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7월호

즉문즉답

“지도자는 ‘창끝’으로 현상 찔러야”

남유진 구미시장

  • 배수강 기자|bsk@donga.com

    입력2017-06-20 16:2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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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D 역량 강화’로 불황 극복 돌파구 마련
    • “이젠 탄소섬유로 대한민국 먹여 살린다”
    • 1000만 그루 나무 심기, 전기 버스…‘그린시티’ 선정
    • “賢者는 아지랑이 한줄기에 봄이 온 걸 알아야”
    "이중환의 택리지를 보면 조선인재 반재영남, 영남인재 반재선산(朝鮮人才 半在嶺南, 嶺南人才 半在善山)’이라고 쓰여 있어요. 그만큼 인재가 많은 곳이 구미죠. 야은 길재, 점필재 김종직 선생은 성리학의 대가이고, 사육신(死六臣) 하위지, 개화기 의병장 허위 선생은 우국충절 인재였죠. 어디 그뿐인가요. 아도화상이 세운 신라 최초의 사찰 ‘도리사’는 신라에서 불교가 처음 전해진 곳이죠.근대 이후에는 우리나라 산업화를 선도한 곳이죠. 박정희 전 대통령 고향이기도 하고….”

    6월 2일 구미시청에서 만난 남유진 시장은 고향 자랑을 해보라는 기자의 말에 “밤을 새워도 다 못 한다”며 환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의 자랑 몇 소절에서 구미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이 묻어났다.

    경북 구미는 37.6㎢(1100만 평)의 내륙 최대 국가산업단지가 있는 산업도시다. 3200여 기업과 11만 명의 근로자가 대한민국의 먹을거리를 만들어낸다. 이들은 1970~80년대는 섬유·전자, 1990년대는 전자·가전, 2000년대는 휴대전화·디스플레이, 2010년 들어선 국방·탄소섬유·자동차 부품·전자의료기기 등 시대에 따라 업종을 바꿔가며 산업화를 이끌었다. 동시에 구미의 덩치도 커졌다. 1978년 선산군 구미읍과 칠곡군 인동면이 합쳐져 구미시로 승격했고, 1995년에는 구미시와 선산군이 합쳐져 도농복합형 통합시가 됐다. 인구 43만 명, 평균연령 36세(2016 기준)의 젊고 역동적인 도시 구미는 병풍처럼 둘러선 금오산(해발 976m)과 도시 정중앙을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이 산업단지와 어우러지며 자연과 인간의 공존법을 잘 보여준다. 시청 본관 입구에 들어서니 ‘2016 대한민국 그린시티 구미’ 현판이 눈에 띄었다.



    잿빛 산업도시가 녹색환경도시로

    산업도시 구미가 ‘그린시티’로 선정됐다니, 마치 씨름 선수가 ‘올해의 요가 강사상’을 받은 느낌인데요.
    “다들 그렇게 말씀하세요(웃음). 구미시 하면 회색도시 이미지가 강해서 그런지, 구미에 오신 분들은 ‘구미가 이렇게 푸른 도시인 줄 몰랐다’고 해요. 금오산이 둘러싸고 있고, 폭 1km가 넘는 낙동강이 도심을 가로지르는 데다 곳곳에 나무가 우거진 숲이 많죠. 폭 1km 큰 강이 흐르는 도시는 서울(한강)과 구미뿐이죠. 외국에도 이런 곳이 거의 없어요. 괜히 그린시티 상을 탔겠어요?”

    말씀대로 타 지역 사람들에게 구미는 회색도시로 기억됩니다. 산업공단이 있는 데다 낙동강 페놀유출 사고(1991), 불산 유출사고(2012) 등의 영향 탓이 크죠.
    “맞는 말입니다. 1969년 조성된 국가산업단지가 있어 반세기 이상 산업도시로 성장하다 보니 굴뚝, 회색, 연기, 오염 같은 부정적인 이미지가 많았어요. 사람이 아프면 치료를 하듯, 구미의 이미지부터 치료해야 했어요.”

    ‘이미지 치료’라면….
    “사마천 사기(史記) ‘회식열전’에는 ‘1년을 대비하려면 곡식을 심고, 10년을 대비하려면 나무를 심고, 100년을 대비하려면 덕을 베풀어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구미의 미래를 위해 나무를 심었습니다. 2006년 구미시장에 취임하고 나서부터 ‘1000만 그루 나무심기 운동’을 벌여 딱 10년간 1000만 그루를 심었습니다. 금오지올레길, 생태공원, 산책길, 공원, 철로·고속도로변 가릴 것 없이 심었죠. 2015년 11월 4일에 목표 달성 행사를 했는데, 전체 1021만 그루를 심었더군요.”

