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7월호

핫 이슈 | 온 국민의 관심 일자리 정책

저성장·양극화·내수침체 한꺼번에 잡는다

고용 없는 성장 바꿔야

  • 김용기|아주대 경영학과 교수 seriykim@ajou.ac.kr

    입력2017-06-20 15:3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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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륜구동(소득주도·일자리·혁신·동반) 경제성장
    • 11조2000억 원 규모 추경안
    • 수출ㆍ제조 대기업 주도 경제성장 모델 벗어나야
    • 중소기업 임금지급 능력 높이는 법
    경제정책의 큰 변화가 마침내 시작되는가. 저성장 기조에 양극화로 몸살을 앓고 있는 한국 경제를 바꾸려는 새로운 시도가 선을 보이고 있다. 소득주도 경제성장 모델이 현실에 등장했다. 소득주도, 일자리주도, 혁신 및 동반성장 등 이른 바 ‘4륜구동성장’ 모델이다. 가계소득 확대를 위해 일자리 창출을 중심으로 혁신성장, 대중소기업의 동반관계를 구축한다는 구체적인 방향도 제시됐다.

    새 정부는 6월 7일 일자리를 중심으로 가계소득을 확대하는 내용을 담은 11조2000억 원 규모의 추경안을 제시했다. 인프라 투자, 대기업 지원 중심의 종래 예산과는 다른 직접적인 일자리 창출과 일자리 기반 조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일부 내용은 기존의 예산편성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고 포장만 살짝 바꿨다는 비판도 받고 있지만, 추경 예산이 일자리 창출에 방점을 놓고 가계소득 확대를 지향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올가을 제출될 2018년도 본예산을 통해 새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을 위한 재정의 역할이 분명히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경제정책의 변화는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적 필요성에서 비롯된다. 기존 정책으로 현실이 지속되기 어려워졌을 때 새로운 정책은 기지개를 켠다. 새 정책이 책상을 떠나 현실 정책으로 등장하려면 권력의 변화와 같은 정치적 변화가 뒷받침돼야 한다. 새로운 정책이 현실 정책으로 등장하더라도 그것이 철저하게 실행될 수 있을지는 낙관하기 어렵다. 경제정책이 지닌 분배효과 때문에 기존 정책 수혜자의 강한 저항을 돌파해야 하기 때문이다. 어떤 경제정책도 그 정책에 따라 이익을 보는 자와 손해를 보는 자로 구분된다. 객관적인 것 같아 보이는 정책이라도 가치중립적이지 않다.



    이익 보는 자와 손해 보는 자

    그렇게 해서 실행된 정책이 결국 효과를 볼 수 있을지는 더더욱 가늠하기 어렵다. 상황적 필요성 → 정치권력의 변화 → 경제정책의 변화 → 새로운 경제정책의 실행 → 정책의 성공이라는 긴 여정에서 일자리가 주도하는 소득주도 경제성장 모델은 이제 겨우 첫걸음을 뗐다고 할 것이다.



    지난 50년간 한국경제는 수출·제조 대기업 주도 경제성장 모델로 꾸려져왔다. 이 모델이 지닌 문제점은 다양한 각도에서 지적됐다. 서비스산업의 육성이 필요하다, 내수 중심 모델로 나가야 한다는 등의 의견이 제기된 지 20년이 가까워온다.

    수출·제조 대기업 주도 경제성장 모델에 대한 문제 제기는 2000년대 초반부터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그 전까지 이 모델은 나름대로 작동했다. 경제성장에 준해서 기업의 영업이익도 증가했고, 비슷한 수준으로 임금소득 또한 늘어났다. 경제성장의 과실이 비교적 고르게 확산된 것이다. 하지만 이제 기존의 모델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


    가계소득 줄고, 기업소득 늘어

    한국의 GDP 대비 가계소득 비중은 1995년 69.6%에서 2013년 64.3%로 5.3%포인트나 감소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2016년 3월에 발간한 ‘경제정책개혁: 2016년 경제성장보고서’에 나타난 내용이다. 이러한 감소폭은 OECD 국가 중 오스트리아(5.8%포인트 감소)에 이어 두 번째다. 오스트리아의 경우 큰 폭의 감소에도 불구하고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소득 비중이 73.6%로 여전히 높다. 이 점에서 한국의 가계소득 상황은 가장 심각하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의 가계소득 비중이 급격하게 하락한 반면 OECD 30개 국가의 동 기간(1995∼2013년) GDP 대비 가계소득 비중은 거의 변화하지 않았다.

    GDP가 외국인과 내국인의 국적을 가리지 않고 국내에서 일어난 총생산을 말하는 것이라면, 국민총소득(GNI)은 한국 국적을 가진 국내 및 해외 거주자 모두의 소득을 의미한다. 국내 거주 외국인 국적자의 소득은 제외되고, 해외 거주 한국 국적 보유자의 소득은 포함된다. GNI 대비 가계소득과 기업소득 비중은 GDP 대비를 기준으로 삼는 것에 비해 훨씬 가파르게 줄거나 증가했다.

