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7월호

新東亞 - 미래硏 연중기획 중국통

“사드 출구? 국회 동의 거치면 美·中이 거부하기 어려워”

一帶一路 특사 박병석 의원

  • 이문기|미래전략연구원 원장 , 송홍근 기자|carrot@donga.com

    입력2017-06-20 16:5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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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習주석, 文대통령 인생 역정에 공감한다고 말해
    • 한중 관계? 거대한 빙산 수면 윗부분만 녹기 시작
    • 코리아 패싱 없을 것이라고 양제츠 답변해
    • 해머(초단기적 강력한 압박)와 스테이크로 北 다루자
    19대 국회에서 부의장을 지낸 박병석(65·더불어민주당) 의원은 40년 넘게 중국을 탐구해온 정치인이다. 1세대 중국통(中國通). 6월 8일 서울 여의도에서 만난 그는 “번갯불에 콩을 구웠는데 콩이 잘 구워져 다행”이라고 했다. 5월 14일부터 이틀간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열린 ‘일대일로(一帶一路·21세기 육상과 해상 실크로드 프로젝트) 정상 포럼’에 한국 정부 대표단 단장으로 참석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을 만났다.



    스무 살 때 ‘中國’을 진로로

     일대일로 포럼은 시진핑 주석이 핵심 대외전략으로 추진한 행사로 한국 각료만 부르지 않아 논란이 일었으나 5월 11일 문재인 대통령과 시 주석의 통화에서 초청이 이뤄졌다. 한중 갈등 이후 중국에 대표단을 파견한 첫 사례다.

    “3박 4일, 70시간 베이징에 체류했는데 체력 소모가 컸습니다. 긴장의 연속이었죠. 한중 관계가 악화한 후 첫 사절단으로서 상황을 뒤틀리게 하면 어떡하나 하는 중압감이 컸습니다. 중국 학도로서 1992년 한중수교 이후 최악인 현 상황에 대해 느끼는 책임감도 컸고요. 사람이 왜 기도하는지 절감했습니다.”

    실제로 만나보니 시진핑 주석은 어떻던가요.
    “일전에도 만난 적이 있습니다. 한국을 대표해 대화를 나눈 건 처음이고요. 볼 때마다 느끼는 게 사람이 중후합니다. G2 국가이자 수천 년 역사를 지닌 나라 지도자다운 면모를 갖췄습니다.”



    국회에서 중국 관련 경험이 가장 많습니다. 중국어도 능통하고요. 시진핑 주석과도 중국어로 대화했더군요. 중국과 어떻게 인연을 맺었습니까.
    “닉슨-마오 회담을 TV로 지켜본 게 중국으로 진로를 바꾼 계기입니다. 그때 아버지와 ‘앞으로 중국이 굉장히 중요해질 것’이라는 내용의 대화를 나눴습니다. 성균관대에서 법학을 전공했는데 중국어에 갈증을 느껴 성균관대 대학원에서 2년간 중국어를 배웠습니다. 1975년 9월 중앙일보 입사 면접 때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가 ‘합격하면 무슨 부로 가고 싶으냐’고 묻더군요. ‘베이징 특파원 하렵니다’라고 답했더니 면접관이 하나같이 놀랐어요. 당시엔 중국이 아니라 중공이었죠. ‘무찌르자 중공 오랑캐’ 외칠 때입니다. 산둥(山東)에서 넘어와 음식점 하는 화교 외엔 중국어 할 줄 아는 사람이 거의 없을 때고요.”

    1972년 리처드 닉슨이 미국 대통령으로서 최초로 베이징을 방문해 마오쩌둥(毛澤東)과 회담했다. 한해 전 핑퐁 외교를 마중물로 삼은 미중 데탕트가 시작된 것이다. 당시 그는 대학 입학을 앞둔 학생이었다.



    대만서 수학한 ‘1세대 中國通’

    그는 2000년 16대 총선 때 국회에 들어온 5선 의원이다. 한·중의원외교협의회 회장을 맡고 있다. 1982~83년 대만 정치대학에서 수학했으며 1985~90년 중앙일보 홍콩 특파원으로 일했다. 1994~95년에는 워싱턴주립대에서 방문학자 자격으로 국제관계(중국학)를 연구했다. 서울시 정무부시장, 민주당 정책위의장, 국회 정무위원장을 역임했다.