    지방자치단체 최초로 ‘탄소제로도시’를 선포했던데요, 기업들의 반발은 없었나요?
    “맞아요. 2010년 4월에 전국 지자체 중 처음으로 ‘탄소제로도시’를 선포했죠. 사실, 기후변화 문제는 국가와 지역경제의 미래를 결정짓는 큰 문제입니다. 구미 같은 산업도시가 이 문제에 대해 선도적으로 대응하는 게 시와 기업이 함께 사는 길이라고 믿었어요. 시민과 기업인들에게도 많이 설명하고 설득했죠. 탄소제로도시 선포 이후 환경부와 경북도 등과 함께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고요.”

    행시 22회인 남 시장은 구미 부시장을 거쳐 2006년 민선 4대 구미시장이 된 뒤 내리 3선(選)을 했다. 10년 장기과제를 마무리하는 등 지속적으로 시책을 펼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탄소제로도시 선포 이후 구미시는 2020년까지 ‘BAU(온실가스 배출 전망) 대비 35% 절감’이라는 구체적인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세우고 다양한 사업을 추진 중이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이 세계 최초로 개발한 무선충전 전기버스를 처음 운행(4대)하는 등 친환경 대중교통 인프라를 구축하고, 전 시민 자전거보험 가입, 공용자전거 대여 등 친환경 교통수단인 자전거 이용을 활성화했다. 2014년에는 기후변화의 위험성을 체험하는 탄소제로교육관을 세워 환경보호의 중요성을 알리고 있다. 2016년 말 환경부로부터 구미가 ‘그린시티’로 선정된 것은 이러한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린시티는 지자체의 자발적인 환경관리 역량을 높이기 위해 2004부터 격년제로 선정하는 환경부의 권위 있는 상으로, 구미시는 최종 평가에서 전국 1위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잿빛 산업도시가 녹색환경도시로 공인받은 셈이다. 남 시장의 부연은 이렇다.

    “시민이 건강해지고, 구미 전체가 아름다워지고, 친환경으로 도시 전체가 바뀌면 결국 구미시의 격이 달라진다. 멀리 보면 구미공단에서 생산된 제품이 디스카운트가 아닌 프리미엄 대접을 받는 것이고, 구민시민의 자부심도 커진다.”


    ‘CFK-Valley Korea’ 설립

    CFK-Valley는 뭔가요?
    “탄소섬유 강화 플라스틱을 연구·생산하는 글로벌 기업 100개사와 정부기관, 기업, 대학 등이 참여하는 독일 북부 최대 탄소성형 클러스터인데, ‘CFK-Valley 2017 컨벤션’이 열렸어요. 탄소산업 관련 세계 21개 국가, 39개 기업 관계자가 참여한 전시회인데, 구미시는 유일한 지자체 회원사로 참여해 ‘구미관’을 운영했어요. 이곳에서 투자유치 설명회와 비즈니스 미팅을 했고, 오는 9월 ‘CFK-Valley Korea’를 구미에 설치하기로 합의했습니다. 글로별 경제 네트워크를 구축하면서 동시에 미래 성장동력인 구미의 탄소산업에 ‘독일 엔진’을 단 거죠. 한국지사는 중국 상하이와 베이징, 산둥반도 등 8억 인구의 도시를 담당하는 지사 기능을 합니다. 큰 성과죠.”

    남 시장의 말처럼, ‘CFK-Valley Korea’ 설립으로 독일의 탄소산업 관련 기술 이전과 각종 R&D 추진 등이 한결 쉬워질 것으로 기대된다. 아시아 탄소 허브를 지향하는 구미시로서는 탄소산업 성장의 중요한 발판을 마련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외풍에 흔들리지 않는 산업구조, 즉 사업다각화는 국가적 고민이기도 해요.
    “맞아요. 힘들지만 지도자라면 준비해야죠. 현자(賢者)는 먼 산에 아지랑이 한줄기가 아른거려도 봄이 왔음을 압니다. 언뜻 스쳐가는 봄바람에도 봄이 왔음을 알아야죠. 우리도 한동안 고심하다가 ‘연구개발(R&D) 역량 강화’로 돌파구를 찾았습니다. 이 전략이 주효했죠. 제조업 중심의 구미공단은 R&D 역량이 부족한 게 큰 약점이었어요. 그래서 옛 금오공대 자리에 3000억 원 국책사업인 ‘금오테크노밸리’를 구축해 모바일융합기술센터, 종합비즈니스센터, 3D디스플레이 실용화지원센터 등을 갖췄죠. 구미전자정보기술원, 국방벤처센터 등과 함께 R&D 능력을 키웠어요. 이를 활용해 업종전환과 새로운 산업을 끌어들인 거죠. 기술이 있고, 이를 지원하다 보니 2011년 1곳이던 전자의료기기 업체는 지난해 30곳으로 늘었고, 2008년 179개였던 기업부설연구소는 401개로 늘었습니다. 자동차 부품 생산업체수도 200여 곳으로 늘었고, 30개 중소·벤처기업은 국방산업에 진출했어요. 이런 연구소의 기술력을 기반으로 신제품을 내놓으면서 경기불황을 극복한 거죠.”