    한국은행의 2013년 조사보고서 ‘가계소득 현황 및 시사점’(작성자: 김영태, 박진호)에 따르면 한국은 유별나다. 1995년 대비 2011년의 GNI 중 가계소득 비중이 70.6%에서 61.6%로 8.9%포인트나 하락했다. 미국, 독일 등 OECD 24개국의 평균 하락률은 4.1%포인트(73 → 69.0%)에 불과하다( 참조). 같은 기간 한국의 GNI 중 기업소득 비중은 7.5%포인트(16.6 → 24.1%) 상승해, OECD 평균 상승폭인 2.0%포인트(16.1 → 18.1%)를 크게 웃돈다( 참조). GNI 대비 한국 가계소득 비중 61.6%는 비교 대상 OECD 국가 중 최하위이며, GNI 대비 한국 기업소득 비중 24.1%는 일본의 24.5%에 이어 OECD 최고수준이다. 프랑스(12.2%)나 독일(13.2%)에 비해 한국 기업소득 비중은 월등히 높다. 기업 천국인 미국에서조차 기업의 GNI 대비 기업소득 비중은 16.7%에 불과하다.



    인건비 절감

    GDP 대비 기업소득 비중과 가계소득 비중의 격차가 확대된 이유는 임금비용이 이전에 비해 줄어들었고, 기업의 영업이익이 커졌음에도 불구하고 그 성과가 가계로 환류되지 않기 때문이다. 일본 제조 대기업의 매출액 대비 인건비 비중은 12.3%(2014년)지만 한국 대기업은 6.5%(2012년)에 불과하다. 독일은 무려 14.3%(2012년)에 달한다. 1998년 당시 9.8%였던 한국 제조 대기업의 매출액 대비 인건비 비중은 2012년 6.5%까지 지속적으로 하락했다.

    한국 기업이 제조과정에서 인건비를 절감하는 엄청난 혁신을 이룬 것일까. 그렇지 않다. 총 제조비용 대비 외주가공비 비중이 1998년 3.3%에서 2014년 5.6%로 70%나 늘어났다.

    한국의 대기업은 외주 확대를 통해 간접고용을 늘리는 방식으로 고용의 방식을 바꿨고 그 과정에서 실질적인 인건비 비중을 낮춘 것이다. 그 결과가 노동시장 내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격차,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격차다. 인건비의 절감과 노동시장 내의 격차는 결국 외주화를 통해 발생했고, 줄어든 임금비용만큼 기업의 영업이익이 늘어날 수 있었다.  

    또한, 선진국의 경우 기업 영업이익이 확대되면, 그 성과가 결국은 가계로 귀착된다. 투자자로서 기업의 주주인 가계가 기업가치 상승에 따른 주가 상승 및 배당금 수익의 수혜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은 다르다. 수출제조 대기업의 경우 주식의 과반수가 외국인 투자자의 소유이기 때문이다.

    영업이익은 기업의 영업활동에 의해 발생한 이익으로 매출총액에서 매출원가와 판매비 및 일반관리비를 제외한 것을 말한다. 일반관리비에는 임금과 세금(법인세는 제외)이 포함되어 있다. 임금 지불 이후 영업이익은 법인세 등이 부과된 이후 기업의 당기순이익으로 잡혀 사내유보를 통해 일부는 투자와 배당 등으로 사용된다.

    결국 가계소득 비중이 낮아진 이유는 노동시장에서 임금의 비중이 줄어들었고, 재분배 과정에서 법인세 비중이 이전에 비해 낮아졌으며, 기업가치 상승에 따른 혜택이 국내의 가계로 돌아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1990년대 이후 노동시장, 조세체계, 자본시장 모두에서 친(親)기업 경제정책이 강화됐기 때문이다. 노동시장의 유연성 강화, 법인세 인하, 배당금 확대정책 등이 그것이다.


    질 낮은 고용으로 성장

    GDP 중 가계소득의 비중이 줄어들었을 뿐 아니라 가계 간 격차도 더욱 확대됐다. 소득 하위 1분위(하위 20%)의 전체 소득대비 비중은 낮아졌고 소득 5분위(상위 20%)의 비중은 높아졌다.

    기업소득과 가계소득의 격차 확대, 가계 내에서의 양극화 확대는 결국 소비성향이 낮은 고소득층의 GDP 내부 소득 비중을 높이게 됨에 따라 내수시장에서 유효수요가 감소하게 되었다. 소비를 할 수 없으니 GDP 대비 내수 규모는 줄어들고 내수시장에 의존하는 자영업이나 중소기업의 사정은 더욱 어렵게 된 것이다. 수출·제조 대기업 주도 경제성장 모델은 이렇게 더 이상 작동하지 않고 있다.

    일자리 창출이 이끄는 소득주도 성장모델은 이러한 상황 변화를 배경으로 새롭게 선출된 정치권력이 새로운 경제 비전으로 제시함으로써 등장하게 된 것이다.

    새로운 모델의 핵심적 위상을 갖고 있는 일자리 정책이 지향하는 것은 가계소득의 확대다. ‘고용 없는 성장’ ‘질 낮은 고용만을 수반한 성장’의 결과, 끊어진 기업소득의 가계소득 환류 흐름을 재개하려 하는 것이다.