    중국 대륙이 격변할 때 홍콩 특파원으로 일했습니다.
    “큰 신문사도 해외 특파원을 3명 정도만 뒀을 때예요. 홍콩에 기자를 보낸 것은 중국을 살피는 게 목적이었죠. 홍콩에 부임했더니 중국어 하는 한국 사람이 거의 없더군요. 외교관도 1~2명만 중국어를 했어요.

    중국통 1세대는 대부분 나처럼 대만에서 공부한 이들입니다. 1982~83년 대만 정치대학 다닐 때 외교부에서도 막 대만으로 외교관을 유학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대만 정치대학에서 공부할 때 외국인 중국어 웅변대회에서 1등 한 적이 있습니다. 홍콩 특파원 시절 총영사관 사람들이 저한테 이것저것 물어보는 일이 잦았죠. 총영사관 행사 때 통역을 한 적도 있고요. 신화사(중국 뉴스통신사) 홍콩지사, 런민(人民)일보 인사들과 홍콩에서 교분을 나눴습니다. 한중수교가 이뤄지기 전이었으나 경제 관계가 트이기 시작해 중국도 한국에 관심이 컸거든요.”

    1989년 6월 톈안먼 사건 때 특히 분주했겠습니다.
    “6·4 톈안먼 사건 직전인 4월 중국 옌볜조선족자치주를 방문했습니다. 후야오방(胡耀邦)이 그때(4월 15일) 죽어요.”

    후야오방 전 중국 공산당 총서기는 언론자유 확대를 비롯한 정치 개혁을 추진하다 1987년 1월 실각했다. 후야오방의 죽음은 1989년 중국 민주화 시위의 기폭제가 됐다.  

    “옌볜에서도 후야오방을 추념(追念)하는 시위가 벌어졌습니다. 옌볜에서 돌아온 후 민주화 시위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집니다. 베이징에 들어가려고 비자를 신청했는데 안 내주는 거예요. 특파원 신분으로는 비자를 못 받으니 다른 방식으로 우여곡절 끝에 비자를 받아 베이징에 도착했습니다.”


    1989년 6월4일 天安門광장  

    그는 베이징에서 한국기자상(1989)을 수상하는 기사를 작성한다. ‘자오쯔양(趙紫陽)이 체포돼 구금됐다, 민주화운동이 실패로 끝났다’는 기사를 송고한 것. 자오쯔양 전 공산당 총서기는 1989년 6월 민주화 시위를 무력 탄압하는 것에 반대하다 실각한 개혁파 지도자다.

    “조간이던 중앙경제가 1면 머리기사로 실었어요. 석간인 중앙일보는 1면 톱으로 실었다가 2판부터 4단으로 기사를 확 줄였고요. 중앙일보 편집국에서 자오쯔양이 체포, 구금됐다면 미국이나 일본 특파원, 베이징 주재 외국 대사관이 모를 리 없다고 판단한 거죠. 내가 송고한 기사를 오보라고 여긴 겁니다. 11시간 반쯤 지나 AP가 ‘자오쯔양 체포, 구금’ 기사를 타전합니다. 중앙일보 기사가 세계적 특종이 된 것이죠. 한국 언론이 국제 문제에서 세계적 특종을 한 첫 사례예요.”

    톈안먼 사건을 현장에서 지켜봤군요.  
    “참극을 목격했죠. 탱크로 사람을 밀어붙이는 것을 직접 봤습니다. 지금도 트라우마가 있어요. 고속도로에서 트럭이 옆으로 지나가면 공포가 밀려옵니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 직후인 5월 14~15일 베이징에서 열린 ‘일대일로(一帶一路) 정상 포럼’에 한국 대표단 단장으로 참가했습니다. 애초에 한국은 초청 대상에서 빠졌다 갑자기 추가됐는데요. 베이징이 문재인 정부에 기대감을 가진 것으로 보입니다.
    “시진핑 주석이 5월 11일 문재인 대통령과 통화하면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사절단을 보내면 정중히 예우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압니다. 북한을 포함해 110여개 국을 초청했는데 한국만 빠져 있었어요. 사드 여파죠. 5월 13일 출발하면서 중국 지인에게 지도층을 꼭 만나야 한다고 강조했더니 최선을 다하겠다는 비교적 긍정적인 신호가 왔습니다. 중국에서 지도층은 상무위원 7인을 뜻합니다. 시진핑 주석을 만날지, 리커창(李克强) 총리가 나올지 확신이 없는 상태에서 출발했습니다.”

