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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채근의 古傳幻談 - 예로부터 전해진 기이한 이야기

비밀서가

  • 윤채근|단국대 교수

비밀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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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아홉 기억 속 조신선

조신선을 만나보기로 결심한 1835년 늦봄 어느 초저녁, 강가를 산책하던 정약용은 벼룩나물 사이에 핀 노란 씀바귀꽃을 꺾다가 갑자기 조신선과의 마지막 만남을 기억해냈다. 처음에 그는 너무 통쾌해 콧노래를 흥얼댔다. 그러다 기억이 차츰 안정되며 제자리를 잡아갔고 자신이 왜 그토록 해당 기억을 떠올릴 수 없었는지 자명해졌다. 그건 그러니까 경신년, 한때 천주교도였던 그에게 익숙한 서력(西曆)으로는 1800년이었다. 정조께서 승하하신 해였다.

정조께서 갑자기 돌아가시고 넉 달 지난 가경 경신년 가을밤, 정약용은 남몰래 돈의문 밖 조신선의 책방을 찾았다. 종이이불로 몸을 감싸고 서고 귀퉁이 좁은 침상에 누워 있던 조신선은 머리맡 등잔대 위 호롱에 불을 켜고 일어나 앉아 갑자기 들이닥친 정약용을 멀뚱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길고 갸름한 얼굴에 관운장처럼 검붉고 풍성한 수염을 한 그는 뭔가 위로의 말을 건네고 싶은 듯했다. 정약용은 상대를 바라보지 않은 채 짧게 물었다.

“그 책, 다시 돌려주실 수 있소?”
부탁받은 책명을 확인한 조신선은 무릎에 두 팔을 깍지 끼고 한참을 망설였다. 푸른 기운이 감도는 갈색 눈빛이 정약용을 한차례 쓸고 지나갔다. 서고 뒤편으로 걸어간 조신선이 정약용에게 따라오라는 손짓을 했다. 서고 뒤엔 주의 깊게 살피지 않으면 눈에 띄지 않을 작은 서가 하나가 놓여 있었다. 서가를 옆으로 밀자 직사각형 통로가 나타났다. 큰 덩치를 간신히 입구로 밀어 넣은 조신선은 이내 어둠 속으로 빨려들 듯 사라졌다. 잠시 후 다시 나타난 그의 손엔 라틴어 성서가 들려 있었다.

씀바귀꽃이 있는 현실로 되돌아온 정약용은 저물어가는 남한강을 바라보며 탄식했다. 기억은 그 지점에서 더 나아가지 않았다. 경신년 밤의 기억은 철저히 봉인된 것이었다. 아니, 전남 강진에서 겪은 고되고 파란만장한 유배 생활 속에 절로 잊혔는지도 몰랐다. 정조의 죽음은 그의 젊음과 활기를 한꺼번에 앗아갔고 노년의 그는 아주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다음 날 새벽, 정약용은 한강 양화진으로 향하는 여객선에 올랐다. 양화진에서 돈의문 밖 조신선이 운영하는 책사(冊肆)에 이를 동안 그는 정조와 관련된 기억으로 말미암아 우울했고 그냥 돌아가버릴까 수없이 망설였다. 그러다 그는 마침내 목표 지점에 도착했다. 책사는 규모가 조금 확장됐고 예전엔 없던 점원이 보였다. 그는 내실로 안내되어 조신선을 기다렸다.



발음이 약간 어눌해져 있었지만 조신선은 먼 옛날 정약용과 처음 마주쳤을 때의 그 모습 그대로였다. 하지만 뭔가 이상했다. 품위 있고 예의 바른 그의 행동은 옛 고객을 대하는 태도와는 거리가 멀었다. 조신선의 표정 속엔 추억이 없었다. 순간 상대가 가짜일지 모른다는 불안이 정약용에게 엄습했다. 정약용이 물었다.

“경신년 마지막 만난 날을 기억하시오?”
조신선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약용이 다시 물었다.
“그럼 그 책도 기억나시오? 나전어(羅甸語)로 쓰인.”
대답 대신 조신선은 한참 동안 정약용을 쏘아보고만 있었다. 깊게 한숨을 몰아쉰 그가 붉은 수염을 쓸며 나지막이 속삭였다.
“기억을 못하고 있는 건 당신 같군요. 따라오십시오.”



일흔넷에 다시 만난 조신선

조신선은 35년 전 경신년 가을밤에 그랬듯이 정약용을 데리고 서고 뒤편 작은 서가 앞으로 다가갔다. 서가를 옆으로 밀자 직사각형 통로가 나타났다. 오래 고여 있던 둔탁한 공기가 가늘게 새어 나왔다. 정약용은 전율했다. 그는 자신이 감쪽같이 파묻어둔 기억의 유물들을 마주하고 있었다. 그 중요한 날의 기억을 깡그리 청산했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두 사람은 조심스레 직사각형 통로 안으로 들어섰다.