    공공부문 81만 개 일자리(소방, 치안 등 공무원 일자리 17만4000개, 돌봄 및 의료 등 공공사회서비스 일자리 34만 개, 공공기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30만 개)는 과소 공급된 치안, 소방, 사회복지전달체계 등의 기초적인 공공서비스의 공급을 늘리고 보육과 요양을 포함한 사회서비스 공급자 중 공공부문의 비중을 높이고자 하는 정책이다. 민간 스스로가 필요한 사회서비스를 직접 구매하고 비용을 지불하기보다는 세금이나 사회보험금 납부를 통해 정부가 가계의 총량적 부담을 덜면서도 질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하는 것이다. 돌봄 의료 등 사회서비스는 공공이 역할을 하는 게 민간에 비해 효율성도 높다.



    최저임금 1만 원의 의미

    공공기관에 간접고용된 근로자의 직접고용 전환은 근로자의 처우와 고용안정성을 제고해 소비를 진작시킬 것이다. 공채를 통해 어렵게 공공기관에 취업한 기존 공공기관 정규직과 민간에 위탁되어 간접고용 상태로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근로자 간의 처우를 동일하게 가져가자는 것은 아니다. 간접고용된 근로자의 경우 공공기관의 추가적 비용지출 없이도 고용의 안정과 처우개선을 도모할 수 있다. 경직된 공공기관 정원과 총액인건비 제도를 신축적으로 운영하는 것만으로 달성 가능하다. 공공기관의 자회사 설립을 통해 자회사에서 직접고용하는 방식을 채택하면 민간 위탁 과정에서 중간에 지급된 인건비의 10∼20%에 해당하는 관리비와 이윤을 근로자에게 돌아가게 할 수 있다. 일부 공공기관 정규직의 과도한 임금과 복지비용의 증가를 억제하는 일은 함께 추진될 것이다.

    근로시간 단축을 통한 50만 개의 일자리 창출은 근로기회 확대를 통한 성장동력의 제고와 함께 가계소득 간 격차를 줄이는 효과가 있다. 소수의 상용 근로자는 과도한 노동시간에 시달리고, 다수의 잠재적 취업자는 일할 기회조차 갖지 못한 현상을 노사정 간 사회적 타협을 통해 일자리를 나누는 방식으로 타개하자는 것이다.

    한국 노동시장 취업자 2657만7000명(2017년 4월 기준) 중 임금근로자는 1977만9000명이고 나머지 중 565만6000명은 자영업자, 그리고 114만2000명은 무급가족종사자다. 임금근로자를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고용계약기간 1년 이상의 상용근로자는 1326만8000명에 불과하다. 임시직 498만6000명, 일용직 152만6000명이 임금근로자의 3분의 1을 차지한다. 공공부문 일자리와 근로시간 단축을 통해 확보되는 일자리는 임금근로자의 지위를 향상시킬 것이다. 상용근로자의 규모가 늘어날 것이고 그 외 근로 형태에 있는 근로자의 비중은 다소 줄어들 것으로 기대한다.


    불평등관계 개선

    최저임금 시간당 1만 원은 일을 하면 최소한의 생활이 보장되도록 하는 제도다. 주 40시간 근로기준으로 주휴수당을 포함하면 월 209만 원의 최소한 수입이 보장된다. 최저시급 1만 원 도입은 일자리 구하기를 포기한 비경제활동인구 중 다수의 근로의욕을 고취해 노동시장으로 끌어들이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경제활동인구가 늘어남에 따라 성장률의 제고도 꾀할 수 있다.

    일자리 정책과 함께 시행될 동반성장 정책도 중요하다. 대·중소기업 간 관계 및 프랜차이즈 본사와 가맹점 간 불평등 관계의 개선을 통해 중소기업의 임금지급 능력이 향상될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상황으론 상용근로자 3명을 추가 채용할 경우 3번째 근로자의 임금을 연 2000만 원 한도로 3년까지 지원하는 2+1 정책을 편다고 할지라도 많은 중소기업의 경우 신규고용을 하기 어렵다.

    동반성장을 통해 중소기업의 매출 이익이 늘어야만 고용창출과 함께 최저임금을 지급할 수 있는 능력이 확보될 수 있을 것이다. 동반성장 정책은 일자리 주도, 소득주도 성장정책과 함께 새 정부의 ‘4륜구동 경제성장’ 정책의 세 번째 축이다. 그리고 마지막 한 축은 혁신성장이다.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하고 신성장동력을 찾는 것은 직접 일자리를 창출할 뿐 아니라 일자리 창출 동력을 확보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새 정부가 출범한 지 이제 막 한 달이 지나가고 있다. 저성장과 양극화, 내수침체로 신음하는 한국 경제가 새 정부의 4륜구동성장 정책으로 회복할 수 있을까? 일자리 정책을 중심에 놓고 정부 정책 운영의 틀을 근본적으로 바꿔가려는 문재인 정부의 새롭고 긴 여정이 이제 막 시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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