    이번 포럼에 29개국 정상과 정부 수반이 참가했지만 시진핑 주석이 따로 회담한 인물이 많지 않다. 국가 정상이 아닌 대표단 단장을 만난 것은 이례적이다. 시 주석이 그를 만난 것은 한중 관계 개선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文-習 통화서 큰 물줄기 설정”

    “시진핑 주석에게 ‘대한민국 정부 대표단 단장 박병석입니다. 문재인 대통령께서 전하는 말씀을 전달하겠습니다’라고 말한 후 중국어로 서울에서 준비해간 얘기를 했습니다. 시 주석이 ‘중국어를 어떻게 이리 잘합니까’라고 하더군요. 양제츠(楊潔篪) 국무위원, 왕이(王毅) 외교부장이 배석했고요.”

    시진핑 주석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전한 메시지는 뭡니까.
    “언론에 이렇듯 자세하게 얘기하는 것은 처음인데, 시진핑 주석은 먼저 ‘문재인 대통령과 통화가 만족스러웠다’고 했습니다.”

    그가 수첩에 메모한 시진핑 주석의 주요 발언은 다음과 같다.

    “우리는 한중 양국 간 관계를 고도로 중시합니다. 양국 간 관계는 동북아뿐만 아니라 세계 평화에도 아주 큰 의미를 지닙니다. 최근 양국 관계가 우여곡절을 겪고 있으나 미래를 내다보고 갑시다. 문재인 대통령의 인생 역정, 정치적 입장에 공감합니다. 나하고 비슷한 점이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을 계기로 공동 노력을 해 양국 관계의 새로운 출발점으로 삼고 큰 발전을 이룩하도록 합시다. 핵심적 이익과 중대 사안에 관해서는 상호 존중이 필요합니다. 상호 신뢰와 존중 속에 앞으로 기대와 믿음을 갖고 나아갑시다.”

    시진핑 주석 발언 중 ‘핵심적 이익’과 ‘중대 사안’은 사드 문제와 북핵 문제를 가리킨 것으로 해석된다.

    한중 간 갈등을 풀자는 메시지로도 들립니다.
    “한국 정부와 중국 정부가 양국 관계가 이렇게 악화돼서는 안 된다는 데 인식을 함께하고, 탈출구와 전기를 마련하자는 데 공감대를 가졌다고 보면 됩니다. 문재인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 간 전화통화를 통해 큰 물줄기, 방향이 설정됐다고 봐요.”


    “중국 민심이 분노한다”

    사드 갈등 출구를 찾아야 한다는 데는 양국이 공감하는 것 같습니다만 베이징이 내놓은 메시지 해석은 엇갈립니다. 한쪽에서는 시진핑 주석이 “같은 점을 추구하고 이견을 해소하자(求同化異)”고 언급한 점, 각종 제재를 슬그머니 풀고 있는 점을 근거로 사드 추가 배치를 억제하는 수준에서 타협이 이뤄질 것으로 해석합니다. 다른 쪽에서는 왕이 외교부장이 “사드는 양국 관계 발전을 가로막는 목에 걸린 가시다. 방울을 단 쪽에서 방울을 떼야 한다”고 발언한 것 등을 근거로 삼아 중국의 기본 태도는 변화하지 않았으며 한국 정부를 지속적으로 압박하리라고 봅니다. 베이징에서 느낀 것은 어떻습니까.
    그는 “사드 문제가 빠른 시일 내 해소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서둘러서도 안 된다”면서 중국 인사들과 대화한 내용을 소개했다. 