    남 시장은 볼펜을 꺼내더니 A4 용지 위에 영어로 ‘스피어 헤드(spear head)’라고 썼다.

    “산업 다각화 같은 얘기를 하면 기업인들은 기업 운영하기 바쁘다고 해요. 누군가가 선도적으로 ‘스피어 헤드’, 창끝 역할을 해줘야 해요. 예리한 창끝으로 현상(막힌 곳)을 찔러 돌파할 수 있는 해결능력이 필요하죠. 말을 물가로 데려가도 억지로 먹일 순 없잖아요? 물을 마시는 말은 목마른 말입니다. 간절함이죠. 뉴턴이나 퀴리 부인은 그러한 간절함이 있어 만유인력과 최초의 방사성 원소(폴로늄, 라듐)을 발견했잖아요. 기업에도 이런 간절함이 필요합니다.”



    주민들이 건넨 감사패

    3선 시장하면서 기억에 남는 일은 뭔가요.
    “글쎄요, 제가 계획한 일들은 90% 이상 달성한 거 같아요.”

    그는 지난 11년간 기억을 더듬는 듯 한동안 팔짱을 끼고 천장을 올려다봤다. 

    “구미에코랜드도 최근 개장했고, 구미산악레포츠공원도 조성했고, 구미시추모공원(시립화장장)도 개장했고. 새마을테마공원은 곧 마무리되고…구미시의 변화를 생각하면 ‘연륜’이란 단어가 떠올라요.”

    연륜요?
    “연륜은 세월의 축적이죠. 그 세월에는 43만 시민의 간절함과 열정, 은근과 끈기가 담겨 있습니다. 구미의 오늘을 만든 것도 10년이라는 세월의 힘, 연륜이 만들어낸 값진 결과라고 생각해요. 신동아 지면을 빌려 구미시민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네요. 참, (인터뷰 초반에) 불산사고 말씀하셨잖아요?”

    네.
    “시장으로서 불산사고 때가 가장 기억에 남네요. 당시에는 주민들 피해 상황을 파악하고 정밀조사를 벌이면서 중앙정부와 손발을 맞췄어요. 농작물과 산림, 기업 피해, 수질 토양 대기오염 예방까지 전 공무원이 발로 뛰어다녔습니다. 사고 발생 12일 만에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됐으니 얼마나 초동 대처가 빨랐는지 알 수 있죠. 주민들이 사고 발생 4개월 뒤에 감사패를 주더군요. 적극적으로 대처해줘서 고맙다고. 참 뜻 깊은 감사패였어요.” 

    구미 불산누출 사고는 2012년 9월 27일 작업자의 불산 취급 부주의로 화약약품 불산(플루오르화수소산) 8t 정도가 누출돼 5명이 사망하고 18명이 부상한 참사였다. 농작물과 가축, 차량 피해 등 재산피해액은 379억 원에 달했다. 환경부 장관을 본부장으로 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가 꾸려졌고, 경북도와 구미시 등 관계기관이 지원에 나섰다.

    “1994년 10월 21일 경찰의 날에 서울 성수대교 붕괴사건이 났을 때 제가 정부 민방위본부 기획과장으로 사후 수습에 나섰어요. 그때 경험이 불산사고 대처에 큰 도움이 됐어요.”



    “왜 자기 생각만 강요하죠?”

     ▼3선 시장인 만큼 내년 경북도지사 출마설이 나오는데요.
    “아이고, 아직 마무리할 일도 있고….”

    새마을테마공원 말씀하셨는데, 최근 구미참여연대는 ‘개발독재 유물’ ‘관 주도 행정’ 등을 이유로 구미시 안전행정국 ‘새마을과’ 폐지를 주장했는데요(구미시는 새마을담당 업무를 하는 직원 5명이 새마을회 운영, 새마을협의회 지원 등을 하고 있다).
    “새마을과가 구미에만 있는 조직이 아닙니다. 충청남도 등 25개 단체에서 사용하고 있고, 새마을지회에 예산도 지원합니다. 그리고 새마을운동은 유네스코 기록 유산에 등재 될 만큼 가치 있는 유산이고, 한국의 심벌(상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아요. 자신의 색깔에 맞지 않는다고 폐지 운운하는 건 맞지 않아요. 시민단체는 다양성을 인정하고 배려해야 하는데, 자기들 시각에만 맞춰달라는 건 이해할 수 없어요. 왜 자기 생각만 강요하나요. 남을 배려할 줄도 알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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