조신선이 시렁 위 등잔에 불을 붙이자 제법 큰 밀실의 모습이 희미하게 드러났다. 먼저 눈에 띈 건 벽에 만들어진 정교한 감실(龕室)들이었다. 감실마다 관이 안치돼 있었다. 그중 하나 앞으로 다가선 조신선이 정약용을 돌아보며 말했다.

“그날 당신에게 성서를 돌려준 건 이분이었습니다.”

떨리는 손으로 관을 쓰다듬으며 정약용은 눈을 감았다. 경신년 가을밤, 그는 천주교도이기를 포기하기로, 배교하기로 결심했더랬다. 정조의 죽음과 더불어 그의 삶은 파국에 직면해 있었고 빠른 배교만이 그나마 살길이었다. 배교의 그날 밤, 그는 라틴어 성서를 되찾으러 조신선을 방문했던 것이다. 현재의 조신선이 다시 말했다.

“당신은 그날 이곳에 들어왔었습니다. 이분과 제가 함께 있었고. 기억하십니까?”

그랬다. 그날 정약용은 두 명의 조신선과 마주했었다. 아니, 관 속에 누워 있는 여러 조신선과 마주했었다는 게 더 정확하리라. 그들은 30년 주기로 파견된 예수회 선교사들이었다. 전임과 신임이 오랜 시간 공존하도록 설계된 엄격한 현지화 과정을 거친 그들은 붉은 수염 속에 정체를 감추고 한 인물로 살아왔던 것이다. 정약용이 말했다.

“기억하오. 이분이 했던 말도 기억하오. 강인한 기억은 쉬운 망각 때문에 가능하다.”

기억의 천재였던 정약용은 동시에 망각의 대가이기도 했다. 그건 초인적인 암기력과 외국어 학습 능력을 갖춰야 했던 선교사들의 특징이기도 했다. 선교사들은 예수회에 보고서를 작성할 때를 제외하면 과거를 잊은 완벽한 조선인으로 살았으며 외모조차 조선인을 닮아갔다. 조신선이 물었다.

“이제 와서 왜 오신 겁니까? 그 성서는 어떻게 하셨습니까?”

정약용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가 도려냈다 되찾은 과거는 아직 완전하지 않았고 내부의 무언가가 완강히 기억을 거부했기 때문이었다. 한참 뒤 조신선과 작별하고 책사를 나설 때 젊은 점원이 다가와 그에게 지팡이를 건넸다. 정약용은 무심결에 라틴어로 감사를 표했고 놀란 표정의 상대도 라틴어로 대답했다. 정약용은 거의 고개를 들지 않던 점원의 얼굴을 그제야 주의 깊게 바라봤다. 조선의 바람에 풍화되어 밋밋해진 젊은 서양인의 얼굴에 미래의 조신선이 숨어 있었다.

저물녘, 양화진 인근 객점에 여장을 푼 정약용은 계속 라틴어로 생각하려 노력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는 라틴어로 말하고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마침내 기억의 폭풍이 그를 휘몰아 열다섯 살 때의 창덕궁 담장 아래로 데려갔다. 처음 본 조신선의 외모는 특이했지만 그렇다고 서양인 같지도 않았다. 소년 정약용에게 흥미로웠던 건 상대가 구사한 이질적인 조선어 억양이었다. 그런 섬세한 감각은 언어의 천재에게만 허락된 재능이었고, 그는 조신선의 정체를 즉시 알아챘다. 조신선은 서양어에 엄청난 흥미를 보인 어린 천재에게 헤어지기 직전 자신의 라틴어 성서를 선물했다. 정약용의 기억은 이 지점에서 다시 좌초됐다.

다음 날 마재로 돌아가는 여객선 위에서 졸고 있던 정약용은 자신이 왜 이 시점에서야 조신선을 만나려 했었는지 비로소 깨달았다. 그건 ‘아언각비’ 때문이었다. 조선어 어휘를 정리하던 그의 무의식 속에 낯선 라틴어 어휘를 배우던 기억이 슬쩍 끼어들었고 그게 망각의 늪에 가라앉아 있던 조신선을 불러낸 것이다. 그는 혼신을 다해 다음 단계로 넘어가고자 했다. 어릴 때 받은 라틴어 성서가 어째서 다시 조신선 손에 있었던 걸까? 그 성서를 왜 다시 돌려받으려 했을까? 정조께서 승하하신 사건과 무슨 연관이 있었던가?

마재로 돌아온 정약용은 여유당으로 곧장 들어가지 못하고 강가를 이리저리 거닐었다. 그러다 그는 또다시 씀바귀꽃을 봤다. ‘아언각비’가 실마리였다면 씀바귀꽃에도 무슨 의미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는 석양을 마주하고 사념에 잠겼다가 마침내 가장 밑바닥에 방치되어 있던 기억을 떠올렸고 천천히 강변에 주저앉아 통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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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채근|단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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