    “5월 15일 탕자쉬안(唐家璇) 전 국무위원을 낮 12시에 만나 식사를 곁들여 2시간 남짓 대화했습니다. (대화 내용을 구체적으로 밝힐 수는 없으나) 사드 문제나 북한 핵, 미사일이 논의 주제죠. 탕 전 국무위원이 사드에 관해 중요한 얘기를 한 후 답변을 기다리면서 안경 너머로 나를 응시하더군요. 나는 대화하면서 눈을 한 차례도 먼저 안 내렸습니다. 탕 전 국무위원이 ‘민심이라는 물은 배를 뒤집을 수 있다’고 하더군요. 중국 민심이 분노하고 있다는 뜻이죠. ‘정관정요’(당 태종이 근신들과 정치 문제를 논한 것을 현종 때 오긍이 엮은 책)에 나오는 그 말은 정치인 박병석이 가진 중요한 신념이나 중국에 반한 감정이 있다면 한국에도 반중 감정이 있다’고 답했습니다.”

    그는 “한국 기업에 대한 제재는 정부와 무관하게 민간 차원에서 이뤄진다는 게 중국의 공식 견해”라고 덧붙였다.

    덕담만 주고받은 게 아니군요.
    “팽팽한 대화가 여러 차례 오갔어요. 1992년 한중수교 산파인 첸지천(錢其琛) 당시 외교부장이 5월 9일 별세했습니다. 첸 전 외교부장 자서전에 김일성에게 한중수교를 통보하러 가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때 모습과 대화가 상당히 인상 깊었다고 탕 전 국무위원에게 말하기도 했습니다. 미세먼지에 관해서도 다방면으로 논의가 이뤄졌고요.”



    “코리아 패싱 우려 해소”

    그는 “중국 외교가 치밀하다”면서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탕자쉬안 전 국무위원과 면담한 날 밤 9시 30분 양제츠 국무위원 면담이 잡혔습니다. 탕 전 국무위원을 통해 한국 측이 무슨 생각을 가졌는지 파악한 후 양 국무위원이 대화에 나선 것이죠. 양 국무위원에게 ‘3가지 원칙을 밝혔습니다. 첫째, 한반도에 핵이 있어선 안 된다. 둘째, 어떤 경우에도 전쟁은 안 된다. 셋째, 한반도의 오늘과 내일을 논의하는 데 한국을 배제할 수 없다.

    3원칙 중 세 번째는 이른바 ‘코리아 패싱(Korea Passing)’ 다시 말해 한국이 참여하지 않은 상황에서 한반도 미래에 대한 논의나 결정은 있을 수 없다고 강조한 것입니다. 양 국무위원은 중국이 늘 밝히는 3원칙(한반도 비핵화·평화와 안정·대화)을 언급한 후 코리아 패싱은 없을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에게 그 말을 직접 보고하겠다고 양 국무위원에게 말했습니다(문 대통령은 6월 16일 1시간 넘게 방중 결과를 보고받았다).”

    김흥규 아주대 교수는 ‘中·國·通’ 6회에서 “시진핑-트럼프 간 제2의 가쓰라-태프트 밀약이 우려된다”면서 “미국과 중국이 한국의 대외전략 및 역량에 의구심을 가지면 한국을 패싱해 밀약을 맺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신동아’ 6월호 참조) 

    베이징이 “방울을 단 쪽에서 떼라”면서 결자해지를 촉구하는 상황에서 출구를 찾으려면 외교적 협상이 필요합니다. 한국 처지에선 한미동맹도 고려해야 하고요. 환경영향평가를 거치는 방식으로 사드 추가 배치를 유예하는 조치가 이뤄진 상황입니다. 중국이 이러한 수준에 만족할까요. 출구를 찾는 일은 미국, 중국은 물론이고 국내 정치까지 고려해야 하는 난제라고 하겠습니다. 일부에서는 사드 배치 여부에 대한 국회 동의 절차가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중국 음원 사이트에서 한국 K-POP 차트가 다시 올라오고, 롯데마트 홈페이지가 먹통에서 벗어났습니다만 ‘빙산의 물 위에 뜬 부분은 녹기 시작했으나 수면 아래는 여전히 얼어 있다’고 봐야 합니다. 수면 아래의 거대한 빙산이 녹느냐는 지켜봐야 할 문제예요. 과도한 기대를 가져서도 안 되고 비관적으로만 볼 필요도 없습니다.”

