은 대통령 탄핵이라는 최악의 정치적 위기에서 대선을 치렀다는 점을 고려하면 선전했다고는 하지만 만족할 만한 성적표는 아니다. 

    문 대통령은 2020년 4월로 예정된 21대 총선까지 약 3년간 여소야대 상황에서 국정을 이끌어가야 한다. 문 대통령이 5월 10일 취임 후 첫 일정으로 야당을 ‘릴레이 방문’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야당의 협조 없이는 국무총리와 장관후보자 인사청문회부터 난항이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없이 곧바로 조각(組閣) 작업에 나서고 있다는 점에서 ‘청문회 낙마자’가 생기면 정권 초부터 국정운영에 타격을 받는다. 이후 정부조직 개편과 개혁과제 실천도 불투명해진다. 



    聯政은 선택, 協治는 필수

    따라서 문 대통령으로서는 연정은 선택이고, 협치는 필수다. 민주당 자력으로는 단 한 건의 법안 처리도 불가능하다. 대선 이후 민주당 일각에서 “‘형제당’이고, 같은 뿌리”라며 국민의당과 통합론이 고개를 든 것도 여소야대 국정 운영이 얼마나 험난한지를 잘 알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문 대통령이 이낙연 전남지사를 초대 국무총리 후보로 지명한 것 자체가 향후 정계개편을 고려한 밑그림을 그린 것이라는 설도 나온다.

    여의도 정치권을 중심으로 ‘유승민 경제부총리·심상정 노동부 장관’ 하마평이 끊이지 않는 것도 비슷한 이유다. 물론 향후 내각 구성 과정에서 민주당 외곽 인사를 어느 정도 기용하느냐에 따라 문 대통령의 통합정부 구상은 시험대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당은 ‘대략난감’이다. 새 정부와 적극적인 협력에 나설 경우 당 존립이 위태로울 수 있다. 흡수통합 우려다. 반면 지나친 견제에 나설 경우 호남에서 민심 이반이 가속화할 수 있다. 한국당 역시 대선 참패 후 당권투쟁으로 ‘시계(視界) 제로’ 상황에 빠졌다. 바른정당 역시 20석에 불과해 단 한 명만 이탈해도 원내교섭단체는 물 건너간다.



    지방선거·총선 ‘주판알 튕기기’

    이 때문에 여의도 정가에서는 ‘정계개편은 필연’이라는 소문이 나돈다. 합종연횡 구도에 따라 현 여야 5당 구도가 혁명적으로 재편될 수 있다. 크게 보면 △민주당+국민의당 통합을 통한 여소야대 극복 △한국당+바른정당 보수 대통합 △국민의당+바른정당 중도보수 대통합 시나리오다. 아울러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진보 정치인의 입각을 전제로 한 민주당+정의당의 ‘진보 소연정’도 거론된다.

    19대 대선을 치른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시점에서 정계개편이나 연정이 거론되는 것은 1년여 앞으로 다가온 지방선거 탓이 크다. 내년 지방선거 성적표에 따라 2020년 21대 총선은 물론 차기 대선 성적표까지 가늠해볼 수 있다. 더구나 내년 6월 지방선거에서는 대선 과정에서 여야가 논의한 개헌안이 공론화된다. 문 대통령은 “지방선거에서 개헌안을 국민투표에 부치겠다”면서 “4년 대통령 중임제로의 개헌”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따라서 권력구조 개편 필수사항으로 포함될 개헌안이 어떤 내용으로 통과되느냐에 따라 여야의 정치적 운명도 엇갈릴 수밖에 없다. 

    민주당도 더 이상 대선 승리에 환호할 상황이 아니다. 경제·안보 쌍끌이 위기에서 어느 정도 국정 운영의 성과가 필수적이다. 대선 과정에서 야권이 경고한 친문(친문재인) 패권주의의 폐해가 현실화하고, 여소야대 지형에서 정국 경색이 지속될 경우 상황은 어려워진다. 특히 국무위원 인사청문회와 정부조직 개편 과정에서 야권의 반대로 ‘매운맛’을 볼 수 있다. 국민이 5·9 대선에서 각 대선 후보에게 ‘황금분할 득표율’을 안긴 이유를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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