    베이징이 사드에 과민하게 반응하는 측면도 있습니다.
    “두 갈래로 나뉩니다. 핵심적 안보 상황에 실질적으로 영향을 미친다고 보는 경우가 있고요. 다른 한편에서는 배치 결정 과정에서 양국 간 소통 및 절차에 불만을 갖고 있습니다. 한국 정부가 요청도 협의도 결정된 바도 없다고 강조하다 전격적으로 배치를 결정하지 않았습니까.”


    “민주적 절차로 ‘협상력’ 높여야”

    베이징에서 만난 중국 학계 인사들은 “한국에 배신감을 느꼈다”고 말하더군요.
    “분명한 점은 사드 문제는 세 가지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겁니다. 첫째는, 고도화하고 있는 북한 핵과 미사일입니다. 둘째는, 한미동맹의 굳건한 기초고요. 셋째는, 한중 관계가 실질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가 되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를 동시에 고려해야 하는데다 한중 간 갈등이면서 미중 간 문제인 터라 복잡하게 얽혔습니다. 그러므로 민주적 절차와 투명성을 확보하는 게 굉장히 중요합니다. ‘사드 배치를 하든 안 하든, 추가 배치를 하든, 안 하든’ 대한민국 국민 뜻이 이렇다는 것을 도출하면 협상에서 무기가 됩니다.”

    국회에서 사드 배치로 결론이 나든, 그 반대이든 또 다른 후폭풍이 생기지 않을까요.  
    “밀실에서 결정한 것을 그대로 수용하는 대한민국 국민이 아닙니다. 최선을 찾기는 어려울 거예요. 차선을 찾아야 하는데, 그 힘이 어디에서 나오느냐? 국민의 동의에서 나옵니다. 미국이나 중국에서 섭섭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겠으나 민주주의 국가인 미국이 대한민국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에서 결정한 것을 거부할 수는 없을 겁니다. 중국도 마찬가지고요.”

    4월 트럼프-시진핑 회담 이후 북핵 문제 해법과 관련한 미중 간 의견이 상당히 수렴된 것으로 보입니다. 트럼프 행정부는 ‘최대 압박과 관여’를 통해 북핵 문제를 해결하려고 합니다. 중국은 ‘쌍중단(雙中斷·핵과 미사일 실험 및 한미군사훈련 중단)’ ‘쌍궤병행(雙軌竝行·비핵화와 평화협정 동시추진) 구상을 내놓았습니다.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 정책 때와 비교하면 미중의 해법이 유사해졌습니다. 북한은 아직도 요지부동이고요.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끌어내는 과정에서 한국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요.
    “오바마 행정부 시절 스탠퍼드대 한국학연구소 부소장에게 ‘미국 정부가 얘기하는 ‘전략적 인내’라는 것은 한마디로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거 아니냐, 아무 조치도 하지 않는 그 기간에 북한은 핵과 미사일을 고도화하고 있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전략적 인내’는 실패한 정책이고 시간은 우리 편이 아니었습니다.

    3단계 해법이 필요합니다. 이른바 ‘박병석 프로세스’인데요. 우선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끌어내려면 초단기적 강력한 압박이 불가피합니다(1단계) 당근과 채찍 갖고는 안 돼요. 해머(hammer)와 스테이크가 필요합니다. 스테이크는 맛이 좋아야 하고요. 그간의 채찍은 아프지 않았으며 당근도 배를 채워주지 못했습니다. 한반도 비핵화 대화의 입구는 ‘동결’입니다. 북한이 핵, 미사일을 동결하고 협상 테이블에 나오면 대북 제재를 완화해줘야 합니다(2단계). 대화 진전에 따라 평화 정착과 비핵화를 동시에 이룩하는 게 마지막 단계고요(3단계).



    서울 지키려 뉴욕 포기할까

    비핵화는 북한 문제 해결 종착점이지 출발점이 아닙니다. 북한이 어느 경우 핵을 포기할까요? 정권이 보장될 때, 핵을 포기하는 게 보유하는 것보다 유리할 때만 결심합니다. 이명박 정부 ‘비핵개방3000’을 봅시다. 핵을 포기하면 1인당 국민소득 3000달러를 만들어준다? 정권 유지를 보장해주지 않으면 그 같은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죠.”

    트럼프 행정부는 전임 정부보다 북한 문제 해결과 관련해 ‘뭔가 하려는’ 의지가 강해 보입니다.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이 ‘북한 정권 교체, 체제 붕괴, 통일 가속화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김정은을 ‘영리한 녀석’이라고 칭하면서 대화할 수 있다는 뜻을 피력했고요.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를 하는 순간 북한 핵은 동북아의 문제가 아니라 미국의 문제가 됩니다. 미국은 ICBM을 완성하기 전 북한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 할 겁니다. 우리가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해요. 북한이 미국 본토를 타격할 능력을 갖추는 순간 그야말로 ‘게임 체인지’가 일어납니다. 한반도에 불행한 역사가 찾아 올 수 있습니다.”

    그는 이 대목에서 1960년대 샤를 드골 프랑스 대통령이 ‘미국이 소련 핵 공격으로부터 파리를 지키기 위해 뉴욕을 희생하지는 않을 것”이라면서 독자 핵무장의 길을 걸은 일화를 소개했다. ‘게임 체인지’는 미국이 서울을 지키기 위해 뉴욕을 희생하지 않는, 다시 말해 핵우산이 과거와 같은 구실을 못하는 상황을 의미하는 것이다.

    한국 보수진영 강경파는 대체로 ‘미국과 북한이 핵 동결 수준에서 문제를 봉합하는 것’을 우려하면서 북한의 핵 포기를 대화의 입구로 보는 반면 보수진영 온건파와 진보진영은 대체로 핵·미사일 동결을 대화의 입구로 보는 경향이 있다.  

    ‘해머-스테이크’론은 트럼프 행정부의 ‘최대 압박과 관여’와 비슷한 맥락으로도 들립니다.  
    “정말로 꼼짝 못하게 압박하든지, 대가를 확실하게 주지 않는 한 핵과 미사일을 고도화한 북한이 움직이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미중 정상회담을 통해 해법의 큰 틀이 잡힌 것으로 보이는데, 대단히 다행스러운 일이죠.”

    미중이 큰 틀의 합의를 이뤘다는 게 대체적 분석입니다.
    “트럼프가 중국에 가하려던 경제 관련 조치를 완화하면서 중국으로 하여금 북한을 압박하게 하는 큰 틀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북핵 문제를 해결할 절호의 기회일 수 있습니다.
    “타임 리밋이 얼마 남지 않은 아주 절박한 기회예요.”


    “중국이 움직일 공간 만들어줘야”

    한국 정부는 북한·북핵 문제 해결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요.
    “북한은 미국과 직접 협상을 원한다고 봐야죠. 한미동맹의 굳건한 기초라는 게 뭡니까. 미국이 북한과 대화할 때 사전 협의를 하고 한국 의견을 존중해야 합니다. 극도의 압박과 대화 등 모든 수단을 강구해야 합니다. 시간이 많지 않아요. 한미동맹을 굳건히 하면서 중국이 역할을 할 공간을 만들어줘야 합니다. 앞선 정부의 실책 중 하나가 유엔 제재가 본격화하는 시점에 전격적으로 사드 배치를 발표함으로써 중국의 대북 제재 참여 강도를 약화시켰다는 겁니다. 외교 안보팀의 전략적 판단에 문제가 있었어요.”
     
    중국 젊은 세대가 가진 반한 감정 기저에는 민족주의가 있습니다. 한국 젊은 세대가 가진 반중 정서도 만만찮고요. 올해가 한중수교 25주년입니다. 8월 24일 한중수교 기념행사를 불편한 감정을 해소하는 계기로 삼아야 하겠습니다.
    “한국까지 포함하면 중국과 국경을 접한 나라가 15개국입니다. 그중 중국과 관계가 아주 좋은 나라 중 하나가 대한민국이었습니다. 한반도 평화와 안정이 중국 국익에 도움이 됩니다. 대한민국도 경제 분야와 북한에 미치는 영향력 등에서 중국이 필요하고요. 최근 사태는 굉장히 불행한 일입니다. 정부 차원 논의 외에도 민간 차원 이해와 소통이 요구됩니다. 정부와 정치 지도자가 한중 관계의 걸림돌을 제거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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